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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키운 자녀(삼상 1:19-28)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벌이었던 삼성의 이병철회장이 살아있을 때 가까운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평생에 마음먹어서 안되는 일이 없었는데,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안 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한 가지는 그가 즐겨치던 골프였고 또 하나는 자식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정말 내 맘대로 안되는게 자식문제입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치고 자식이 잘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생각대로 되지 않는게 솔직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정말 어려서부터 부모의 마음에 꼭 들게 자라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옛말에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도 있고,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자녀를 키운다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이 있죠. 그런데 요즘은 ‘미운 네 살’그래요. 자꾸 연령이 낮아지는데 어디까지 내려갈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가정을 보면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정말 대단합니다. 아예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하면 올바른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아마 우리 모든 부모님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축복입니다. 시127: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그리고 자식은 자랑이요 기쁨이요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라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잘 키워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부모에게 맡겨주신 책임이요, 또한 보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식을 잘 키울 수 있겠습니까? 그게 우리 부모들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를 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의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신앙적인 교육이 절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이들을 대하고 아이들에게 신앙을 어려서부터 전수해야 합니다. 다 큰 다음에는 자기생각이 굳어져서 쉽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저들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 육신의 부모의 노력과 영적인 하나님 아버지의 간섭하심으로 합력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무조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고 믿음으로 방치하면 크게 땅을 치고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5월 가정을 달을 앞두고 우리 자녀들의 신앙에 대해서 고민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을 잘 전수해서 신앙의 대를 이어가는 신앙의 명가를 이루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을 보면 ‘한나’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는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도로 자녀를 키운 여인’입니다. 아주 성공적으로 키웠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좋은 모델 부모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한나는 자녀를 낳고 키웠나요?
1. 기도로 자녀를 낳았습니다.
한나는 남편 엘가나 사이에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가나가 그 당시 폐습대로 첩을 얻었는데, 그 사이에서는 자식이 생겼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한나가 자식이 없어 힘든데, 브닌나는 한나를 멸시하고 감정을 격동시킵니다. 요즘에는 자식을 안 낳으려고 해서 걱정인데, 당시에는 자식이 없는 게 큰 흉이고 고통이었습니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먹지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때 남편이 아내를 위로하는 말이 삼상 1:8절.“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소? 내가 있으니 울지 마시오. 그런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남편의 위로가 힘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실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위기를 당하고 아픔을 당하면 참 믿음이 드러납니다. 한나는 자녀를 갖고 싶은 소원이 너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다가 마침내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그 문제를 어디로 가지고 갔습니까? 삼상 1:10절을 보시면,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이 문제를 가지고 어디로 갔습니까? 하나님께로 성전으로 교회로 문제를 가지고 갔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예전에 양문교회에 오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낳은 가정이 여럿 있습니다.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해 고생하던 가정도 목장에서 합심하여 기도해서 아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와서 엎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문제가 있는데도 자기 경험과 지식으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해결한다면 그는 자신이 강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부족한 것입니다.
이처럼 문제가 있을 때 그 주체가 누구냐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의 실제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바쁩니까? 그렇다면 더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을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풀어가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쁘면 더 기도해야 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한나는 자기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복음서를 보십시오. 언제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앞에 나와서 부르짖으면 반드시 응답해 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지난 주 생명의 샘가 본문에 보면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려 고통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방법을 다 써보았겠지만 실패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가 살고 있는 두로와 시돈지역에 오신 것입니다.
그녀는 만사를 젖혀놓고 예수님께 나아와 부르짖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런데 예수님이 외면하고 주변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야단쳐도 소용없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침묵하시더니 마침내 입을 여셨는데 그것은 멸시와 거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내 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런 믿음을 저와 여러분도 가져야 합니다. 이 가나안여인은 육체적 질병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딸의 흉악한 귀신에 들려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이 시대에 젊은이들을 영적으로 미혹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힘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자녀의 문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십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렸습니다.
마 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나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부스러기라도 달라는 간청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15:28)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자녀문제, 주님만이 해결자이십니다. 주님께 가지고 나와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기도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흐르는 눈물,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그녀는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했지만 하나님께 간절히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는 아들을 낳았고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삼상 1: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사무엘’이란 이름은 히브리어 ‘솨마’(듣다)와 ‘엘’(하나님)이 합쳐진 단어로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는 뜻입니다. 한나의 신앙 고백이 들어있는 이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인간의 한계와 무능력을 돌파하는 영적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무한 능력에 접속되는 통로입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동차가 서 있을 때 사람의 힘으로 밀어보십시오.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아 키를 집어넣고 시동을 걸면 쏜살같이 질주합니다. 동력에 연결되니까 엄청난 힘이 생긴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로서는 불가능하지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에 연결되면 얼마든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나는 기도로 인간의 한계를 돌파하여 아들을 얻은 믿음의 여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든지 기도가 필요합니다. 부모의 기도가 자녀를 변화시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문제가 있을 때 눈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불가능한 일이 있을 때에라도 기도로 돌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기도로 자녀를 키웠습니다.
한나는 기도로 얻은 아들을 또한 기도로 키웠습니다. 21-23절,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22]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 [23]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여 그를 젖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에 그 여자가 그의 아들을 양육하며 그가 젖떼기까지 기다리다가”
엘가나는 사무엘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고 매년 하나님께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고 서원제를 드렸습니다. 서원제는 자기가 한 그 서원을 더 확실히 지키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아내가 무슨 서원을 했어도 남편이 인정치 않으면 무효가 되는데 엘가나는 믿음으로 한나의 서원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사무엘을 기르는 일은 한나 혼자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이라는 것은 엄마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머니의 비중은 중요합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바른 교육이 없이는 절대로 바로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협조가 없으면 자녀를 기를 수 없습니다. 22절에 보면 온 집안에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가는데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아이를 젖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3절 마지막에 보면 "그 여자가 그 아들을 양육하며 그 젖떼기까지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언뜻 보면 한나가 성소에 올라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나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한나는 이미 자기 아들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약속했는데 그 당시에 젖 떼는 나이는 세 살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세 살까지는 자기가 기르겠지만, 그 이후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하루하루가 귀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러 실로까지 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도 아까워서 그것을 자제하고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삼년이라는 시간 내에 아이 옆에 좀 더 있어서 사랑을 베풀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 넣은 것입니다. 28절 마지막에 보면 그녀가 얼마나 사무엘을 잘 교육시켰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때는 그가 대략 세 살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사무엘이 성전에 갔을 때 여호와께 경배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 살짜리 애기가 성전에 가서 하나님 앞에 경배할 정도가 되었으니 얼마나 그 아이의 교육을 잘 시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런 심령으로 자녀를 키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가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만 성장하면 부모의 곁을 떠납니다. 마음이 떠나고 몸이 떠납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바른 것을 심어야 합니다. 성장하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교육학자와 심리학자들은 6세 이전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여섯 살이 되면 그들의 인격이 60-70%가 이미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가 저들이 보고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고 가르쳐주어서 키가 자라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혜도 함게 자라도록 양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한나는 3살밖에 되지 않는 외동아들을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성전에 바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러나 한나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어린 아들을 먼 곳에 떼어 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한나 부부의 심정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한시도 잊지 않고 기도했을 겁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조기 유학을 시킨 셈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눈물로 기도했을지 상상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신앙으로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땀을 흘렸습니까? 기도한 적이 얼마나 됩니까?
자꾸 아이들이 성장하니까 후회하는 부모들이 참 많습니다. 그 때 잘 할 걸, 하지만 과거는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지금이 가장 적기입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며 키우는 부모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다 성장하여 시집장가를 갔거나 그렇지 않았다 할지라도 다 컸어도 부모는 평생 부모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역사를 볼 때에도 어거스틴과 같은 사람 뒤에는 어머니의 기도가 역시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사도 바울 이후로 기독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30세가 되기 이전까지 부모님의 속을 너무나 많이 썩히던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는 그 어머니가 돌아가신 장례식에도 오지 못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회개하고 신앙을 갖고 우리가 아는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눈물로 그 아들을 위해서 30년 동안 기도했던 모니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 웨슬레는 산업혁명 이후에 부패하고 무너져 가는 영국 사회에 부흥운동을 일으킨 그의 어미니 수쟌나가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얼마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위대한 신앙의 위대한 인물 뒤에는 기도하는 어머니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눈물의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 참으로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한다면 절대로 그들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현재 방황하고 여러분을 힘들게 한다면 우리에게는 기도라는 유일한 무기가 있습니다.
기도는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래서 헌아식이나 유아세례를 받으신 부모는 반드시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본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님들을 보면 얼마나 많이 물질적으로 환경적으로 많이 해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옛날 부모님에 비해서 못해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도를 더 많이 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과 같은 신앙의 인물들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울면서 자기를 따라 오는 여인들을 향해서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과연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부모로써 해야 할 일은 바로 기도입니다.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에 오셔서 자녀와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자녀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24절 마지막에 보면 젖을 떼고 성소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사무엘을 받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24-28절,“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25]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26]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28절을 보면 세 살된 사무엘을 엘리 제사장에게 맡겼습니다. 엘리제사장은 그렇게 훌륭하거나 모범된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들 홉비와 비느하스는 유명한 불량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무능한 엘리 제사장에게 이 귀중한 아들 사무엘을 맡겨놓고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한나는 제사장 엘리를 본 것이 아니라 그 성소에 계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의 교육은 이런 교육이었습니다. 자기가 할 것은 다하고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 자녀들을 교회에 맡겼습니까? 예를 들어서 어떤 부모는 시험 때가 되거나 공부를 좀 해야 할 때는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가라고 주장합니다. 신앙의 뿌리를 뽑는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자녀들이 이렇게 우선순위가 바뀌면 신앙생활은 계명이 아니라 교양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데, 하면 더 좋겠다는 정도의 강조한다면 똑같습니다.
이래가지고는 자녀를 신앙으로 키울 수 없습니다. 구약의 율법의 가르침 중에 신명기에 쉐마를 보면 (신 6:4-9)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이러한 쉐마교육을 시킵니다. 그래서 (신 28:1)의 복을 받았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이처럼 저들의 평생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만약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 부모 속에 있는 신앙은 죽은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 나라를 믿는다면 신앙이 우선순위입니다. 요즘 금요기도회에 중학교 1학년짜리들이 나와서 찬양을 하고 기도회에 참석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저들이 참 소중한 삶을 살고 있다. 하나님이 저들을 축복하지 않으시면 누구를 축복하겠는가, 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갖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공부를 못합니까? 아닙니다. 그들 중에는 평균 99점 맞은 학생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그런데도 어느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교회에 나가기보다는 공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직분자도 있습니다. 그분들은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 나간다고 누가 밥먹여 주고 장래를 보장해 주느냐, 부모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방법을 믿으라고 강요합니다. 이런 부모의 행동은 자녀들의 앞날을 보장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앞날이 하나님께 달려있는데 어떻게 부모의 생각대로 양육하려합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녀들을 하나님께 보내는 것입니다. 물론 사무엘시대처럼 교회가 아이들을 키워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한나와 같은 심정으로 주일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 때 평생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지혜와 은총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한나처럼 하나님께 바치고 주일학교를 통해서 평생 교회 다니도록 만들어 줘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한나는 기도로 자녀를 낳았습니다. 기도로 자녀를 키웠습니다. 자녀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드려진 사무엘은 어떻게 자랐습니까? 하나님이 책임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아들 사무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저들의 구원자로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를 여는 결정적인 지도자 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끝까지 사용하셔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영적지도자로 쓰임받았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가정에 자녀들이,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늘 그 위에 머물며 하나님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여 하나님과 부모에게 기쁨이 되는 성도, 그리고 믿음의 명가를 이루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