제5편 조사어록
제5장 육조의 법문
4. 무념·무상·무주 [六祖壇經 定慧品]
본래 바른 가르침에는 돈(頓)과 점(漸)이 없다.
사람의 바탕에 총명하고 우둔함이 있어
우둔한 사람은 차츰 닦아가고 총명한 사람은 단박 깨닫는다.
그러나 스스로 본심을 알고 본성(本性)을 보면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돈이니 점이니 하는 것은 헛이름[假名]을 붙인 것이다.
내 이 법문은 위로부터 내려오면서 먼저 무념(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고,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고, 무주(無住)로 본(本)을 삼았다.
무상이란 상(相)에서 상을 떠남이요,
무념이란 염(念)에서 염이 없음이요,
무주란 사람의 본성이 선하거나 악하거나 밉거나 원수거나 간에,
서로 말을 주고받거나 좋지 못한 수작을 걸어오더라도
모두 다 헛것으로 돌려, 대들거나 해칠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과 생각 사이에 지난 경계를 생각하지 마라. 만약 지난 생각과
지금 생각과 뒷생각이 잇따라 끊어지지 않으면 이것이 얽매임이다.
모든 존재에 생각이 머물지 않으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니,
무주(無住)로써 근본을 삼음이다.
밖으로 모든 상(相)을 떠나면 이것이 무상(無相)이니,
상에서 떠나기만 하면 곧 법체(法體)가 청정하므로
무상으로 체를 삼은 것이다.
모든 대상에 마음이 물들지 않으면 이것이 무념(無念)이니,
제 생각에 항상 모든 대상을 떠나서 대상에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모든 생각을 아주 없애버리면,
한 생각이 끊어지면서 곧 죽어 딴 곳에 태어나니,
이것은 큰 착오이므로 배우는 사람은 명심해야 한다.
만약 법의 뜻을 알지 못하면 자기만 잘못 되지 않고 남까지도 잘못 되게 한다.
또 자기가 어두워 보지 못하면서 부처님 말씀을 비방까지 한다.
그러므로 무념을 세워 종(宗)을 삼은 것이다.
무념으로 종을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어둔 사람이 입으로만 견성했다 하면서 대상에 생각을 두고,
생각위에 문득 삿된 소견을 일으켜 온갖 지저분한 망상을 낸다.
자성(自性)은 본래 한 법도 얻을 것이 없는데 만약 얻은 것이 있다하여
망령되이 화복(禍福)을 말하면 이것이 곧 지저분한 삿된 소견이다.
그러므로 이 법문은 무념을 세워서 종을 삼은 것이다.
그러면 무(無)란 무엇을 없앰이며, 염(念)이란 무엇을 생각함인가.
무란 두 가지 모양이 없고 모든 쓸데없는 망상이 없는 것이며,
염이란 진여(眞如)의 본 성품을 생각함이다.
진여란 곧 염의 본체이며 염은 진여의 작용이므로
진여의 자성이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고, 눈·귀·코·혀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진여에 성품이 있으므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여가 없다면 눈과 귀와 소리와 물질이 곧 없어질 것이다.
진여의 자성에서 생각을 일으킨다면
육근(六根)이 비록 보고 듣고 깨닫고 알더라도,
모든 대상에 물들지 않고 참 성품이 항상 자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법상(法相)을 잘 분별하되
제일의(第一義)에 있어서는 움직임이 없다.'고 한 것이다.
불교성전(동국역경원 편찬)
출처: 다음카페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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