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요 부산항에』(황선우 작사/작곡)는 가왕(歌王)
「조용필」의 데뷔곡 입니다. 1972년 23살의 「조용필」은 통기타
반주로 이 노래를 처음 발표 하였다가, 1975년 작곡가 '안치행'의
재 편곡으로 발표하여 「조용필」특유의 탁월한 가창력(歌唱力)
으로 대 히트를 치며 당시 국민 가요가 되었었죠.....
「조용필」(1950년 경기도 화성(華城) 출생)은 1968년 서울 경동고를
졸업한 뒤,이듬해 'Country Western 그룹'인 "애드킨스"와 "파이브
핑거스 블랙 뮤직)"를 결성해 보컬리스트로 활약하면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70년 그룹 '김 트리오'를 결성한 뒤, 이듬해 "선데이 서울 컵 팝 그룹
콘테스트" 에서 '님이여'로 최우수 가수왕 상을 받았습니다.
1972년 그룹 "조갑출과 25시"를 거쳐 1974년 "조용필과 그림자"를
결성한 뒤, 1975년 '안치행'의 편곡으로 『돌아와요 부산항에』다시
발표하였는데, 이 곡은 「조용필」의 최고 히트작으로, 발표와 동시에
전 국민의 호응을 얻었고, 이후 한국인들의 애창 곡이자 국민 가요가
되었습니다.
1975년 12월 무렵 '연예계'를 휩쓴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잠시
가요계를 떠났다가, 1979년 해금( 解禁)조치와 동시에 자신의 그룹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을 결성하면서 활동을 재개하였습니다.
1980년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 '창밖의 여자' 를 발표해 단번에 한국
최고의 대중 가수로 떠올랐고, 같은 해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였습니다.
그해 11월 서울국제가요제 금상을 시작으로, 1980년부터 1986년까지
KBS · MBC 등 각 방송사의 가수왕 상, 최고 인기 가수상, 최우수 남자
가수상 등 대중 가요와 관련된 상을 휩쓸면서 한국 가요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1986년 말 "가수 왕에 오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뒤에는 거의 방송
활동을 하지 않고, 해외와 국내에서 라이브 공연에 주력하였습니다.
「조용필」은 '한국 대중 음악의 제왕', '진정한 국민 가수', '가요계의
신화', '20세기 최고의 가수' 등 따라 다니는별칭 만 큼이나, "한국
대중 가요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음악 역시 한 장르에 머물지 않고 로큰롤, 트로트, 발라드, 퓨전, 동요,
민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1980년 제1집 앨범《창밖의 여자》를
시작으로 2013년 《Hello》까지 총 19집의 앨범을 발표하였습니다.
대표곡으로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1980)',
'친구여(1983)', '허공(1985)' 등이 있습니다.
그 밖에 자서전 《초혼의 노래》(1982), 수필집 《바람이 전하는 말》
(1985)을 출간하였고, 미국 암펙스 골든릴상(1982), 일본 CBS소니
레코드 골든 디스크상 (1984),대한민국 보관 문화 훈장(2003), 은관
문화 훈장(2013)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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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가고파 목이 메어 부르던 이 거리는
그리워서 헤메이던
긴긴 날의 꿈이였지
언제나 말이 없는 저 물결들도
부딪쳐 슬퍼하며 가는 길을 막아 섰지
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