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소설 첫 문장이 인상적이다. 전남 구례에 사는 80대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돌아가신거다, 아버지는 여순 사건에 연루된 빨치산으로 수감생활을 했다. 어릴 때 친했던 아버지와의 관계가 오랜 수감생활로 멀어졌고,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사회성과 생활력과 먼, 궤변과 고집으로 엄마를 비롯한 가족을 힘들게 만드는 존재였다. 하지만 상을 치르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지인, 가족들을 만나며 몰랐던 아버지의 삶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누군가의 삶을 살리기도 했고, 누군가를 곤경에서 벗어 나도록 발 벗고 도와주시기도 했다. 또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소외 받는 이웃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도 했다. 주인공인 딸은 얽히고 설켜 있던 아버지의 삶을 알아가며 장례를 통해 새로이 아버지를 만났고, 그래서 아버지와 건강한 이별을 하게 된다.(책마을 김은수 독후감에서)
긍게 사램이제
딸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 했다. 남로당 군당위원장을 했고, 빨치산 활동을 했으면서 서로 적이 되어 치고 박고 했던 고향에 눌러 앉았다는 것을. 아버지는 토벌대의 군인이었던 술친구가 있었다. 만나면 늘 티격태격하는 것에 왜 만나냐고 지청구를 해 대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
아버지는 언제나 인간을 신뢰했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는다.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은 인간들이 아무리 지그재그 변죽을 울리며 살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믿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랬다. 보증을 선 사람이 야반도주를 해서 그 빚을 떠 안아도, 배 곯고 있어 먹여주고 재워 준 방물장수가 벼룩을 남기고 서까래에 걸어 논 마늘 반접을 가지고 가도,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말하고 넘어갔다. 큰 집 오빠가 연좌제에 걸려 육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작은 아빠의 가슴에 술로도 씻겨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남겨 놓고도, “밥이나 묵세. 그런다고 굶어 죽을랑가!” 했다.
문상을 오는 사람 중에 ‘그 놈 잘 죽었다’하는 사람도 있다. 아버지는 어떻게 그런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어려운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면 집안일 제쳐두고 그를 도왔다. 나중에 그들이 자신을 홀대해도 “긍게 사램이제”하고 넘어갔다. 사람은 그렇다. 인심만 잃지 않으면 산다. 이념과 사상 이전에 사람의 도리와 의리가 있다. 아버지는 그런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한계
사람은 시대의 산물이다. 소설 속 아버지는 양주를 못 마신다. 안 마신다. 빨치산 활동을 한 아버지에게 미국이라는 양놈의 존재는 그런 것이다. 38년생 내 아버지도 그렇다. 당신의 회혼 축하 모임에서 그랬다. “내는 일본 관광 같다 온 놈에게는 정신 머리 없는 놈이라 한다. 북은 쳐다도 안 본다. 김정은이와 이또오~ 히로부미(도요토미 히데요시 아닌가?) 그 샹놈의 새끼들이 있는 한 안 뎌~” 한다. 유년시절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청년시절 육군 장교로 월남전을 경험한 당신이기에 그렇다. 5.16쿠테타 직전 초임장교로 임관하여 군인의 권세를 맛본 것도 한 몫했을려나? 박통을 비판적으로 말씀하시는 거 보면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런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 말이 싫었다. 말이 격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도 젊은 시절 격했다. 시대는 우리를 민주화세대라 한다. 지금은 열정이 식었다고? 아니다. 지금의 정치권을 보라. 극한의 진보와 보수의 대결을 보면 80, 90년대 청년들이 장노년이 되어 싸우고 있는 듯 하다. 이런 프레임은 개과천선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밀레니엄세대나 X,Y,Z 세대나 MZ세대들이 치고 들어와야 한다. 기대한다. 젊은이들~
이념 논쟁
눈부신 발전을 해 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은 진보와 보수의 극한 대립이다. 정쟁이 진정 민생과 민주적 가치를 가지고 대립하는 것인지도 의심된다.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상대방에 대한 평가가 너무 가혹하고 인색하다. 나는 합리인데 상대방은 안하무인 극좌 아니면 극우다. 진짜 그런 극좌와 극우가 있는지 따져 볼 일이다. 진정 죽음을 불사하고 싸웠던 사람들은 이렇게 소설 속 아버지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아버지의 시대는 가고 있다. 그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일까?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그 것은 무엇일까? 삶의 의미와 사람의 도리를 되돌아 보게 하는 소설읽기 였다.
유골과 책과 술
딸은 아버지 유골을 평소 인연이 있었던 장소에 조금씩 뿌렸다. 나도 그러고 싶다. 내 죽음은 남은 사람이 알아서 할 것이니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엄은 한동안 내 방에 두고 싶다. 추모와 애도의 시간이 지난 후 인연이 되는 장소에 뿌려주고 싶다. 삶은 유한하나 우리를 이루는 CHON 원자는 영원하다. 공허로 밀집된 자연이라는 공간 속에 골분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끝.
아버지에게는 술친구가 있었다. 매일 둘은 국밥 1그릇을 먹고, 소주 1병을 나눠 마셨다. 나도 그러고 싶다. 책 친구와 술친구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오래 오래 살다가 사심 없이 죽고 싶다. 내 꿈은 이렇게 해서 엄청 크게 되었다.
아버지라는 존재
13개월에 아버지가 죽은 분이 있다. 자신이 결혼해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두려웠단다. 첫 아이가 태어난 해가 2014년이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해. 이 아이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기를 소망했다. 아버지로서 아이와 함께 즐기고 행복해 하는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환갑이 되기 전에 아들을 잃었고, 어머니가 30대 중반에 남편을 잃었다. 이를 생각하면 아버지를 대놓고 이야기를 못하겠더라. 유치원때 상급반 형이 아버지 없다고 놀릴 때 할아버지에게 혼내 켜 달라고 했단다. 할아버지는 그 앞에서 아무 말도 안 하셨단다. 그 이후 아버지에 대해 아무 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정말 없다고 한다.
이 소설은 작가의 체험에 기반한다. 작가의 소설 쓰기는 아버지를 애도하고 이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독자의 읽기도 당신의 아버지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 힘으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또한 힘있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책 익는 마을 원 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