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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방[7283]愚伏先生詩 - 우곡잡영(愚谷雜詠) 절구 이십 수
우복집 제1권 / 시(詩)愚伏先生文集卷之一 / 詩
愚谷雜詠二十絶 丙午
우곡잡영(愚谷雜詠) 절구 이십 수 병오년(1606, 선조39)
書室
聖賢往矣書猶在。窮到心融卽見功。
好向此中勤着力。莫嫌輪扁笑桓公。
溪亭
萬壑風泉獨掩扄。日長無客到溪亭。
晩來意倦拋書出。潑眼新陰綠滿庭。
懷遠臺
巖臺千尺抱瑤琴。詠歎黃虞坐暮陰。
山遠水長人不到。只應魚鳥是知音。
서실(書室)
성현께선 가셨으나 책은 남아 있으니 / 聖賢往矣書猶在
마음 쏟아 이해하면 공효 바로 드러나리 / 窮到心融卽見功
이 속에 들어앉아 부지런히 힘 쏟으며 / 好向此中勤着力
윤편이 환공 보고 비웃은 걸 혐의 말라 / 莫嫌輪扁笑桓公
[주-D001] 윤편(輪扁)이 …… 걸 :
윤편이 글을 읽는 환공(桓公)에게 성현의 찌꺼기를 읽고 있다고 비웃은 일을 말한다. 제(齊)나라 환공이 글을 읽고 있을 때 윤편이 뜰 아래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환공에게 묻기를, “임금께서 읽고 계신 것에는 무엇이 쓰여 있습니까?” 하니, 환공이 성현의 말씀이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윤편이 “성인은 살아 있는 사람입니까?” 하니, 환공이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윤편이 다시 “그렇다면 임금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하였다. 《莊子 天道》
계정(溪亭)
만 골짜기 바람과 물 속에 홀로 살아가매 / 萬壑風泉獨掩扃
긴긴 해에 계정에는 찾아오는 사람 없네 / 日長無客到溪亭
늙어가매 뜻 나른해 책을 놓고 나가보니 / 晩來意倦抛書出
눈 안 가득 신록이라 뜰 안 온통 푸르르네 / 潑眼新陰綠滿庭
회원대(懷遠臺)
천척 높은 바위 위서 옥거문고 끌어안고 / 巖臺千尺抱瑤琴
날 저물어 어둑토록 황우 음악 노래하네 / 詠歎黃虞坐暮陰
산은 멀고 물은 긴데 사람은 아니 오매 / 山遠水長人不到
물고기와 새가 응당 나의 지음 친구이네 / 只應魚鳥是知音
[주-D002] 황우(黃虞) 음악 :
황우는 황제(黃帝)와 우순(虞舜)의 합칭(合稱)으로, 상고 시대의 음악을 말한다.
[주-D003] 지음(知音) :
백아(伯牙)가 탄 거문고 소리를 종자기(鍾子期)가 알아들은 것을 말하는데,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를 의미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이르기를, “백아는 금(琴)을 잘 탔고, 종자기는 소리를 잘 들었다. 백아가 높은 산을 생각하면서 금을 타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구나, 아아(峨峨)하기가 태산(泰山)과 같구나.’ 하고, 흐르는 물을 생각하면서 금을 타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구나, 양양(洋洋)하기가 강하(江河)와 같구나.’ 하였다. 그 뒤에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다시는 금을 타지 않았다.” 하였다.
五峯塘
疊石留泉作小池。鏡中峯影絶相宜。昨來更試栽荷法。會見開花十丈時。
五老臺
五龍蟠屈石頭危。歷戰千霜老更奇。莫向當年怨斤斧。樵翁那解惜貞姿。
舊爲店村時。村氓代其中一樹。顚今唯有旁枝作倚蓋形。
翔鳳臺
千仞岡頭獨振衣。去雲來鳥看平飛。悠然意得都忘語。日暮長吟弄翠微。
鰲柱石
樞軸穹窿自轉旋。杞人癡絶謾憂天。區區莫效支撑力。好鎭山門作老仙。
羽化巖
步步凌虛興未窮。六根非實又非空。從前枉試參同契。今日天遊自在中。
御風臺
泠然眞界出氛埃。萬里剛風腋下來。只爲故鄕忘不得。翩翩直可到蓬萊。
萬松洲
日將影過雲垂地。風得聲來海撼空。最好世間三丈雪。萬株春色一洲中。
山影潭
潭上山光碧四圍。蘸來潭底較淸奇。須添好雨涵虛靜。莫遣輕風漾綠漪。
오봉당(五峯塘)
돌을 쌓고 물 끌어와 작은 연못 만드니 / 疊石留泉作小池
산 그림자 물속 비쳐 아주 잘 어울리네 / 鏡中峯影絶相宜
먼젓번에 연 심는 법 시험해 보았나니 / 昨來更試栽荷法
마침 열 길 되는 연꽃 필 때를 만났구나 / 會見開花十丈時
[주-D004] 열 길 되는 연꽃 :
꽃의 직경이 열 길이나 되는 큰 연꽃을 말하는데, 진인(眞人)들이 노닐 적에는 각각 그 연꽃 위에 앉아 노닌다고 한다. 한유(韓愈)의 〈고의(古意)〉 시에 이르기를, “태화봉 산꼭대기 옥정에 있는 연은, 꽃 크기가 열 길이고 뿌리는 배와 같네.〔太華峯頭玉井蓮 開花十丈藕如船〕” 하였다.
오로대(五老臺)
다섯 용이 바위 끝에 위태롭게 서렸는데 / 五龍蟠屈石頭危
무서리와 천년 싸운 늙은 모습 기이하네 / 歷戰千霜老更奇
그때 당시 도끼질한 사람을 원망 말라 / 莫向當年怨斤斧
나무꾼이 어찌 곧은 자태 아낄 줄을 알리 / 樵翁那解惜貞姿
예전에 점촌(占村)을 맡고 있을 적에 촌 노인네가 그 가운데 한 그루를 베어
낸 탓에 지금은 곁가지만 남아서 기울어진 일산(日傘) 모양을 하고 있다.
상봉대(翔鳳臺)
천길 높은 언덕 위서 홀로 옷깃 펼치니 / 千仞岡頭獨振衣
가는 구름 오는 새 평평하게 나는구나 / 去雲來鳥看平飛
뜻 유연해 할 말을 모두 다 잊었는데 / 悠然意得都忘語
저문 해에 긴 노래는 푸른 산을 울리네 / 日暮長吟弄翠微
오주석(鰲柱石)
하늘의 축이 되어 절로 빙빙 도는데도 / 樞軸穹窿自轉旋
기인은 어리석게 하늘 꺼짐 걱정했네 / 杞人癡絶謾憂天
못난 나는 버티는 데 힘 보탤 수 없으니 / 區區莫效支撑力
산문이나 지키면서 늙은 신선이나 되리 / 好鎭山門作老仙
[주-D005] 기인(杞人)은 …… 걱정했네 :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을 쓸데없이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
《열자(列子)》 〈천서(天瑞)〉에 이르기를,
“기(杞)나라에 사는 어떤 사람이 하늘과 땅이 무너지면
몸을 피할 곳이 없음을 걱정하여 침식(寢食)을 잊었다.” 하였다.
우화암(羽化巖)
허공 밟고 걸어가매 흥취가 끝없나니 / 步步凌虛興未窮
육근은 참 아니고 빈 것 또한 아니네 / 六根非實又非空
전에 잘못 《참동계》를 시험해 보았는데 / 從前枉試參同契
오늘에는 하늘 유람 그 속에 절로 있네 / 今日天遊自在中
[주-D006] 육근(六根) :
불교에서 쓰는 말로, 눈, 코, 귀, 혀, 몸, 뜻을 말한다.
[주-D007] 참동계(參同契) :
한나라 때 위백양(魏伯陽)이 지은 책으로,
《주역(周易)》의 효상(爻象)을 빌려 금(金)을 단련하는 법을 논하였다.
어풍대(御風臺)
맑을세라 신선 세계 티끌세상 벗어나니 / 泠然眞界出氛埃
만리토록 부는 바람 겨드랑이 아래 부네 / 萬里剛風腋下來
단지 고향 그리는 맘 잊을 수가 없기에 / 只爲故鄕忘不得
훨훨 날아올라 곧장 봉래산을 향해 가네 / 翩翩直可到蓬萊
만송주(萬松洲)
해그림자 지나가고 구름 낮게 드리우며 / 日將影過雲垂地
바람 멀리 불어오고 바닷물은 허공 솟네 / 風得聲來海撼空
젤 좋은 건 온 세상에 눈이 듬뿍 쌓였을 때 / 最好世間三丈雪
만 그루의 푸른빛이 온통 섬을 덮은 거네 / 萬株春色一洲中
산영담(山影潭)
연못 위의 산빛은 사방이 다 푸르른데 / 潭上山光碧四圍
연못 속에 산 잠기매 더욱 맑고 기이하네 / 蘸來潭底較淸奇
모름지기 봄비 더해 하늘 비추도록 하고 / 須添好雨涵虛靜
살랑바람 불어 보내 물결 일게 하지 마소 / 莫遣輕風漾綠漪
垂綸石
古人垂釣還忘餌。我本無鉤豈有綸。自是濠梁知樂久。倚筇終日玩遊鱗。
船巖
神斧鑱成萬斛舟。化工應爲濟人謀。世間水乏行渠力。閣在空洲爛合休。
花漵
日暄沙淨水縈回。躑躅成山夾岸開。幸爾不隨波浪去。惹人尋逐此間來。
雲錦石
瑩滑那容一點苔。幾張雲錦帝親裁。不因萬劫濤沙齧。爭得晶光許好來。
雙壁壇
雙崖臨水翠屛開。十畝松陰絶點埃。佳境不慳分一半。今人誰肯爲山來。
靑山村 丹崖翠樹白沙澄潭極可愛。舊有野人名靑山者居之。至今號其地爲靑山村。
野人心計未全疏。此地來依水石居。今日獨來墟落盡。耦耕何處覓長沮。
畫圖巖
丹靑顏面玉精神。磅礴潭濱德有隣。兩嵒列峙 擬向此間棲小屋。
看人呼我畫中人。久欲置精舍未成
수륜석(垂綸石)
옛사람은 낚시하며 미끼 달지 않았지만 / 古人垂釣還忘餌
나는 낚시 없거니와 어찌 줄이 있으리오 / 我本無鉤豈有綸
본디부터 호량 기쁨 안 지 이미 오래거니 / 自是濠梁知樂久
막대 짚고 종일토록 노는 고기 바라보네 / 倚筇終日玩遊鱗
[주-D008] 호량(濠梁) 기쁨 :
호수(濠水)에 사는 피라미가 한가롭게 노니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가 혜자(惠子)와 호숫가의 둑 위를 걷다가, “피라미가 나와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군. 피라미는 참 즐거울 거야.” 하니, 혜자가, “자네는 피라미가 아닌데 어떻게 피라미가 즐거우리라는 것을 아는가?” 하자, 장자가,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가?” 하니, 혜자가, “나는 자네가 아니라서 본시 자네를 알지 못하네. 자네도 본시 피라미가 아니니 자네가 피라미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네.” 하였다. 《莊子 秋水》
선암(船巖)
귀신같이 도끼질해 만곡 싣는 배 만든 건 / 神斧鑱成萬斛舟
조화옹이 응당 사람 건네주려 한 것이리 / 化工應爲濟人謀
세간에는 이 배 띄울 만한 물이 없는 탓에 / 世間水乏行渠力
텅 빈 물가 버려진 채 오래도록 쉬고 있네 / 閣在空洲爛合休
[주-D009] 세간(世間) :
세간의 ‘間’이 원문에는 ‘問’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아 바로잡았다.
화서(花漵)
날씨 좋고 모래 맑고 물은 굽어 감도는데 / 日暄沙淨水縈回
철쭉꽃은 산 이루어 양쪽 물가 피어 있네 / 躑躅成山夾岸開
다행히도 물결 따라 떠내려가지 않아 / 幸爾不隨波浪去
사람들이 이 사이를 찾아오게 하는구나 / 惹人尋逐此間來
운금석(雲錦石)
반들대는 반석 위에 이끼 어찌 자라리오 / 瑩滑那容一點苔
펼쳐놓은 구름 비단 상제께서 마른 거네 / 幾張雲錦帝親裁
억만겁을 물과 모래 씻어 주지 않았다면 / 不因萬劫濤沙囓
어찌 저리 밝은 광채 낼 수가 있었으랴 / 爭得晶光許好來
쌍벽단(雙壁壇)
양쪽 절벽 물가에서 푸른 병풍 펼쳤으매 / 雙崖臨水翠屛開
열 이랑의 소나무 숲 티끌이 하나 없네 / 十畝松陰絶點埃
좋은 경치 안 아끼고 반쪽 나눠 준다 한들 / 佳境不慳分一半
지금 사람 어느 누가 이 산을 찾아오랴 / 今人誰肯爲山來
청산촌(靑山村) 붉은 단애(斷崖)와 푸른 나무와
하얀 모래와 맑은 담(潭)이 있어 보기에 아주 좋은 곳인데,
예전에 청산(靑山)이라는 야인(野人)이 이곳에 살았으므로
지금은 그 지역을 청산촌이라고 부른다.
야인의 맘속 계획 엉성하지 전혀 않아 / 野人心計未全疎
이곳 와서 수석 사이 자리 잡고 살았어라 / 此地來依水石居
오늘 홀로 찾아오매 모두 폐허 되었거니 / 今日獨來墟落盡
어디에서 함께 밭 갈 장저를 찾으리오 / 耦耕何處覓長沮
[주-D010] 장저(長沮) :
공자(孔子)가 살았던 시기에 걸닉(桀溺)과 함께 세상을 피해 살던 사람이다.
《논어》 〈미자(微子)〉에 이르기를, “장저와 걸닉이 함께 밭을 갈고 있는데,
공자가 지나가다가 자로(子路)를 시켜서 나루터를 묻게 하였다.” 하였다.
화도암(畫圖巖)
그림 같은 얼굴에다 옥과 같은 정신으로 / 丹靑顔面玉精神
못가에 둘이 서로 어우러져 서 있구나
- 양쪽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 / 磅礴潭濱德有隣
이 사이에 작은 초가 얽어 짓고 내 산다면 / 擬向此間棲小屋
사람들 날 그림 속의 신선이라 부르리라 / 看人呼我畫中人
이곳에다가 오래전부터 정사(精舍)를 지으려고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拱仙峯
百丈蒼厓十丈仙。問君高拱幾何年。應緣與世無情意。閱盡興亡獨不騫。
水回洞
畫障懸空拱列仙。蒼翁文字字堪傳。蒼石公嘗遊此地。
有記勝錄一篇。首句乃摘其中狀嵒巒之語。
只嫌造物慳偏甚。不許絃歌入洞天。初議建書院于此。衆意嫌其深僻。議遂寢。
[附識]
余酷好泉石。自卜居于此。日與冠童三數輩搜奇討勝。上下十餘里間。懸厓曲漵絶壑深林。足跡靡所不及。方其欣然得趣。自謂世間無他物事可以易吾之樂。蓋將以是爲終老之計。一二年來。疾病侵尋。筋力乏少。登陟搜尋之興。漸覺
衰歇。且念如此勞攘亦足喪志。杜門靜居。怡悅心神。時復尋閱經傳。玩索文義。有日暮途遠之憂。則於前日之所謂樂者。非惟有所不能。又有所不暇矣。病中合眼。默念向來遊歷之地。吟得二十絶書之壁上。以寓閑中臥遊之興云。丙午暮春下浣。石潨病人識。
공선봉(拱仙峯)
백 길 되는 푸른 절벽 열 길 되는 신선들아 / 百丈蒼厓十丈仙
내 묻노니 몇 년이나 팔짱낀 채 서 있었나 / 問君高拱幾何年
세상일에 마음과 뜻 조금치도 없는 탓에 / 應緣與世無情意
흥망성쇠 다 거치며 홀로 아니 기운 거리 / 閱盡興亡獨不騫
수회동(水回洞)
병풍 허공 걸려 있고 뭇 신선들 공수한단 / 畫障懸空拱列仙
창옹의 글 글자마다 모두 전할 만하구나 / 蒼翁文字字堪傳
창석공(蒼石公)이 일찍이 이곳에서 노닐면서 지은 기승록(記勝錄) 한 편(篇)이 있는데,
첫 번째 구절은 그 글 가운데에서 산봉우리를 표현한 말을 뽑아내어 지은 것이다.
단지 혐의스런 건 조물주가 유독 아껴 / 只嫌造物慳偏甚
현가 소리 동천 안에 들이지 않는 거네 / 不許絃歌入洞天
[주-D011] 현가(絃歌) :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는 것으로, 전하여 학문을 부지런히 하는 것을 뜻한다.
처음에 이곳에 서원(書院)을 짓기로 의논하였는데,
여러 사람들의 뜻이 깊고 궁벽진 것을 싫어하여 그 의논이 마침내 폐기되었다.
내가 천석(泉石)을 몹시도 좋아하여 스스로 이곳에다 집을 짓고 살면서 날마다
관동(冠童) 몇 명을 데리고서 기이한 경치를 찾아다녔는데,
상하(上下) 십여 리 사이에 있는 깎아지른 절벽과 굽이진 물가와
깊은 골짜기와 깊은 숲에 발길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에 바야흐로 흔연히 정취를 얻어서 스스로 이 세상 사이에
그 어느 것도 나의 이 즐거움과는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면서
장차 이렇게 살면서 늙어 죽을 계획을 하였다.
그런데 한두 해 전부터 내 몸에 질병이 찾아들어 근력이 떨어진 탓에
높은 곳에 올라가고 아름다운 경치를 찾는 흥이 점차 쇠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한 이와 같이 분란스럽게 보내는 것 역시 뜻을 손상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다시 문을 닫아걸고 조용히 살면서
심신을 편안하게 하고, 때때로 경전(經典)을 다시금 찾아 읽으면서 글 뜻을 완미하노라니,
해는 짧고 길은 멀다는 걱정이 들었는바,
지난날에 이른바 즐거움이란 것은 능히 하지 못할 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렇게 할 겨를도 없었다. 병든 가운데 눈을 감은 채 묵묵히 지난날에
노닐던 곳을 생각해 보다가 절구 20수를 얻어서 벽에다 써 붙여 놓고는
한가한 가운데 누워서 유람하는 흥을 부쳤다.
병오년(1606, 선조39) 모춘(暮春) 하완(下浣)에 석중병인(石潨病人)은 쓰다.
ⓒ 한국고전번역원 | 정선용 (역)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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