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까리 등불』(조명암 작사, 이봉룡 작곡)은 1941년 발표된 곡
으로, KBS 전국 노래 자랑의 진행자 '송 해 선생'의 18번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 노래입니다.
지금은 '아주까리' 라는 명칭조차 낯선 시대에 살고 있지만, 등유
(燈油) 대신 '아주까리' 기름에 등잔 불을 밝히며 책장을 넘기던
기억이 남아 있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아주까리 선창',
'아주까리 수첩' 등 '아주까리'라는 이름이 노래의 제목 으로도
자주 사용되던 그 때의 시대상(時代相)을 보면 아마도 우리의
생활 속에서 무척 친숙한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피마자' 라고도 부르는 이 풀의 열매로 기름을 만들어 사용했고,
재봉틀의 윤활유로도 썼습니다. 심지어는 설사 약이나 피부병 약의
재료 로도 널리 쓰였다고 하네요. 지금은 좋은 기름과 '약재' 들이
많이 개발이 되어 그 이름조차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병호」님의 가수 데뷔 전 행적(行跡)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는데, '가수 이난영씨'의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님' 과의 친분으로
가수가 될 꿈을 키웠다고 전해집니다. 1940년 5월 '오케이 레코드'
에서 주최한 콩쿨에서 입선하면서 정식으로 앨범을 발표하고 가수
로서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1941년 2월 『아주까리 등불』 을 발표하며 당시 인기 가수가 됩니다.
노래의 가사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엄마를 잃고 영문도 모른 채
울고 있는 아기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할머니(혹은 다른 가족)는
아기를 달래 보려고 노래도 불러주고, 방울도 흔들어주는데, 울고
있는 아기와 대화 하듯 들려주는 가사는 더욱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하네요.
'아주까리' 등잔불 아래에서 울고 있는 아기의 이야기는 일제 치하의
통탄에 빠진 우리 국민들의 눈시울을 적셨고, 엄마를 잃은 슬픔은
고스란히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아주까리 등불』은 찾아볼 수 없지만, 노래 속 이야기를 통해
지난 시절 우리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역사 속 많은 아픔 속에서
눈물로 세월을 달랬던 우리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지금 우리는 화려한 조명 속에 살고 있지만, '아주까리' 등잔불 아래
희미해진 기억들은 시간이 흘러도 마음 속에 간직 될 것입니다.
(가수 주현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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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를 불어주마 울지 마라 아가야
산 너머 아주까리 등불을 따라
저 멀리 떠나가신 어머님이 그리워
네 울면 저녁 별이 숨어버린다
자장가 불러주마 울지 마라 아가야
울다가 잠이 들면 엄마를 본다
물방아 빙글빙글 돌아가는 석양 길
날리는 갈대 꽃이 너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