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정선례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매 순간 채우려고만 했었다. 결혼 초기에 광주 문화센터로 전통매듭을 배우러 다녔다. 긴 끈과 송곳을 이용해 꽃 모양이나 팔찌, 한복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신구인 노리개 만들기였다. 다양한 모양과 알록달록 색상이 예쁘고 단순해 보여야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의외로 복잡하고 인내심이 필요해서 먼 거리 다니는 게 힘들어 그만뒀다. 그다음에 배운 것이 미용이었다. 농촌은 일정한 수입이 없어서 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미용실을 차리면 돈을 많이 벌 것 같아 학원에 등록했다. 평소 손에 든 물건도 자주 떨어뜨리고 뜨개질도 못 하는 똥손을 가진 나는 이 분야에도 영 솜씨가 없었다. 파마약 냄새 맡기가 고역이라는 핑계를 대고 두 달 만에 손을 떼버렸다.
그다음에 배운 것이 국비로 컴퓨터 교육이었는데 기계에 밝지 않음에도 의외로 재미있었다. 워드프로세서 1급 컴퓨터 활용 3급을 따는 성과를 이루었다. 컴퓨터 활용 2급을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목포 대한상공회의소에 시험을 보러 다녔다. 필기는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데 실기가 너무 어려웠다. 점수 높은 다섯 문제가 출제되어 높은 점수를 차지하는 함수에서 번번이 점수가 안 나왔다. 40분이 주어지는 시간 안에 기본작업, 분석작업, 차트와 매크로까지 거침없이 완성했는데도 계산작업에서 함수 문제가 매번 변형 출제되어 탈락했다. 여기에 들인 시간과 비용이 아까워 지금도 미련이 남아 있는데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자격증을 준비하는 동안에 서류작성과 엑셀에 능숙해졌다. 덕분에 농업법인 사무간사, 면사무소 업무 보조, 통계청을 거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공무직으로 근무를 했다. 65세가 되면 국민연금까지 받게 되니 자신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생활이 조금씩 여유로워지기 시작한때가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시어머니도 안 계신 가정에서 세 아이 낳아 기르며 4대가 함께 살았다. 평일에는 직장 다니고 주로 밤에 살림했다. 주말에는 밀린 농작물 관리에 묘목과 조경수가 심어진 논밭의 잡초를 제거하고 돼지 키우는 일까지 거들어야 했으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난 절대 못 한다. 아니 하지 않겠다. 그 당시 내 몸은 피로가 늘 쌓여 있었다. 월요병이란 말을 방송에서 처음 듣고 격하게 공감했다. 월요일 아침이면 수면 부족과 피로 우울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결핍이 몸과 마음을 옥죄여서 좀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열망이 컸다. 그때는 아이들이나 스스로에게 항상 빨리 빨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생활비를 좀 줄여보겠다고 콩이며 감자 상추 등 씨앗을 뿌려서 가꾸고 수확하느라 들에 있으면 햇볕과 비바람, 흙먼지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고단하고 피부에도 해롭지만 애네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사랑스럽다. 철따라 수확한 농산물은 도시에 사는 가족들에게도 보내고 양이 넉넉하면 이웃과도 나눈다. 덕분에 우리집에서는 인스턴트 음식은 어쩌다 한 번씩 먹는 별미이다.
한낮의 열기가 한여름이 아닌데도 뜨겁다. 쉬었다가 해거름에 나가서 못다 한 풀매기를 마저 해야겠다. 땀을 씻고 거실에 놓인 커다란 거울 앞에 선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온갖 이야기가 한 권의 책에 담겨있는 것처럼 기쁨과 슬픔, 걱정, 성냄의 감정이 얼굴에 여과 없이 시나브로 새겨져 드러나 있다. 화장기없는 민얼굴에서 지나가 버린 날들의 미련과 탐욕의 시간도 읽힌다. 두 눈은 여전히 예리하게 빛나는데 얼굴 살이 빠져 갸름하고 초췌하기까지 하다. 거칠게 살아온 57년의 기나긴 서사가 새겨져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인다. 고개를 살짝 들어 이리저리 턱 밑의 주름살을 살핀다. 마음은 여전히 뜨거운데 얼굴은 속일 수가 없나 보다.
나이 먹으면 주름도 잡히고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하는 건 정한 이치인데도 힘들었던 지난 시간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서 보기에 민망하다. 내면의 정서를 가꾸는 데 소홀한 결과가 표정으로 굳어진 것이다. 내 남은 시간은 부디 아무 어려움 없이 순조롭기를. 백발이 성성해진 어느 먼 훗날 해맑고 자연스러운 표정과 만나고 싶다. 아, 그때는 까닭 없이 눈물이 흐르지 않으려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얼굴이 그게 뭐야, 좀 가꿔라.” 그런 말들이 귀에 거슬리던 차에 지인의 병문안을 갔다. 나오는 길에 복도에서 필러와 보톡스 할인이벤트 포스터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발길이 자석에 이끌리기나 하듯이 진료실에 들어갔다. 이마와 눈썹과 눈썹사이 주름과 볼살이 빵빵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소 엉덩이나 팔뚝 주사를 잘 맞는 편인데도 살이 없는 얼굴에 주사 바늘을 꽂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떨리고 무섭다. 주사 맞을 때의 느낌은 기분 나쁜 뻐근한 통증이어서 아직도 잊히지 않고 섬뜩하다. 6개월 후에 또 맞으라는 말을 들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두 번 다시 그러한 시술을 하지 않는다. 예쁘고 젊게 보이지 않아도 좋으니 아프지만 말고 그냥 이대로 살자. 그동안 여유롭지 않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 그대로 새겨진 얼굴이지만 아직은 화장으로 가려지니 다행이다.
예전에 동갑내기 직장 동료는 내게 다가와 “ㅇㅇ야, 네 얼굴 진짜 작다.” 부럽다며 자기의 볼살과 턱살이 스트레스라고 했다. 해오름이나 달덩이 같다는 말을 평소에 몹시 듣고 싶었던 나는 그 친구가 부럽다 못해 밉기까지 했다. “아야 나는 계란형인 얼굴이 너무 싫다. 보름달 같은 네 싶어, 우리 바꾸자” 하면 “야 진짜야? 그래그래 바꾸자” 내게 바짝 다가와 앉았다. 참 불공평하다. 연예인도 얼굴 큰 강부자씨, 김혜수나 송혜교, 김다미가 이상형이다. 나도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나름 동그랗고 볼살도 있었는데 나이 들면서 얼굴에 살이 빠져서 작은 얼굴이 더 길게 보인 걸 어쩌겠는가. 평소에도 체중이 줄어들면 얼굴만 빠지고 반대로 늘면 그대로다. 체중은 거의 변함이 없건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얼굴이 영 못쓰게 되었네”라며 한목소리로 말한다.
작물만 남기고 무성한 풀를 없애도 며칠뒤에는 풀이 앞다퉈 올라올 것이다. 창문을 열면 밤새 탁한 집안의 공기를 싱그러운 바람으로 채워넣듯이 콩이며 들깨, 얼갈이배추, 열무가 시원해 하는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 열매를 맺으려 한다. 초 여름에 가장 맛있는 반찬은 살짝 절여 물기를 뺀 얼갈이 배추에 마른 고추 물 불려 마늘, 보리밥, 멸치젖, 양파를 넣어 학독에 득득 갈아 버무린 김치가 가장 맛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것처럼 농산물이나 해산물도 가장 맛있는 시기가 있다. 지금은 완두콩이 한창 익어가는 시기라서 틈틈이 따다 찰밥도 짓고 껍질째 삶아 먹는다. 농촌에서는 몸이 편하면 곡간이 텅 비어 남의 밭에 있는 농작물을 부러워 한다. 이런 소소한 재미가 있어 얼굴에 흙 먼지 뒤집어쓰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눌러 사나보다.
발품, 손품 분주하면 사방에 먹을 것이 지천이고 숲에 둘러쌓여 공기도 맑으니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괜찮어.
첫댓글 마음이 애잔해집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정선례 선생님 스스로에게 토닥토닥해 주셔도 될만큼 열심히 사셨네요.
선생님. 줌으로만 보았지만, 참 고우세요. 부러워요.
선생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얼굴에 좋은 것 많이 바르시고 맛난것도 먼저 챙기기길 바랍니다. 글 고맙습니다.
농사일이 쉬운 게 아니지만 그래도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며 행복하게 사니 얼마나 좋아요.
저는 부럽네요.
나이가 들면 피부가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나요?
선생님은 아직 고우십니다.
뭐든 열심히 하시는 선생님 멋지세요. 웃는 모습이 참 예쁘십니다.
바쁜 농촌 생활에도 늘 책 읽고 글 쓰고 배우는 데 열심인 선생님은 대단하십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젊어서도 선생님은 대단했군요.
멀리 광주까지 매듭을 배우러 다니셨다니요.
그 노력의 댓가로 '연금 받는 여자'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건강 생각하며 이제는 조금씩 하시길 권합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시는 정선례 선생님,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