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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마태복음 9장 말씀을 지금 교제를 나누고 있는데요.
이 옛 종교와 결코 하나가 되실 수 없으신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가지고 계신 이 새 종교로서의 참 종교
구약 성경에서 나타내 보였던 옛 종교도 아니고 침례 요한이 추구하고자 했던 옛 종교를 떠나 광야에서의 삶을 통해서
왕이신 그리스도께 모든 유대 백성들을 이끌고자 했던 그 좋은 취지에서의 새 종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례 요한의
제자들 가운데 일부들이 바로 예수님께 나아와 금식에 대한 문제로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라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신랑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그들이 비록 새 종교일지라도 종교는
종교일 뿐 새 종교라 할지라도 그 새 종교 그리고 옛 종교까지도 포함한 그리스도가 없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그 모든 행위들은
다 종교적으로 바뀌어진다 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으로 계시해 주고 있는 말씀이 이 마태복음 9장 말씀인 것입니다.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생명주시는 그리스도의 임재가 없는 그 모든 것들은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서 사역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행위들을 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없는 종교는 옛 종교이며 새 종교라할지라도 참 주님께서 추구하시는 참
새로운 천국 헌법이 가리키고 있는 참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13절에 예수님께서 사셨던 이 나사렛에서 이제 성년이 되신 후에 주님께서 친히 사셨던 곳인 가버나움에서 침상에
놓인 중풍병자를 고치시기 위하여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신 왕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를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뒤에 9절에 이어서 죄인들과 함께 마태의 집에서 잔치를 배설함을 통해서 수많은 세리들과 수많은 죄인들을 위한 의원으로서 의사로서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왕이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장면에 이어서 14절 말씀에 종교와 결코 함께
하실 수 없으신 참 종교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말씀인 것이죠.
예수님이 배제되어 있지 않고 이 왕이신 그리스도의 임재가 있는 참 종교에 대해서 이 잔칫집에서의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 슬퍼할 수 없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은 그때는 금식할 수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4: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4: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4: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사 9:1, 2〕
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4:18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다〔막 1:16-20; 눅 5:1-11〕〕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4: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4: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4:23 〔무리에게 복음을 전파하시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이어서 계속 말씀이 이어지고 있죠.
9:1 〔중풍병자를 고치시다〔막 2:1-12; 눅 5:17-26〕〕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9: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9: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9: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9:9 〔마태를 부르시다〔막 2:13-17; 눅 5:27-32〕〕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①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①앉았더니 〔
헬, 기대어 누우려니와 (유대인의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헬, 기대어 누우려니와 (유대인의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호 6:6〕
9:14 〔금식 논쟁〔막 2:18-22; 눅 5:33-39〕〕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9:1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9:18 〔한 직원의 딸과 예수의 옷을 만진 여자〔막 5:21-43; 눅 8:40-56〕〕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
9: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 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9:20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9: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9:23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9:24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9:25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9: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9:27 〔두 맹인을 고치시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9:29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9: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9:31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
9:32 〔벙어리를 고치시다〕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9:33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9:34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9:35 〔목자 없는 양〕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②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헬, 그 나라의 복음을〕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9: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16절부터 이 생배 조각에 대한 얘기와 낡은 옷의 대조를 통해서 그 낡은 옷을 생베 조각에 기워서 덧붙이게 되면 결국 그 기운
이 생배 조각이 오그라지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이 낡은 옷을 잡아당김으로 말미암아 그 옷이 더 심하게 찢어진다라는 이러한
비유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이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지혜로우시다.
사람의 어떤 관점이나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와 같이 기가 막히고도 신비하고도 오묘하신 말씀을 우리에게 계시해 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계시의 말씀을 통해서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의 지각을 통해서 놀라운 지혜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계시로서
교훈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 36절에서는 이 생배 조각에 대한 말씀을 바로 새 옷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5: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5: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5: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것이니라
5: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그리고 이 포도주에 대한 비유를 또 하고 계십니다.
누가복음에서 새 옷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누가복음 15장 22절에 기록되어 있는 탕자에게 제일 좋은 겉옷을
가지고 오너라고 해서 그 새옷을 아버지 품에 돌아온 그 탕자에게 입혀주시는 장면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 이 새 옷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마태복음 9장 16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 생베조각은 가공하지 아니한 천연적인 생배 조각이라는 것입니다.
이 생베는 원단이죠. 쉽게 말하자면 다듬어지지 않고 가공되어지지 않고 그것을 어떤 바느질이나 어떤 공정의 과정을 통해서
전혀 가공하지 아니한 깨끗하게 처리되지 아니한 손길조차도 닿아 있지 아니하는 바로 그것이 생베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 생배조각이 의미하는 본래의 뜻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지금 자신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베 조각에서의 그 생배란 예수님께서 하늘 높은 곳에서 이 땅 아래 세상에 방문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성육신 하셨습니다.
이 베들레헴 생명의 떡집에서 태어나신 순간부터 골고다 언덕에서의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의 그리스도의 그 천연적인 자연적인
전혀 사람의 손길이 닿아지지 아니하는 사람의 손길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고 인위적이지도 않고 그냥 천연적인 그냥 원 그대로의
하늘에 계셨던 그분이 땅에서 바로 이 성육신 하시면서 33년 동안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의 못 박히시기까지의 그리스도가
바로 생배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이 마태복음 9장 16절의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이 생베가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의 죽음과 3일 동안 무덤 가운데 장사 지낸바 되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처리되신
후에 조성되어진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새옷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 누가복음 5장36절에 나오는 새 옷인 것입니다.
5: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새옷에 대한 의미를 이제 아셨죠?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새 옷은 가공되어지지 아니한 생베조각을 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서 완전무결하게 가공되어져 마감 손질이 끝난
상태에서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바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부정적인 모든 죄에 대한 문제를 완전히 제거시켜주신 후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
긍정적인 하늘에 속한 모든 것들을 그리스를 통해서 부어주시기 위하여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새 옷으로 만들어짐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새 옷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복음 15장 22절에서 집을 찾아 이 아버지 품에 돌아온 탕자에게 입혀주신 그 옷은 바로 생명 주시는 그 영이 되신 부활의
영이신 이 그리스도의 영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잔칫집에서 입어야 될 이 새 옷을 통하여 혼인 잔치의 신랑이 되시며 새 옷이 되시며 새 포도주가 되시며 모든 것이
되시는 그분께서 모든 것들을 자신의 신부들을 위해서 모든 것들을 완전하고도 온전하게 준비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서 구원의 주 그리스도가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 어떤 미비함이나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있으면 그리스도 구세주가 되실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혼인 잔치 그 자체가 되시고 혼인 잔치집에 새 신랑이 되시고 새 신랑의 그 음식이 되시고 포도주가 되시고 또 신부가
그 합당한 신부로서의 갖춰야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에서의 그러한 빛나고 깨끗한 새 옷까지도 준비해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그래서 구주 그래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주가 되신다라는 것입니다.
만유를 포함한 주 그래서 왕이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에 의하여 먼저 무엇이 됐습니까?
자격을 갖춘 의로운 자로 주님 자신의 품성을 우리에게 전가해 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기쁘게
받으시도록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의로서 우리를 덮는 새 옷으로 만들어지셨다는 것이 바로 누가복음 15장 22절에
또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 나오는 새 옷이라는 것입니다.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왜 이 생배 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기워서 하나로 연결하면 안 됩니까?
이 생베는 끌어당겨 오그라들임으로 말미암아 낡은 옷을 잡아당겨서 수축하는 그 힘을 통하여 낡은 옷을 더 찢어지게 만듭니다.
예 바로 침례 요한이 바리새인들과 같이 합류하여서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 이 금식의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로 가서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이렇게 계시의 말씀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베 조각은 오그라지는 성질과 성향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그 조각을 낡고 구태의연한 옛 종교 또는 침례 요한이 추구하고자 하는
어떤 천연적인 행습을 이렇게 유지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그 낡은 옷에 대고 깁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참 성육신 하시어서 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전혀 이 세상에 의하여 처리되지 않고 손질이 되지 아니한 그 생베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비슷한 예수님의
어떤 옳은 품성을 따라서 옳게 보이는 그런 것들을 모방 하면서 비스름하게 꾸며대는 그러한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는다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현대주의자들과 어떤 보수주의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천연적이고 높은 하늘에 속한 그 주님께서 이 낮은 땅 아래에 내려오셔서 그 생배가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처리되지
않고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지지 않고 사람에 의하여 조성되지 않고 끝 손질이 전혀 되지 아니한 온전하고도 순결한 생베 그 조각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 어떤 행동의 옳은 것들을 자기 것과 합쳐서 보완을 해서 결합을 시켜서
예수님의 그 인간적인 행위를 모방 하여서 따름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이렇게 유대 백성들에게 내보이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이신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신 영이 되신 그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생명 주신 그리스도의 영
보혜사 성령님을 믿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롭다 하실 수가 없게 되심으로 그들을 받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리새인들이나 그리고 이 침례 요한의 일부분의 제자들이 그러한 그리스도의 인간적으로 좋아 보이는 그런 것들을
모방하는 것은 타고난 옛 생명에서 산출된 그들의 행위에 낡은 옷을 잡아당기는 것과 같은 행위의 형태라는 것을 성경은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세리들과 수많은 죄인들이 있는 이 마태의 집에 베설된 잔치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그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냐면은 천국 백성은 그러한 삶을 살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육신 하셔서 그 베들레헴의 생명의 떡집에서 출생한 순간부터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의 그리스도가 바로 처리되지
아니한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지지 아니한 생베라는 것입니다. 그 생베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
으로 말미암아 가공되어져서 마감되어진 새 옷을 주님께서 만들어 놓고 가셨다는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무덤 머릿맡에 옷이 곱게 포개져 있는 그 세마포 옷을
여러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믿고 영접한 그리스도의 신부들에게 그 새 옷을 입혀주시기 위하여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혼인 잔치집의 혼인 잔치 그 자체가 되시고 새 신랑이 되어 주시고 새 포도주가 되시고 먹을 양식이 되시고 또
혼인 잔치집의 신부가 입을 합법적이고 합당한 자격의 소유자로 표현될 수 있는 새 옷 그 자체가 되어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신랑과 하나로 연합될 수 있는 신부를 위해서 모든 것들을 다 만족하게 예비하시고 준비하시고 온전케 하셨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우리는 그리스도 구원의 주라고 이렇게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냥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유형의 것들을 통해서 완전하고도 온전하게 신부들을 위해서 하나도 모자람이 없이 결격 사항이나 모자람이나
미비함이나 부족함이 없도록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생배조각이 되신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새 옷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하셨던 것입니다.
이 십자가에 달리는 일이 이렇게 힘들고 이렇게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예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분이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새 옷이 우리에게 만들어지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신부가 된 우리가 잔치집에 들어가서 합당한
신부로서의 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취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 보면 생배조각은 낡은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라는 이 낡은 옷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이 침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또 바리새인의 그 옛 종교 안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오늘날 교회 안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옛 아담 속에
있었던 타고난 육적인 옛 생명에서 산출되어져서 표출하고자 하는 선한 행위들 선한 행동, 아주 그럴듯한 자비와 어떤 구제와 이런
옛 생명 안에서 천연적인 관념 속에서 행해지는 이웃들을 향해서 보여지는 선한 행위들과 종교적인 실행들 그 모든 것들이 낡은
옷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는 새 포도주에 대한 새 것에 대한 얘기 방금 만들어진 가장 최근의 시점에서 형성되어진 새로 만들어진 새 단어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왜 새 포도주를 얘기하고 있습니까? 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신부들에게 취하게 하기 위해서 부활을
통하여 새 옷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선물만 해주면 뭐해요 탕자에게 깨끗하고 제일 좋은 겉옷을 내어다가 입혀주어라고
했지만 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합당한 자격의 표현인 옷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배가고프고
기진맥진해 있는 상태가 아닙니까 그래서 기진맥진 한 것을 채워주고 공급해 주고 만족케 하기 위해서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뭡니까? 먹고 마심으로 말미암아 힘이 넘치는 활력이 넘쳐서 기분 좋아지는 충만케 되는 그런 그 잔치집의 주인공인
그 탕자가 아주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지만서도 힘이 빠져서 축 늘어진 상태에 있으면 그 잔치집의 모양이 훼손이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를 아주 배부르게 하여서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 찬 활력이 넘치는 그러한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새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시는 영을 그에게 부여해 주심으로 그가 활력이 넘치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천국 백성의 누림을 위해서 신랑 그 자체가 되시고 그리고 혼인 잔치 그 자체가 되셔서 외형적으로 신부가 될
자들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혀 주심으로 말미암아 합당한 신부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을 보여준 다음에 배고파 기진맥진해
있는 신부들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함으로 내적으로 충만케 하여 활력이 가득 차고 감동케 해 주셔서 잔칫집에서 신랑과 함께 연합되고
결합되어지는 생명 주시는 그 영이 우리에게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렇게 변화시켜 주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천국 백성의 누림을 위한 신랑 그 자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혼인 잔칫집 모두의 주인공으로서 하늘에 속한 이 천국 백성이 신랑 되시는 왕이신 그리스도와 빛나고 깨끗한 새옷을 부여해
줌으로 말미암아 신부가 된 그들이 합당하게 아버지 앞에서 우주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합당한 결혼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다섯 가지 결혼 잔치에 필요한 것들을 부여해 주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5가지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해 주신 신랑의 신부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우리들이 입었죠.
또 결혼 잔치에 참여했죠. 그리고 결혼 잔치 그 자체에 합당한 자격이 있는 새 포도주가 준비되어 있죠.
예 이런 모든 것들이 천국 전체에서 그분을 합당한 신랑으로 우리가 누리기 위하여 외형적으로는 크게 새 옷을 주시고
원래는 뭐였죠? 베들레헴 생명의 떡집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의 전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아니한 사람의
손길로 처리되지 아니한 생베가 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베 조각이 이제 특별한 공정의 과정을 통해서 마감 처리되어서 새 옷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3일 후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새 옷이신 생명 주시는 영을 공기 호흡으로 우리에게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이라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영이라는 존재 안에 임재하셔서 거듭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 순간부터
우리를 활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리스도가 가지고 계신 생명과 본성을 우리에게 주입시켜 주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외형적으로는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는 생베 조각이셨던 그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3일 후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새 옷 곧 생명 주시는 영이신 새 옷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신부로서 합당한 결혼 잔치에 참여하게
만들어 주시고 그리고 내적으로 그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신 새 옷을 허락해 주셨던 그분은 또한
내적으로 새 포도주로 감동시키셔서 그 신랑과 함께 그 혼인 잔치집에서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누리게 하는 삶을 갖게 해 주신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원래 마감 처리되지 아니한 천연 그대로의 가장 높은 하늘에서 가장 낮은 땅으로 내려오신 생베 원단 그 자체이셨지만 죽음과
부활이라는 특별한 공정 과정을 통해서 새 옷이 되셨는데 여러분 죽음과 부활은 우리가 말은 많이 하지만은 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하시기 까지의 그 과정은 말로다 표현할 수가 없는 얼마나 기가 막힌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그 새 옷이 되시기 위하여
그 새 옷은 자신이 입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담에게 입혀주시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두렵고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개를 만들었는데 그 가리개는 온전치 못한 것이기 때문에 양을
피 흘려 죽게 함으로 말미암아 가죽 옷을 만들어 주신 그 가죽 옷이 바로 이 새 옷에 대한 예표인 것입니다.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3: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구약 성경은 모두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예표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날 수가 없기 때문에 항상 예표와 상징적인 것이 보여진 다음에 실제적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래서 피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부활을 통해서 생명 주시는 영 새 옷이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음과 부활을 예수님이 경험하지 않고 체험하지 아니하셨다면 우리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전혀 전달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할렐루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우리는 정말 그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놀라운 감동과 감격 그분 앞에 그냥 온
존재가 굴복되어져서 아무 소리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의 것이 바로 외형적으로는 우리들의 빛나고 깨끗한 새 옷이 되기 위해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시고 그리고 내적으로는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 새 옷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그분께서 내적으로는 감동을
시켜주셔서 우리를 열광케 하기 위해서 흥분케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어서 활력이 가득 찬 여러분 그 혼인잔치집에
신부가 인상을 찌푸리고 피곤한 모습으로 초췌한 모습으로 있다면 거기에 온 하객들이나 그 주인공이신 신랑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기쁨과 즐거움 안에서 온전하고도 완전한 잔칫집을 형성하기 위해서 조성하기 위해서 새 포도주 그 자체가 되신 그리스도 여러분
할렐루야입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의 구세주인 예수 그리시도이십니다.
그래서 낡은 가죽 부대는 침례 요한의 일부분의 제자들이 금식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따지고 있는데 이 종교적인 구태의연한
옛 율법 안에 속해 있던 그 천연적인 타고난 옛 생명 안에서 산출되어진 마치 금식을 하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처럼 보여지는 선한 행위들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종교적인 행위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이 종교적인 행위들은 낡은 옷 낡은 가죽 부대에 불과하다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옛 종교에 속한 바리새인들이나 새 종교를 취하고자 이 침례 요한에 의하여 새 종교 안에 들어왔던 요한의 제자들까지도 금식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서 제자들을 정죄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행해지는 모든 종교적인 것들 하나님을 섬기고 기쁘게 하기 위한 실행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없이 행해지는 모든 일들은 종교적인 하나의 형태라는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종교적인 것들은 낡은 가죽 부대들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아주 오묘하고도 심오하게 우리에게 계시 해 주시고 계신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성당에 한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런 행위들로 말미암아 이 열광케 하고 기쁘게 하고 활력 있게 하는 새 생명 주시는
그 영이신 새 포도주인 그리스도를 이 낡은가죽 부대인 자신들의 틀 안에 넣음으로 말미암아 온전하신 그리스도 생명의 그리스도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고 나타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저들이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것을 제가 느낀적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바로 이 새 종교이며 참 종교이신 왕이신 그리스도를 자꾸 자신들의 어떤 울타리 안에 가두어 저장하고 보존하고
유지하려고 함으로 말미암아 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이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된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17절에 나오는 새 포도주 새 것은 지금 현 시점에서 갓 만들어진 아주 그 자체 전혀 사용하지 아니한 것 전혀 손길이 닿지
아니한 것 여러분 물건을 살 때 새 물건과 헌물건이 있죠? 누군가가 한 번 그 물건을 취하여서 사용해 본 적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새 물건이 아니라 헌 물건이 돼버리는 것입니다.새 물건이란 전혀 손길이 닿지 아니한 사용하지 아니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와 새 가죽 부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17절에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존됩니다.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이 새 가죽 부대와 새 포도주는 모두가 열광케 하고 흥분케하고 기쁨과
즐거움을 내적으로 어떤 이 생명 주시는 영을 믿고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품에 들어온 자들을 감동시킴으로 말미암아
신랑과 함께 누리는 그 잔치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 열광하게 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을 담는 그릇이 바로 이 새 가죽
부대라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열광케 하는 그 생명 그 자체이신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죠.
그분이 생명 주는 영으로서 새 포도주가 되어서 우리를 활력 있게 만들고 기쁘고 막 흥분케 하고 뭔가 하늘을 향해서 사는
정말 이게 도저히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러한 자들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새 포도주가 되시고 그리고 이 옛 종교 안에 있는 삶이 아니라 타고난 옛 생명에서 산출된 그러한 천연적인
어떤 행동과 천연적인 선한 행위들이 아니라 바로 이 그리스도라는 새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그분과 하나로 연합되어져서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새 포도주 열광케 하는 흥분케 하는 내적으로 감동을 주어서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고 혼인 잔치 그 자체를 빛나게 하는 내적인 생명이 되시는 것이 새 포도주인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 백성들에게는 이 옛 형태 속에서 나온 종교적인 행위들인 그러한 옛 생명에서 타고난 천연적인 관념에서 나온
그러한 틀 속에 가두어진 그런 그리스도가 없는 그런 것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주재가 되어 주시고 우리들의 생명이 되어
주시고 우리들의 내용물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그 자체가 되시는 그런 신앙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새 가죽 부대로 만들어져서 생명주시는 그리스도께서 새 포도주로 우리의 그 변화된 새 가죽 부대에 담겨져야
된다는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재가 되시고 참이 되시고 그 내용물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임재가 되어야지 그리스도 없는
어떤 옳아보는 그런 종교적인 모든 형태의 행위들이나 실행들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 낡은 가죽 부대 또는 낡은 옷에 대고 기움으로 말미암아 둘 다 온전히 보존하지 못하고 쏟아져 바깥에
낭비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생명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왕국 곧 생명의 천국을 설립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그 천연적인 옛 생명에서
산출되어진 그러한 종교적 실행으로 자신의 나라 자신의 천국을 세우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셔서 우리에게 새 포도주가 되신 그 자신으로 우리들의 내용이 되시고 주재가 되시고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그 자신으로
천국을 세우기를 원하고 또 그 천국을 지금 세우시고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종교를 가진 자들 종교적인 행동들을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좋아 보이는 인간적인 행동들을 모방함으로 말미암아
조금만 우리가 어그러지면 오히려 손가락질하고 조롱하고 이 침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아니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습니까
라고 따지고 그 제자들과 예수님을 정죄하고자 하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침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의 옷들이 구멍이 났다 라고
이렇게 얘기하지 아니하시고 바로 바로 침례 요한의 제자들과 그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세리들과 수많은 무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계시의
말씀은 너희가 새 종교 안에서 옳아 보이는 행동들을 하지만 낡은 옷에 생베 조각을 마치 깁고 있는 너희는 지금 온전한 옷을 갖고 있지
않다. 너희들은 새 옷을 가져야 되는데 새 옷이 아닌 온전한 옷을 갖고 있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생베 조각조차도 그것이 하나로 연결되어져서 깁게 되면 두 개 다 못 쓰게 된다라고 그걸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구멍나고 낡은 부족한 것은 너희는 금식이라는 것을 통해서 땜빵질을 하고 그것을 바느질을 통하여 하나로 연결시켜서 뭔가 그럴싸하게 만들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은 곧 들통이 날 수밖에 없다. 지금 너희는 나를 이용하여 그리스도를 빌미 삼아서 구멍을 메꾸려 하지만너희는 옳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생베 조각은 오그라지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햇볕을 쐬거나 물에 담가지게 되면 오그라지는 성향으로 인하여 수축하는 힘을 통하여 낡은 옷들이 찢어지고 오히려 그것들까지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라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의 그 낡은 옷조각으로 너희의 헤어진 구멍 난 것을 땜빵하기 위해서 너희의 낡은 옷에 붙이지 말라.
만일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고장이 나고 그것이 더 훼손되어져서 그 구멍은 더 커져서 너희의 그 부끄러움이 드러날 것이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5장 36절에서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라고 이렇게
얘기하는 장면을 마태복음 9장 16절에서 바로 이렇게 기운 조각이 옷을 당겨 옷이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을 통하여 자신을 생베조각에 비유하신 것은 성육신과 십자가 사이에 바로 이 생애를 사신 예수님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33년 반 동안의 예수님께서는 생베로서 전혀 가공되지 아니한 손길이 타지 아니한 어떤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지지 아니한 순전한 하늘 높은 곳에 속한 왕으로서 낮은 땅에 내려오셔서 결코 가공되어지거나 사람들에 의하여 조성되어 다루어지지
아니하는 온전하고도 깨끗한 순전한 하늘의 새 천이셨다는 것을 생베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5: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그런데 이 생베가 특별한 공정 과정을 통해서 새 옷으로 만들어진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을 통하여 완전하고도 특별한 공정을 통하여 가공되어져서 부활이라는 것을 통하여 이 생베라는 이 새
천이 사람들에 의하여 만져지지 아니한 이 순전한 원단 그 천이 부활을 통하여 완전한 새 옷으로 만들어진 것이 생명 주시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인 새 옷을 입어야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나의 그 천 조각 가공되어지지 아니한 이 원단 생베 조각만 우리에게 주었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그 자격을 가진 자로서의 삶을 우리가 보여줄 수가 없기 때문에 바로 이 하나님 앞에서
주님께서 친히 만들어 우리에게 전달해 주신 하나님 앞에 우리를 의롭다 하고 하나님께 열납되어져서 우리를 덮어질 수 있는 옷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베 조각이 아닌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특별히 가공되어지고 여러 과정들을 거쳐서 손질이 마감되어지고
완전하게 처리되어져서 우리에게 손수 입혀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그 전가된 의를 통하여 우리가 의롭게 될수
있기 때문인것입니다, 이 새 옷을 주신 주님께 정말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돌리고 기뻐해야 됩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냥 생베 조각만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생베 조각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그 장인으로서 주님께서 만들어 주셔야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보아주시고 우리를 열납하여서 기쁨으로
우리를 용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손질이 잘 된 옷이라야 마감 처리가 된 그리스도께서 친히 만들어준 옷이라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님께 열납되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의 합당한 자격을 갖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갈보리 언덕에서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특별한 공정 과정을 통해서 새 옷으로 끝손질이 되어지고 부활을 통하여
그 새 옷이 마감되어져서 완전히 종결되어진 상태에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인 아주 화려하고도 신부로서의 신랑과 함께 혼인장치
집에서 입어야 될 옷으로 만들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영접하는 모든 자들에게 이 옷을 전달해 줌으로 말미암아 그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혼인 잔치를 열 때 참석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의의 자격을 부여해 주신 것이 바로 이 새 옷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혼인잔칫집 그 자체의 주인공으로서 신랑이 되시며 그리고 혼인 잔치에 참석할 자격을 갖게 하는
우리의 혼인 예복이신 새 옷을 만들어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혼인 잔치도 그분에 의해서 주관되고 혼인잔치 안의 주인공이신
신랑이 또 그 왕이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분께서 또 새 포도주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활력이 넘치는 그런 하나로 누리는 삶을 살게
하시고 그리고 혼인 잔치에 합당한 자격을 가진 자로 만들어 주기 위하여 혼인 예복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인 새 옷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전달해 준 것이 새 옷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부활은 이렇게 놀라운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은 이렇게 우리에게 이 빛나고 깨끗한 계시록에 나오는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그런 특별한 옷을 제공해 준 것이
바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 주신 영이 되신 바로 이 왕이신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19: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분께 존귀를 돌리세. 이는 어린 양의 혼인식이 다가왔고 그의 아내도 자신을 예비하였음이라.
19:8 이제 그녀에게 허락하사 정결하고 흰 세마포를 입게 하셨으니 세마포는 성도들의 의라."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임재 없이 침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금식에 대한 문제로 따지고 드는 것은 옳지가 않은 것입니다.
예 우리들은 다른 것은 다 없어도 신랑이신 참 생명이 되시고 참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우리가 가지고 있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 되어 움직이는 삶을 살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삶의 형태의 것들을 바로 섬기는 것으로 기쁘게 하는 것으로
여기고 우리를 받아주시는 용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혼인잔치 집에서 누리는 삶 임재를 누리기 위해서 기쁨과 즐거움의 임재를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어떤 자격이 필요한데 그 자격은 바로 새 옷을 예비해 주시고 준비해 주신 것을 입혀 주실 수 있는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허락되어 주신 생명 주신 영이신 새 옷을 우리가 입는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 생명 주신 영을 우리가 소유하고 영접하고 내주케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타고난 천연적인 것들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함께 드려지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받으시고 우리에게 합당한 자격을 주시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없이 그리스도 없이 행해지는 모든 것들은 천부께서 받아주시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신랑인 아들과 잘 어우러지는 합당한 자격을 가진 자로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내보이기 위하여
누가복음15장에 돌아온 탕자에게 아버지의 높으시고 귀하시고 존귀하시고 신성하신 아버지의 임재에 어우러지게 되도록 가장
좋은 옷을 입혀 주시는 것이 가장 먼저 였던 것입니다.
15:22 그러나 그 아버지가 자기 종들에게 말하기를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가 그에게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예 바로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자신으로서 우리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임재에 어울리게
하는 새 옷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고 전달해 주시고 제공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그 과정을
견디시고 새 옷을 허락해 주시고 그리고 이틀 만에 황폐함 가운데 있었던 그분이 3일째 된 날에 부활하셔서 일몰의 삶은 자신이 다
가져가 주시고 일출의 삶 밝은 태양의 그런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하여 주 예수님께서 장사된지 사흘만인 오늘날의
첫날인 주일날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 우리들은 왜 새 옷이 필요합니까? 지금 이 잔치가 세리마태의 집에서 배설되고 있는데 여기에 누가 있었습니까?
수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있었다라고 마태복음 9장 10절에서 언급하고 있죠 예수께서 그 집에서 음식을 드실 때, 보라,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와서 그와 그의 제자들과 더불어 앉았더라. 장차 이들이 신부가 될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생명의 말씀을 전달해 주고자 지금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고 이렇게 마주했을 때
말씀으로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리들과 죄인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 있는 세리들이요 죄인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앞에 마주하고 서 있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이죠?
주님의 임재 앞에 앉을 수 있도록 우리를 덮어주는 이 아담과 하와에게 덮어주는 가죽 옷이 필요했던 것처럼 은혜의 보좌를
상징하고 있는 지성소의 시은좌의 그 덮개처럼 이 세리들과 죄인들의 모습인 우리들을 가려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옷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과정들을 거쳐서 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만들어서 자신을 처음에 혼인 잔치에 신랑으로 말씀하신 후에 신부가 입어야 될 합당한 자격으로 입혀주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인 이 새 옷에 대한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새 옷을 입어야만 왕이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혼인잔칫집에서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함께 하나로 연합되어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품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그 종들에게 명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송아지를 먹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배고픔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자격이 있는 자 아버지의 임재에 어우러질 수 있는 왕이신 그리스도와 합당한 신부로서의
자격이 있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먼저 가장 좋은 겉옷을 입혀라라고 옷에 대한 얘기를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신성하고 가장 고귀하고 가장 위대하시고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 앞에 우리가 서기 위해서는 합당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으로 치장되어야만 신랑이신 그리스도 앞에 우리가 설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새 옷을 입기 전까지는 죄인들이요
세리들인 것입니다.그 하나님의 임재는 물론 왕이신 그리스도의 신랑의 임재를 결코 누릴 수가 없는 존재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신부가 신랑의 임재를 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아시고 새 옷으로 입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성육신 하신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마감 처리되어진 완전히 가공되어져서
우리에게 빛나고 세마포인 이 새 옷을 우리에게 마련해 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머리 맡에 곱게 포개져 있던 그 새옷을 입을 수
있어야 하는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7절은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라고 침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침례를 통하여 이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준비해 주시고 예비해 주시고 완전히 마감 처리되어서 빛나고 깨끗한 새 옷으로 마련해 준 그 새 옷을 입는 것은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 안에서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를 받을 수가 있게 되죠?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보면 부활하신 후에 우리에게 생명 주는 영이 되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생명주시는 부활의 영을
우리가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영 안에 생명 주는 영이 내주하고 임재하여서 우리를 거듭나게 할 때 우리가
새 옷으로 덧입혀져서 그때부터 그리스도께서 부여해 주시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본성을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공급해
주시고 전달해 주시고 주입시켜 주셔서 촉촉하게 생명으로 넘치게 충만하게 한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연 알고 있을까요?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새 옷에 대한 것이 있다라는 자체도 모르고 옷이 겉옷이 있고 속옷이 있다라는 것 또한 모를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요셉을 통해서는 속옷 신약의 탕자 이야기를 통해서는 겉옷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는 이 전체적인 옷에 대한
예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아! 이 새 옷이 되시기까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생명 주는영이 되시기 위한 그분의 몸부림과
고통과 희생 아픔 말할 수 없는 그러한 과정들 새 옷으로 가공되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예수님께 생겼겠는가를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주는영, 생명주는 공기와 호흡이 되셔서 들숨인 말씀을 통하여 언제 어느 때든지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기가 매우 쉽도록 호흡 그 자체가 되셔서 그분이 우리안에 우리가 그분안에 들숨날숨으로 들어가고 나가고 하기
용이하도록 만들어준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왕이신 그리스도를 모실 수가 있어요.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영이란 그릇에 이 생명 주시는 영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은 들숨과 날숨 공기가 되고 호흡이 되고 영이시기
때문에 그것도 생명 주시는 영 생명 주시는 영 속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포함 된 생명 주시는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호흡이 되시고 공기가 되시고 영이 되신 그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제 너무나 쉽기 때문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라는 말씀을 요한복음에서 게속 언급하고 계신것입니다.
15:4 내 안에 거하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역시 그렇게 되리라.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들이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15:6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가지처럼 버려져 말라 버리느니라.
그러면 사람들이 그것들을 거두어 불 속에 던질 것이요 그것들은 타 버릴 것이라.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그래서 우리는 영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을 우리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영 안에 그분을 모시고 영접하여서 임마누엘 할 때 하나가 되어서 움직이는 삶을 살 때 만유를
포함한 영이신 그분에 의하여 그분 안으로 침례를 받음으로 우리가 그분의 생명 주신 영을 입게 됨으로 말미암아
새 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끝에 이 말씀을 주시죠.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28: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아멘.
그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이 되어 주시고 지성소의 덮게가 되어주신 것처럼 우리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가리는 것이 되시며
우리가 합당하게 아버지 하나님 앞에 마주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새 옷인데 들숨과 날숨으로 언제든지 자유롭게
들어가고 나갈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이 옷을 성령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이 침례를 주라는 것은 입혀 주라는 것을 말하고 있죠.
이 침례는 단순하게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합니다. 왜 그렇죠? 바로 아버지와 아들과 이 영께서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살고 계실 때 바로 예수님의 육체 안에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계셨지만 우리에게 자유스럽게 들어오시고 나가실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을 통하여 그때부터
아버지와 아들과 영께서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자유스럽게 우리 안에 들어갔다 나갔다
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이름 안으로 침례를 준 것은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시는 영이신 새 옷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허락해 주신 그리스도 그 생명 주신 영 안으로 침례를 준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완성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라는 이 생명 주시는 영을 통해서 만들어진 이 새 옷 안에서 우리는 구속과 부활의 능력과
신성한 예수님의 그 모든 인격의 요소들 예 영원하고 신성한 생명 가장 높은 생명과 본성의 요소를 모두 갖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새 옷을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나오는 이 새 옷은 하나의 생베 조각이 아닌 것입니다.
가공되지 아니하고 마감처리되지 아니한 손질되어진 그냥 단순한 원단의 생베 천 조각이 아니라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에 위에서
죽으셔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고 이틀 동안의 황폐함과 3일째 되는 부활하신 그 능력을 포함한 신성한 생명 주시는 영이 바로
새 옷을 입는 자들의 삶인 것이며 새 옷을 입는다는 것은 신성한 생명 주시는 영을 소유한 자들이며 임마누엘 한 자들이요
주님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요 참 그리스도인 자들이요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혼인잔치에서 하나로 연합될 수 있는
신부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새 옷은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신 영이신 것입니다.
부활의 영이신 생명 주신 영을 우리가 모실 때 새 옷을 입는다는 것이 바로 이 완성된 옷인 생명 주신 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제공해 주시고 예비해 주시고 준비해 주시고 완전히 마감 처리해서 우리가
완전하게 입을 수 있는 혼인잔치 에서 자격을 가진 자로서의 옷을 취한 자로서의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께 열납되어서 우리의 모든 잘못되고 죄된 것들을 가려서 덮어주실 수 있는 그러한 새 옷이신 생명 주시는 영을 입기 위해서 우리가 인생의 삶을 전적인 힘을 기울여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드리면서 오늘의 교제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주신 영이신 새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의 교재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막1:14~18/창세전에 하나님께 선택된자들인(흙)을 치료하기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과부활의 길을가심
눅12:1~48/희년의 누림을 상실케하는 종교적인 위선의 경고와 탐욕과 염려에관한 경고와 깨어충성되라는말씀
마7:13~29/ 좁은문과 좁은길(천국으로 들어가는 조건 2종류의 기초위에있는 2종류의건축)
마9:16~17/눅15:36~37/그리스도께서는 생베이셨고 죽음과부활을 통해 생명주는영이신 새옷이되심
이 네번의 말씀을 성령님의 빛 비췸을 통하여 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게속 연결되는 말씀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베드로라는 임마누엘 땅을 조성하시고자 하신 예수님의 처절한 고군분투와 우리가 임마누엘 땅이 되기 위해서는 부활의 영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영 하나님께서 하나되신 생명주시는 영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존재들이며 오늘 말씀에 처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만들어 주신 새옷을 입는 것과 감동케 하고 활기차게 하는 새포도주를 우리가 마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쓸모가 없음을 깨달게 됩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서 나의 신앙생할을 돌아보게 되고 너무나 너무나 종교적인 삶을 산
저의 모습을 회개하고 또 회개하며 지금 껏 그 모든 예수님의 인간적인 성품을 모방한 위선자 였음을 그런 구태의연한 종교적인 삶을 저의 모습을 볼수 있는 계기가 된 말씀으로 또한 그 모든 삶의 형태에서 벗어나고 해방될수 있는 기쁨을 맛볼수 있었던 저에게는 참으로 귀한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새옷을 만들어 주시기 까지의 예수님의 삶은 짐작조차도 할수 없지만 그옷을 입는 것 또한 많은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결코 입을수 없는 옷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나누고 싶은 말씀은 많은데 한꺼번에 쏟아내기가 버겁기도 하고 말이 두서가 없어집니다. 참으로 어렵고 그만두고 싶은 이 말씀 정리를 성령님께서 눌러 앉혀주시고 기운을 북돋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너무나 하기 싫고 힘든데도 그분이 함께 하셔서 나 자신을 부인하고 이 말씀을 마무리 할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없이 하는 모든 실행들은 쓸모없는 귀한 말씀을 깨닫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시는 여러분들도 주님의 임재하심으로 임마누엘 땅이 되시고 새옷을 입으시고 위선적인 종교인이 아닌 새포도주로 감동케되는 활력 넘치는 신랑
되시는 주님과 연합되어지는 하나님앞에 합당한자로 자격을 갖춘자로 서게 되는 그 잔치를 제대로 누리는 희년의 기쁨을 맞볼수 있고 성령님의 공력이 지나갈때 타지 않는 지혜의 말씀이신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