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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이 떠들썩하게 혼례식을 올리고 친정집에 머무르던 새색시 연당이가 석달 달묵이(혼례식 이후 신랑과 함께 달을 넘겨 묵다가 시집으로 가는 일)를 하고 마침내 상객·하인·짐꾼들을 달고 사인교에 몸을 실어 신행길에 올랐다. 시댁인 최 대감댁은 상객들을 맞아 질펀하게 잔칫상을 벌였고 새신부 연당이는 뒤뜰 연못가의 별당에 보따리를 풀고 시집살이 첫날을 맞았다.
상객들이 떠나고 날은 저물었는데 신랑이 나타나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에 시부모에게 문안인사를 하자 시어머니가 “네 신랑은 친구 부친 상가에서 밤을 새웠나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 했다. 그런데 이튿날에도 신랑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장맛비는 촤르르 촤르르 퍼붓는데 꽈르릉 쾅, 천둥번개 사이사이 소쩍새 울음만 애간장을 끊었다. 저녁 먹은 게 탈이 났는지 장옷을 덮어쓰고 통시로 달려갔다. 바로 그때 “으악!” 하녀들이 거처하는 대문채에서 비명이 천지를 찢자 쪼그리고 앉았던 새색시 연당이 벌떡 일어나 통시 문 위로 고개를 올렸다. 번쩍 번갯불에 마당을 가로지르는 귀신이 보였다. 하얀 소복에 머리는 산발을 하고 입에서는 피가 흘러 저고리가 붉게 물든 채로 날듯이 사라졌다.
얼마 후 연당이 정신을 차려보니 통시 안 잿더미에 넘어져 있었다. 새색시 연당이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하혈(下血)을 얼마나 했는지 걸을 수가 없어 엉금엉금 장대 빗속을 기어서 별당까지 가서 또다시 혼절을 했다. 시어머니 몸종인 열다섯살 삼월이 헛구역질을 했다. 씨를 뿌린 작자는 새신랑이다. 시어머니는 친정 여동생을 시켜 귀신분장을 해서 한밤중에 삼월이 자는 방에 들어갔다. ‘놀라면 애가 떨어진다’고 귀신놀이를 했지만 정작 배 속의 애를 없애야 할 삼월이는 멀쩡하고 석달보름 전 첫날밤 씨를 받은 새신부의 배 속 애가 낙태됐던 것이다.
보름여 만에 겨우 몸을 추스른 새신부 연당이 어느 날 밤, 잠이 들었는데 술 취한 새신랑이 들어와 그녀를 덮치려 하자 누운 채 두발로 새신랑의 가슴팍을 차버렸다. 연당이는 그 길로 밤길 이십리를 걸어 친정으로 갔다.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날 밤 벽에 머리를 박은 신랑이 상처 하나 없이 풍이 와 말도 못하고 반편처럼 누워 있다가 일년 만에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친정아버지가 이승을 하직하자 올케의 눈칫밥을 먹기 싫어 친정집을 떠났다. 나룻가에 태백준령 적송을 다듬어 널찍한 주막이 들어섰다. 주막에서 백여걸음, 왕재산 산자락 노송숲 속에 날아갈 듯이 처마선이 빼어난 아담한 기와집은 요릿집이다. 주막과 요릿집을 차린 연당이는 우아한 자태로 일약 정선 고을 화제의 인물이 됐다.
정선 사또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이 고을의 양반·부자들이 요릿집을 들락날락했지만, 위엄이 서린 연당이에게 감히 범접할 수 없었다. 한송이 꽃을 향해 벌떼들이 일년 가까이 달려들었으나 결국 여왕벌이 화촉 안방으로 불러들인 수벌은 사또였다.
사또는 아이 둘을 낳고 부인을 사별한 후 어미 없이 할머니 손에서 풀이 죽어 자라는 두 자식을 보노라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사또는 일부러 부임할 곳을 머나먼 정선으로 정했다며 술한 잔 마시고 목멘 소리를 하자 연당이는 사또에게 그만 약해지고 말았다. 어느 날엔 사또가 연당이를 품에 안고 엉덩이를 두드리며 “내년에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갈 때 함께 갈 수 없겠소? 정실로 앉혀 두 아이가 어미 정을 느끼도록 해주고 싶소”라고 속삭이자 연당이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또다시 금침 속에 폭풍이 몰아쳤다.
사또의 발길이 뜸해지더니 한달 넘게 출입이 끊겼다. 어느 날 밤, 관아로 찾아간 연당을 수문장이 막아섰다. 쨍그랑, 와장창. “당신이 누구 덕에 사또가 됐는지 알아?” 여자의 악다구니가 들렸다. 연당이 수문장에게 저 여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한양에서 내려온 본처구먼요.” 부자 처가에서 돈을 주고 정선 사또 벼슬을 사줬다는 것도, 한양에 처자식이 있고 정선에 따라가겠다는 부인을 떼어놓고 내려와 연당이를 홀리고, 기생집 동기 머리 올려주고 관아 안 사또 처소인 서헌에 아예 살림을 차렸다는 것도 알았다.
며칠이 지나 연당이 대낮에 동헌으로 사또를 찾아갔다. 연당이 동헌 뜰에서 사또를 쏘아보는 눈빛에 살기가 서렸다. 연당이 아무 말도 없이 떠난 후 사또는 두통이 찾아와 처소에 가서 누웠다. 그날 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도끼로 쪼개는 것 같은 두통은 더 심해졌다. 백약이 무효, 피골이 상접하고 헛소리할 때 한양에서 가족들이 내려왔고 이튿날 서헌에서 곡소리가 새어나왔다.
#사랑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