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이 오면 생각난다. 전후戰後 세대들과 생각의 차이가 있고 생각의 방향이 정 반대 일 수도 있겠지만, 가슴이 뛰고 뜨거운 피가 끓는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04시 잔인무도한 김일성 괴뢰집단의 붉은 무리들이 탱크를 앞세우고 삼팔선을 넘어 대한민국의 남한을 통째로 삼키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수도 서울로 진격 3일만에 점령하고 남으로 남으로 진격하여 지방 지역 빨갱이 무리들과 연계하고 포섭하면서 불과 한 달여만에 파죽지세로 낙동강 방어선 교두부까지 이르렀다. 조선왕조 말기 고종황제의 쇄국정책에서 빚여진 1905년 11월 27일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기고 드디어 대한제국 융희 4년 왕실과 조정대신들의 무능으로 1910년 8월 22일 치욕스런 한일합병( 한일병합) 경술국치에 의해서 일본에 강점되어 36년간 긴 세월동안 식민지배로 압박과 설음에서 주권을 잃은 국가 국민이 되었다. 다행히 대동아전쟁 (태평양전쟁)에서 (1941.12.7- 1945.9.22) 연합군의 승리로 일본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서 패전국 되었다. 그 덕분으로 우리나라는 1945년 8월15일 일본제국주의에서 해방되었으나 불과 5년도 안되어 국가체제 진영도 채 갖추기 전에 북한 김일성 공산도당들이 전란戰亂을 일으킨 것이다. 만약 이 전쟁에서 유엔의 결의와 유엔군 참전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최후의 보루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고 한 반도 끝 자락 부산까지 함락 되어 자유대한민국은 대한해협에 수장 되어 물 귀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백척간두에서 당시 유엔의 극동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원수가 불세출로 나타나 인천상륙작전을 9월 15일 감행하여 전세를 역전키시켜 수도 서울을 수복하고 삼팔선을 돌파 북진하여 평양을 점령하고 압록강 국경선까지 진격 국토통일을 눈 앞에 두었으나 140 여만명 (중공군 135만명 쏘련군 2만6천명)의 중공군 참전으로 다시 (1951년 1월 4일 ) 1.4 후퇴로 피난길이 다시 이어지다가 연합군이 반격하여 현재의 휴전선으로 유엔 중재에 의해서 3년간의 전쟁은 멈췄으나 종전이 아닌 휴전에 이르게 되었다. 유엔의 결의와 유엔군 지원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공산화되어 자유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췄었을런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 역사를 어찌 우리가 잊을 수 있겠는가? 6월이 오면 어린시절에 전쟁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6월의 아픈상처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 않겠는가? 동포여! 국민이여! 잊을 수 없는 유월을 상기想起하라! 역사를 잊어 버리는 자와 국가에게는 희망과 미래가 없다. 오늘의 자유대한민국은 거져(공짜)로 서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 그리고 명심 하라. 가슴 아픈 유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달이며 역사이고 대한민국이 생존 기로의 전환점에서 다시 재기한 달 이기도 하다 아~어찌 우리가 북한괴뢰 집단이 남침한 그날, 6.25를 잊을 수 있겠는가? 유월이 오면 가슴이 뛰고 피가 끓는다. 후손들이여! 이젠 더는 슬픈역사를 만들지 말고 쓰지 말자. 이것이 후손들에게 주어진 책무責務이며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