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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한자의 기원은 갑골이 아닙니다.
sorgai 추천 0 조회 2,121 10.11.12 09:22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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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1.13 20:24

    첫댓글 금문의 활성화는 서주시대 이후라고 볼수있으며 금문의 원조라 할만한것도 사실 암각화 토는 일부 토기등에 알수 없는 형태로 새겨진 부호문자이며 그러한 그시대 살았던 사람만이 알수 있었던 갖가지 기호에 불과합니다
    금문의 본격적인 활성화는 주나라 시기부터이며 그이전 의 금문이란 전부 믿을수 없는것들입니다
    구테여 한자의 원조 그리고 중간단계인 갑골문 이전의 선조를 논하자면 암각화 토기 부호에서 시작해야지
    무신 청동기 그룻조가지에 기록된 금문을 가지고 논하는지 알수 없는일입니다

  • 10.11.13 20:30

    혹 상나라 이전에 직접 유물로 확인되는 청동기에 기록된 장문이 있는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갑골이 아닌 갑골문이 발견되다니 금시초문인데 혹 부호문자 한두개 그려진것 가지고 갑골문이 발견되것으로 오산하였던가 아니면 거짓정보이던가 둘중 하나같은데 그것도 알수없는 일입니다 금문의 신뢰성은 금문이 실제 은나라 말기
    부터 기록되기 시작하였으며 주나라 금문은 은나라 말기 금문을 계승할수 밖에 없는게 금속제련술이 은나라가 앞서있기 때문이외다 즉 주나라 동기제련술이 은나라보타 선진적임을 입증하기 전에는 모두 헛소리입니다

  • 10.11.13 21:24

    금문으로 알수 있는것은 눈물을 흘리며 알고자 하는 조상귀신의 내력이나 이름밖에 있을수 없으나 갑골문은 정치 경제
    군사 조상귀신 조상귀신에게 제사지낸 방법 천문 지리 그리고 허신의 설문 헛소리 반증등 그 가치는 이루 헤아릴스없거늘 갑골문 가치가 금문에 비해 떨어지는냥 궁색한 소리를 하다니 허허헛 주공묘 값골문을 들어보셨는지 선주 호경일대에 대량의 갑골문이 발견된 사실을 알고계신가모르겠군요

  • 작성자 10.11.13 23:44

    우선 말씀하시는 바는 둘째로 하고 댓글의 언사가 교양인의 것은 아닌 듯합니다. 토론이 격해지면 감정적 언사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만, 토론도 하기 전에 이 무슨 언행인지....."상나라 이전에 직접 유물로 확인되는 청동기에 기록된 장문"이란 질문은 문자의 발전과정을 아는 분이라면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장문의 정의가 애매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생활처럼 자유로운 문장을 말씀하신다면 '없다'가 답입니다. 초기의 기록은 4자-6자 사이에서 자신의 인척관계를 나타내었기 때문입니다. 갑골문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주장도 님의 주장일 뿐 갑골은 이미 상당히 진전된 글자이기에 초기의 글자가 아니란 것을 말한 겁니다.

  • 작성자 10.11.14 00:01

    갑골문이 상당한 글자수를 가졌다는 자체가 이미 초기 글자가 아니란 증거입니다. 금문이 은나라 말기에서 주나라로 이어진다고 하는 것은 해석한 범위에서 하는 얘기에 불과한 것이고, 해석하지 못한 것은 이미 위에 올린 금문탁본과 같은 기록들입니다. 암각화 토기부호라면 '대문구 유물'과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모양인데 이미 그런 것들은 금문에서 구성요소들이 발견되어 있지요. 같은 기록을 청동기물에 남기면 금문이 되는 것이고, 이는 지배계층의 전유물인 것이지요. 갑골문과 금문은 엄연히 기록된 내용이나 목적이 다르다는 것은 아시리라 믿습니다. 위에 사례를 든 초기 금문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다면 토론해볼만 할텐데 ...

  • 작성자 10.11.14 00:18

    "눈물을 흘리며 알고자 하는 조상귀신의 내력이나 이름밖에..." ▶ 그러기에 곽말약은 '옛날 글자는 인명외에 다른 뜻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자신을 설명하고, 업적을 남기기 위해 청동기물을 만들었던 겁니다. 실물이 있느냐? 물론 있습니다. 산동 양산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소신여서존'을 비롯해 다수가 있지요. 이들이 도매금으로 '상나라 말기'로 연대가 매겨지고 있더군요. 우리학자(랄 것도 없지만)들은 이를 맹신하여 확대보급하고 있는 상태죠. 청동제련이 중국이 종주국이라 할진대 이름도 없는 태국의 반창에서 세계최고의 청동유지가 발견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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