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서루(竹西樓)
소재지 :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죽서루길 37 번지
삼척의 죽서루(竹西樓)는 관동지방을 대표하는 누정이다. 고려 시대 건립된 죽서루는 관동팔경 가운데도 으뜸으로 쳤다. 죽서루가 돋보이는 것은 자연적인 지형 조건을 그대로 활용한 누각이라는 점이다. 자연석 암반 위의 1층 기둥은 높낮이가 제각각이고, 2층 누각은 기둥 사이에 벽이나 창문 없이 모두 개방되어 사방의 경관을 즐기기 좋다. 오래된 연륜과 명성만큼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를 비롯하여 누정기와 누정제영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고려 시대 건립된 죽서루는 총석정·경포대와 같은 관동팔경 가운데도 으뜸으로 쳤다. 태백산에서 시작하여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오십천(五十川), 그 물줄기를 내려다보며 병풍처럼 둘러친 절벽 위에 자리한 죽서루, 정말 천혜의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시대 허목이 지은 「죽서루기」를 보면 죽서루의 경관을 잘 묘사하고 있다.
관동지방에는 이름난 곳이 많다.
그중에 가장 뛰어난 곳이 여덟이니……
그 중에 죽서루를 제일로 손꼽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죽서루는 동해와 마주하며 높은 산봉우리와 깎아지는 벼랑에 있다.
서쪽으로 두타산과 태백산이 우뚝 솟아 있어 아스라이 산봉우리가 보인다.
큰 시내가 동해로 흐르며 꾸불꾸불 50리길 여울을 이루고
그 사이에 울창한 숲과 사람 사는 마을이 있다.
누각 밑에 겹겹이 싸인 바위 벼랑이 천 길이나 되고
하얀 여울이 그 아래로 감돌아 맑은 소를 이룬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면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이 바위 벼랑에 부서진다.
인간 세계가 아닌 듯 아름다운 경치는 큰 바다의 풍경과는 아주 다르다.
유람하는 사람도 이런 경치를 좋아해 제일로 손꼽는 것 아닌가 싶다.
죽서루의 명칭은 죽장사(竹藏寺)라는 절 서쪽에 있는 누각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창건 시기는 명확하진 않지만 1266년(원종 7) 이승휴가 작성한 「죽서루기」가 있어 그 이전에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 창건된 죽서루는 조선 시대 1403년(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에 의해 크게 중수되었고, 그 후 여러 차례 보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죽서루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자연적인 지형 조건을 그대로 활용한 누각이라는 점이다. 커다란 암반 위에 건립된 죽서루의 1층은 17개의 기둥이 서 있는데 그 높낮이가 다 다르다. 자연석 암반 위에 그랭이질하여 세웠기 때문이다. 누각을 오르는 길도 삐뚤빼뚤 자연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누각의 2층은 정면 7칸, 측면은 한쪽은 2칸이고 다른 한쪽은 3칸의 팔작지붕이다. 남원 광한루와 달리 기둥 사이에 벽이나 창문 없이 모두 개방되어 사방의 경관을 즐기기 좋다.
누각 정면에 ‘죽서루(竹西樓)’와 함께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고 크게 쓴 편액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숙종이 1711년(숙종 37) 죽서루에 들렀다가 삼척부사 이성조에게 쓰게 하였다고 한다. 누정에는 오래된 연륜과 명성만큼 이곳을 다녀간 유명 인사의 현판들이 즐비하다.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를 비롯하여 누정기와 누정제영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누각 안에 길게 걸려있는 ‘제일계정(第一溪亭)’은 1662년(현종 3) 삼척부사 허목이,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戲之所)’는 삼척부사 이규현이 이곳의 특별한 경치를 비유하여 쓴 글이다.
오래되고 알려진 누정에는 많은 시문이 걸려있다. 하지만 왕이 지은 어제시는 흔치 않다. 숙종은 죽서루의 경관을 감탄하며 다음과 같이 사실적으로 노래한 시문을 남겼다.
우뚝 솟은 절벽 위에 백 척의 높은 누각
아침 구름 저녁 달이 그림자를 담아 맑게 흐르네
출렁이는 물결 속에 고기는 떠올랐다 잠기고
일 없이 난간에 기대어 백구와 친하게 지내네
이처럼 오랜 역사와 경관을 자랑하는 만큼 유명한 서화가들이 남긴 작품들도 많이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정선·김홍도·강세황·엄치욱·허필 등이 죽서루를 다녀갔고, 그 경관을 그림으로 그렸다. 현재 보물 제213호인 죽서루는 삼척의 주민과 여행객이 누정에 올라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며 발 뻗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죽서루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