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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의 틀 안에서 발아하는 생의 사유
이 송 희
1.
옴베르트 에코가 말한 “통제된 무질서, 제한된 잠재력”이란, 일정한 형식과 틀 안에 인간이 지닌 무한한 창조력과 상상력을 담아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시조가 정형의 양식적 조건 하에서도 무한히 펼칠 수 있는 형태적·내용적 새로움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시조창작의 미학적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면서 시조의 현대성 구현을 위한 방법이다. 시조가 단순히 자수와 음보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율격에 의해 창작된다는 것은 자수를 의식하지 않는 의미화의 과정과 주체의 발화에서 찾을 수 있다. 주체와 대상이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는가에 따라 시의 형식과 내용이 도출되고 의미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내용의 다양성은 형식의 틀에 의해 구속되어 협소해질 수밖에 없는 시조의 특성을 극복한 경우에 해당한다. 시조는 현대인의 다채로운 경험과 중층적 사유를 표현하기 위해서 시조의 양식적 확장은 물론 소재의 확장에 꾸준히 관심을 갖는다. 이번 계절에 읽은 작품들은 색다른 비유와 화법으로 담론을 펼치고 있는 경우와 보편적 화법을 견지하면서도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객관적 거리감으로 자기를 응시하는 개성적 실례를 보여준다. 시인은 존재탐색의 과정과 현실공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간의 실존에 대해 지속적으로 묻는다. 다양한 주체들의 언술에 의해 빚어지는 의미화와 담론화의 과정을 통해 주체가 현실을 대면하는 전략들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2.
그날 그 거리에서 널 만난 건 심한 불운, 시간의 틈을 비집고 치사하게 난 웃었고 약속이 성립되지 않은 악수를 주고받았다
- 꽁초를 비벼대던 보도블록 깨진 곳에서 민들레가 꽃을 달고 표정을 바꾸었으나 아무도 이 거리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 비정규적 생에 관한 종단적 연구라는, 논문을 제출하든가 하려다 말든 간에 뒤따라 걸어간 이들이 길을 자꾸 헛돌았다
그날 이후 널 잊으려 했는데 또 다가왔다 가식적인 길거리에서 다시 만난 상처였으니 희망을 둘 곳 없다, 는 그 말이 날 찔렀다. - 염창권, 「길거리에서의 용서」, 서정과 현실, 2019, 상반기호.
매 순간을 불안하고 위태롭게 살아가는 존재가 여기 있다. 정해져 있지 않은 길을 걷는 상황이므로 그는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눈앞에 어떤 위험이 도사라고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이 시에서 화자는 우연히 과거에 묶어 두려 했으나 시간의 틈을 비집고 다시 나타난 존재와 마주한다. “약속이 성립되지 않은 악수를 주고받았”지만 내내 불편하기만 하다. 그들은 한때 대학의 조직적인 구조 속에서 고용주와 노동자와 같은 불편한 관계로 함께 한듯하다. 이름 없고 대접 받지 못하는 존재를 표상하는 민들레가 꽃을 달고 표정을 바꾼다 한들 아무도 민들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 민들레를 따라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길을 헛돌 수밖에 없는 것은 나약한 이들의 움직임을 사회가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민들레 혼자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이면서, 혼자서 변화를 추구한들 세상은 그대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분적 한계, 직업적 한계 등 자신이 처한 환경을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보이지 않는 벽을 표상하는 유리천장처럼, 현대판 골품제의 현실을 시인은 그리고자 했을 것이다. 아무리 올라가고 싶어도 사회는 그 자리를 쉽게 허락하지 않고 자꾸 제약을 둔다. 만인의 시선에 노출된, 길거리에서 그를 다시 만나 상처가 아물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허락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연한 만남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희망을 둘 곳 없다”는 말이 자신을 찔렀다는 것은 냉혹한 현실이 스스로에게도 상처였다는 의미를 환기한다. 결국 성립되지 못하는 악수는 희망 둘 곳 없는 현실과 연결된다. 무언가를 희망하고 기대했을 때에 용서도 가능하나, 아무런 희망도 없고 기대감도 없다면 용서 또한 불가능하다. 비정규직의 삶을 독특한 화법으로 전개하면서 끝나지 않은 계층 간의 구조적인 모순을 내적인 경험과 성찰로 이끌어내고 있다.
대숲이 우는 까닭은 걸리는 말 많아서다 한 발만 헛디뎌도 칼바람이 이는 언덕 밤마다 빗장을 지른다, 흔들리지 않으려
너에게 가는 길은 수만 갈래 바람의 길 간이역을 세워 둔다, 단숨에 갈 수 없어 열두 개 마디를 지어 잠시 숨을 돌리고
텅- 비우고 나면 외발로 설 수 있을까 하루에 한두 번씩 목이 긴 기도를 한다 휘어도 꺾이지 않는 붓 닮아 가고 싶어서
마침내 둥글었는지 먹물에도 향이 돌고 허공에 적신 붓끝 내리긋는 굵직한 획 화선지 스며든 글귀 죽순으로 돋아난다 - 김석인, 「바람의 필법」, 문학청춘, 2018, 봄호.
어두운 밤에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제대로 걷기가 힘들다. 밤은 헛발 딛기 좋은 시간이다. 그래서 화자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칼바람을 맞지 않기 위해 밤마다 빗장을 지른다. 바람은 빈 틈이 있어야 지나가는 존재다. 크게 열린 장소나 틈이 넓은 곳에서는 칼바람이 불 수가 없다. 비좁고 갈라지고 구멍이 뚫린 곳이라야 칼바람이 찾아온다. 이런 곳을 통해서만 너에게 갈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수만 갈래 바람 길이 만들어 지려면 틈이 많아야 한다. 그 틈 사이로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 길을 단숨에 갈 수 없어 간이역을 세워 둔다. 단숨에 가려하지 말고 간이역을 두면서 욕심을 버리고 쉬엄쉬엄 가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텅 비우고 나면 외발로 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화자에겐 남아 있다. 이 시는 바람에 대숲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마치 목이 긴 기도를 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를 “휘어도 꺾이지 않는 붓 닮아 가고 싶”은 욕망이라 생각한다. 화자는 “마침내 둥글었는지 먹물에도 향이 돌”기 시작함을 본다. 모나지 않은 곳에서 아름다운 바람소리가 난다. 이러한 바람결을 따라 죽순을 그린 과정을 바람의 필법이라고 하였다. 이 시는 속을 텅 비워서 아름다운 바람을 머물게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텅 빈 곳이라야 바람이 머물 수 있다. 죽순처럼 돋아나는 글귀에서 마침내 휘어도 꺾이지 않는 삶을 만나게 해 준다.
나를 따라다니던 어둠을 내다 버린다 화창하게 좋은 날 울다 그친 꽃 바라보며 맘 놓고 밀어버린다, 숨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층층이 자라나던 지독한 독(毒) 쏟아내고 거친 감정들까지 따뜻하게 지나가면 무결점 가수처럼 와서 목청 붉은 노래하겠다
열창을 받아먹고 날아가는 청동오리야 바람 얼굴 다 만져보고 날 만나러 오느라 만 볼트 박장대소 한 잔 불콰하게 마셔보자 - 임성구, 「웃어버리다」, 정형시학, 2019, 봄호.
어둠을 버리면 자기 자신도 버려진다. 화창하고 좋은 날일수록 어둠은 더 두터워지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화자는 지금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그냥 웃어버린다. “나를 따라다니던 어둠”은 무엇일까? 어둠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내다버릴 수 있는 어둠이라면 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불온한 상상이나 감정, 충족되지 않은 내밀한 혹은 유예된 욕망 등이 아닐까? 상처, 수치스러움, 죄책감 같은 감정들도 어둠속에 있다. 화자는 감추고 싶었던 기억들을 내다 버린다. 그러나 화자는 어둠이야말로 내다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존재다. “층층이 자라나던 지독한 독(毒) 쏟아내고”, “거친 감정들”도 지나가면 “목청 붉은 노래”를 하겠다고 말한다. 이 노래를 하면서 내면에 쌓여 있는 어둠을 몰아내고 밀어내고 내다 버리는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자기감정과 상처를 똑바로 직시 혹은 응시하면 그것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닌 것이 된다. 똑바로 바라보고 표현해 내는 것으로 자기의 내면에 쌓인 어둠을 내보낸다. 진짜 어둠을 떨쳐내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고 직시해서 어둠이 자기를 더 이상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는 존재가 되지 않게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다버린다’, ‘밀어버린다’는 표현은 엄밀히 말해 반어적인 의미를 지닌다. 철새처럼 계절은 반복적으로 움직이고 어둠도 되돌아오겠지만 이제는 어둠을 증오하거나 경멸하지 않고 품고 웃어버리겠다는 달관의 의미가 담긴 작품이다. “만 볼트 박장대소 한 잔”을 “불콰하게 마셔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기는 차고 얼음판처럼 미끄러워
개가 긁고 가는 오후가 파랗다
풀들은 유쾌한 듯이 볼륨을 높이고,
이제는 수북하게 꽃이 피려고
마음 한 구석이 참 달고 불룩하더니
오늘은 이별이 찾아와
개의 허리가 야위다 - 손영희, 「오후를 논하다」, 정형시학, 2019, 봄호
얼었던 대지가 녹고 새싹이 돋으려는 봄날 오후의 생생함을 명징한 이미지로 논하고 있는 작품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의 이미지는 ‘파랗다’, ‘높이다’, ‘피다’, ‘불룩하다’와 같은 상승적 이미지의 술어의 순차적 배열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꽃망울이 터지려고 할 때 망울은 잔뜩 부풀어 오르는데 시인은 이것을 마음 한 구석이 참 달고 볼록하다고 말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의 이미지는 개의 허리가 야윈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암캐가 새끼를 낳고 허리가 야위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새끼가 태어난 것은 또 하나의 헤어짐이다. 비로소 엄마의 몸에서 분리된 것이기 때문이다. 탄생은 또 하나의 이별이라는 공식은 만물이 생성되는 봄의 상징 속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또한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생식기는 자손들을 번창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시인은 봄의 오후를 논하면서 이러한 생명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한다. 탄생의 기쁨과 함께 이별이 찾아온다는 생명의 아이러니를 개의 허리가 야윈 상황과 꽃망울이 불룩하다는 대비적 상황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봄날 오후의 풍경을 병치함으로써 이미지를 보다 선명하게 이끌어내면서도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생명의 아이러니를 표현하는 감각과 상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산나물을 다듬는 할머니 까만 손톱을 박스를 싣고 가는 할아버지 굽은 등을 몇 년간 병상에 뿌리 내린 남자의 쾡한 눈빛을 택배 아저씨 잔등에 땀으로 그린 지도를 출근길 신호등이 된 모범기사 수신호를 노숙자 식판에 국을 뜨는 자원봉사자 손길을 퀴어 축제에 나부끼는 무지개 깃발을 부지런히 올라간 교복치마와 마스카라를
읽는다, 자기 인생의 저자가 된 사람들 - 이소영, 「사람책」, 시조시학, 2019, 봄호.
‘~을 읽는다’는 통사구조의 반복과 행·연갈이의 자유로운 배치를 통해 ‘사람책’의 의미를 담론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자는 저마다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일상에서 힘겹게 투쟁하는 사람들을 다양하게 제시하며 이들의 삶을 관조하고 있다. “산나물을 다듬는 할머니”부터 “박스를 싣고 가는” 할아버지, 오랜 시간 병상을 지키고 있는 남자, 택배 아저씨, “출근길 신호등이 된 모범기사”, 노숙자, “퀴어 축제”의 깃발과 “교복치마와 마스카라” 등 직업과 환경이 다양하다. 이들은 대개 제 삶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야 하는, 변방으로 내몰린 우리 삶의 또 다른 풍경들이다. 자신의 삶이 수치스럽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소중하고 값지다. 삶이 누구에게나 두려운 이유는 유한하고 일시적인 것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 몸을 지키기 위해, 또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지 위해 우리는 늘 투쟁 속에 살아간다. 영원하고 무한한 것에서 자기 자신을 찾는다면 두려움이 없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삶을 지속시키려면 유한하고 일시적인 것을 붙들며 지켜나갈 수밖에 없다. 한번 주어진 삶은 다시 돌이켜 살 수 없어서, 삶에 대한 애착은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생존의 욕구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상의 욕구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각자의 삶에 있어 저자가 된 사람들의 페이지는 주체의 ‘읽는 행위’에 수렴되면서 스스로가 소중한 삶의 가치라는 의미를 만들어낸다.
삼각형
불안한 꿈들이 파편처럼 떠다녔다
스물에서 서른 시절 사랑했다 쓸쓸했다
꽉 쥐면 핏물 배어도 차마 놓을 수 없던 시(詩)
2. 사각형
반듯하게 잘라서 차곡차곡 가지런히
책상과 태극기 방과 집, 빌딩과 거리
엄연한 불혹의 질서가 세상을 지배한다
3. 원
가장 강한 것은 직선이 아니라 원
둥근 것에 수렴된다 여자 지구(地球) 이순(耳順) 하늘
골목길 휘파람소리에 자꾸 목이 마른다 - 이지엽, 「삼각형에서 원까지」, 열린시학, 2019, 봄호.
도형을 통한 이미지의 형상화가 흥미로운 작품이다. 삼각형은 모서리 모두가 날카롭고 뾰족하다. 모가 나서 꽉 쥐면 손에 상처를 낸다. 화자에게 시는 마치 삼각형과 같은 존재였다는 고백이다. “불안한 꿈들”과 “스물에서 서른 시절”을 지나온 사랑과 쓸쓸함이 시이기 때문이다. “꽉 쥐면 핏물 배어도/ 차마 놓을 수 없던 시(詩)”는 화자에게 모난 삼각형처럼 아프지만 놓을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한편 사각형은 정형화된 질서, 틀, 안정감을 표상하는 반면, 융통성 없는 삶도 표현한다. 쉽게 바꿀 수 없는 제도적인 것들 즉,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질서와 규범이 여기에 있다. 책상은 정형화된 지식을 공부하는 곳이며, 집도 방도 태극기도 빌딩도 모두 각진 사각형이다. “엄연한 불혹의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을 사각형에 비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원은 가장 조화로운 힘을 갖고 있는 도형이다. 여자와 지구, 이순(耳順)의 하늘은 모두 둥근 것에 수렴된다. 휘파람도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서 숨을 뿜어야 나오는 소리다. 평화, 조화 등을 상징하는 원은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연관성을 갖는다. 처음과 끝이 없는 무한한 순환의 고리를 갖는다. 인간 삶을 빗대서 표현하기 좋은 상징으로 모나지 않아서 다툼이 없는, 평화로움과 갈등이 없는 깨달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하나로 묶었기 때문에 전부를 뜻하는 말이기도 한다. 화자는 여자, 지구, 이순, 하늘을 원의 이미지로 보고 있다. 나이 60을 이순(耳順)이라고 하는 것은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도 법에 위촉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동양적 우주관에서 보자면 하늘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했다. 하늘로 표현된 원은 포용력, 수렴하는 것, 어머니성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삼각형에서 원까지를 이야기하며 점점 둥글어지는 삶, 원으로 수렴되는 삶을 이미지화한다. 바윗돌이 강 상류에서는 모가 나 있다가 바다에 도착하여 파도에 오래도록 쓸려서 둥글어지는 삶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화자는 원으로 수렴되지 못한 현실에 목이 마른 것 같다.
한글이 한반도면 ‘ㅏ’는 백두대간 아아(峨峨)한 높이에서 남서로 돌아가면 북녘에 이르기 전에 명치끝이 아려온다.
아픔과 아름다움이 ‘아’로 시작되는 건 아파도 ‘아’ 하고 아름다워도 ‘아’하기 때문 아픔과 아름다움은 ‘아’자 항렬 피붙이다 - 문무학, 「한글 자모 시로 읽기 15-홀소리 ㅏ」, 좋은시조, 2019, 봄호,
문무학 시인은 한글의 자모의 형태나 위치를 통해 일상을 풍자 혹은 성찰하기도 하고 사회담론을 펼치는 새로운 시적 전략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한글 자모 중에서도 ‘홀소리 ㅏ’의 발음과 위치를 통해 역사의 단절에서 오는 아픔과 현실적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아픔은 조화가 깨져서 뒤집히고 억눌리고 막혀 있을 때 오는 것이고, 아름다움은 소통하고 조화롭고 균형이 있을 때 찾아온다. 아픔 없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아픔과 아름다움은 한 몸이다. 한반도의 산맥을 이어서 가다 보면 북녘에 이르기 전에 명치끝이 아파온다. 이 시는 한글의 자모를 통해 분단의 아픔과 민족의 슬픔을 이미지화 하고 있다. 한글이 한반도라 가정하면 모음체계에서 맨 먼저 나오는 ‘ㅏ’는 백두대간이 된다. 모음체계를 통해 존재의 역설을 이야기한 상상력의 기발함을 보여준다. 선과 악을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아름다움도 아픔을 떼어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슬픔이 공존하는 역사의 길목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3
시인(詩人)이 시인(視人)이기도 한 것은 시인이야말로 시적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본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대상의 속성이나 사회의 이면을 그것 자체로 보고 인지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왜곡된 현실 등을 선입견 없이 순수하게 바라보는 존재로서 그들은 이미 보는 주체에서 벗어나 보여 지는 주체이기도 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고, 자기 내부의 쌓인 어둠의 상징들을 몰아내는 의지적 표명을 하고 다양한 군상들의 삶과 이미지를 논하고 비유와 상징적 기호의 속성으로 굴곡진 삶의 희노애락을 담론화하는 과정은 보는 주체로서의 시인의 역할이며 책무다. 이러한 보는 주체로서의 시인은 바로 자신이면서 타인이면서 또 혼자이면서 여럿이 될 수 있다. 이번 계절에 만난 시들은 보는 주체와 보여 지는 주체로서 여럿의 시선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견지한다.
* 이송희 약력
2003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지원금(2010)과 아르코창작기금(2013, 2018) 받음,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과 오늘의시조시인상 등 받음, 시집 환절기의 판화, 아포리아 숲, 이름의 고고학, 이태리 면사무소, 평론집 눈물로 읽는 사서함, 아달린의 방, 길 위의 문장, 경계의 시학, 학술서, 현대시와 인지시학 등이 있음, 전남대와 목포대 국문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