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ㅡ 정신적 복지(福祉)의 중요성
조문부ㅡ 제주대 명예교수
제주대 前 총장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21세기 인류사의 각광을 받게 되면서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작년(2011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고, 올해(2012년)는
세계 경기 위축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부터 4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으나, 실제로는
가계부채면에서 최근 재정위기에 빠진 스페인보다 더 심각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양극화로 인한 불안과 불만의 사회심리 현상에 더하여 물신화의 충동이 가열되는 국민 의식의
바탕위에 총선과 대선이 겹친 올해에는 정치권의 최대 화두가 경제민주화와 복지였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3+1정책(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반값등록금)'을 일찌감치 내놨고,
이에 뒤질세라 새누리당도 복지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 무상보육을 공론화 했다. 이른바
물질적 복지 포퓰리즘 논란이 가열되게 됐다. 여기에 정부도 가세해서, 어린이집 이용의
만 0~2세와 만 5세의 자녀에게 부모의 소득과 무관하게 월 20만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영유아
무상보육을 도입, 전면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전체 무상보육 사업비 가운데 50% 가량을
중앙정부가 3697억원의 올해 예산으로 국고 보조하고 나머지 50% 가량은 지자체 예산으로
분담하도록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1년 초등학교 1~3학년을 대상으로 한 무상급식 예산을 배정했다.
민주당은 2011년 현재 전국 229개의 시·군·구 자치단체중 181곳 초등학교에서(부분 무상급식
포함) 무상급식이 시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가운데 전체 학년에 대한 전면실시는
90곳, 부분실시는 91곳에 달했다. 하지만 재정분담 등의 어려움이 있어 전면 무상급식 추진
대신 저소득층 예산지원을 확대하는 수준에서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0~5세 어린이에 한정해서 의료비를 무료화하고 중증질환자는
본인부담금을 전액 면제하며, 0~5세 아이의 보육비를 소득 하위 80%까지 지원하고, 2012년
까지는 전액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집권 뒤에는 지원 범위를 연달아 줄여, 2011년
현재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조정했다. 이는 제한적 무상의료로써
대상을 가리지 않는 전면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민주당과 다른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
소득하위 70% 이하 가구의 자녀 중 초등학교 취학 전 만 5세인 아동에 한정해 무상 보육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만 0~2세 무상보육'이 금년 들어 삐걱거리고 있다. 서울 서초구청이 재원 부족을 들어
8월부터 무상보육 중단을 선언한 것을 시작으로 강남구와 종로구 등 총 11개 자치구의 무상보육
관련 예산이 다음 달 내 소진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5일 밝혔다. 인천은 9월, 경기와 충북,
대전, 광주는 10월 중으로 무상보육 예산이 바닥날 것으로 내다봤다. 경남과 대구는 9월과
11월 사이, 전북, 강원, 충남, 전남, 부산, 울산은 11월, 제주, 경북은 12월 초면 예산 부족으로
사업을 더 이상 추진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우리 사회에 물질적 복지도 필요하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 복지이다.
우리의 현실에 정신적 비상구가 없다. 외환위기 이후 탈권위주의, 평생직장 개념 붕괴,
세대 간 갈등 등 복잡 다양화로 인한 소외감으로 삶의 자신감과 정체성의 상실, 마음의 병을
앓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와 교육적 양극화 등으로 불황의 골이 깊게 패이고,
빈익빈 부익부 등 계층 갈등이 심해져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생계형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급격한 사회 변동에 따라 과거 부자 병으로 알려진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이 전 계층으로 확산되고, 심한 경우 자살로 이어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추산의 국내 정신질환자 수는 작년 말 현재 694만 명으로 전 인구 4800만 명의
14%나 된다고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세상을 살면서 나만이 아닌
남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며 실천할 때 우리 사회는 정신적 복지 사회로 한층 더 나아가는
것이다. 정신적 복지 사회 구현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우리의 몫이다. 정신적 복지 사회
구현과 건전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는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냉철하게 되새겨 보자.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물질적 복지인 '먹고 사는 문제'에 많은 주장과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제는 양극화 등으로 인한 국민의 갈등과 긴장을 해소할 길을 모색하고, 그러한
위기상황을 해결해 나갈 힘을 길러주는 정신적 복지가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기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직시하고 도움이 되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며,
민간단체와 시민사회에서도 이러한 정신적 복지에 관심을 두어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