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환 / 황인호
딸내미가 외손녀를 데리고 왔다가 삼 개월 만에 제 집에 갔다. 외손녀 이쁜 짓으로 아내가 몇 년 만에 가장 많이 웃었다. 동대구역 배웅 길에서 딸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제가 집에 가니 섭섭하죠?''
말 잘못 내뱉었다간 곧바로 아내에게 고자질할 게 틀림없다. 사회생활에서는 줄을 잘 서야 한다는 격언과 비슷한 의미를 담아, 집에서는 눈치가 입신 경지에 달해야 살아남는다는 경구를 떠올린다.
''네 생활이 있으니 가야지. 힘들겠다고 생각하니 아리긴 해.''
선한 거짓말이다. '네 삶이니 감당해야지. 엄마는 그보다 더 나쁜 환경에서도 너희를 키웠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듣기 좋은 가락이 명곡'이라는 말을 빌렸다.
''또 올게.''
딸이 한참 만에 한 말이다. 바쁠 텐데, 자주 오지 말고 어쩌다 오라고 하면 섭섭할 터다. 딸이 제 집에 가면 일이 절반이나 줄어들 테니, 속내를 나무랄 일도 아니다. 아내가 기뻐하면 힘든 상황도 맡은 몫이려니 생각한다.
동대구역에 다다라 딸이 차에서 내리면서, 다짐 두는 듯 4월에 다시 온다고 말한다. 환승장 앞에는 주차할 곳이 없어서 아기 안고, 가방까지 들고 들어가는 딸을 대합실까지 배웅하지 못하는 마음이 안타깝다. 삼십 분만 서둘러 나왔어도 공영 주차장에 주차하고, 가방이라도 들어 줬을 터다. 타고난 성품은 어쩔 도리 없다. 오죽하면 딸내미 별명을 '꾸물이'라고 했을까.
딸을 바래다주고 집에 오니 깔깔대는 아내 웃음소리가 현관문 밖까지 들린다. 딸이 간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영상 통화하느라 내가 들어와도 데면데면하다. 우리 집 송이(반려견) 만큼도 대접받지 못하는 처지에 무얼 더 바랄까. 아내에게, 나도 송이 만큼만 이뻐해 달라고 청해 볼까.
나는 자식들에게 차갑다. 아버지는 엄해야 한다는 선현들 말이 아니더라도, 할 말이 없다. 식구들과 온종일 함께 있어도 말 한마디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반면 아내는 아이들 어릴 때부터 자식에게 온몸을 내던져 불사르는 투사 같았다.
쉴 틈 없다. 세탁기에 빨래 돌린 뒤
세탁실 바깥쪽 대피 공간을 청소한다. 세제 등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곳이다. 새벽에 책을 읽거나 필사하다가 허리가 찌뿌둥하고 눈이 침침하면 대피 공간에 창을 열고 담배를 피워 물기도 한다. 아직은 추울 때라 위층에서 민원 들어올 리 없다.
점심은 무엇으로 할까. 살림 도맡은 주부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아내는 입이 짧아서 한 번 먹은 반찬을 식탁에 올리면 내 쪽으로 민다. 입을 잡아당겨 늘일 수도 없고, 끼니때마다 상차림으로 신경이 곤두선다. 식자재 마트에 장 보러 가도 복잡한 마음은 매한가지다. 이놈의 물가는 하늘 높은 줄도 모른다. 반찬거리를 집으려다가도 값을 확인하곤 멈칫한다. 가장 만만한 찬거리는 콩나물, 두부다.
창 넘어 팔공산 등성이에 어둠이 내리면,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때로 마음에 불만이 쌓이면 집 앞 단골 식당에서 한잔한다. 나대로 속을 다독여야 낯빛이 밝다. 어중이와 자리하면 머리만 아프고 짜증이 커지기에 혼자가 좋다.
딸내미가 이달 말경 온다더니 이번 일요일 밤에 온다고 전화했다. 저녁 10시 넘어 동대구역에 마중하러 와 달라고 한다. 내주 수요일에 제집에 돌아간다니 다행이다. 3개월도 버텼는데 며칠이야 입안에 든 껌 같다. 육아 휴직이라 여기고, 숨을 가다듬어야겠다. 아내 웃음이 집안을 다림질한 옷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