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사단 하면 대부분 알고 있는 부대 흑역사 중 하나가 유운학 중령의 월북 사건이다
이로인해 20사단이 전방 GOP임무에서 양평 예비사단으로 그리고 기계화사단으로 변경되고 또한 해체의
아픔을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만약 전방에 계속 있었다면....우리 20사단과 5사단의 부대 역사는 어찌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긴 하다
어째든 유운학 중령의 월북 사유에 대해서는 여거가지 설이 인터넷상에서 떠둘라 다니고 있으나...대분분
사실과는 괴리감이 있는 이야기들 이였다...
그런데...오늘 우연히 네이버 블러그에서 검색중 유운학 중령의 월북 이유에 대한 새로은 글을 보게 되었다
이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수 없으나....내용상으론 이해할수도 있는 내용이고 이글을 쓴분이 누구인지는
알수도 없고 어찌 알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름 그 동안 인터넷상에서 봐왔던 글 보다는 사실성이 있어 보여 올려 봅니다
한번 읽어 보시고 댓글로 본인들의 의견을 달아주세요
1977년 10월 20일 20사단 60연대 1대대 지휘본부(CP)가 있는 벙크가 부산했다. 지휘본부의 근무자들은 유선으로 어딘가에 끊임없이 통화를 하고 무전기로 누군가를 애타게 호출하고 있었다. 같은 벙커에서 근무하는 포병화력통제본부에 있던 내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묻자 화들짝 놀라며 아무 일도 없다는 과장된 제스처를 보였다.
포병화력통제본부의 보고는 3군사령부, 육군본부, 국방부로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육군은 포병에 정보가 가는 것을 싫어했다. 이날도 포병통제본부에 사실을 숨기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부산하게 움직이면서도 사실을 숨기던 육군이 우리 통제본부에 협조를 요청해왔다. 급해진 것이다.
대대장을 좀 호출해달라고 했다. 대대장은 류운학 중령이다. 그는 오전에 무전병인 오봉주 일병만 데리고 비무장지대로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인근 6사단에서 하는 PK3 작업을 살펴보려 간다고 했다. PK3 작업은 북한이 땅굴을 파는지를 진동으로 감지하는 작업이다.
한동안 대대장과 CP간에 무선 통신이 됐는데 갑자기 두절됐다고 했다. 비무장지대에서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통신 연락이 필수적이다. 보병의 무전기 통달거리는 포병에 비해 한참 짧다. 육군은 성능이 좋고 통달거리가 긴 포병 무전기로 대대장을 좀 호출하자고 했다. 주파수를 맞추어 계속 호출하자 마지못해 응답이 한 번 있었다. 대대장이 발목을 삐어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이에 보병 화기 중대장이 좌표를 알려주면 모시고 나오겠다고 했으나 더 이상 응답이 없었다.
1대대는 60연대 본부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응답이 없다고 하자 앞으로 1시간 내에 응답이 없으면 ‘월북으로 간주’한다는 통보가 왔다. 그 1시간이 되기도 전에 북한 방송이 “남조선 60연대 1대대장 중령 류운학과 그의 무전병 일병 오봉주는 무사히 도착했다”는 내용의 북한 방송이 청취됐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1대대 헬기장에 대장 중장 소장 등 별들이 탄 헬기들이 속속 내렸다. 비상이 걸리고 우리들에게는 보안교육이 실시됐다. 한마디로 말하면 ‘입도 벙긋하지 마라’다.
류 중령이 들어간 비무장지대는 백마고지 옆 철원평야. 철원평야의 많은 부분이 북측에 있다. 남측 철원평야는 6사단과 20사단이 경계를 맡았는데 6사단 쪽이 넓었다. 20사단은 6사단에 비해 산악지역이 많다. 특히 백마고지를 맡고 있는 20사단쪽은 백마고지와 철원평야 사이를 한탄강지구대에 속하는 역곡천이 흐른다. 지구대여서 관측도 잘되지 않는 곳이다.
류 중령은 인접 사단이 하는 일을 보려 간다며 무전병만 데리고 비무장지대로 들어갔다. 비무장지대를 들어갈 때는 엄격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월북을 하는 군인이 있을 수 있고, 또 그곳에서 지뢰를 밟아 사고도 날 수 있으며, 북한군에 납치를 당하거나 총격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왜 인접 사단의 작업을 보려간다며 위험한 비무장지대를 무전병만 데리고 들어갔을까. 바로 한 달 여전 역곡천 때문에 관측이 어려운 철책초소에서의 사고 때문이다.
역곡천이 한탄강지구대여서 절벽 아래를 흐르는 관계로 관측이 힘든 이 초소는 예전에도 북한군이 밤에 침투해 우리 초병을 살해하고 도주한 사건이 있었다. 때문에 보병들은 이곳 근무를 싫어했다. 한 달 전 사고는 어스름이 졌을 때 초병의 눈앞에 북한군이 어른거렸다. 그러지 않아도 평소 무서운 곳으로 긴장상태이던 초병은 놀라 사정거리에 들지 않았는데 크레모아를 터뜨렸다. 대대장이던 류 중령은 이 일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함구령을 내렸다. 북한군을 잡았으면 좋았으나 놓치는 바람에 진급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 비밀이 있나. 보안대가 이를 눈치 채고 수사를 시작했다. 보안대대 중령이 근무 초병들을 상대로 직접 취조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류 중령은 진급은 고사하고 징계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그래서 그가 택한 것이 월북이다. 그는 GP게이트로 들어가 6사단쪽으로 이동하는 척하다가 곧장 역곡천을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요즘 같으면 전화기 GPS로 위치가 바로 파악 됐을 것인데 당시는 무전 뿐이었다.
류 중령의 월북으로 별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최전방 대대장이라 작전계획이 고스란히 북한군에 노출되어 사단교체도 했다. 양평 지역에 있던 5사단과 교체했다.
무전병 오봉주는 전남대 국문학과를 다니다 입대했다. 그는 진급에 눈이 먼 대대장의 희생양이다. 그는 뒤에 북한이 너무 살기 좋다는 대남 선전방송에 동원하기도 했다. 그때 그는 ‘남한에서는 가정형편으로 대학을 다니지 못했는데 북한에 오니 대학도 공짜로 보내주어 너무 좋다’는 식의 방송을 했다. 그가 전남대를 다니다 류운학에 의해 강제 납북을 당한 사실을 모르는 남쪽의 가정형편이 어려운 병사들이 혹하기에 딱 좋은 말이었다. 실제로 당시 오봉주의 대남 선전 방송에 혹한 비무장지대 근무 사병이 월북을 시도하자 붙잡히기도 했다.
내가 뒤에 휴가를 나갔다가 남한 측에서 류 중령과 무전병이 납북됐다며 북한에 송환을 촉구하는 것을 보고 실소했다.
나도 류 중령과 인연이 있다. 그는 파견 나온 포병들을 무척 싫어했다. 파견 나온 군인들은 아무래도 군기가 느슨하다. 군화 끈을 제대로 매지 않아 개 혓바닥처럼 너덜거리는 군화를 신은 나를 본 그가 조인트를 깠다. 그것도 사정없이 깠다. 그는 자신의 진급을 위해 보병들을 무척이나 괴롭혔다. 자기 부하들 군기를 매섭게 잡고 있는데 파견 나온 포병들의 복장불량은 군기 잡는데 방해가 될 수밖에. 그런 포병이 눈에 가시였는데 내가 제대로 걸렸다.
류운학(柳雲鶴)은 평소 자신의 이름이 얼마나 멋지냐며 한자 풀이로 자랑하곤 했다. 승승장구할 이름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때 까지만 해도 그는 동기들에 비해 승진이 빨랐다. 그런데 구름 위를 날다 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가족이 불쌍하다. 결국은 그도 불쌍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나라를 배신한 사람을 누가 끝까지 신뢰하겠는가. 용도폐기는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치니까.
[출처] ‘구름 위 날다 추락하다’...최전방 대대장 류운학 월북|작성자 짜이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