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 오분동에 있는 고성산(해발 99.7m) 밑 ‘이사부 우산국 복속 출항지(異斯夫 于山國 復屬 出港地)’ 기념비
[오분동 고성산은 육백지맥의 말단이다.]
[삼척시는 1,500여 년 전 신라 이사부 장군이 울릉도·독도를 정복하기 위해 출항했던 삼척시 오분동 고성산 밑 이사부 우산국 정복 기념비에서 매년 이사부(異斯夫) 장군 숭모제를 봉행한다. 고성산 요전산성 아래 바닷가에 ‘이사부 우산국 복속 출항지(異斯夫 于山國 復屬 出港地)’ 기념비와 나룻배 한척이 전시되어 있다. 이사부는 512년 삼척에서 출항하여 우산국(울릉도)을 복속시켰다.]
[삼척 요전산성(오화리산성)
기자명 안병철 기자
대경일보 기사 입력 : 2021.07.28 19:43 수정 2021.07.29 09:37
강원도 삼척시(三陟)는 강원도 동해안 최남단에 있다. 서쪽으로 태백산맥이 이어져 1000m 이상 고위평탄면을 이룬다. 동쪽은 급경사 해안평야를 형성한다. 삼척시 원덕읍 노경리와 동해시 북평동 구호마을, 발한동 택지개발지역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청동기 시대 유적이 많아 그 시기부터 인구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 이후 진한의 소국중 하나인 실직국이 들어선다. 인근에 울진의 파조국(波朝國,또는 파단국(波但國)), 강원도 대부분의 동예와 공존했다. 서기 50년 경, 실직국이 파조국을 합병한다. 60년 경, 동예의 침공을 받자 안일왕(安逸王)은 일시 나라를 파조국으로 옮긴다. 102년 경 동해안일대로 대거 세력을 확장한 실직국은 경주시 안강읍 음즙벌국과 분쟁을 벌였다. 오랜 분쟁으로 양국이 지친데다 결말이 나지 않자 결국 진한 종주국인 신라의 중재를 요청한다.
그러나 신라는 오히려 중재과정의 사건을 빌미로 두 나라를 침공해 음즙벌국과 인근의 압독국을 합병한다. 이어 신라는 서기 104년 실직국도 합병한다. 신라는 이를 계기로 강원도일대까지 세력권을 확장한다. 삼척 일대가 강원도에서 유일한 신라 영역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실직국은 자치권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481년 장수왕대 고구려의 남침을 받아 신라가 포항일대까지 영역을 빼앗기면서 실직국도 자치권이 박탈된다. 그리고 국명 대신 실직군(悉直郡)이라는 군 단위 고을로 전락시킨다. 국가로서 완전히 멸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신라는 지증왕6년(505년) 실직국을 다시 빼앗아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북방진출 군사적 거점을 만든다. 이 때 신라 실직주 군주(軍主)로 부임해 7년간 다스린 인물이 이사부(異斯夫) 장군이다. 이사부는 이곳에 주둔하면서 서라벌에서 이끌고 온 경군(京軍)과 현지인으로 구성된 병력을 합쳐 국경 군사력을 양성한다. 그리고 512년 우산국(울릉도)을 정벌하고 북쪽 하슬라주(강릉)로 영역을 확대한다.
삼척에는 이 시기에 쌓아 조선시대까지 오랜 기간 활용된 산성이 있었다. 삼척시 오분동 해발 99m 고성산 정상부에 토축 흔적이 남아 있는 요전산성이다. 고성산 주변 동남쪽은 해안, 서쪽은 가파른 절벽이 둘러싸고 있다. 해안 절벽은 동해안에서 가장 험한 지형이 형성돼 있다. 북쪽으로는 태백산맥에서 발원한 오십천이 발 아래 흐른다. 하구 폭이 넓어 건너편 정라진과 간격이 멀다. 넓은 강폭은 성곽에서 해자역할을 한다. 사면이 하천과 바다, 협곡, 절벽으로 둘러싸인 만큼 천혜의 요새다. 남쪽으로는 영동과 영남 해안을 잇는 교통망이 형성돼 있다. 산성 남쪽은 조선조 역참 사직역(史直驛)이 있었다. 산성 아래 오분동에는 과수군기지 오분진이었다. 산성 주변 모두 군사전략적 요충지로 손색없다.
문헌에는 고려 우왕 10년(1384년) 초축, 조선 세조 8년(1462년) 관찰사 허종이 증축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조 책임자는 수군만호(萬戶)였다. 영동 해안 수군이 주둔해 왜구들을 감시하거나 방어했다. 규모는 둘레 560여m, 우물 1곳 등으로 기록돼 있다. 계승루, 진동루 등 누각과 망루도 있었다. 기록은 없지만 신라 이사부 장군 우산국 정벌 출항지란 얘기도 있다. 또 고려조 문신 이승휴(李承休)의 시문집에도 등장한다. 그는 삼척 출신이었다. 1253년 어머니를 뵈러 왔다가 몽골이 고려조정 강화도로 진격해가자 그대로 이곳에 머문다. 이 때 지은 시가 망무릉도행(望武陵島行)이다. 시 구절에 진주부 요전산성(眞珠府 寥田山城)이 있다. 산성에서 몽골군에 대항해 수비 중 지었다고 한다. 이 때도 중요한 군사요새로 활용됐던 것이다.
성곽 답사 길은 세 갈래다. 하지만 해안가는 절벽으로 너무 험하다. 옛 7번국도 한티에서 완만한 능선을 타고 오르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다. 잡목과 덤불이 우거져 있기 때문이다. 서쪽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지은 집들이다. 그 사이 계단과 비좁은 산길이 가장 수월하다. 육백산맥 종주 등산객들이 주로 택한다고 한다. 계단과 산길은 지그재그로 나 있다. 멋진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날 즈음 너른 터(현재 밭)가 띈다. 뒤로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산세를 보니 다산 정약용이 ‘민보의’에서 밝힌 산성 입지요건 네 가지가 떠오른다. 고로봉, 산봉형, 마안형, 사모봉형이다. 그중 마안형은 말 등에 얹는 안장처럼 생긴 지형이다. 요전산성은 마안형이다. 너른 터는 말안장 움푹 꺼진 부분에 해당한다. 양쪽 산봉우리와 함께 보면 영락없는 말안장 형태다. 정상부는 북동쪽이다. 동쪽은 해안절벽이므로 성벽은 남서쪽에만 쌓았다. 내성 형태로 내곽을 둘렀다. 거의 유실됐지만 형태는 짐작된다. 정상부 평탄지 문터에 성 돌이 나뒹군다. 계단식 평탄지는 분묘들이 차지하고 있다. 과거 건물 터였을 터인데... 망루 터는 최정상 너른 단 위에 있다.
장방형 단 위에서는 사방이 조망된다. 북쪽은 정라진항, 오십천 하구, 동쪽은 망망대해, 남쪽은 근덕면 해안이다. 서쪽은 옛 7번국도와 고속도로, 철도 터널 등이다. 하산 후 남서쪽 봉우리로 향한다. 너른 터를 지나니 아름드리 소나무가 두 줄로 자란 성벽 흔적이 보인다. 동해를 막아선 성곽아래 평탄지마다 시누대가 울창하다. 화살을 만드는 대나무다. 대숲마다 산성을 지켰던 선인들의 고역이 흠뻑 배인 듯하다.
삼척시 고성산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