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960년생입니다. 검사 시절부터 동갑내기 술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성품이 맑은 어느 술친구가 윤석열 검사에게 “너는 정치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윤석열 검사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술친구는 “너는 남의 말을 안 듣잖냐. 그런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윤석열 검사는 술친구의 충고를 듣지 않고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임기 절반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0월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면담은 우리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결별을 시작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한동훈 대표가 요구한 대통령실 인적 쇄신, 김건희 여사 대외 활동 중단, 김건희 여사 각종 의혹에 대한 설명과 해명, 특별감찰관 임명 등은 뭐 그리 특별한 요구가 아닙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민심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 것뿐입니다.
10월18일 공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명품 가방 수수, 주가조작 등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응답자의 63%가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필요 없다”는 26%에 불과했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공개 활동에 대해서는 67%가 “줄여야 한다”고 했고, “현재대로가 적당하다”는 응답은 겨우 19%였습니다. 10월24일 공개한 전국지표조사에서는 김건희 여사 대외 활동 중단에 대해 73%가 “동의한다”, 20%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바로 이런 여론을 ‘압도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한동훈 대표의 요구를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면담 다음날 아침 대통령실 관계자가 ‘백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자세히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의혹에 대해서는 대응을 제대로 하고 싶어도, 대통령실이 계속 싸우는 게 맞느냐. 대통령실에서 입장을 내면 당에서도 같이 싸워주면 좋겠다. 말이 안 되는 공격을 하면 당에서도 적극적으로 같이 공격을 해주면 좋겠다. 정치 공세에는 좀 대응을 해줘야 하지 않나.”
김건희 여사 관련 여러 의혹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어처구니없는 의혹’, ‘말이 안 되는 공격’, ‘정치 공세’라고 확신한다는 뜻입니다.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철저히 무시당한 한동훈 대표는 10월23일 확대당직자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재판 결과들이 11월15일부터 나온다.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되겠는가.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국민들의 요구를 해소한 상태여야만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김 여사 관련 이슈들이 모든 국민들이 모이면 얘기하는 불만의 1순위라면, 마치 오멜라스를 떠나듯이 더불어민주당을 떠나는 민심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오멜라스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로 ‘위선적 낙원’을 의미합니다. 민주당을 떠나는 사람들을 국민의힘이 붙잡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지금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골육상쟁하는 이유가 뭘까요? 골육상쟁의 결과는 공멸입니다. 그런데도 싸우는 이유가 뭘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부실한 정치적 리더십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마디로 자격이 없습니다. 대통령의 자격도 없고, 정치인의 자격도 없습니다. 정치인은 민심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제가 너무 심한가요?
김영삼 대통령의 공보수석과 환경부 장관, 한나라당 의원을 지낸 윤여준 전 장관이 2011년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의 주제인 스테이트크래프트는 ‘국가를 다스리는 실천지’로서, 특히 ‘근대 국민국가’라는 특수 유형의 정치 공동체를 창설·유지·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집단적 결정’과 그 ‘실행’을 관리·감독하는 실천적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헌법적 기본 원리를 포함한 국가 제도의 관리, 국민적 일체감 형성 및 통합의 유지, 대내외 각종 현안에 대응할 수 있는 올바른 정책의 수립 및 실행, 여러 정치 세력 및 인물 관리 등 ‘국가라는 법인체의 행위자로서 요구되는 각종 능력’입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대통령의 자격’을 갖춘 사람일까요? 윤여준 전 장관은 특히 “(정치인들이) 자기편에 대해서는 선의라고 하는 관대한 심정윤리를 적용하고, 상대편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 규정을 들이댈 뿐 아니라 심지어 악의를 갖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보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래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명태균씨의 입을 통해 쏟아진 김건희 여사 국정 농단 의혹이 하나씩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11월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번째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의결할 예정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무기명투표로 진행되는 국회 재의결에서 이번에는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합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재의결되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도 가시권에 들어온다고 봐야 합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단축 개헌을 제안하고 국민의힘을 탈당한 뒤 국정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하면 됩니다.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니 스스로 임기를 일부 반납하고 대통령직에서 일찍 내려오는 것입니다.(성한용 한계레 정치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