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 [ 양장 ]
문봄 글/홍성지 그림 | 상상 | 2023년 06월 27일
책 소개
스마트폰이 말을 하고 글자가 움직인다면?
숨은 목소리를 발견하는 동시집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는 제목처럼 독특하고 기발한 동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문봄 시인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기계들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새로운 면을 발견하며 세상을 더 다채롭게 만든다. 상상력을 통해 캐릭터화된 문자와 사물들이 독자들의 흥미를 끌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람을 기준으로 세상을 볼 때는 알 수 없었던 비인간 존재의 목소리가 동시집 곳곳에 들어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주로 보내진 개나(「내 이름은 쿠드랴프카」) 더운 날씨에 옷을 입고 다녀야 하는 강아지처럼(「폭염과 달마티안」) 인간 중심의 생각으로 고통을 받는 존재들이 대표적이다. 문봄 시인의 이러한 감각은 사회에서 약소수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 줌으로써 문학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출판사 서평
숨은 목소리를 발견하는 동시집
항상 대상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문봄 시인은 인간이 아닌 것들의 입장을 생각한다. 하루 종일 일해서 피곤하다는 스마트폰의 말이나(「폰드로메다」), 한 번 쓰고 버려진다는 비닐봉지의 이야기는(「검은 비닐봉지」) 비인간적 존재인 사물을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로 만든다. 비인간 존재가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게 된 독특한 상황은 독자들에게 세상의 새로운 목소리를 제공한다.
시인의 상상력은 비인간을 인간처럼 주체적인 존재로 변화시킨다. 비인간 존재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는 시인의 시각은 사회에서 소외되던 이들의 목소리를 포착하여 대신 내 줌으로써, 문학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익숙한 기계들의 새로운 세계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는 제목처럼 독특하고 기발한 동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기존의 동시들이 자연을 주된 소재로 다뤘던 것과 달리, 문봄 시인의 동시집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기계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물론, 에어컨, 건조기나 제습기, 공중전화 부스, 플라스틱 제품 등 다양한 기계와 공산품들이 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생활에서 쉽게 마주하고 또 자주 사용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시에 흥미를 가지고 공감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문봄 시인은 익숙하게 느껴지는 사물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그려낸다. 이제는 쓰는 일이 거의 없는 공중전화 부스가 비를 피하는 장소가 되어 주거나(「공중전화 부스」) 진짜가 아니지만 자신감을 잃지 않는 조화의 모습은(「조화」) 기능이나 쓸모처럼 물건을 판단하는 전형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말해 준다. 무용하다고 평가되는 것들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문봄 시인의 능력이 세계를 더 다채롭게 만든다.
문자도 말하게 만드는 상상력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문봄 시인은 언어도 새롭게 느껴지게 만든다. 알파벳의 모양을 사물에 빗대어 캐릭터화 시키는 동시들과(「와글와글 알파벳」, 「달랑달랑 알파벳」) 한글의 모양으로 독특한 이야기를 만드는 동시는(「응」, 「융」) 문봄 시인이 언어를 다루는 고유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다른 동시의 말놀이가 소리나 의미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에 비해, 문자의 형태를 기준으로 말장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봄 시인 동시의 고유한 특징이다.
의미를 표현하는 도구로 생각되기 쉬운 문자도 어떤 방식으로 보는지에 따라 살아 있는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기존의 동시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말놀이 방식이다. 상상력과 창의력의 힘을 보여 주는 문봄 시인의 말놀이 동시들은 아이들에게 그 자체로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글 문봄
대학에서 독일어교육학을 공부했다. 2017년 《어린이와 문학》에 「백제의 미소」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으며, 2022년 제14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림 홍성지
서양화와 미술교육을 전공했고 영국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했습니다. 개성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세상의 모든 색과 선을 주머니에 넣고서 여행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린 책으로 『어린 과학자를 위한 반도체 이야기』 『어린 과학자를 위한 게임 이야기』 『초코파이 자전거』 『상상력이 팡팡 터지는 수수께끼 숨은 그림 찾기』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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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달
문 봄
한밤중에 거실에서
엄마 폰 아빠 폰 내 폰
나란히 앉아 야식을 먹는다
멀티탭 3구 밥상에
기다란 빨대를 꽂아
따뜻한 전기를 쭉쭉 빨아 먹는다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
얘들아, 오늘도 고생했어!
폰들의 마음속에
초록 달이 뜨는 밤
네모나게 부푸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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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멸치의 부활
문봄
더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슬며시 눈을 뜬 마른 멸치가
뻑뻑한 지느러미를 부르르 펴요
입을 벌려 굳은 혀를 돌려요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작은 이빨을 맞부딪쳐요
-딱 딱 딱 따다닥 딱
가스레인지 위에 물이 파르르 끓을수록
마른 멸치는 온몸이 새로 태어나요
아가미를 착 벌리고
꼬리 끝까지 힘을 주어
냄비 속 다시마 사이를 헤엄쳐요
바다를 누빌 때처럼 냄배를 누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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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통
문봄
주인님 주머니에서 떨어짐시로
한 바쿠 휭 돌아부렀당께
액정이 깨져 부러서 앞이 컴컴해야
이래 봬도 나가 최신폰인디
귀가 멍멍해 븡께 암것도 안 들려야
입이 얼얼해 븡께 말문이 맥혀븐다야
오메, 어째야 쓰까이!
바닥에 눠 있을랑께 더수기* 욱신욱신해 부러
써비스센타로 언능 가 봐야제
아따, 주인님은 어디로 깠으까이?
해 떨어지기 전에 날 찾을란가.
* 더수기 : 뒷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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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종이
문봄
걱정은 써
머리 아픈 순서대로 써
네 개든 열 개든, 뭐든 써
걱정을 종이에 써
서랍에서 가위를 꺼내
쓴 걱정은 잘라 조각조각 잘라
가위가 없으면
걱정 종이를 구겨 꼬깃꼬깃 구겨
손으로 찢어 북북 찢어
쓰레기통에 버려
내다 버려
그래도 걱정이 찾아오면
15층 계단 오르내리기
네 번만 해
걱정도 다리가 아파 도망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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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우, 엄청난 상상력이네요.
주변에 널려있는게 글감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시들이에요.
즐겁게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