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풍요롭던 그 밤의 노래
이한재
추석 명절은 언제나 즐겁다. 그토록 무더웠던 여름이 갔다. 이제 가을바람이 제법 서늘하게 뺨을 스치며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깊어지니 어김없이 어린 시절의 추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파전이나 녹두전 부치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하고, 어른들의 넉넉한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던 그 시절의 명절은 단순한 연중 의례 행사 이상의 따스한 의미가 있었다. 특히 나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된 것은, 아주 둥글고 환한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르던 추석날 밤의 강강술래 모습이다.
추석 명절에는 서민들은 주로 윷놀이, 씨름, 강강술래, 제기차기, 팽이치기, 딱지치기 그리고 연날리기 등의 다양한 민속 전통 놀이를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즐겼다. 대표적인 추석 전통 민속놀이라고 할 수 있는 윷놀이와 씨름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윷놀이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팀을 나눠 윷을 던지고 말을 움직이는 보드게임으로, 전략과 협동심이 중요하며, 씨름은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는 전통적인 남자들의 스포츠로, 추석에 빠질 수 없는 놀이다.
추석 명절에 남자들의 역동적인 씨름 민속놀이가 낮 동안에 진행되고, 밤이 오면 풍요롭고 환한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는 달빛 아래서 여성들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밤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9년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강강술래였다. 명절빔으로 차려입은 고운 한복 치맛자락을 흩날리며 서로의 손을 맞잡고 둥근 원을 그렸다. “강강술래 ~” 목청 좋은 사람의 낭랑한 선창에 맞춰 후창으로 모두가 한목소리로 강강술래를 따라 부르며,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빙글빙글 원무를 추었다. 강강술래 노래의 구성은 연행 상황과 목적에 따라 달라지며 유동적이다. 예를 들면, 선창으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하면 후창으로 ‘강강술래 강강술래’를 노래하고, ‘남생아 놀아라 남생아 놀아라’ 선창하면 ‘강강술래 강강술래’를 후창하는 식이었다. 강강술래는 고대 농경사회의 축제로 우리나라 남쪽 바닷가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속놀이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병사가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서 옥매산을 돌게 했고 이를 기념하며 강강술래를 했다고도 한다.
처음에는 달님에게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듯 느릿하게 시작된 춤사위가 점점 빨라지고 나중에는 노래도 움직임도 숨이 찰 만큼 빨라지고 다양하게 변하며 주변의 웃음소리와 함께 흥겨워졌다. 맞잡은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 함께 부르는 노래의 울림 속에서 모두가 공동체의 일원임을 온몸으로 느꼈다. 동네 사람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옆에서 함께 구경하며 즐겼다. 그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닌, 달빛 아래 모두 하나 되는 아름다운 화합의 의식이었다.
이제는 아파트의 인공 불빛이 달빛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고, 아이들의 함성 대신 스마트폰 알림음이 밤의 정적을 깨는 시대가 되었다. 강강술래는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 유산이지만 이제는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재현 행사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일 년 중 가장 밝고 둥근 보름달을 보면, 귓가에 강강술래의 흥겹고 정겨운 노랫가락이 아련하게 맴돈다.
비록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추억 속 풍경이지만, 달빛 아래 모두 하나 되어 웃고 떠들던 그 밤의 풍요로움과 공동체의 온기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그리움이자, 삶의 소중한 등불로 환하게 남아있다.
(2025. 10. 02.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