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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비밀의 도서관-호메로스에서 케인스까지 99권으로 읽는 3000년 세계사
저-올리버 티얼(정유선 엮)
출-생각정거장(매경) 2017년 12월 20일. 431쪽
독정-2018년 10월 17일 수
이 책은 연대별로 구성해두었는데 나는 주제별로 재구성 정리햐였다.
·1. 판타지의 시초-공상 과학 소설
<진실한 역사>는 진실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고대 탐험가들의 황당무계한 여행기를 패러디한 것이자. 작품 속 주인공들은 회오리바람에 말려 달까지 날아가고, 그곳에서 달의 왕과 해의 왕이 싸우는 전쟁에 휘말린다. 지구로 돌아온 뒤에는 거대 고래 몸속에 갇혀 전쟁에 진 사람들을 만나고 우유의 바다, 치즈 섬과 같은 축복받은 장소에 산다. 남성 고환에서 자라나 성기 모양을 갖춘 나무, 포도주가 흐르는 강물, 치즈로 된 섬같 은 것이 등장한다. 배가 최초의 우주선이 되고 배가 달에 착륙하지만 달의 왕은 금성의 식민지 문제로 태양 왕과 전쟁 중이었다. 달의 군대는 그리스의 키클라데스 제도보다 큰 거미들로 구성되었고 그것들로 달과 금성 사이에 거미집을 지어 비단으로 된 싸움터로 만든다. 반면 태양의 군대는 길이 60미터 개미와 거대한 모기들, 날개 펄럭이는 장난감 같은 무리와 주 무기인 거대한 무를 던져 적들이 알 수 없는 상처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준게 한다.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 하터트 조지 웰스의 <달의 첫 방문자>가 나올 수 있는 공상과학 소설의 토대가 되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조너스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효시이기도 하다.
· 킹슬러 책 <물의 아이들>은 가장 특이한 어린이 고전으로 판타지 소설인 동시에 기독교적 교훈이 담신 우화였다. 다윈의 진화론에 장황하게 떠들고, 정치 풍자를 하는 부분도 있다. 물의 아이가 된 굴뚝청소부 톰은 아가미를 갖기도 하고 원숭이로 퇴화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물의 아이들>보다 2년 늦게 출판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물의 아이들>처럼 모두 현실세계를 떠나 정상 논리와 체계가 뒤집어진 환상 세계로 가는 아이가 나온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속 ‘바닷가재 카드리유’에 영감을 주었을 법한 커다란 바닷가재가 등장하며 ‘공연히 히죽히죽 웃는’과 ‘아주 미친’이라는 구절이 나오고 ‘체셔 고양이’와 ‘3월의 토끼’라는 실제 캐릭터로 등장시켜 <물의 아이들> 책을 그대로 옮겼다. 두 사람도 똑같이 성직자이자 작가였지만 <앨리스>를 쓴 캐럴은 설교룰 피한 반면 <물 아이>를 쓴 킹슬리는 윤리적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 게 의무라 여겼다. 킹슬러의 <서쪽으로>는 튜더시대의 대담한 행동으로 영국의 무시시무시한 적인 스페인으로부터 공격받는 등 다양한 모험을 함께하다가 결국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르는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다.
· 레즈비언 자(Lasbian rule)란 사물의 형태에 따라 곡선으로 구부려지는 자로 건축가나 석공이 주로 쓴 도구다. 시간이 자나면 모양을 바꾸거나 수절될 수 있는 원칙이나 의견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레스보스섬의 건축업자들은 납으로 만든 자를 사용하는데 그 자는 돌의 형태에 맞출 수 있도록 고정되어 있지 않다. 법령이나 의사결정도 환경에 맞출 수 있도록 그러해야 한다“고 아리스터텔레스가 언급하였다.
·19세기에 이집트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160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고대 쓰레기 더미에서 발굴작업을 하는 도중 파피루스 뭉치가 발견됐다. 그 속에 <마르기테스>의 일부와 구전으로 전해지던 사호의 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2. 책 이야기-
-비싼 책
· 요즘은 누구나 기차를 타고 아주 짧은 시간 만에 좋은 곳을 어디든 갈 수 있다. 최초 탐정소설을 쓴 브래든의 성공이 잘 보여주듯 철도는 사람들의 독서 습관도 바꾸어놓았다. 그녀 소설은 사람들이 기차 타고 출퇴근하는 동안 읽기에 딱 맞는 종류의 소설이었다.
1860년대 즈음 영국 대도시의 큰 기차역에 간단한 먹을 것과 책 파는 스미스 가판대가 있었다. 1860년에는 아예 이동 대여점을 설립해 손님이 역에서 책을 빌린 뒤 다른 역에서 반납하거나 새 책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전역을 돌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책은 터머스 알렉산더 하트먼 철학자가 쓴 <일>이라는 책인데 1억 5300유로(약 1840억)이며 13쪽 분량이다. 그는 2008년에 이 책을 공개하며 집필하는 데 30년 걸렸다고 했다. 현 시점에서 낱권으로 팔린 가장 큰 금액의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업노토로 알려진 <코덱스 레스터>란 책인데 빌 게이츠가 3100만 달러(약 345억원)를 주고 샀다.
· 지금까지 존재하는 책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교본이라는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인쇄된 책으로 1570년에 영어로 번역돼 엘리자베스 여왕의 점성술사가 쓴 서문과 함께 발표됐다. 이 책은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함께 읽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으로 꼽히기도 한다. 흔히 이 책의 초반부는 피타고라스의 책을 기반으로 했다고 알렸다. 심지어 책 전체의 업적이 피타고라스의 것으로 돌려지기도 한다.
· 카프카는 숨을 거두며 친구 마스 브로트에게 자기 미발표 작품을 불태워 달라 부탁했다. 브로트는 <변신> <소송><성> <아메리카>를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초판으로 출판했다.
-작가의 의도보다 독자가 믿고 싶은 대로
영화 <벤허>는 알지만 1880년 출간된 월리스 소설 <벤허>는 잘 모른다. 벤허는 유대인 귀족이지만 로마인들의 행렬이 지나갈 때 사고로 그의 집 기왓장이 떨어지는 바람에 암상 음모죄를 뒤집어쓴다. 로마인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간 그는 결국 로마 전차 경주의 전차수가 된다. 로마의 통치 아래 같은 시공간에 살았던 또 다른 유대인, 예수와 교모하게 비교했다. 소설 부제도 ‘그리스도 이야기’로 지었다. 이 부주석 이야기 덕분에 초대형 히트작이 되고 교황 레오 13세의 축성까지 받으며 19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기독교소설로 큰 명예를 누린 최초 기독교 소설 작품이 됐다. 그는 기독교 역사와 예수의 삶에 관한 글을 쓸 목적으로 그 주제를 더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전차 경주, 우정, 배신, 복수, 기독교, 지붕에 기와를 올릴 때 솜씨 좋은 기술자를 고용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려주는 소설의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아카데미 사싱식에서 열한 개 부분의 상을 휩쓸었고 월리스는 자신의 최고 소설이 <인도의 왕자>라 했지만 아무도 동의하지 않고 이 벤허를 꼽았다.
·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허구 인물 홈즈는 당시 빅토리아 여왕만큼 잘 알려졌고, 대다수 정치인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코난 도일이 1890년 단편소설에서 홈즈를 죽게 했을 때 2만 명 독자가 설록 홈즈를 연재하던 <스트랜드 매거진> 구독을 취소, 홈즈를 애도하기 위해 검은 완장을 두르고 런던을 돌아다닌 사람들이 있었다. 10년 뒤 코난 도일은 대중의 성화에 못 이겨 홈즈를 죽음에서 되살려낼 수밖에 없었다. 설록홈즈 시리즈 중 초기 두 권이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홈즈의 삽화를 그린 시드니 패짓은 홈즈가 시골 저택과 작은 시골로 조사나갈 때만 사냥 모자를 씌웠고 런던 있을 때는 그렇게 그린 적이 없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홈즈가 사건 조사하러 갈 때마다 늘 사냥모자를 썼다고 생각한다. 이 삽화를 그린 삽화가는 출판업자가 그의 동생 월터를 고용하려고 했지만 부주의로 그의 형에게 편지를 보낸 바람에 삽화 역사에 가장 커다란 행운을 준 실수 중 하나였다.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 유토피아는 실제 존재하는 장소라고 주장하기 위해 서술자가 모험가로부터 유토피아라는 섬에 관해 듣게 되는 액자식 구성을 활용했다. 유토피아가 그리스어로 좋은 곳과 없는 곳이라는 중의적인 뜻의 u와 장소라는 뜻의topia가 결합됐다. 실현되기엔 너무 좋은 곳이라는 말장난이고 보면 모어가 지나친 이상주의자들을 조롱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최초 공산주의자가 사유재산을 거부하도록 선동하고 부자 경멸 조장의 최선 방법이 금으로 만든 요강을 가진 것이라고 믿는 유토피아인들을 보여줄 때 명확하게 나타난다.
· 네덜란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의 <어린이의 정중함에 관하여>는 16세기 초 이탈리아 작가 발다사르 카스틸리오네가 쓴 <궁정론>의 영향을 받았다. <통치자론>과 마찬가지로 <어린이의 정중함에 관하여>도 16세기의 행동 안내서이며 남성이나 소년들이 높은 지위에 어울리게 행동하는 법을 조언한다. 즉 소매로 코를 닦으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식탁에서 먹다 만 음식을 남에게 권하는 행위는 말 것, 토할 것 같으면 토사물을 목 안에 머금고 있는 게 낫다, 의자에서 앞뒤로 몸을 흔들면 방귀글 뀌거나 방귀를 뀌려고 애쓰는 인상을 준다면서 해서 안 되는 행동으로 규정. 익혀두면 쓸모 있는 소소한 내용들이었다. 출판된 지 10년 만에 22개 말로 옮겨졌고 에라스무스 생전에 30쇄를 찍었고 3세기 동안 100쇄를 더 찍어 16세게 유럽 베스트셀러로 양육법 비침을 필요로 하는 부모 계층이 급증했음을 보여준다. 유럽은 예의를 중시하였고 작은 실례라도 저지르면 궁정에서 앞날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구토 예절과 손수건의 중요성까지 강조했던 이 책을 통해 당시 유럽 사회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단테는 소년이었을 때 처음 본 베아트리체를 순수와 선의 귀감으로 보고 대지의 여신처럼 숭배했다. 1290년, 이십 대에 요절한 베아트리체를 기리기 위해 단테는 시와 산문으로 첫 번째 대작<새로운 인생>을 썼다. <신곡>의 결말에서 단테에게 천국을 보여주는 인물도 베아트리체다. 이 책에서 지옥계는 아홉 단계가 있고 각 지곡은 일곱 가지 치명적 죄를 초점으로 맞춘다. <신곡>에서 가장 큰 죄 배반을 벌주는 아홉 번째 지옥에서는 검정, 진홍, 옅은 노란색으로 도니 세 개 얼굴을 매달고 있는 사탄이 얼음 속에 허리까지 갇힌 채 지옥 한가운데 앉아 있다. 사탄 가운데 머리는 날카로운 이빨로 예수를 배신한 유다와 주인인 카이사르를 배신한 브루투스, 카시우스를 씹는다. 즉, 단테 눈에 비친 지옥은 모두 화염과 유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또한 악마와 관련된 곳에서 두 개의 얼굴을 지니는 것, 양면성은 그다지 배신아라 볼 수 없다. 단테 어머니는 태몽으로 아이가 공작으로 변하는 꿈을 꾸었다. 결국 단테는 이탈리아 최초의 위대한 시인이 됐다.
· 인류 최초 비극-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염소를 제물로 바치면 도시국가에서 발생한 죄를 없앨 수 있다는 발상은 유대교와 기독교에 존재하는 희생양 개념과 유사하다. 비극 단어 자체가 이런 의미를 담고 있으며, 염소의 노래(goat song) 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비극 중 하나가 오이디푸스 왕으로 테베의 왕자로 태어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 때문에 버려진다. 그러나 목숨을 건져 다른 나라 왕자로 성장하고 자신도 모르는 채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로 어머니와 결혼해 왕위에 오른다. 이 도시에 역병이 돌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진다. 결국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는 자살하며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자신의 눈을 파낸다. 장르 측면에서 비극에는 대개 살인을 저지르도록 유혹당하는 비극적 영웅이 등장한다. 사악 행위를 저지른 뒤 영웅은 고난을 겪고, 죽거나 오디푸스 왕처럼 스스로 눈을 파내는 식으로 파국을 맞는다. 프로이트는 눈 파내는 행위를 상징적 거세로 보았다. 남아아이가 오디푸스처럼 어머니와 성적으로 결합하길 바라고 아버지는 적으로 인식하는 무의식적 욕망을 품는다고 정의하며 오디푸스 콤플렉스라 명명했다.
3. 모방 이야기-
세익스피어의 <햄릿>이 초연되기 5년 전 1596년 작가 토머스 로지가 <현인의 고통과 세상의 광기>라는 책에서 “마치 굴을 파는 아낙네처럼 몹시 비참하게 ‘햄릿 복수해!;라고 극장에서 외친 유령”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에 세익스피어의 희곡이 그 작품에서 영향 받았다고 짐작했다. 비평가 월리엄 엠프슨은 세익스피어의 <햄릿>속 감정의 과잉은 키드의 원작에 대한 고의적 패러디라고 했다. 세익스피어가 <햄릿>를 썼던 1601년 즈음에 키드의 스타일은 구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연극 배우들은 전체 원고 대신 자기 대사 장면 사본만 받았다. 이 대사는 종이 두루마리 형태로 전달되어 현재 배우의 역할을 롤role이라 하게 됐다. 키드는 자기의 작품이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햄릿>극에 영감을 준 사실도 모르고 <파우스트 박사>를 쓴 문제아 크리스토퍼 말로 친구로 런던 타워에 잡혀가 심문 받고 1594년에 생을 마감했다.
·돈키호테 속편이 쓰인 이유
속편은 첫 책이 1605년에 발표 된 10년 후 알론소 페르난데스 데 아베야네다가 세르반테스의 인물을 동용해 <재치 있는 기사 라만차의 돈키호테 2권>을 1614년에 출판자사 세르반테스가 제대로 된 속편을 썼다.
· 우화를 쓴 사람은 이솝이 아니다. 몇 세기 전 시인 헤시오드는 매와 나이팅게일 새 이야기를 썼고 아르킬로코스는 독수리와 여우 이야기, 여우와 원숭이을 썼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한 사람이 이솝일 뿐이다. 플라톤 <대화편>의 ‘파이돈’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이솝우화로 시를 지었다. 1484년 인쇄업자 월리엄 캑스턴이 <이솝우화. 영문판을 최초 인쇄, 그때부터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의 ‘신 포도’ ‘양치기 소년’같은 표현이 일상 언어 속에 등장했다. ‘양의 탈을 쓴 늑대’도 성경 구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솝이 실존했다면 기원전 6세기 전후이며 <이솝우화> 역시 구전의 일부로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든 작품일 수 있다. 만약 이솝이 존재했다면 장애가 있는 흑인 노예였다고 여겨진다.
· 원저자 바꿔치기-
폴리도가 쓴<뱀 파이어>는 그가 바이런의 별장에 응급처치 주치의로 가 있는 빈둥거리며 보낸 이삼 일 동안의 오전에 휘갈겨 쓴 작품이었고 인쇄할 생각도 없었다. 플리도리는 1816년 늦여름 바이런에게 해고됐을 때 원고를 챙기지 않고 제네바로 떠났다. 책 주인공을 악의적으로 바이런을 모델로 했는데 원고가 훗날 편집자 헨리 콜번의 런던 사무실까지 흘러가서 콜번은 장난스럽게 책 저자를 바이런으로 알리며 1819년 <뱀파이어>를 출판했다. 이 소설은 바이런에게 버림받은 전 연인의 냉혹하면서도 은근한 공격이라 바이런과 폴리도리 두 사람 모두 <뱀파이어>의 저자는 바이런이 아닌 폴리도리라고 했지만 독자들은 계속해서 바이런 작품이라 여겼다. 심지어 괴테는 이것이 바이런이 쓴 최고작이라 여겼다. 이 사실을 보면 사람들은 바이런이 그것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고 싶은 대로 믿기 위해 기꺼이 눈감은 듯하다. <뱀파이어>가 오해를 살 만큼 바이런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을 감안할 때 이 소설이 만우절에 출판된 것은 꽤 적절해 보인다. <뱀파이어>는 1820년대 흡혈귀에 열광한 시기로 연극화되고 그림 등에도 흡혈귀가 등장. 가극으로 각색된 <뱀파이어>도 있었다. 흡혈귀는 이제 세상의 일부가 되었지만 폴리도리는 이 사실을 모르고 1821년 스물다섯 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뉴턴의 그늘에 가린 과학자- 로버트 훅은 스물아홉 살로 <마이크로그래피아>책을 내어 현미경 관련 책으로 과학 역사에서 출판된 것 중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았다. 1665년 그레셤대학 기하학 교수로 임명, 1883년 사무국장까지 지냈으나 뉴턴과 불합리한 경쟁을 했고 뉴턴은 음흉하게도 역사에서 훅의 기록이 삭제되도록 초상화를 모두 없애며 300여 년 동안 알 수 없게 했다. 뉴턴은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덕분‘이라 했는데 훅에게 쓴 편지에 들어 있는 말이다. 뉴턴이 올라탔던 거인 중에 부분적으로나마 훅도 포함됐다. 훅은 뉴턴이 행성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의 역제곱법칙을 발견하는 데 영감을 주기도 했다. 훅은 뉴턴이 이 아이디어에 대한 자신의 공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사실상 이 일로 두 사람 사이는 틀어졌다. 훅의 위대한 업적은 과학계의 새로운 장난감 현미경이었다. 그는 렌즈로 무엇이든 다 들여다보았으며 식물, 곤충, 치즈 자기 소변조차 관찰하고 기록했다.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곤충이 렌즈 아래 얌전히 있도록 브랜디나 독한 알코올을 주어 그것이 술에 취해 뻗도록 했다고 기록했다. 세포라는 표현을 처음 쓰기도 했다.
·로빈슨 크루소의 영감
1719년 출간된 대니얼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최초 영국 소설이라 한다. 초판 속표지에 찍인 제목은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오리노코강 어귀 인근 미국해안의 무인도에서 28년간 홀로 살아온 사람: 배가 난파되어 모두 죽고 홀로 살아 해안으로 밀려오다. 약탈자에 의해 마침내 기이하게 돌아오는 이야기>였다. 스코틀렌드의 선원이었던 알렉산더 셀커크가 4년 여 동안 무인도를 표류했던 실제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쓰였다. 또한 헨리 피트맨은 유배지에서 탈출하다 배가 난파돼 무인도로 흘러들어가 그곳에서 살아남아 카리브해를 모험한 자신의 이야기를 써 짧은 책으로 출간했다. 디포는 같은 지역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피트맨을 만나 그의 경험을 직접 들었을 수도 있다. 현재 ‘로빈슨 크루소 아일랜드’라느 장소가 실제 있지만 진짜 살았던 섬은 아니다. 디포 작품에 나오는 섬은 카리브해에 있지만 로빈슨 크루소 아릴앤드는 남태평양에 있다. 셀커크가 태평양에서 좌초당했기 때문에 섬에 표류자의 이름이 붙은 셈이다. 하지만 픽션은 사실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키기 마련이므로, 섬에 실존 인물인 셀커크가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인 로빈슨 크루소의 이름이 붙여졌다. 로빈슨 크루소 아일랜드에서 서쪽으로 16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알렉산서 셀커크 아일랜드도 있는데 그 섬은 바위보다 조금 큰 정도다.
우리는 세익스피어 작품속의 인류애, 월리엄 워즈워스 작품 속의 공감, 조지 엘리엇 작품의 다른 사람을 갸여워하는 인본주의적 관용 정신 때문에 위대한 문학 작품을 좋아한다. 하지만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풍자로 언제 우리를 조롱하는지, 독자들이 언제 걸리버의 관점을 공유하기를 바라고 언제 바보의 머리를 후려치기 바라는지 결코 알 수 없는 다면성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올로이는 1690년 프랑스에서 최초로 동화책을 출판했는데, 그때는 페로가 첫 책을 펴내기 3년 전이었다. 이어서 1697년 <동화>라는 제목으로 이야기 모음집을 발표했다. 이 제목은 곧 ‘동화’ 장르의 기원이 됐다. 올로이의 동화 속 여 주인공들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용감하며 재치가 넘친다는 점에서 명백히 저자의 거울이었다. 올로이는 자신을 거부한 귀족 집단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 동화를 썼다. -부양할 자식이 늘어나는데 그녀는 글 쓸 때 자신의 아이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파리에서 ‘요정들의 여왕’으로 등극한다.- 18세기에 그녀 동화책은 무려 22세나 인쇄되었다고 추산. 올로이의 많은 동화는 ‘미녀와 야수’ 모티브의 변형이지만 그녀 이야기는 수많은 <미녀와 야수>보다 먼저 쓰였고 미녀와 야수를 쓴 가브리엘 수잔 바르보 드 빌레느브에게 확실히 영향을 주었다. 나중에 디즈니 에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올로이가 지금까지 기억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월트 디즈니 때문이다. 디즈니는 고전 동화를 에니메이션으로 각색할 때 올로이가 아니라 안데르센과 그림 형제의 작품을 택했기 때문에 그들 이야기만 전 세계에 퍼졌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번역된 프랑스 작가 쥘 베른. 그의 증손자인 장 쥘 베른은 어릴 적 집안에 대대로 내려온 청동 금고에 사로잡혔다. 1989년 열쇠공을 불러 금고를 열었을 때 1세기 전 증조부가 쓴 발표하지 않은 소설이 노란 노트에 담겨 있었다. 1863년에 썼지만 1960년 세상을 배경으로 해서 기관사 없는 열차를 타고 통근. 집집마다 전등이 켜져 있고 팩스와 전화기, 컴퓨터를 사용하고 엘리베이터와 텔레비전이 설치된 고층건물에서 산다.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이는 전기 등대같이 키 큰 구조물이 파리에 있다고 묘사한다. 실제 에팰탑은 1889년에 지어졌다. <20세기 파리>는 이처럼 8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발견됐고, 1994년에 마침내 프랑스에서 출판됐다. 베른이 1863년 <20세기 파리>를 완성했을 때 그는 이미 <기구를 타고 5주간>으로 성공한 작가였지만 출판업자는 다음 작품을 출판하기를 주저했다. 이야기가 너무 터무니없어서 독자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누구도 당신의 예언을 믿지 않을 것’이라며 베른을 낙담시켰다. 역설적이게도 이 소설은 베른 작품 중 가장 예언이 적중한 책이었지만 출판 거절당해도 꾸준히 소설을 써서 <지구 속 여행> <달나라 여행>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게 일주>등을 남겼다. 이 책들은 모두 지금까지 출판되고 있다. 하지만 <20세게 파리>가 빛을 보는 데는 한 세기가 걸렸고 소설의 배경이었던 1960년은 서점에서 이 책을 살 수 있게 된 시점에 이미 과거가 되어 있었다.
·도로시 리처드슨은 1873년부터 1957년까지 살았으며 연작 장편소설 <인생항로>를 1915년에서 1967년까지 총 13권으로 출판했다. 어쩌면 프루스트의 연작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모델로 삼았을 수 있다. 이 연작소설이 다른 모더니스트의 작품과 다를 까닭은 양탄자의 무늬, 수건걸이의 상태, 아파트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음 등 세부적 내용에 끈질기게 관심을 기울여서 세심함이 신선하고 실생활을 잘 반영한 것처럼 느끼는 반면, 이야기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결코 확신할 수 없으며 그저 따분하게 느낀다. 여성 심리를 담은 문장에 자신의 쓰임새에 맞게 적용했다는 울프 리처드슨의 평도 있지만 리처드슨은 의식의 흐름이라는 용어를 좋아하지 않고 자신의 문체를 몰입의 형태로 보고 싶어 했다. 마치 시냇물처럼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욕구라기보다 생각과 경험의 동시적이고 다면적 특성을 포착하려는 시도를 뜻했다. 그러므로 모더니스트 소설 역사에서 의식 흐름을 다룰 때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보다 도로시 리처드슨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 메리 셀리의 1818년 원작소설<프랑켄슈타인>에서 영감 얻어 만들어진 영화가 많다. <프랑켄슈타인>은 무생물에게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한 사람이 시신의 뼈로 인형을 만들고 생명을 넣게 되며 시작한다. 이 괴물은 인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창조한 사람과 창조된 것은 죽음에 이르는 대결을 한다. 이 원작에는 이후 무명의 창조물이 계속해서 더해졌고 오독이나 오해가 늘 따라다니게 됐다. 실제로 프랑캔슈타인은 괴물 창조자 이름이지만 현재는 대부분 창도된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이라 지칭하고 있다. 또 창조자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라 알려졌지만 책 속 그는 한낱 학생이다. 그리스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덕분에 인간은 다른 동물과 대적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 힘을 얻는다. 사실 이 소설의 부제도 ‘근대 프로멜우스’다 이것은 분명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의 일부이지만 창조물이 창조자에게 등을 돌린 이유는 괴물을 창조했다는 사실 그 자체나 창조물 본연의 성향 때문이 아니었다. 폭력적이고 파괴적 행동은 프랑켄슈타인이 나중에 자신이 만든 창조물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소설은 과학을 잘못 이용할 때 벌어지는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양육에 관한 것일지도 모른다.
4. 여행 이야기 책
- 스위트프의 <걸리버 여행기>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속편이 나온 이듬해 성직자이자 정치평론가였던 조너선 스위프트는 난파선, 단독, 여행자, 섬 등이 등장하는 여행 모험담을 써 1726년에 <외과 의사에서 배 여러 척의 선장이 된 레무얼 걸리버의 먼 나라 여행기 4부작>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지금 <걸리버 여행기>이다. 베스트 셀러였고 3주만에 1만부가 팔렸다. 이 걸리버 여행기도 레무엘 걸리버라는 실재 인물이 경험한 네 번의 항해를 진술하는 것처럼 쓰였다. 첫 번째 여행기는 소인국 릴리퍼트에 다녀온 이야기로 걸리버는 뿔 끄는 것을 도와주려고 소변을 보았다가 소인국에서 쫓겨난다. 두 번째 항해는 거인국 브롭당나그에 도착, 처지가 바꾸어 거인들에게 키워진다. 세 번째 나라 라푸타는 모어의 <유토피아>처럼 하늘을 나는 섬나라로 이곳 주민들은 무엇보다 과학을 숭배한다. 걸리버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휘늠에서는 말들이 이성을 지녀 인간처럼 말한다. 반면 인간은 지저분하게 분뇨를 내던지는 야수들이고 후세에 인터넷 검색엔진의 이름이 된 “야후yahoo”라고 불렀다. 고국에 돌아온 걸리버는 인간이 야후들과 닮았다는 것을 깨닫고 실의에 빠져 마구간에서 말과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만 휘늠에서와 달리 그것들은 대꾸하지 못했다. 스위프트는 과학을 조롱했지만 그의 소설속에서 두 개의 위성이 화성의 궤도를 돈다고 공상으로 썼는데 이 공상이 150년 뒤 실제 화성에서 두 개의 위성이 발견되어 실제화 됐다. 이 예언을 기리기 위해 두 위성 중 하나인 데이모스의 분화구에 스위프트의 이름이 붙여졌다. 영문학자 팻 로저스는 에세이 <걸리버의 안경>에서 “걸리버는 영국 소설에서 최초로 안경을 쓴 주인공”이라 주장했다. 걸리버가 소인국에 머물 때, 그들과 적재관계인 또 다른 소인국 블레푸스쿠를 방문하며 그곳 주민들이 쏘는 화살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안경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코리앗의 미완성집> 책에서 코리앗은 포크와 우산을 영국에 가져온 여행 작가였다.-책이라는 세상은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과 잊힌 이름들이 떠도는 곳이다. 코리얏은 이탈리아 사람이 작은 포크로 음식 먹는 모습을 기록했다. 제임스 1세 궁정 사람들은 코리앗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읽고 이 방식을 받아들여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하는 관습이 영국에 도입되었다. 코리앗 친구들은 그에게 포크 전달자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또 이상한 도구를 이용해 햇빛을 차단하는 이탈리아 생활양식에 관심 가져 야외에서 우산 쓰고 비 가리는 새 문화를 전했다. 학자 조나스 헨웨이는 런던에서 최초로 우산을 썼다가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 베네치아 출신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 이전의 여행책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는 누구보다 멀리까지 여행했다고 주장했지만 마르코 폴로가 태어나기 2년 전 세상을 뗘난 이탈리아인 지오반디 다피안 델 카르피네가 아시아로 긴 항태를 먼저 떠났다. 책 속에서 몽골 군사 전략, 스파이 임무 수행, 몽골의 결혼 풍습, 먹는 음식, 의복, 법률과 관습 등 귀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1240년 말 여행기를 완성했고 유럽 기독교인들에게 최초로 몽골 세계를 소개한 자였다. 그로부터 50년 이상이 자나서야 마르코폴로는 자신의 여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카르피네가 방문했을 당시와는 달리 마르코 폴로가 방문한 몽골은 쇠퇴하는 제국이었다. 마르코 폴로는 코뿔소를 유니콘으로 착각, 목격하지 않은 게 거의 확실한 전투와 중요한 사건으로 자신을 등장시켰다. 이란의 사막에서 소금기 있는 물을 마시고 여러 차례 설사하며 물 한 방울이면 장을 열 번이나 비울 수 있는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동방견문록>은 새로운 발명품을 서양에 소개했고 덕분에 지폐와 안경이 유럽에 도입됐다. 콜럼버스는 1942년의 유명한 항해에 이 책을 가지고 갔다.
5.·일기 작가-
<안네의 일기>는 13살 생일 때 안네가 서명첩을 선물 받아 일기를 썼다. 1942년 6월 14일 첫 번 째 일기를 적었다. 첫 머리에 사랑하는 키티에게라고 썼다. 키티는 일기장에 붙여준 이름이다. 안네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최종 해결의 공포에서 살아남아 194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딸의 일기를 출판했다. 열 명의 출판업자에게 거절당한 뒤 1952년에야 마침내 출판했다. “내가 보기에 이 소녀에게는 그 책을 ‘호기심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릴 만한 특별한 통찰력이나 감수성이 없다.”고 했지만 오늘날 소녀의 일기는 60여 개 언어로 번역돼 3000만 부가 팔렸다.
· 새뮤얼 피프스는 1660년 1월 1일, 스물일곱 살 해군 행정관으로 일기쓰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그의 일기가 흥미를 끄는 까닭은 약점을 솔직히 고백, 시원하게 터놓는 성격 덕분이다. 그가 살던 역사에서 영국 런던에는 대역병과 대화재가 발생, 네덜란드의 침략을 받았는데 이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주러 날마다 사소한 일들을 기록, 영국의 익살스런 인형극을 최초로 기록했고 당시 혁신의 최첨단 제품이었던 알람시계도 묘사했다. 그는 책 수집가여서 유품 중에 유명 한 사람의 일기도 있었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른 영웅인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연감도 있었다. 그는 책을 주제가 아니라 크기대로 배열하기를 좋아했다.
· 1640년대에 영국내전이 일어났고 1660년대는 왕정복고가 일어나 찰스 2세가 즉위, 런던에 대역병과 대화재가 발생, 네덜란드 함대의 런던 침략이 이어졌다. 이 흥미진진한 시대를 살며 많은 사건을 기록한 사람이 일기 작가 존 이블린이며 그의 일기는 100년도 더 흐른 1818년에 <존 이블린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주요 사건 중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올리버 크롬웰의 장례식을“ 개들이 짖은 것을 제외하면 그의 장례식에서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그 후 해군 행정관인 새뮤얼 피프스의 일기가(대화제에서 값비싼 파르메산 치즈를 지키기 위해 자기 마당에 파묻은 것을 찾아내면서) 1825년 뒤이어 출판되면서 이블린의 일상 기록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묻혀버렸다. 17세기에 토머스 브리운은 ‘오해’라는 단어를 최초로 기록에 남겼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을 쓴 그를 ‘일상적으로 이용되는 수많은 단어를 최초로 기록한 사람’으로 꼽는다. 일기작가였던 존 이블린은 브라운의 집을 방문한 후 그곳을 ‘호기심 보관실’이라고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