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많이 웃게나.
지혜로운 사람에게 존경받고
해맑은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들에게 인정받고
거짓된 친구들의 배반을 견뎌내는 것,
아름다움의 진가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알아보는 것,
튼튼한 아이를 낳거나
한 뼘의 정원을 가꾸거나
사회 환경을 개선하거나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자네가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라네.
* 랠프 월도 에머슨 : 미국 시인(1803~1882)
2021년 4월 선종하신 정진석 추기경을 떠올리며 ‘옴니버스 옴니아(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준다)’의 뜻을 다시 새겨봅니다. 정 추기경은 생의 마지막에 장기까지 기증하며 모든 것을 주고 갔습니다.
그를 생각하며 또 한 사람의 신부를 떠올립니다. 그는 실화영화 ‘나초 리브레’의 주인공 신부입니다. 1998년 5월 멕시코시티. 프로레슬링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이 한 레슬러의 은퇴식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늘 황금색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경기를 해온 그는 이제 53세의 중년이 되었지요.
그가 링에 오르자 박수와 환호가 동시에 터졌습니다. 박수가 잦아들 즈음 그는 황금가면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사람들은 숨을 죽였지요. 마침내 황금가면을 벗은 그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작은 가톨릭교회의 신부 세르지오 구티에레스입니다. 프로레슬링을 하는 동안 저는 보육원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었고,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 뒤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그는 23년 동안 ‘신부’라는 신분을 감춘 채 프로레슬링 경기 수익금으로 3000여 명의 부모 없는 아이들을 돌봤던 것입니다.
그는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시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온몸으로 보여줬습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 ‘자네가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의 의미까지 오롯이 일깨워주었지요.
여기에서 ‘단 한 사람’은 ‘수많은 개인’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각각 ‘하나’이면서 또 ‘모두’이지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달라지고 또 ‘내’가 새로워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