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에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나에게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은 무엇인가?
궁금했다.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했다.
그렇게 1-2년 간 다양하게 사유하며 메모했다.
'밀레니엄 버그'로 온 세상이 떠들석했던 1999년 세밑이었다.
그때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을 새벽 시간에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완성했다.
평소에도 자주 기록하는 습관이 있던 터라 메모장을 펼쳐놓고 집중하여 3시간만에 완성했다.
2년여 간 메모해 두었던 것들을 다듬고, 묶고, 빼며 차근차근 정리를 해보니 총 41가지의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하얀 종이위에 또박또박 적어두었다.
그동안 머릿속의 개념과 테마들을 구체적으로 적어보니 인생의 많은 숙제들 중 내가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과목들이 일목요연하게 한 눈에 보였다.
짜릿한 희열과 감흥이 밀려들었다.
역시 생각과 실제 글로 써보는 행동의 결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그 효과도 비교 불가였다.
그 마흔한 가지 리스트 중 38번째가 '한반도 주변의 아름다운 섬, 최소 100개 이상 탐방하기'였다.
우리 강토의 가장자리에 진주처럼 점점이 박혀 있는 아름다운 섬들.
그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풍광과 섬 사람들의 핍진한 삶의 모습을 내 영혼에 담아보고 싶었다.
찾아가서 있는 그대로를 느끼며 그 고장의 때뭍지 않은 속살들을 마음껏 흠향해 보고 싶었다.
'버킷리스트'를 완성하기 전에도 섬 탐방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리스트 작성 후부터는 분명한 컨셉과 방향성이 강력한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기에 선택과 집중이 훨씬 더 용이했다.
나의 여행노트를 펼쳐보니 지금까지 총 서른한 곳의 섬을 다녀왔다.
제주도, 거제도, 강화도 같은 큰 섬들부터 볼음도, 무의도, 행담도(서해대교 건설 전), 소록도(소록대교 건설 전), 오륙도 같은 작은 섬들까지 망라되어 있었다.
백령도, 흑산도, 홍도처럼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들부터 무의도(영종대교 건설 전), 영흥도, 소도, 돌산도 같이 뭍어서 매우 가까운 섬들까지 간단한 여행후기와 각 섬들의 특징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지난 2월 네째주에 3박4일 간 '대마도'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대마도'는 일본땅이다.
하지만 우리 한반도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큰 섬이고(거제도 보다 약간 큼),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이기에 꼭 한번은 탐방해 보고 싶었다.
'부산항'에서 페리를 타고 '현해탄'으로 나가니 극심한 파도가 일렁거렸다.
'현해탄'의 물길은 알 수 없었다.
쾌속선은 빠르고 편리했으나 망망대해에선 작은 '일엽편주'에 지나지 않았다.
승객들이 배멀미와 공포감으로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말할 것도 없고, 선실과 복도에서 승객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토하기 시작했다.
토사물과 역한 냄새로 견디기 힘들었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거의 송장이 되어 여기저기에 널부러졌다.
박스, 캐리어, 짐들도 사방으로 흩어졌고 뒤엉켜 있었다.
평소 같으면 1시간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뱃길이었다.
그런데 같은 거리를 무려 4시간이나 항해했다.
항해가 아니라 한동안 엔진을 끄고 집채만한 파도에 운명을 맡긴 채 표류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베테랑 선장의 판단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돌진이 더 위험했다.
그렇게 4시간 만에 모두가 초주검 상태로 '이즈하라 항구'에 닻을 내렸다.
선실에서 한국의 가족들에게 유언을 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랬다.
극한의 공포와 비명 그리고 토악질로 난장판이 되었던 출발이었다.
그런데 '쓰시마'에 발을 디딘 후 조금 휴식을 취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관광객 대부분이 다시 미소 짓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 세 부부, 여섯 명도 예정대로 일정을 시작했다.
대마도는 완벽한 자연과 유구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과연 현해탄의 진주였다.
남섬과 북섬, 2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어업과 관광.
이 두 단어를 빼고는 더 이상의 설명이 불가능한 땅이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청정지역이었다.
인구는 약 3만 명 정도인데 면적에 비하면 인구밀도가 매우 희박한 곳이었다.
비슷한 크기의 거제도 인구가 23-24만 명 수준이니 두말해 무엇하겠는가.
몇몇 읍내를 제외하곤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마도는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와 근,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매개역할을 했던 섬이었다.
두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반추하며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인사이트가 그곳에서도 진하게 느껴졌다.
'리아스식 해안'의 절경을 자랑하는 '아소만'의 풍광이 아름다웠다.
그 멋진 아소만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에보시타케 전망대', 일본 最古의 해궁신사인 '와타츠미 신사', 대마도 최 남단의 독특한 비경을 자랑하는 '쯔쯔자키 해상공원'(사진), 맑은 날은 육안으로도 부산을 볼 수 있다는 '한국 전망대', 조선의 통신사(역관사)들이 방문하다 대마도 북단에서 좌초되어 108명이 순직했다는 '순난지비' 등 볼거리도, 학습할 소재도 많았다.
선진 문물을 섬나라에 전해주었던 '조선 통신사비', 대마도 출신 남작과 결혼했던 '덕혜옹주'의 '결혼 봉축기념비', 일제에 끌려가 대마도에서 쓸쓸하게 순국하신 항일의 횃불, 면암 '최익현 선생님'의 '순국비'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우리의 영혼과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각종 사료들이 섬 전체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역사는 과거를 살아낸 사람들의 다양한 흔적이자 그들의 땀과 눈물, 승리와 슬픔이 응축된 기록이자 서사였다.
조용하고 한적한 섬, 대마도.
맑은 공기와 깨끗한 자연 속에서 편안한 휴식과 맛있는 식사 그리고 역사탐방 테마가 우리의 여정을 더욱 향기롭게 해주었다.
잠시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한 번 떠나보실 것을 강추한다.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나의 'BUCKET LIST' 서른여덟번째 '섬 탐방' 파일에 32번째로 방문했던 '대마도'를 추가했다.
특히, 과거를 반추하며 미래의 한일관계를 곱씹어 볼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여행 중에 만났던 친절한 일본인들께도 이 지면을 빌려 심심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어제는 3.1절이었다.
아직도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없이 궤변과 무시로 일관하는 일본의 일부 위정자들이 얄밉고 개탄스럽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바로 '이장폐천'이다.
그래서 저들이 쩨쩨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21C의 진정한 리더십은 솔직한 소통과 과감한 혁신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국가경영을 해주기 바란다.
자꾸만 '독도문제'로 도발하고, '후꾸시마 원전'의 진실을 숨기기에 급급하며 1955년 창당 이후로 거의 70여 년 간 '자민당 일당독재' 시스템이 개혁되지 않는 한, 또한 유력 정치인들이 '세습'을 통해 권력과 통치를 계속 이어가는 자기들만의 리그에 안주하는 한, 일본의 미래는 밝지 않다고 본다.
급변하는 첨단 디제털 세상이자 이노베이션 시대다.
그런 구태의연한 리더십으로는 엄청난 도전과 혁명적인 변혁의 물결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맨 먼저 해가 뜬다는 日本.
그런 일본이 미래에 '日沒'이 되지 않기를 이웃나라의 한 시민으로서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또한 새로운 시대, 새로운 한일 간의 파트너십을 위해 기도해 본다.
파이팅이다.
(덧붙임)
우리는 물동이, 양동이를 왕왕 '바께쓰'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영어의 'BUCKET'을 일본인들이 바케쓰라고 불렀고, 이것을 우리가 다시 차용해 쓰는 것이다.
일제시대의 잔재다.
가능한 한 '양동이', '물동이'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
원래 버킷리스트는 'kick the bucket'에서 유래한 말이다.
과거에 사람들이 자살할 때, 양동이 위로 올라가서 목에 밧줄을 묶었다.
밧줄을 타이트하게 조절한 다음 발로 양동이를 차면(kick the bucket)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bucket을 가끔씩 그런 용도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bucket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bucket list'란 이처럼 죽을 때 죽더라도 본인이 꼭 해보고 싶었던 일,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소망했던 경험 등을 적어둔 메모의
의미로 쓰여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개 '지천명'이나 '이순'을 넘기면 괜시리 마음이 급해진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이 급해질지라도 확실한 '버킷리스트'를 갖고 있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면 시류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인생을 차근차근 엮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버킷리스트'가 우리네 인생길을 열정적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나침반이 아닐까 한다.
2012년 3월 2일 심야에.
대마도 여행을 다녀와서 몇 자 적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영원한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