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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성탄/찬송
제목 : 성탄 찬송을 부르자!
성경 : 빌 2:5~11
찬송 : 122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31225 낙양교회 성탄 축하 예배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의 임마누엘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기억하는 것은 사실 어렵습니다. 시골에 사는 우리들은 그렇지 않지만 도시에 사는 분들은 연말과 함께 맞이하는 성탄절은 매우 분주한 시간입니다. 파티에 여러 가지 모임들이 있습니다. 성탄절 기간에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분주함입니다. 또한 과잉과 자기만족도 문제입니다. 사실 성탄절에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데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려는 우리 내면의 경향성입니다. 우리는 인생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종종 잊어버리곤 합니다. 성탄절 역시 당연히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탄절이 그리스도에 관한 날임을 의식적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성탄절은 가족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거나 아이들을 위해 추억거리를 만들거나 선물로 사랑을 표현하는 날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영혼에 가져다주는 기쁜 소식을 바라보고 예배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2장은 하늘을 떠나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아기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그분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구유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안락함 대신에 하나님의 뜻을 끊임없이 선택하신 주님이 사람으로 사신 삶은 우리에게 순종의 모범을 보여 줍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은 마침내 다시 살아나셔서 보좌에 오르셨고 하나님 아버지께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무릎이 주의 이름을 경배할 것이고, 모든 입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할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부른 성탄 찬양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탄찬양1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빌 2:5-7)
항공기를 이용할 때 보통은 탑승 수속을 할 때 대기 줄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다림 없이 바로 항공기 안으로 탑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등석 탑승객이나 특별 손님입니다. 퍼스트 클래스는 다른 좌석보다 서너 배 비쌉니다. 우선 탑승권과 다리를 뻗을 수 있을 만큼의 넓은 공간, 크고 편안한 좌석과 승무원의 특별 서비스가 포함된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등석 뒤에 있는 커튼을 치고 나면 다른 승객과 구분되는 공간이 됩니다. 저는 일등석을 딱 한 번 타보았습니다. 그것도 일등석 손님이 일행과 함께 가겠다고 자리를 바꾸자고 해서 타 보았습니다. 아주 좋았습니다. 일등석 표를 가지고도 넓고 편안한 좌석을 버리고 비행기 뒤편의 화장실 옆 좁은 자리에 앉는다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비록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인내하신 굴욕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 중 하나가 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셨는지를 조금이나마 엿보게 해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 받는 종이 되기 위해 자신의 능력과 특권과 위신을 행사할 권리를 내려 놓으셨습니다.
여러분!
남을 위해 자기 권리나 안락함을 포기한 분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들에게서 어떤 것을 느끼셨습니까?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신 것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억지를 쓰지 않으셨네.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시는 것에.
오히려 자신을 비우셔서,
종의 모습을 취하셨네.
사람의 모양을 띠고 태어나시니,
생김새로 볼 때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셨네.(새 한글성경)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낮아지신 위대한 겸비는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의 깊이를 입증합니다. 성자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거하시게 된 이 위대하고 험난한 여정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버리셨고, 취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무엇을 버리셨습니까?
그분은 지상에 오시기 전에 참 하나님으로 존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이신 예수님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분이 만물을 지으셨고, 그분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를 포기하지 않으신 채 인류를 위해, 그리고 인류와 연합하기 위해 신성에 따른 특권을 내려놓으셨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고귀한 임재를 영원히 즐길 수 있게 하시려고 일시적으로 하나님 아버지 곁의 고귀한 보좌를 포기하셨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취하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버리셨을 뿐만 아니라 취하셨습니다. 일등석을 포기한 것과 가장 좋지 않은 좌석으로 옮겨서 다른 승객들을 섬기기로 선택하신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영광과 장엄함을 누릴 권리를 버리셨고 성육하심으로써 제한과 제약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셨다는 말은 예수님이 신성을 버리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육신하여 인성을 취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비우심으로써 예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이시며 전적으로 인간인 신인(神人)으로 존재하십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의 임마누엘로서 최상의 겸비를 보여 주셨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성탄찬양2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순종하셨습니다!(빌 2:8)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새한글성경)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이 유혹과 두려움에 직면했던 참사람이셨음을 우리는 쉽게 잊습니다. 이따금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동화책의 상상 속 이야기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즉 예수님이 아무런 노력이나 욕망이나 문제도 없이 이 세상을 잘 살아가신 듯이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 안에 있는 내적 싸움이 그분 안에도 있었습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이기주의, 교만, 나태, 탐심 등 모든 유혹에 직면하셨습니다. 그러나 매번 모든 유혹에 저항하고 싸우시는 바른 선택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른 선택을 하실 수 있었던 것은 선택이 쉬웠다거나 죄를 지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는 근본적인 갈망과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계셨기에 순종하셨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예수님은 완전히 기쁘게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분명히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유익을 아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일에 항상 몰두 하셨습니다.
눅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배반을 당하셨던 밤에 우리는 예수님의 순종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기다리는 고통과 고난을 아셨던 하나님의 아들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날 저녁에 관해 누가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은 순종의 선택을 놓고 고뇌하셨고, 다른 길을 위해 간구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이셨기에 순종이 쉽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영광을 향한 사랑과 헌신 때문에 순종만을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십자가를 향한 고통스러운 길을 신중하면서도 기쁘게 걸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완성되기까지 조롱과 고문을 견디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찰스 웨슬레 찬송시
√“온순하게 영광을 내려놓으시고, 사람들이 더 이상 죽지 않게 하시려고 태어나셨네. 땅의 아들들을 일으키시려고 태어나셨네. 그들에게 두 번째 탄생을 주시려고 태어나셨네. 들어라! 천사들이 노래한다. ‘새로 태어나신 왕께 영광!’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과 순종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겸손히 자신을 낮추지 않는 사람이 순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은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아지셨기에 십자가에 죽음까지 순종하신 것입니다.
성탄찬송3
√십자가에서 하늘 보좌로 그리스도께서는 높아지셨다!(빌 2:9~11)
무언가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것은 인생에서 달콤한 순간들입니다. 생일과 결혼, 그리고 승진에서 졸업까지 축하란 잠시 멈추어서 그동안 성취한 모든 일을 의미 있고 즐거운 방식으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한 단계를 통과한 일이나 업적을 세운 일에 대한 올바른 반응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탄절에 어떤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본문의 초점은 예수님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제 초점을 그리스도의 태도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일하심으로 돌립니다. 그는 아름다운 축하 찬송의 후렴구를 점점 크게 들려줍니다.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래서 하나님도 예수님을 높이 높여 주셨네.
예수님에게 이름을 선물하셨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리하여 예수님 이름 앞에 다 무릎 꿇도록 하심이네.
하늘 위나 땅 위나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이. 혀 있는 사람마다 인정하도록 하심이네.
예수 그리스도님이 주님이시라고.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빌 2:9-11/새한글성경)
성경에서 ‘이러므로’나 ‘따라서’ 또는 ‘그래서’가 보이면 주의를 기울이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중요한 결론이 다가올 때 이 말들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9절에서 대전환이 일어납니다. 5~8절이 참이기에 9~11절의 결과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자신을 낮추어서 인간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계획을 순종적으로 따르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셨으며, ‘만유의 주’라는 가장 위대한 이름을 주셨던 것입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을 높이셨고 장엄한 통치를 회복시키셨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러므로”나 “따라서”가 중요하듯이, ‘하게 하시다’ 역시 중요합니다. 본문에서 “이러므로”와 “~하게 하시다”는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매우 중요한 주제를 발견하게 합니다. ‘만물이 주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주제 말입니다.
하나님은 의도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높이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기념하듯이 예수님의 역사를 단순히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 사건은 책장을 장식하는 트로피처럼 한번으로 끝나는 선물이 아닙니다. 이 이름은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태의 자녀로 세상에 오셨을 때 놓고 오셨던 영광스러운 지위를 회복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높임은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결과적으로, 아들을 창세전의 영화로 회복시키신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합니다(요 17:4-5).
많은 주석가들이 오늘 본문 빌립보서 2:5~11절이 초대교회의 찬가였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바울은 예수님의 주권을 찬양하며 확신하는 당시에 사랑받았던 유명한 가사를 인용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한다는 구체적인 표현도 복음 메시지의 요약에 해당합니다. 초대교회는 찬송을 통해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예배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 갔습니다. 이 전통은 개인이나 공동체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예배하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 영광과 특권을 버리시고, 고난 받는 길을 취하셨습니다. 감당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범의 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5절에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분의 삶을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자기를 부인하며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죽으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 겸손한 태도와 희생적인 행동을 지속적인 찬양의 예물로 바쳐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나 세상에서의 행동을 통해 겸손하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기적으로 보내기 쉬운 성탄절에 사심 없이 구주를 기념하면서 세상의 별처럼 빛을 비춥시다. 섬김을 받기보다는 서로 겸손하게 섬깁시다.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의 순결한 자녀로 겸손하게 살아감으로써,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세상에서 겸손하게 살 때 고난을 당할 테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이 높여 주실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