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을 끼쳐라
“제 눈의 들보부터 살펴야.”
세상이 아름다워 지려면 모두 자기 눈의 들보를 보아라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암흑의 땅, 황무지 앞이 캄캄한 땅
의심부터 내고, 화부터 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1885 한국에 첫 발을 들어 놓은 선교사인 언더우드의 기도문
암울한 조선에 하나님의 빛으로 세계 빛이 되게 하였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먼저 자신의 눈에 들보를 뽑아내고
미래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선교사의 영원한 사랑속에서 코리아는 빛을 밝혔습니다
한강 샘물가에 핀 백합과 샤론의 장미꽃이 핀다
순진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숨쉰다.
사랑 안에서 영원히 빛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
세상을 밝힌다
향기가 난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주님 맘 속에 사랑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사랑 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목불견첩(目不見睫), 남의 눈에 티끌만 보았지 제 눈의 들보는 못 본다
“제 눈의 들보부터 살펴야.”
“의인 10명이 없어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처럼 의인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침묵과 방관의 시간은 끝났다.”
남을 비판할 때 성경구절을 많이 인용한다
마치 오래된 속담이나 금언처럼 신구약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
‘들보’는 집을 지을 때 중심이 되는 두 기둥을 가로질러 걸치는 나무를 말한다.
벽이나 지붕, 문들을 지탱할 정도로 크고 두꺼운 목재다.
기자회견에서 나온 들보의 출처는 신약성경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다.
예수의 산상설교로 알려진 구절로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타인의 작은 결점(티끌)을 지적하고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눈 안에 있는 거대한 결점(들보)부터 돌아보라는 예수의 당부다.
소돔과 고모라 역시 자주 등장한다. 일반인들에겐 더 친숙하다.
타락과 부패, 사악함과 심판의 상징으로 쓰이는 두 도시 이야기는
구약성경 창세기가 그 출처다.
창세기에 따르면 이 도시들이 멸망한 이유는 하나님 보시기에
‘그 죄악이 심히 무거웠기’(창 18:20) 때문이다. 그리고 의인이 없었던 탓이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살던 소돔,
그리고 고모라를 멸하겠다는 하나님 앞에서 혹시라도 소돔에 의인이 있다면
멸하지 말아 달라고 탄원한다.
그는 의인과 악인을 함께 심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하면서 의인 50명이 있다면
심판을 취소해 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하지만 45명 40명 30명 20명 마지막 10명으로 의인 수를 줄이면서까지 하나님과 협상한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심판을 받았다.
성서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 되라고 한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 네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되물으셨다.
그 율법사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옳다. 그렇게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율법사는 자신을 옳게 보이려 하며 "그러면, 제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이 문장은 내 이웃이 누구냐??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A priest happened to be going down the same road, and when he saw the man, he passed by on the other side. So too, a Levite, when he came to the place and saw him, passed...
우리나라 정치 현장에서 성경 구절 사용은 낯설지 않다.
기독교인 정치인이 다수여서가 아니다.
논어나 맹자, 그리스 신화나 이솝우화 같은 동서양 고전의 표현을 인용해
정치적 주장을 펼칠 때 성경의 표현도 자연스레 사용하는 것이다.
기독교 국가도 아닌 나라의 국회에서 성경 구절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어쩌면 우리 사회 속에 기독교 문화가 스며들어 정착된 결과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국회는 기독교와 거리가 멀지는 않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는 이윤영 당시 의원의 기도로 시작했다.
지금도 여야 의원들은 국회조찬기도회를 운영하면서 함께 예배드리고 기도한다.
들보나 소돔, 고모라처럼 우리 사회 일반에 널리 사용되는
기독교 용어와 성경 단어는 의외로 많다.
예를 들면 전도사, 안식년, 빛과 소금, 다윗과 골리앗, 순례, 할렐루야(감탄사) 등이
있으며 최근엔 내려놓다, 선한 영향력 같은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렇게 사회 속에 굳어진 기독교 용어는 한글 성경 번역에 그 뿌리가 있다.
1911년 간행된 ‘셩경젼서’는 언문에 불과했던 한글에 권위를 부여하며
그 위치를 격상시켰다.
또 일제강점기 시절이었던 만큼 사람들은 성경의 언어와 찬송가 가사를 통해
해방이라는 민족의 염원을 기원했다.
이렇게 성경 말씀은 ‘육신(肉身)이 되어’ 한국 문화 저변으로 뿌리를 내렸다.
이는 세계 기독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기독교가 전파되는 곳에 자국어 성경이 출판된다.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사제의 종교를 민중의 종교로 바꿨다.
마치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썩어 열매를 맺는 것처럼 말이다.
내년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에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전파한 지 140년 되는 해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이들 선교사는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학교와 병원, 교회를 통해 당시 조선인들의 피폐한
삶과 영혼 속에 복된 소식을 전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1885년 눈에 비친 조선을 보고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의심부터 내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한국 선교의 모델을 제시한 최초의 공적 선교사인 언더우드의 기도문
암울한 조선에 하나님의 빛으로 세계 빛이 되게 하였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1885년 은총의 땅이 되리라 믿었습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1929년 일찍이 황금시대에 빛나던 코리아
‘동방의 등불’ 동방의 빛이 되리라 노래 하였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In the golden age of Asia)
빛나던 등촉의 하나였던 조선(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1929년, 인도의 시성 타고르
여의도 300 도둑들아! 자기눈에 들보를 보아라
이 땅에 모든 사람이 나기 눈에 들보를 보아야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한국 기독교계는 내년 기독교 전파 140주년을 맞아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부디 기념만 하는 것으로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시급한 것은 교회가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기념은 10년 뒤에 해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