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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레드포드 (Robert Redford)
등려군님이 좋아하신 배우라지요. 1937년 8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 출생 직 업 : 배우, 프로듀서, 제작자 본명은 찰스 로버트 레드포드 주니어 폴 뉴먼과 함께 출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공원의 맨발>로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았고, 존경의 대상이며, 그와 함께 작업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아래 등려군님 영상은 로버트 레드포드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추억(The Way We Were)의 주제가입니다.
리차드 클레이더만 (Richard Clayderman)
본명 : Philippe Pagés 학력 : 콩세르바투와르 음악원 피아노과 63개 음반 플래티넘, 253개의 골드레코드, 800곡 이상 레코딩 기록 소유
피아노 선생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쳐 훗날 아들의 성공에 기반이 되도록 했다. 리차드 클레이더만이 여섯 살이 되던 해에는 모국어인 불어보다 악보를 더 능숙하게 읽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리차드 클레이더만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클래식과 팝의 결합을 통한 레퍼토리를 통해서 '뉴 로맨틱' 스타일을 창조했다. 로맨스의 왕자는 단순히 기록적인 아티스트가 아니었다. 무대에서는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하므로 그의 콘서트는 'Spectacular'라고 할 수 있다. 콘서트에서 나의 10명의 뮤지션 또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감정의 모든 종류와 다른 템포, 리듬 그리고 스타일이 섞이는 것이 좋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등려군님과 같은해 출생이고 아름다운 선율과 온화하고 가정적인 성품으로 인연이 될수도 있었겠지요.
제갈량 諸葛亮 (공명)
제갈량(諸葛亮ㆍ181∼234)은 중국 삼국시대의 저명한 정치가다. 자(子)는 공명(孔明)이고 동한시대 영제(靈帝) 광화 4년(181) 7월 23일에 서주의 낭야군 양도현출생. 부친 제갈규(諸葛珪)는 태산군의 승(丞)을 지냈고, 세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두었다. 첫째 아들이 제갈근(諸葛瑾), 둘째 아들이 제갈량(諸葛亮), 막내아들이 제갈균(諸葛均)이었다. 제갈량은 어릴 적에 생모인 장씨(章氏)가 병으로 사망했고, 이에 부친은 얼마 후에 재가했다. 이후 부친 역시 영제 중평(中平) 6년(188)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때에 제갈량은 나이 겨우 8세로 그의 가족 모두는 숙부인 제갈현(諸葛玄)에게 기탁했다. 제갈현은 예장 태수로 부임하며 어린 제갈량, 제갈균과 두 명의 조카딸들을 데리고 갔고, 나이가 많은 제갈근과 그 계모는 고향에 남겨 두었다.
형주목 유표에게 의탁한 제갈현을 따라 양양에 거주하던 제갈량은 제갈현 사후 방덕의 보살핌으로 양양의 서쪽 교외인 융중에서 농사일과 독서를 하며 은거 생활을 했다. 건안 12년(207) 유비의 삼고초려를 통해 유비의 군사가 되었다. 그는 조조와 대항하기 위해 손권과 동맹을 맺고 촉한과 한실의 부흥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유비가 대규모 군대를 조직하고 촉한을 창건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유비는 그를 매우 신임하여 임종시 자기 아들에게 그의 충고에 꼭 따를 것을 당부했다. 뿐만 아니라 유비는 자기의 아들이 무능할 경우 제갈량이 직접 제위에 오르게 하도록 유언했다. 기계제작과 수리에 능했던 제갈량은 한꺼번에 여러 대의 화살이 발사되는 활을 발명했고 일련의 전술법인 팔진법(八陣法)을 완성했다고 한다.
성웅 이순신
임진왜란으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이 위험하게 되었을때 바다에서 왜적을 쳐부수어 적을 떨게 하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어 왜적들을 무찌른 이순신장군. 옳지 못한 자들의 모함으로 형벌을 받고서도 의연히 나라걱정을 하며 백의종군을 했고 전쟁에서는 부하에게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와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믿고 따르게 하며 항상 의롭고 공정하기만 하던 장군
■ 이순신은 서양 사학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원칙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의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이 아니었다. 영국인에게 Nelson,과 견줄 수 있는 해군제독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이순신이 동양의 위대한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영국 해군준장,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 ■ "천지를 주무르는 재주와 해를 다시 손 본 공로다"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 ■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 옛부터 장군으로서 묘법을 다한 자는 한둘에 그치지 않는다. 해군 장군으로서 이를 살펴보면 동양에서는 한국의 이순신, 서양에서는 영국의 NELSON(1758-1805)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불행히도 이순신은 조선에 태어났기 때문에 서양에 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임진왜란의 문헌을 보면 실로 훌륭한 해군장군이다. 서양에서 이에 필적할 자를 찾는 다면 네덜란드의 Ruyter Michiel(1607-1678) 이상이 되어야 한다. 넬슨과 같은 사람은 그 인격에 있어서도 도저히 어깨를 견줄 수가 없다. 장군(이순신)의 위대한 인격, 뛰어난 전략, 천재적 창의력, 외교적인 수완 등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 짝을 찾을 수 없는 절세의 명장으로, 자랑으로 삼는 바이다.<일본 해군준장, 사토 데쯔라로> ■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하는 것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다" ■ "이순신의 죽음은 마치 넬슨의 죽음과 같다. 그는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이기었다" ■ 이순신은 청렴한 인물로, 그 통솔력과 전술능력으로 보나 충성심과 용기로 보나 이러한 인물이 실재(實在)했다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상적 군인이었다.영국의 넬슨 이전에 있어서의 이름난 장수이기도 하거니와 세계 역사상 이순신만한 사람이 없으며, 이 인물의 존재는 조선에 있어서 까지도 잊혀지지 않겠지만, 도리어 일본 사람의 편에서 그에게 존경심이 계승되어, 명치유신 기간에 해군이 창설되기까지 하였으니, 그업적과 전술이 연구되어져야 한다. <역사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 고니시, 시마즈 등은 이순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싸우다가 또 패주했다. 이야말로 죽은 제갈(諸葛孔明)이 살아 있는 중달(仲達)을 쫓은 것이나 다름없다. 싸움이 그치자 그제서야 비로소 이순신의 죽음을 안 진린은 놀라고 배에 엎어지기 세 번이더니 탄식하기를 “실로 그만한 자 고금에 다시없다!”고 하였다.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 그 충렬(忠烈). 조선왕조는 쇠망하기 시작하여 3 백년 뒤 일본에 합병 되었다. 하나, 호걸 이순신의 영명(英名)은 천추에 길이 빛날 것이다.<(이조사 대전)저자, 아오야 나기(靑柳南冥)> ■ 도고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그 발가락 한 개에도 못 따라간다. 이순신에게 넬슨과 같은 거국적인 지원과 그 만큼의 풍부한 무기와 함선을 주었다면, 우리 일본은 하루 아침에 점령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대단히 실례인 줄알지만, 한국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라고 떠받들기만 할 뿐 그 분이 진정으로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하는 것은 우리 일본인보다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일본 해군 전략 연구가, 가와다 고오( 川田功 )>
일생을 홀로 지내시다 떠나신 우리 등려군님 다음생에는 이분들처럼 좋은분을 만나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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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혼이 아를다운분들......여유로움이 묻어 있는분들.......... 삶을 사랑하신분들........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말씀이 맞네요!....정녕 영혼이 아름다운 분들....우리 등님처럼....Billionaire님 오늘도 보람속에 행복하세요!
잘봤읍니다
미소님 덕분에 많은 정보와 지식을 터득합니다.
고맙고 수고 하셨읍니다,
저도 자료올리며 공부가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본받을 분들도 많네요,우리 등님처럼 ...Allegro님 무더운 장마철 건강에 유의하세요!
외국영화 주제가
여러귀한자료 감사합니다
더운여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미소
반갑습니다,,,등군愛님
울등님 신랑감 후보를 찾다보니 이분들이 물망에 오르네요.
등님도 결코 싫어하시지 않겠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