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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가(龜城歌)
문암(文巖) 박용수(朴龍秀) 지음.
김종인(시인) 번역. 권오웅 (한문학 박사) 감수.
* 구성가(龜城歌)는 1929년에 편찬한 “김천군지”에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어 1969년에 향토사학자 이근구가 편찬한 “향토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향토사에서는 “구성가(龜城歌)는 박용수(朴龍秀)가 지었는데 박용수는 뜻이 고상하고 경사에 두루 능통했다. 그 제자 또한 많았다. 43세로 별세했으며, 호는 문암(文巖)으로 그의 작품에 ‘대덕팔경(한시)’과 구성가(龜城歌)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한문으로 쓴 자유로운 형식의 시로, 현대적으로 말하면 한문으로 쓴 자유시라 부를 수도 있겠다. 시의 제일 앞부분에는 구성 지역의 위치와 범위, 이 시를 쓰게 된 내력, 시를 쓴 방법 등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총 104구로 비교적 긴 장시다.
거의 대구를 쓰고 있으며 4언, 5언, 6언, 7언을 다양하게 구사하고 변화시켜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또한 구성, 지례, 부항, 대덕, 증산, 조마면 지역의 지명을 119개 가량 사용하고 있는데, 거의 한 구에 한 개씩의 지명을 이용하여 지명으로 쓰기도 하고 문장 내에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어떤 곳은 지명과 의미로 함께 사용하여 중의법을 쓰고 있으며, 심지어 지명의 글자 한 자 한 자를 떼어 앞으로 붙이고 뒤로 붙여 문장 내에서 그 의미로 사용하니 지명에 통달하지 않으면 이렇게 사용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시의 내용은 구성 지방 120여 개 마을 이름을 이용하여 각 마을의 내력, 풍광, 문화, 특색, 자연 등을 노래하면서 다양한 중국 고사를 원용하여 비유로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현대 자유시의 행간 걸림이나 대구, 다양한 종결어미 사용, 이미지의 연결 등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있다.
이 시를 쓴 문암 박용수는 구성에서 나고 자란(生長之邑) 사람이라고 시의 첫머리 해제 부분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는데, 조선시대 후기 19세기의 사람으로 구성 지방의 선비, 유학자, 문인으로 생각된다.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아래 시는 김종인 시인이 1차로 번역하고 주를 달았으며, 권오웅 박사가 시 원문을 감수하면서 고치고 각주(註)를 달고 전체적으로 보완하였다.(붉은 글씨는 권오웅 박사가 감수하면서 보완한 것임을 밝혀둔다.)
* 구성가(龜城歌) 첫머리(해제)
凡嶠南 七十一州則 (범교남 칠십일주즉) 무릇 영남(嶺南) 칠십일 주(州)는
余未曾遊賞而 (여미회유상이) 내 일찌기 유람(遊覽)하며 감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於龜城則 生長之邑 (어구성즉 생장지읍) 구성은 내가 나고 자란 고장이라
故觀其麓 究其源則 (고관기록 구기원즉) 고로 그 산록을 보고 그 근원을 탐구하니
乃平日所慣處也 (내평일소관처야) 이에 평소(平素) 익숙하게 보던 곳이다. 그런데
而中有一鑑川流則 (이중유일감천류즉) 이 가운데 감천이 흐르고 있으니
如中國 黃河水也 (여중국 황하수야) 중국의 황하수와 같다.
西有三道 茂朱之境 (서유삼도 무주지경) 서쪽의 삼도봉은 무주와 경계이고
南有大德 居昌之境 (남유대덕 거창지경) 남쪽의 대덕산은 거창과 경계이고
又有羔膓 星州之境 (우유고장 성주지경) 또 고장산은 성주와 경계이고,
東有石頂 金山之境 (동유석정 김산지경) 동쪽의 석정산은 김산과 경계이고
北有牛頭 黃澗之境而 (북유우두황간지경이) 북쪽의 우두령은 황간과 경계인데
周四百里許也 (주사백리허야) 그 주위가 사백여 리에 달한다.
此間細摘洞名 其妙以序以誌 (차간세적동명 기묘이서이지) 이 사이에 마을 이름을 세밀하게 뽑아서 그 묘하게 표현하면서 차례를 만들어서 기록하노라.
岩邑朝陽 少闢 於鳳谷 (암읍조양 소벽 어봉곡)
大舜之簫 昭九成 (대순지소소 구성)
바위 고을 아침 햇빛에, 궁벽한 봉곡(鳳谷) 조금 열리면
순임금의 소소(韶簫) 음악 구성(九成)으로 밝혀지네
* 봉곡(鳳谷)은 대덕면 조룡리를 말하는 지명.
* 구성(九成)은 구성(龜城)으로 봐야 함.
* 대순지소(大舜之簫) : 중국 고대 순임금이 지은 악곡의 명칭이 소소(韶簫)임.
洞天暮雲 多起於龍崗 (동천 모운다기 어용강)
武侯之草堂 一高 (무후지초당 일고)
동천(洞天)의 저물녁 구름, 용강(龍崗)에서 많이 일어나는데
제갈량의 초당은 드높네.
* 용강(龍崗)은 지명
* 무후(武侯)는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제갈무후(諸葛武侯), 충무후(忠武侯)(시호<諡號>) 제갈량(諸葛亮)을 말한다.
* 초당(草堂) : 제갈량이 은거했던 초당. 여기에 유비(劉備)가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했 다.
高望乎 伏虎將軍其能射 (고망호 복호장군기능사)
脫視乎 釣龍漁父也自豪 (탈시호 조룡어부야자호)
높이 바라볼 것이로다. 복호(伏虎)장군이 활 잘 쏘니,
속진(俗塵) 벗고 바라볼 것이로다. 용 낚는 어부가 스스로 호방함을(호걸스러움을).
* 복호(伏虎)는 구성면 용호리 복호동.
* 조룡(釣龍)은 대덕면 조룡리를 말하며 중의법.
豪俊士聞義 而願學董生之餘趣 (호준사문의 이원학동생지여취)
群靈者加禮 而欲效夫子之遺風 (군령자가례 이욕효부자지유풍)
호방하고 빼어난 선비는 의로움을 듣고서
동생(董生)이 남긴 뜻 배우기 원하며,
뭇 사람들은 예(禮)를 행하면서 부자(夫子) 남긴 기풍(氣風) 본받으려하네
* 동생(董生)은 동호(董狐)를 말하는 듯. 권세에 굴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기록하여 역사 에 남기는 일. 춘추 시대 진(晋)의 사관(史官) 동호(董狐)가, 조돈(趙盾)이 그의 임금
영공(靈公)을 죽였다고 직필(直筆)한 옛일에서 유래. 동호지필(董狐之筆).
* 문의(聞義)는 대덕면 문의리, 가례(加禮)는 대덕면 가례리의 지명으로 중의법.
風乎松亭 君之節 (풍호 송정 군지절)
송정(松亭)에 바람 부니, 군자의 절개 볼 수 있네.
* 송정(松亭)은 조마면 신왕리 한수골을 가리키는 지명임. 혹은 구성면 구미리를 말함.
先動步干柳村 (선동보간 유촌)
處士之門能通 (처사지문 능통)
먼저 부지런히 걸어 버드실(柳村) 찾으니
처사(處士)의 집에 능히 이르네
* 유촌(柳村)은 부항면 유촌리를 말함.
通達紅葉 九十月之楓霜 (통달홍엽 구시월지 풍상)
噓吸淸風 上下院之楊春 (허흡청풍 상하원지 양춘)
사방으로 통하여 이른 붉은 잎은 구시월의 서리 맞은 단풍이며
맑은 바람 호흡하는 것은 상하원(上下院)의 봄버들이네.
* 상하원(上下院)은 구성면 소재지인 상원리와 하원리를 말함.
春和於東郊 沮溺之耦將散 (춘화어동교 저닉지우장산)
日寒於西山 伯夷之節惟新 (일한어서산 백이지절유신)
동쪽 들판에 봄날이 따뜻하니
장저(長沮)와 걸익(桀溺)이 함께 밭 갈다가 장차 흩어지려 하고
서산에 날이 차가우니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절개 오직 새롭네
* 장저(長沮)와 걸익(桀溺) 공자(孔子)가 천하(天下)를 철환(轍環)할 당시(當時)의 은자 (隱者)들.
* 백이(伯夷):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중국 은(殷)나라 때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 주나라의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칠 때 말고삐를 잡고 신하(臣下)이 도(道) 아님을 간(諫)하였으나 듣지 않으므로 주나라의 곡식[粟(속)]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어 수양 산(首陽山)(西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숨어 살다가 굶어 죽었다.
新情交合 丈夫磨刀於泰山之礪 (신정교합 장부마도 어태산지려)
醉興將發 浪客扶岳於洞庭之波 (취흥장발 랑객부악 어동정지파)
새로운 정으로 서로 합하니
대장부는 태산(泰山)의 숫돌에 칼을 간다.
취한 흥이 나타나니 떠도는 나그네는
동정호(洞庭)의 물결에서 산을 붙든다.
* 마도(磨刀), 부악(扶岳)은 지명으로 생각됨.
* 태산(泰山)은 중국 산둥성[山東省(산동성)] 중부 루중산지[禿中山地(독중산지)]
서쪽에 있는 산. 해발고도 1532m.
* 동정(洞庭)은 중국 양쯔강 남쪽에 있는 호수(湖水). 동정호.
波文動神於龜尾 伏羲巳圖 (파문동신 어구미 복희사도)
山樂付心於鳥峴 歐陽可哦 (산악부심 어조현 구양가아)
물결 무늬 구미(龜尾)에서 신비롭게 움직이니
복희가 이미 하도(河圖)를 보고 팔괘(八卦)를 그었고
산에 사는 즐거움 조현(鳥峴)에서 마음에 붙이니
구양수의 글을 읊을 만하네
* 구미(龜尾)는 구성면 구미리로 아홉 개의 아름다운 경치가 있다고 함.
* 조현(鳥峴)은 대덕면 조룡리의 옛 지명임.
* 하도(河圖): 복희(伏羲)가 백성들을 다스릴 때 황하(黃河)에서 등에 1에서 10에 이르는 수를 나타낸 무늬가 선모(旋毛) 형태로 지닌 용마(龍馬)가 나와 복희가 그것을 보고 팔 괘(八卦)의 획을 그었다고 한다.
* 복희(伏羲)는 삼황(三皇)의 첫머리에 꼽는,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 어렵(漁獵)을
가르치고 팔괘(八卦)를 만들었다 함.
* 구양(歐陽)은 구양수(歐陽脩)로 중국 북송(北宋) 정치가·문인·학자. 호는 취옹(醉翁)이 다. 취옹정(醉翁亭)에서 산수(山水)의 즐거움을 누리는 심회(心懷)를 쓴 「취옹정기(醉 翁亭記)」가 있다.
哦咏沙月 詩仙也氣象 (아영기사월 시선야기상)
시냇가 모래에 비친 달 읊으니 이백(李白)의 기상이네.
* 시선(詩仙)은 성당(盛唐)의 시인 이태백(李太白)을 가리킴.
* 사월(沙月)은 부항면 사등리의 이름으로 시냇가 모래(沙)와 반월산(月)에서 이름을 땄 다고 함.
神心塞於兆谷 願吸雛子之律 (신심새어조곡 원흡추자지율)
壽考獻 於南山 爲仰 聖主之身 (수고헌 어남산 위앙 성주지신)
신묘(神妙)한 마음 조곡(兆谷)에서 막히니
방통의 법을 받아들이고 싶네.
장수(長壽) 축원(祝願) 장구(長久)한 남산(南山)으로 바침은
성군(聖君)의 옥체(玉體) 우러르기 때문일세.
* 조곡(兆谷)도 지명으로 봐야 함.
* 남산(南山)은 지례면 상부리를 가리키는 지명.
* 추자(雛子)는 삼국 시대 촉한(蜀漢) 사람 방통(龐統)을 가리킴. 유비(劉備)에게 벼슬하 여 치중종사(治中從事)가 되고, 제갈양(諸葛亮)과 함께 복룡봉추(伏龍鳳雛)라 병칭됨.
身居安磵 顔子之樂不段 (신거안간 안자지락부단)
綱橋漁田 炎帝之敎無窮 (강교어전 염제지교무궁)
몸은 안간(安磵)에 사니
안자의 즐거움이 조각나지 않았고,
강교(綱橋) 어전(漁田)에는
신농씨의 가르침이 끝없이 이어지네.
* 안간(安磵)은 부항면 안간리.
* 어전(漁田)은 부항면 어전(魚田)리, 들판의 형상이 물고기를 닮았다 함 혹은 어전골.
* 안자(顔子)는 공자의 수제자 안회(顔回)를 이름. 더러운 거리(陋巷)에 살면서도 안빈낙 도(安貧樂道)하였다.
*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 중국 고대(古代) 전설에 나오는 제왕(帝王)의 하나. 농사짓 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쳤으므로 신농씨(神農氏), 화덕(火德)으로 다스리었으므로 염제 (炎帝)라고도 한다. 약(藥) 만드는 법과 64효(六十四爻)를 만들었다고 한다.
窮天泰嶽 而岱洞 (궁천태악이 대동)
傍闢封禪 其武帝 (방벽봉선 기무제)
하늘을 궁(窮)하게 하는 높은 산이 있으니 대동(岱洞)이요,
옆에서 봉선(封禪)을 여니 무제(武帝)였네
* 대동(岱洞)은 부항면 하대리(하두대), 해인리(상두대)를 가리키는 듯.
* 봉선(封禪)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이다.
* 무제(武帝)는 한무제를 말한다. 한(漢) 무제(武帝)가 태산(泰山)에서 봉선(封禪)하였었 다.
聳劍蜀山而 巴川(용검촉산이 파천)
下流遊咏者 夔翁(하류유영자 기옹)
검각산(劍閣山)과 촉산(蜀山)이 솟았으니
파천(巴川)(파촉<巴蜀>, 사천<四川>이요,
하류(下流)에서 노닐며 읊는 것은 두보(杜甫)이네
* 촉산(蜀山)은 중국 사천성의 명산.
* 중국의 고전 <촉산검협전>의 배경이 중국 사천의 촉산이다. 산세가 험하고 구름이 뒤 덮여 천지의 영기가 모이는 곳으로 산봉우리마다 수백 년 동안 무공을 쌓는 고수들이 있었다.
* 파천(巴川)은 부항면 파천리, 여기에 봄내(춘천)과 세심대가 있다.
* 파촉은 사천(四川)의 이칭. 파(巴)는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중경(重慶) 지방.
촉(蜀)은 지금의 사천성 성도(成都) 지방.
* 기옹(夔翁)은 당(唐)나라 때 시인(詩人) 두보(杜甫)이다.
翁年高峻 林谷之外 (옹년고준 임곡지외)
林泉其這 俗味虛埃 (임천기저 속미허애)
葛坪之上 葛衣干斯 (갈평지상 갈의간사)
늙은이 나이(翁年) 숲 골짜기 밖에서 높아,
임천(林泉)에서 맞이하니 세속(世俗) 맛 헛된 티끌이라
갈평(葛坪)의 가에서 갈옷을 이에 입네
* 갈평(葛坪)은 부항면 대야리의 중심 마을.
* 임천(林泉)은 구성면 임천리로 새터, 산정, 단계 등의 마을이 있다.
* 임곡(林谷)은 부항면 파천리의 숲실 마을.
斯有造化 曉龍歸雨於雲洞 而神功歛却 (사유조화 효룡귀우어운동 이신공감각)
第見影子 夜菟搗藥於月谷 之秋氣來思 (제견영자 야면오약어월곡 지추기래사)
이에 조화(造化)를 두었으나
새벽 용(龍)이 운동(雲洞)에서 비를 돌려 가니
신묘(神妙)한 공(功)이 거두어지고 버려졌고,
다만 그림자를 보니
밤 토끼가 월곡(月谷)에서 불사약(不死藥)을 찧으니
가을 기운 다가옴이 생각되네
* 운동(雲洞)은 구성면 미평리
* 월곡(月谷)은 부항면 월곡리 달애실.
思見明德 德化盛盛於山東 百里 (사견명덕 덕화성성어산동 백리)
岡0服敎 敎術之行行於鄕 三遷 (강0복교 교술지행행어향 삼천)
밝은 덕을 보기를 생각하니
덕(德)의 교화는 산동(山東))에 성(盛)하고
성(盛)하여, 백리(百里)에 미치고,
따르는 가르침에 몰입(沒入)함을 높이니
교화(敎化)의 방법이 시골에 행하고 행해져
세 번이나 (교화 따라 집을) 옮기도다.
* 명덕(明德)은 구성면 공자동 아랫마을. 복교(服敎)는 지명으로 생각됨 중의법.
* 삼천(三遷)은 ‘맹모삼천지교'의 준말.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에게 훌륭한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세 번 이사한 일.
遷延歲月 川女臨機 而隔語於窓下 (천연세월 천녀임기 이격어어창하)
征伐夷賊 王子送穀 而跪推於闕前 (정벌이적 왕자송곡 이궤추어궐전)
(혼기<婚期>가 되어도) 세월(歲月)을 미루어 가니(遷延)
냇가 여자(川女)는 베틀을 앞에 두고
창문 아래서 창을 사이에 두고 연인과 속삭이는데
오랑캐를 물리치고 왕자가 곡식을 보내니
대궐 앞에 꿇어 앉아 왕으로 추대하네
* 임기(臨機), 송곡(送穀)은 지명임. 중의법.
前喔謝安遊於東山 山亭之妓高舞 (전악사안유어동산 산정지기고무)
遠聞周公德於南起 越城之雉自翩 (원문주공덕어남기 월성지치자편)
사안(謝安)이 동산에서 노닐 때 앞에서 아첨하며 웃던
산정(山亭)의 기생은 높이 춤추고
주공(周公)이 남기(南起)에 덕(德) 베풀었다는 소문 멀리서 듣고
월성(越城)의 꿩은 스스로 나네.
* 사안(謝安)은 중국 동진 시대 정치가, 풍류대신. 음악에 뛰어남. 조정에서 벼슬을 주고 불렀으나 응하지 아니하고 동산(東山)에서 풍류(風流)를 즐기며 지내다가 40여 세(餘 歲)가 넘어서야 벼슬하러 나갔다.
* 주공(周公)은 주나라 무왕의 아우. 이름은 단 덕이 뛰어남 유가에서 성인의 한 사람.
* 산정(山亭)은 구성면 임천리 새터 마을, 월성(越城)은 지명. 중의법.
翩翩羅浮則仙女遊之戱舞 笑願於霞彩 (편편나부즉선녀유지희무 소원어하채)
字字碣揭則羊祜善治之德 淚墮於碑文 (자자갈게즉양호선치지덕 루타어비문)
나부산에 펄럭이는 옷자락은 미인(羅浮)들이 놀며 춤추며
채색 놀에 웃으며 소원비는 것이며
글자마다 비석에 걸린 것은 양호(羊祜)의 잘 다스린 덕 자취니
비문에 눈물을 떨어뜨리겠네
* 자갈(字碣)은 지명
* 양호(羊祜)는 진(晋)의 양양태수(襄陽太守) 양호(羊祜)의 덕을 사모하여 그 곳 백성들 이 현산(峴山)에 세운 비를 타루비(墮淚碑)라 한다. 비를 보는 사람이 모두 눈물을 흘 린 데서 두예(杜預)가 붙인 이름.
* 나부(羅浮)는 조마면 신곡리에 있음. 벌이 떠 있는 마을이라 함.
* 나부(羅浮)는 미인을 이르는 말로 나부산(羅浮山)에 있던 매화의 정령이
미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함.
* 나부산(羅浮山) 산 이름. 중국 광동성(廣東省) 동강(東江) 북안(北岸)에 있는데 풍경 (風景)이 우미(優美)하여 월중(越中)의 유람(遊覽) 승지(勝地)가 되고 있다. 진(晉)나라 갈홍(葛洪)이 일찍이 여기에서 수도(修道)하였고 도교(道敎)에서는 제7동천(洞天)이 라 일컬었다.
大風好彌於城都 多士濟濟 (대풍호미어성도 다사제제)
堯德安依於康衢 老人欣欣 (요덕안의어강구 노인흔흔)
성도(城都)에 큰 바람 두루 잘 부니(好彌) 많은 선비 위의(威儀)가 있고
요임금의 덕을 강구(康衢)에서 편안히 의지하니(安依), 노인들이 기뻐하네
* 강구(康衢) 사통(四通) 오달(五達)한 화려한 길.
‘康’은 오달(五達)의 길. ‘衢’는 사거리.
* 제제(濟濟) 많고 성한 모양. 위의(威儀)가 많은 모양. 인재가 많은 모양.
* 호미(好彌)는 대덕면 관기리 앞에 옥녀봉이 있음.
* 안의(安依)는 지명, 성도(城都)는 중국 사천성 성도로 생각됨.
* 강구노인(康衢老人)은 시골, 여항에서 살아가는 노인.
欣然而抱琴 梧夜中齊月 (흔연이포금 오야중제월)
閑者其圍碁 楸陽外午陰 (한자기위기 추양외오음)
기뻐서 거문고 안으니
7월 밤(梧夜)에 비 갠 뒤 달이 떴고
한가한 사람들 바둑을 두니
가래실(楸陽) 바깥에는 정오에도 그늘지네
* 오월(梧月) 음력 7월의 딴 이름.
* 오추(梧秋) 음력 7월의 딴 이름.
* 오야(梧夜)는 지명으로 쓰임.
* 추양(楸陽)은 대덕면 추량리로 추측되며 현재 가래실, 추장리로 불림.
陰風怒呼 斗臺如動 (음풍노호 두대여동)
瀑雨吹泊 石亭何尋尋 (폭우취박 석정하심심)
음산한 바람이 성내어 부르짖으며 부니
두대(斗臺)가 움직이는 듯.
소나기 머무르는 데 몰아치니
석정(石亭)은 어디서 찾고 또 찾을까?.
* 두대(斗臺) : 부항면 해인리, 하대리에는 상두대, 하두대가 있음.
* 석정(石亭)은 대덕면 가례리 북쪽에 있는 마을.
其閣老類觀槐則晋公先植 (기각노류관괴즉 진공선식)
問爾筆力者中山則右軍將登 (문붕필역자중산즉 우군장등)
그 누각(樓閣)의 늙은이들 홰나무 보니
진공(晉公)이 일찍 심은 것이고 .
중산(中山)에 필력(筆力)있는 사람 물으니
왕희지(王羲之)가 장차 오르고
* 진공(晉公) 송(宋) 태조(太祖) 때 진공(晉公) 왕호(王怙)가 일찍이 뜰에 세 그루의 홰나무를 심으면서 말하기를 “내 자손 중에 반드시 삼공(三公)이 되는 자(者)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 는데 얼마되지 아니하여 그 아들 위국공(魏國公) 문정공(文正公) 단(旦)이 진종(眞宗) 때 정승 (相)이 되었었다.
* 중산(中山) 한유(韓愈)는「모영전(毛穎傳)」에서 붓을 의인화(擬人化)한 모영(毛穎)의 고향을 중산(中山)이라 하여 붓의 고향을 중산(中山)으로 정하였었다. * 중산(中山)은 대덕면 중산리.
* 왕희지(王羲之)(303년~361년<321~379>) 해서(楷書)와 행서(行書), 초서(草書)의 각 서체를 완성함으로써 예술로서의 서예(書藝)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우군장군(右軍將軍)을 지내 사람들 이 왕우군(王右軍)으로도 불렀다.
* ‘붕’자는 아니불(不) 자와 쓸 용(用)자의 합성어임. 이 글자는 ‘이(爾)’라는 글자를 이렇게 쓴 것 같다.
* 관괴(觀槐)는 지명으로 보임.
* 진(晋)은 중국 춘추 시대의 열국의 하나. 사마염(司馬炎)이 위(魏)의 선양(禪讓)을 받아
세운 나라. 뒤에 서진, 동진으로 나누어짐.
* 진공(晋公)은 주나라 성왕의 아우 숙우인 듯.
登登山依 望騷客之壯觀 (등등산의 망소객지 장관)
步步炭洞 오忠臣之作與 (보보탄동 오충신지 작여)
산의(山依)에 오르고 올라 시인(詩人)의 장관(壯觀) 바라보고
탄동(炭洞)에 걷고 걸어가니 충신 일어남을 싫어하네.
* 오(言+惡) 미워하다, 헐뜯다.
* 본문(本文)의 작여(作與)는 작흥(作興)을 잘못 기록한 듯하다.
* 산의(山依)는 지명. 중의법.
* 탄동(炭洞)은 구성면 임평리 속명 숯가매실.
與起若爵祿 則知品最上 (여기약작록즉 지품최상)
動靜如靈心 則觀德其中 (동정여령심즉 관덕기중)
더불어 일으킴이 작위(爵位)와 봉록(俸祿) 같으니
품격(品格) 앎이 최상이고
움직이고 고요함이 신령한 마음 같으니
그 마음에 덕(德) 보겠네
* 지품(知品)은 구성면 미평리 지품 마을.
* 관덕(觀德)은 지례면 관덕리. 지례 현감 김낙현이 궁남리를 관덕리로 고쳤다 함.
* 지품(知品), 관덕(觀德)은 중의법.
中情宜嫌於惡石 禹斧之何事不鑿 (중정의혐 어악석 우부지하사불착)
上策暮當於陵址 孫樹於此萬己崇 (상책모당 어릉지 손수어차만기숭)
속마음은 나쁜 돌 싫어함 마땅한데
우(禹) 임금 도끼는 무슨 일로 뚫지 않았는고?
최고 계책으로 저물어 마릉(馬陵) 터에 당도할 것 알았는데
손빈(孫臏) 나무 여기에서 만 길로 이미 높아졌네
* 악석(惡石), 능지(陵址)는 지명임.
* 능지(陵址) 마릉(馬陵)의 터. 손수(孫樹) 손빈(孫臏)이 깎아 글씨 쓰게 한 나무.
* 우(禹)임금은 하우씨(夏禹氏). 하(夏)나라의 임금, 중국 고대 성인.
*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나라 군사(軍師) 손빈(孫臏)은 위(魏)나라 장군(將軍) 방연(龐涓)이 저물어 마릉(馬陵)에 당도할 것을 알고 마릉(馬陵)이 옆에 좁게 막힌 곳이 많은 것을 이용하여 복병(伏兵)하고 큰 나무를 깍아 “방연(龐涓)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을 것이다(龐涓死于此樹之下).”라고 쓰고 제나라 군사 중에서 쇠뇌로 활 잘 쏘는 자 만 명을 길을 끼고서 매목하고 있다가 저물어 불 켜는 보는 것을 보면 쏘게 하였다. 방연이 과연 밤에 깍은 나무 아래에 이르러 흰 글씨를 보자 불을 일으켜 비추어 보았는데 그 글을 다 읽지도 못하고 제나라 군대가 쇠뇌로 모두 활을 쏘니 위나라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져 서로 질서를 잃어버리니 방연이 스스로 지혜가 다하고 군대가 패함을 알고 이에 스스로 목을 찌르면서 “드디어 더벅머리 놈(손빈 지칭하는 말)의 이름을 이루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제나라는 이로 인하여 승세를 타 위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고 위나라 태자를 포로를 잡고서 돌아갔었다.
그런데 일찍이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손빈과 방연이었는데 방연이 먼저 위나라에 벼슬하면서 손빈을 오게 하고는 손빈을 시기하여 오히려 법으로 걸어 손빈이 발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게 하였었다. 손빈은 제나라 사신을 비밀히 만나 자신을 소개하여 제나라 사신의 수레를 타고 비밀히 위나라를 빠져나가 제나라 장군 전기(田忌) 추천으로 왕을 만나 제나라 군사(軍師)가 되었었다. 손빈은 조(趙)나라와 위(魏)나라의 협공으로 위기에 처한 한(韓)나라를 구원하러 제나라 군사(軍師)로서 바로 위나라 서울 대량(大梁)으로 전기 장군을 진격하게 하였다. 방연이 위나라 서울이 위험해지자 군사를 돌려 위나라로 오는데, 손빈이 위나라 군대가 본디 사납고 용맹하나 제나라 군대를 겁쟁이라고 가볍게 보는 것을 이용하여 제나라 군대가 위나라 땅으로 들어온 이후 매일 진지의 부엌 수를 10만에서 다음날 5만, 다음 날 3만으로 줄여 제나라 군대가 도망자가 많은 것처럼 속이니 방연이 위나라 땅으로 제나라 군대가 들어온 지 삼일 만에 군대가 반이나 달아난 것으로 알고 기뻐하며 보군(步軍)을 버리고 가볍게 갈 수 있는 정예병으로 이틀 만에 갈 거리를 하루 만에 달려 저물어 마릉에 이르렀었다.
崇名於俗口 修道之士 雲集 (숭명어속구 수도지사 운집)
聞風於箕踞 代冶之人 日充 (문풍어기거 대야지인 일충)
속구(俗口)에서 이름을 높이니
도를 닦는 선비는 구름같이 모이고,
기거(箕踞)에서 풍모(風貌) 듣고
대야(代冶)의 사람들이 날마다 가득차네.
* 속구(俗口)는 증산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입구에 있으며 속수 혹은 속시로 불림.
* 기거(箕踞)도 지명으로 봐야 함.
* 기거(箕踞)는 기좌(箕坐)하다. 두 다리를 앞으로 벌려 뻗고 앉다. [예문] 高祖箕踞罵 言 甚慢之〈漢書〉
* 수도(修道)는 증산면 수도리에 수도산과 수도암이 있음.
* 수도(修道)는 구성면 상원리를 말하며 무티실(修道谷)이라 함.
* 대야(代冶)는 부항면 대야리로 생각됨. 지형이 큰 대야처럼 생겼다 함.
充其意則 繁華之色 何當於多花之洞 (충기의즉 번화지색 하당어다화지동)
隱士跡則 貞節之心 亦足於大栗之村 (은사적즉 정절지심 역족어대율지촌)
그 뜻을 채우면 번화(繁華)의 빛이 다화(多花)의 마을에 어찌 마땅하리오?
선비의 자취 숨기면 정절의 마음 또한 대율(大栗) 마을에 넉넉하도다.
* 다화(多花)는 대덕면 중산리로 일명 다부실이라 불림.
* 대율(大栗)은 지례면 대율리 한배미 마을.
村路診去則 達馬疾走 (촌로진거즉 달마질주)
煙霞浮來則 到鵠齊翻 (연하부래즉 도곡제번)
시골 길을 살펴 가니
이르는 말이 빠르게 달리고
안개와 놀 떠 오니
이르는 고니 가지런히 나네
* 달마(達馬), 도곡(到鵠)은 지명임. 중의법.
翻動乎 濂翁遊泥之上 出蓮花而開眼 (번동호 염옹유니지상 출연화이개안)
快浩乎 朱子石稟之下 耕米坪而充量 (쾌호호 주자석품지하 경미평이충량)
날아 움직임이여! 주염계(廉翁)가 진흙 위에 노닐면서
진흙 위로 연꽃 피워 내어 눈을 열게 하였고
시원하게 넓음이여! 주자(朱子)가 석품(石稟)의 아래에서
미평(米坪)을 갈아 생산량을 채웠네
* 미평(米坪)은 구성면 미평리 쌀이 많이 생산된다고 함.
* 연화(蓮花)는 대덕면 연화리(蓮花里). 연화봉(蓮花峯)이 있음. 혹은 구성면 송죽 1리를 말함.
* 염옹(濂翁)은 송(宋)나라 때 염계(濂溪) 주돈이(朱敦頤). 연(蓮)이야말로 군자와 닮았다 하여 애련설(愛蓮說)을 지음
* 주자(朱子)는 주희(朱熹)로 중국 남송(南宋) 사상가. 호는 회암(晦庵).. 성리학(性理學) 을 완성하여 소위 주자학(朱子學)을 성립시켰다. 주자(朱子)는 그의 존칭이다. 시호는 문공(文公).
量楚將 陳平散金 則知金亦是國器 (량초장 진평산금 즉지금역시국기)
與漢帝 而張良辟穀 則藏穀又仙方 (여한제이 장량피곡 즉장곡우선방)
초나라 장수 헤아려 진평(陳平)이 황금을 흩어 금의 힘 알았으니(知金)
역시 나라의 큰 그릇이네.
한나라 유방과 함께 하였으나 장량(張良)이 벽곡(辟穀)하였으니
벽곡(辟穀)으로 몸을 숨김(藏穀) 또한 신선(神仙)되는 방법이네
* 지금(知金), 장곡(藏穀)은 지명
* 벽곡(辟穀) 곡식(穀食) 먹기를 그만두고(廢) 신선(神仙)이 되기를 바라는 일.
* 진평(陳平)은 중국 한(漢)나라 초기 공신.
* 한제(漢帝)는 중국 전한(前漢)의 창시자. 초대 황제. 이름은 유방(劉邦).
* 장량(張良)은 중국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전략가(戰略家)(策士). 한(漢) 개국공신 (개국공신).
方今誦天保 九男九女之壽庶長 (방금송천보 구남구녀지수서장)
當此營毛遂 五步五里之程乃遙 (당차영모수 오보오리지정내요)
지금 시경 소아편을 외움은
아홉 남자와 아홉 여자의 수명이 길기를 바람이고
여기에서 모수(毛遂)의 경영을 배우니
다섯 걸음, 오 리의 길이 이에 멀도다.
* 구남(九男), 오보(五步)는 지명임
* 구남구녀(九男九女) : 불교의 묘법연화경에는 관세음보살을 염(念)하는 마음이 지극하 면 그 염하는 힘의 작용으로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7난을 피해 갈 수 있고 훌륭한 아 들과 딸을 가려 구남 구녀(九男九女)를 낳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 천보(天保)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 이름.
천보구여(天保九如)는 임금의 장수와 다복을 비는 내용.
* 모수(毛遂)는 전국 시대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의 식객. 진(秦)이 조(趙)를 쳤을 때, 스스로 천거(薦擧)(自薦)하여 평원군을 따라 초(楚)에 가서 합종(合從)의 협약을 맺게 하였음. 모수자천(毛遂自薦)의 주인공.
遙與近而 長使以治 則上下部曲之里 (요여근이 장사이치 즉상하부곡지리)
低與仰而 召伯所曁 則內外甘棠之條 (저여앙이 소백소기 즉내외감당지조)
멀리 보고 가까이 보면서 길이 다스려지게 하니
상하부곡(上下部曲)의 마을이요,
굽어 보고 우러러 보니 소백(召伯)의 덕화(德化) 미친 곳이니
이 더불어 안과 밖(內外)의 감당(甘棠)(팥배나무) 가지로다.
* 상하부곡(上下部曲)은 지명인 듯. 신라 때 이 고장의 마을은 거의 부곡이었음.
* 부곡(部曲)은 신라 때부터 고려 말까지 있었던 특수한 말단 지방 행정구역.
삼국 통일 뒤 지방 행정 구역을 정비할 때 인구가 적어서 현에 미치지 못한 지역을
‘향’ 또는 ‘부곡’이라 하여 현에 딸리게 했는데, 그 주민을 특수 천민 집단으로 단정하 기도 했으나 씨족이나 부족의 집단이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 내외감(內外甘)은 대덕면 내감리, 외감리로 아랫감주, 웃감주 4개 마을이 있음.
* 장사(長使)는 사람 이름인 듯.
* 소백(召伯)은 주(周) 문왕(文王)의 서자. 무왕(武王)을 도와 주(紂)를 멸하고,
북연(北燕)에 봉해짐. 성왕(成王) 때 삼공(三公)이 되어 이서(以西) 땅을 맡아 선정을 베풂.
* 감당지조(甘棠之條)는 정치를 잘하는 것, 정치를 잘하는 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條風入靑樓 瀼春之心肥 玉流則 凄凄 (조풍인청루 양춘지심비 옥류즉처처)
林月照白髮 傷葉之眸對 松坪則 蒼蒼 (임월조백발 상엽지모대 송평즉창창)
조풍(條風)이 청루(靑樓)에 불어 드니 일렁이는 봄 마음 살찌나
옥류(玉流)는 쓸쓸하고
숲에 뜬 달 흰머리를 비추어 시든 잎 눈으로 마주하나
송평(松坪)은 푸르고 푸르네.
* 조풍(條風) 동북풍(東北風). 만물(萬物)을 조달(條達)하게 하므로 이르는 말.
조달(條達) 나뭇가지가 자라듯이 사방으로 펴져 통함.
* 청루(靑樓)는 푸른 누각. 논다니가 사는 집. 기생(妓生)집. 妓樓(기루).
* 옥류(玉流)는 증산면 유성리 옥류동, 증산면의 중심지, 광해군 때 정술 선생이
옥류동이라 지었다 함.
* 옥류(玉流)는 부항면 신옥리로 뒷산이 옥류봉(361미터)임.
* 송평(松坪)은 지금의 송죽 1리 1914년 과곡외면에 속했던 송평, 죽방이 합쳐져 송죽 이 됨.
蒼然夜色 暎濃怪石如佛 (창연야색 영농괴석여불)
醉乎月影 徘徊佳物流觴 (취호월영 배회가물류상)
고색(古色) 짙은 밤빛 괴석(怪石) 짙게 비추니 불상(佛像) 같고
달빛에 취하여 아름다운 만물(萬物) 배회하고 흐르는 물에 잔 띄워 마시네
* 가물(佳物)은 부항면 유촌리에 있음. 중의법.
* 가물(佳物)은 위의 시구 월영배회 가물유상(月影徘徊 佳物流觴)에서 따왔다
고 함.
觴飛旅座觀基 近於玄都 穀播來頭 豆山於柴桑
(상비여좌 관기근어현도 곡파래두 두산어시상)
桑林引和風 吹於莘坪 伊尹獨耕 山月幼半
(상림인화풍취 어신평 이이독경 산월유반
釣魚於春川 嚴翁先望
(조어어춘천 엄옹선망)
술잔 주고 받으며 손님 앉는 자리 관기(觀基)는 현도(玄都)에 가깝고
곡식 뿌려 오는 머리 시상(柴桑)에 두산(豆山)이네
뽕나무 숲, 봄바람 끌어당겨 신평(莘坪)에 불게 하니
이윤(伊尹)이 홀로 밭을 가니 산의 달 공중에 어리게 뜨네
춘천(春川)에서 고기 잡으니 엄옹(嚴翁)이 먼저 바라보네
* 관기(觀基)는 대덕면 관기리.
* 현도(玄都), 두산(豆山)은 지명임.
* 이윤(伊尹) 은(殷)나라 재상. 태갑(太甲)(2대 왕 태종<太宗>)을 동궁(東宮)으로 내쫓 아 악행(惡行)을 고치게 한 뒤 제위(帝位)에 복위(復位) 시켰다. 이윤이 벼슬하기 전에 신야(薪野)에서 밭 갈며 농사짓고 있었다.
* 신평(莘坪)은 지례면 신평리, 도곡리에 있음.
* 엄광(嚴光)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불러 벼슬을 권했으나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은거(隱居)하여 때로 낚시로 소일(消日)하기도 하며 지냈다.
* 춘천(春川)은 부항면 파천리 봄내라 불림.
望乎德山 山容皆有潤色 歸于夢丘 丘陰庶傲春眠
(망호덕산 산용개유윤색귀우 몽구 구음서오춘면)
덕산(德山)을 바라보니
산 모습 모두 윤기 있는 빛이요
몽구(夢丘)에 돌와오니
언덕 그늘 거의 봄잠 이길 만하네
* 덕산(德山)은 대덕면 덕산리 대덕산 아래 마을임.
* 몽구(夢丘)는 부항면 월곡리 서쪽에 있는 마을.
眼才覺時 而居然夕矣 牛後羊至已多 (안재각시 이거연석의 우후양지이다)
勢不量力 而笑乎事也 鷸前蚌散最先 (세불량역 이소호사야 휼전방산최선)
눈 겨우 뜰 때 어느 덧 저녁이라 소 뒤에 양이 이미 많이 이르네
형세에 힘을 헤아리지 않았으면 웃습도다. 일이여!
도요새 앞 조개니 흩어지는 것이 최선이네
* 양지(羊至), 전휼(前鷸)은 지명임
* 전방(前蚌)도 지명(地名) 같다.
* 휼방지쟁(鷸蚌之爭) : 도요새와 조개의 다툼이란 뜻으로, 둘이 서로 다투다가 이익을
제삼자에게 빼앗김의 비유. 鷸蚌相持(휼방상지). 蚌鷸之勢(방휼지세). 鷸蚌相爭(휼방상 쟁).
※漁父之利(어부지리).
先聞中舒 則廣川人之策文 晩訪宰相 則小台扉榮華
(선문중서즉 광천인지책문 만방재상 즉소태비영화)
먼저 듣고 마음 펴는 것은
광천 사람들의 책문(策文)이요
늦게 재상을 찾으니 작은 재상 영화를 멀리 하네
* 광천(廣川)은 구성면 광명동, 감천 냇가에 위치한 마을, 광천(光川)인 듯.
* 태상(台相) 재상(宰相)을 이름.
* 소태(小台)는 대덕면 연화리 소태실을 가리킴.
華墨酒於筆頭 介寺 屋之空門已悶 (화묵주 어필두 개사 옥지공문이민)
高崗接於眉前 壽洞 居之避年更加 (고강접 어미전 수동 거지피년갱가)
필두(筆頭)에는 먹과 술이 빛나고
개사(介寺)는 사는 곳이 불문(佛門)이라 번민(煩悶) 그치고
높은 등성이 미전(眉前)으로 이어지는데
수동(壽洞)은 살고 보니 숨어 사는 해 다시 더해지네.
* 필두(筆頭), 미전(眉前), 지명으로 봐야 함.
* 수동(壽洞)은 구성면 송죽리 혹은 백일대라 불림.
* 개사(介寺)는 부항면 사등리 단산 마을. 개사란 절이 있었다고 함.
加額於斜目 目眺於威風動施楚漢 (가액어사목 목조어위풍 동시초한)
超身於長子 子長之文章鳴於江湖 (초신어장자 자장지문장 명어강호)
사목(斜目)에서 이마에 손을 얹으니
위풍(威風) 움직여 초(楚)나라 한(漢)나라에 베풀어짐 눈으로 보게 되고
장자(長子)에서 몸 일으키니,
자장(子長)의 문장이 강호를 울린다.
* 가액(加額)은 (‘이마에 손을 얹는다’는 뜻으로) ‘사람을 몹시 기다림’을 이르는 말.
* 사목(斜目) 지명임.
* 장자(長子)는 구성면 임천리 이 마을에 큰 부자가 살았다고 함.
* 자장(子長) 『사기(사기)』 사마천(사마천)의 자(字).
湖南湖北之路 難行 戰戰栗藪之步 (호남호북지로 난행 전전 율수지보)
山東山西之處 易隱 采采焉芝市之徒 (산동산서지처 이은 채채언 지시지도)
호남 호북(湖南湖北)의 길 가기 어려우니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면서 율리(栗里) 숲(栗藪)으로 걸어가고
산동 산서(山東山西)의 곳 은거(隱居)하기 쉬우니
캐고 캐서 지초(芝草) 팔러 가는(芝市) 무리들이네.
* 율수(栗藪)는 지명.
* 율리(栗里) 도연명(陶淵明)이 살던 곳.
* 지시(芝市)는 부항면 하대리 진실 마을을 가리키는 듯, 속칭 지시(只是)라 불림.
* 호남 호북(湖南湖北)은 중국 동정호 남쪽 지방(호남성)과 북쪽 지방(호북성)을 가리 킴
* 산동(山東)은 중국 북동부 황해(黃海)와 발해만(渤海灣) 사이에 돌출한 산동반도와
서부의 태산 산맥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산동성.
* 산서성은 태행 산맥(太行山脈)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이름.
徒知佛堂 則身何立於孔孟之世 (도지불당 즉신하립어공맹지세)
第見士洞 則名皆揚於漢唐之時 (제견사동 즉명계양어한당지시)
다만 불당(佛堂)만 알면
몸을 어찌 공맹(孔孟)의 세상에 세우겠는가?
다만 선비 마을(士洞)을 보니
한나라 당나라 때에 모두 이름을 날렸네.
* 불당(佛堂)은 지례면 이전리 불당골.
* 사동(士洞)은 지명.
時乎 聖世將牧於華墨 馬山高聳 (시호 성세장목어화묵 마산고용)
夜乎 軍聲驚飛於准池 鴨室盡披 (야호 군성경비어준지 압실진피)
시대여, 성인(聖人) 다스리는 세상은 장차 빛나는 먹에서 길러지니
마산(馬山)은 높이 솟았고
밤이여, 군대의 소리에 회지(淮池) 못 새들 놀라 날으니
압실(鴨室)이 다 열리네
* 마산(馬山)은 구성면 마산리. 앞산의 산세가 말등처럼 생겼다 함.
* 압실(鴨室)은 구성면 월계리. 오리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 함.
披寒雪 而訪剡溪 則子猷之豪興 與其故友 (피한설이 방섬계 즉자유지호흥 여기고우)
悶小園 而居藤谷 則文公之孝行 問於聖人 (민소원이 거등곡 즉문공지효행 문어성인)
찬 눈을 헤치고 섬계(剡溪)를 방문하니
왕자유(王子猷)의 호방(豪放)한 흥(興)
그 친구와 함께 하기 위함이고
작은 동산 민망히 여겨 등곡(藤谷)에 살며
문공(文公)의 효행, 성인에게 묻는다.
* 섬계(剡溪)는 김녕김씨의 섬계서원이 있는 조룡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마을임.
* 섬계(剡溪)는 원래 중국 섬계(剡溪) 지방에서 지명을 따왔다 함.
중국 섬계(剡溪)에는 등나무가 유명해서 등나무를 원료로 하여 만든 종이를 剡紙(섬 지)라 함.
* 등곡(藤谷)은 지례면 울곡(蔚谷)을 말하는 듯.
* 자유(子猷)는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의 아들인 (와왕휘지(王徽之)의 자(字).
* 왕자유가 산음(山陰)에 살던 어느 날 밤 큰 눈이 왔다. 문을 다 열고 술을 따르게 하고 사방을 바라보니 달빛에 눈(雪)이 아름다워 일어나 서성이며 시를 읊다가 문득 섬계(剡溪)에 살고 있는 친구 대안도(戴安道)가 생각나 즉시 배를 타고 밤새워 가서 그곳에 이르렀으나 대안도의 문 앞에 이르자 들어가지도 않고 되돌아 서 버렸다. 어 떤 이가 그 까닭을 묻자 “내 본시 흥에 겨워 왔는데 흥이 다하여 돌아갑니다. 어찌 대안도을 만날 필요가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 문공(文公)은 중국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인 진(晉)나라의 군주. 진(晉) 헌공 (憲公)이 여희(驪姬)를 총애하자 여희가 자기 아들을 임금으로 만들려고 태자를 모함 하여 죽이고 다를 아들들을 해치려 하자 외국으로 망명하여 19년간 방랑 생활을 하 다가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도움으로 귀국한 뒤 즉위하였다.
人去無實而 文君嘆 四壁徒立 (인거무실이 문군탄 사벽도립)
而所來利而 惠王謝 千里而臻 (이소래이이 혜왕사 천리이진)
사람은 가고 실속이 없으니
탁문군(文君)이 탄식하나 사방 벽이 다만 서 있고
오는 것이 이로움 주기 위함이니
맹자가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이른 것에 감사하네
* 거무(去無)는 지례면 거물리를 말하는 듯, 속칭 거무실이라 불림.
* 소래이(所來利)는 지명.
* 문군(文君)은 한(漢)대 촉(蜀)의 부호(富豪) 탁왕손(卓王孫)의 딸. 젊어서 과부가 되 어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재혼하였으나, 그가 첩을 들이려 하므로, 이혼(離婚)의 뜻 을 담아 백두음(白頭吟)을 지었다.
* 혜왕(惠王)은 위(魏)나라 혜왕. 서울이 대량(大梁)이므로 양혜왕이라고도 한다.
맹자 첫 부분에 양혜왕이 “노인장께서 천리를 멀다하지 아니하시고 오셨으니 장차 무었으로써 이롭게 하시렵니까?”라고 하니 맹자가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臻於太古木 則人或資富而食果 (진어태고목 즉인혹자부이식과)
知必寶貨物 而皆闡銅而鑄錢 (지필보화물 이개천동이주전)
큰 고목에 이르면
사람들은 간혹 부자임을 내세워(資富) 과일 먹으나
지혜로운 이는 반드시 재물을 보배로 여겨
모두 천동(闡銅)에서 돈 만드네
* 자부(資富), 천동(闡銅)은 지명임.
* 고목(古木)은 구성면 송죽리 고목마을. 신석기 시대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錢買淸風 而聞嵇笛 則斷腸之聲 威激千古 惰閑雅獨夫
(전매청풍 이문혜적 즉단장지성 위격천고 타한아독부)
劍挑秋霜而 箾關瞳則 電閃之氣 眞是三國世英雄
(검도추상이 소관동즉 전섬지기 진시삼국세영웅)
돈으로 맑은 바람 사면서 혜강(嵇康)의 피리 소리 들으면
애끊는 소리 오랜 세월 사람들 감격시키니
한가하고 우아한 독보적인 사람이고
가을 서리에 칼날 벼려 관동(關瞳) 치니
번쩍하는 번개 빛 진실로 삼국시대 영웅이로다.
* 혜적(嵇笛)은 지명. 혜(嵇)는 중국 남북조시대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인 혜강 (嵇康).
* 관동(關瞳)은 구성면 양각리 중심 마을. 관동(冠洞)을 말하는 듯.
年運通天 文王而百里興 而畿谷漸大(년운통천 문왕이백리흥 이기곡점대)
才勇過人 俊士以 一世豪 以藪室能成(재용과인 준사이 일세호 이수실능성)
해의 운수가 하늘에 통하니
문왕(文王)이 백리에서 일어나 기곡(畿谷)에서 점점 크도다.
재주와 용기가 다른 사람보다 넘치니
뛰어난 선비가 일세의 호걸로서
수실(藪室)에서 능히 이루도다.
* 기곡(畿谷), 수실(藪室)은 지명
* 문왕(文王)은 주나라 무왕(武王)의 아버지.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을 모사(謀士) 로 삼아 국정을 바로잡아 주(周)나라가 은(殷)나를 멸망(滅亡)시키고 천하를 통일 시킬 기틀을 잡았다.
成堂以攀楠 詩聖之迷趣 添年以高樓 壽考之餘情
(성당이반남 시성지미취 천년이고루 수고지여정)
집 짓고 녹나무 잡으니
시성 두보(杜甫)의 멋 헷갈리고
나이 더하여져 누(樓)로 높이니
오래 사는 사람 넉넉한 정이네
* 이고(以高)는 지명임. 고(高)자만 다시 의미, 고루(高樓)로 쓰임.
* 시성(詩聖)은 성당(盛唐) 시인 두보를 말함.
情問道洞 安樂在分 (정문도동 안악재분)
儀來禮所 起居非凡 (의래례소 기거비범)
凡此俗情 洗之於鑑湖 (범차속정세지 어감호)
惟其餘年 付乏於文岩 (유기여년 부핍 어문암)
도동(道洞) 인정(人情) 물으니
안빈낙도(安貧樂道)하고 있고
예의(禮儀)는 예소(禮所)에서 나오니
살아감이 비범(非凡)하네
무릇 이러한 속된 감정 감호(鑑湖)에서 씻고
오직 남은 세월 문암(文岩)에 부쳐 다하리
* 도동(道洞)은 구성면 하원리 문도동이라 불림.
* 예소(禮所), 문암(文岩)은 지명임.
* 감호(鑑湖)는 구성면 일대 감천의 옛 이름으로 경호(鏡湖), 감호(鑑湖) 등이 많이 사용됨.
* 문암(文岩)은 이 시를 쓴 박용수 선생의 호이기도 하다. 말년에 문암에 기거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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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 했거늘 전 오히려 창작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인 시인께서 이리 힘든 작업을 해내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언제 함 뵈러 가야는디, 이리 놀로만 댕기고 있네요.
아이구, 이열치열이라더니 이 더위에 이런 작업을 했군요. 애 많이 썼습니다. 나중에 시문학방으로 옮겨 놓겠습니다.
에구구, 왁왁허다(눈앞이 깜깜하다는 뜻이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