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3권 5-25 시절節序 2 홍엽紅葉 붉은 잎새
추하전작천심홍秋霞剪作淺深紅 가을 노을 오려서 얕고 깊게 붉은 것 만드니
청녀다정교불궁靑女多情巧不窮 하늘 女神들 다정하고 교묘하기 그지없네.
점점욕소잔조외點點欲燒殘照外 떨어지는 햇빛 밖에서 한 점 두 점 타고자 하고
층층여화란산중層層如畫亂山中 층층이 첩첩산중에 그림인양 하여라.
수행서자비심사數行書字悲心事 두어 줄 글자 쓴 게 이내 심사 슬프게 하고
기개견수락만풍幾个牽愁落晚風 몇 가지 시름 끄는 건 늦바람에 떨어지는 걸세.
막향추풍원령락莫向秋風怨零落 가을바람 향해서 영락零落함을 원망 마라.
동군응우철잔총東君應又綴殘叢 동군이 으레 다시 와서 남은 포기들 수습해 줄 걸세.
가을은 노을을 오려내어 옅은 색 짙은 색 붉은 천을 만들고
서슬 퍼런 서리는 웬 정이 많은지 끝도 없이 솜씨를 부린다
저무는 낙조 아래서 붉은 잎들 점점이 불 타 오르고
켜켜이 산중에 그림처럼 어지러이 펼쳐지누나
마음이 서글퍼서 두어 줄 적어보니
캥기던 시름이 저녁 바람에 흩날리네
깊어가는 가을 향해 잎이 진다 슬퍼하지 말자
봄바람은 또 시든 풀숲에서 풀을 엮고 있을게다
►청녀靑女 청소옥녀靑霄玉女의 줄임말. '상아孀娥'라고도 부른다.
① 아내. 처妻.
② 젊고 경험이 얕은 여자.
조선 연산군대燕山君代 시집가지 않은 처녀를 부르는 호칭.
연산군대에는 채홍사採紅使, 채청사採靑使 등이 있어
미모의 여성을 궁중에 들이는 일을 담당하였는데
이같은 연산군의 음란한 행동은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나는 한 원인이 되었음.
③ 신분이 천한 여자.
④ 관위官位가 낮은 여관女官.
⑤ 서리. 중국의 神話에 나오는 서리나 눈을 관장하는 천신天神.
이 청녀가 출현해야 비로소 서리나 눈이 내린다고 함.
비상임청녀飛霜任靑女 서리 내리게 하는 청녀에게 맡겨 둘 수밖에 없나니
사피격남궁賜被隔南宮 임금님 이불 내려 주시던 남궁이 너무 멂에랴.
/<두보杜甫 추야秋野>
몽각효종한철골夢覺曉鐘寒徹骨 새벽 종소리에 꿈을 깨니 찬 기운 뼈에 사무치나니
소아청녀투선연素娥靑女鬪嬋娟 달 속 선녀 소아와 서리의 신 청녀가 고움을 다투고 있음에랴.
/<이행李荇 상월霜月>
●흥청망청興淸亡淸의 교훈/장상현 인문학 박사, 수필가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고사성어는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이야기로 회자膾炙되곤 한다.
그런데 흥청망청이란 고사성어는 중국이 아닌
조선중기 연산군과 간신 임사홍의 아첨阿諂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다.
이른바 '흥에 겨워 마음껏 즐기며 거드럭거린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돈이나 물건 따위를 아끼지 않고 마구 쓰는 경우'를 비유해 쓰이고 있다.
1494년 조선의 제 10대 왕이 된 연산군은 그를 낳아 준 생모 폐비 윤씨가
사사賜死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피 묻은 적삼을 보고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그리고 그의 패악悖惡과 폭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 갔다.
몇 차례의 피 보라가 조정 안팎을 지나고 나자 쾌락중독에 젖어든 연산군에게
간신 임사홍과 그 아들 임승재는 갖은 아부로 연산군의 기분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임사홍 부자는 고심 중에 무릎을 치면서 생각해 낸 묘안이 바로
조선팔도의 미녀들을 징발하여 왕을 기쁘게 하려는 것을 생각했다.
계획이 완성되자 즉시 "채청採靑 채홍사採紅使"라는 특별 전담반을 구성하였는데
채홍사란 전국 각 지방에 파견되어 미색이 뛰어난 기생이나 여인들을 찾아
한양으로 데려 와야 하는 특명을 받은 벼슬아치들이다.
이들 채홍사 가운데 성적이 우수한 자는 벼슬은 물론 토지와 노비를 포상으로 주었다.
연산군일기에 채홍사 가운데 성적이 가장 으뜸인자는 임사홍으로써
삼천여 명의 미녀를 찾아다 바치고 포상을 제일 많이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때 전국 각지에서 1차에 합격된 여인들을 "운평運平"이라 불렀으며
그렇게 선발되어 뽑혀온 여인이 무려 일만여 명에 달했는데 일만여 명의 여인들 중에서도
기예와 미색이 가장 출중한 절세미녀 300명을 다시 연산군이 직접 심사하여 뽑았는데
이 여인들을 "흥청興淸"이라 불렀다.
처음에는 전국에 채홍사를 파견하였지만 날이 갈수록 쾌락의 늪으로 빠져들어
얼마 후에는 "홍"은 여자를 "준"은 말을 가리키는 뜻으로
'채홍제찰사' 또는 '채홍 준 종사관' 등의 새로운 벼슬자리를 만든 뒤
담당자를 고위직으로 교체하여 파견하였다.
당시 연산군은 백마가 정력에 좋다고 믿고 말고기를 즐겨 먹었으며
혼인하지 않은 처녀를 "靑女"라 칭하여 각 지방 양반가의 미혼처녀를 선발하여 데려오기 위해
"채청녀사. 채홍준 체찰사. 채홍준 종사관. 채홍준 순찰사"등을 8도에 파견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흥청으로 선발된 여인들에게 방중술을 통한
건강 증진법을 가르치는 내시부 교육담당 관리도 두었는데 이를 채홍사라고 불렀다.
연산군이 연일 잔치와 행사로 탕진하여 소비되는 엄청난 비용을
공신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충당하려 하자 공신들과 관료들의 반감이 커지고
끝내는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은 폐위되고 말았다.
수천 명의 절세미녀들을 껴안고 재물을 물 쓰듯 하다 신세 망친 연산군의 몰락을 지켜본 이들은
"흥하는 청이 아니라 망하는 청"이라는 뜻에서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사서四書중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있는 구절이 생각난다.
생재유대도生財有大道 재산을 생산하는데 큰 방법(대 원칙)이 있으니
생지자중生之者衆 재물을 생산하는 자는 많고
식지자과食之者寡 먹는 자(생산직이 아닌 사무직이나 공직자)는 적고
위지자질爲之子疾 일(물건을 만드는 자)하는 자는 빨리하고
용지자서用之者舒 쓰는 자(소비자)는 천천히 하면
즉재항족의則財恒足矣 (그 나라)재산은 항상 풍족하다
공짜로 받는 것 결코 즐거워할 것이 못된다.
자생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흥청망청하는 소비를 생산의 증대로 바꾸어 보는 것도
경제발전에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영락零落
① 초목의 잎이 시들어 떨어짐/<굴원屈原 이소離騷>
소매영락유기수小梅零落柳僛垂 매화 지고 버들가지 흔들흔들 하는데
한답청풍보보지閒踏淸風步步遲 한가로이 맑은 바람 따라 천천히 거니네.
/<진화陳澕 야보野步>
② 살림이나 세력이 보잘 것 없이 됨. 넋을 잃음. 냉락冷落). 낙백落魄.
장심구영락壯心久零落 건장한 마음이 영락한지 오래니
백수기인간白首寄人間 센 머리로 인간에 부쳤노라./<두보杜甫 유탄有歎>
문전냉락안마희門前冷落鞍馬稀 집안이 몰락하니 문 앞을 찾아오는 귀한 손님 드물고
노대가작상인부老大嫁作商人婦 나이 들어 기생 노릇도 할 수 없어서 상인의 아내가 되었소.
/<백거이白居易 비파행琵琶行>
►동군東君
① 해[태양]
동군일야東君日也 동군은 해니라/<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
② 봄의 신. 동황東皇. 청제靑帝.
수운배동황隨雲拜東皇 구름을 좇아 동황을 뵙고
괘석상남두掛席上南斗 배 돛을 달아 남두 별 있는 데로 오르리라.
/<두보杜甫 장적오초將適吳楚득류자운得柳字韻>
청명과료혼무성淸明過了渾無省 청명 절기가 지나가도 도무지 알지 못했으니
비시동군해부인非是東君解負人 이것은 동군이 사람을 저버린 게 아니니라.
/<황계옥黃啓沃 청명일유감淸明日有感>
●한적寒寂 추운 적막/한용운韓龍雲(1879-1944)
불선내한일폐호不善耐寒日閉戶 요즘은 날이 추워 문을 닫고
관산청수미능다觀山聽水未能多 산수를 제대로 찾지도 못한다
설풍매옥인상적雪風埋屋人相寂 눈바람 집을 메워 고요도 고요한데
선여춘주산매화禪如春酒散梅花 봄 술 들며 낙매落梅를 보는 듯 선미禪味에 취한다
한거일일각심한閑居日日覺深寒 요즘은 날로 추위 심해지는데
좌중철벽부은산坐中鐵壁復銀山 앞을 막는 것은 은산銀山과 철벽鐵壁
각치오신불사학却恥吾身不似鶴 하늘을 나는 학鶴도 아닌 몸
선심미파공상간禪心未破空相看 마음의 구름 못 헤쳐 안타깝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