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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무기 수출 대국'으로 변모한 납득 이유] 사실 K-POP이나 한국 드라마와 비슷한 사업 전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영향 미쳤다 / 3/30(일) / 동양경제 온라인
근년, 한국의 방위 산업은 대두가 현저하다. 2000년대에 무기 수출의 시장 개척에 성공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그 수출 경쟁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방위 산업의 지정학 앞으로의 세계 정세를 읽기 위한 필수 교양」에서 일부 발췌·재구성해, 한국의 방위 산업의 현상을 소개한다.
※ 본 고는 『방위 산업의 지정학 앞으로의 세계 정세를 읽기 위한 필수 교양』에서 일부 발췌·재구성한 것입니다.
■ '자주국방' 정책과 방위산업 육성
한국에서는 당초, 방위 산업의 시작에는 불리한 상황에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북부에서 광물자원을 생산함에 따라 일제강점기에는 중국과의 국경인 압록강에서 동양 제일을 자랑하던 수풍댐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었고, 중공업에 대한 투자는 반도 북부에 집중되었다.
이 때문에 반도 남부에서는, 방위 산업의 기반이 되는 중공업의 발전은 늦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전쟁(1950~53년)으로 국토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후 한국은, 무기 공급은 동맹국인 미국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해 베트남전으로 피폐해진 미국은 강경책을 쓰지 않았다. 이에 '실망'한 한국은 박정희 정권(1963~79년) 하에서 '자주국방'을 추진하고, 중공업 진흥정책과 결합해 방위산업 기반 강화에도 나선다.
1980년대 고도 경제성장 과정에 접어든 한국에서는 철강·자동차·조선 등 산업이 발전해 군용 차량·함정의 개발·생산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이를 뒷받침한 것이 미국으로부터의 기술 이전이었다
{※이토 고타로 "한국의 국방정책 │ '강군화'를 뒷받침하는 방위산업과 국방외교"(勁 초서방, 2023년)}.
당시의 미국은 한국의 군사력을 북한에 대항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보고 있어, 미국에 있어서도 대한 군사기술 원조는 유의미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은 1970~80년대에 걸쳐 소총·야전포·전투차량 등 육상 장비를 중심으로 국산화를 추진했다.
해군 함정으로는 장기간에 걸쳐 미국으로부터의 중고 함정 공여에 의지했지만, 1980년대에 주요 함정으로서는 처음으로 동해급 콜벳(만재 배수량 1100톤)을 건조한다. 이는 한국 조선업이 이전까지 세계 조선시장의 절반가량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을 급속히 추격한 시기다.
동해급 확대형으로 24척으로 대량 정비된 것이 포항급 콜벳(1,200톤)이며,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격침된 '천안함'도 동급에 속한다. 현재 구축함과 강습상륙함, 잠수함까지 포함해 해군 함정은 거의 모두 국산이다.
육상·해상 장비의 국산화 진전에 비하면, 한국에서는 항공 장비의 국산화는 느렸다. 한국이 F-5 전투기 라이센스 국산을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F-16 전투기의 라이센스 생산도 시작되어 산업으로서의 힘을 착실히 붙여 나갔다.
F-16의 라이센스 생산 시에 미국의 제너럴·다이나믹스(현·록히드·마틴)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고 있어, 그것을 기초로 초음속 연습기·공격기 T‒50의 개발을 실시했다.
한국 최초의 국산 전차 K1의 개발에서는 크라이슬러의 기술 지원을 받았지만, 후에 크라이슬러는 방위 관련 사업을 제너럴·다이나믹스에 매각하고 있다. 한국 방위산업의 출범은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깊게 관여하는 모양새가 됐다.
■ 무기 수출 시장 개척 성공
한국에서는 1975년부터 무기를 수출하고 있었지만, 냉전 후에는 국내 시장만으로는 공급을 채우는 것이 불충분하다고 하여 무기 수출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국내 시장은 협애임을 전제로 해외 시장도 염두에 둔 산업 육성 전략을 취하고 있어, K-POP이나 한류 드라마와 비슷한 사업 전개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서자 무기 조달과 방위산업 육성을 일원화하는 방위사업청이 국방부 내에 설립됐고(2006년), 2008년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톱 세일즈 외교'로 한국산 무기를 판매했다.
역시 재벌기업(현대건설)의 사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각국 대사관에 있는 주재 무관이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지지하는 구조가 완성되어 갔다.
단지 톱 세일즈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60년대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닭고기의 대불 수출 증가를 요구해 닭고기 세일즈맨으로 프랑스에서 야유를 받았고, 일본의 이케다 하야토 총리도 방불 때면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트랜지스터 세일즈맨으로 불렸다.
한국산 무기의 주 고객은 전통적으로 중동과 동남아 국가들이다. 이들 지역의 국방 지출은 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무기 수출은 중동과 동남아에서의 국방 지출 증대 물결을 잘 탔다.
근년에는 중동·동남아시아 이외로의 판로 확대에도 주력하고 있다. 물론 한국은 NATO 규격으로 무기를 개발·정비하고 있기 때문에, NATO 제국이나 NATO 규격을 채용하고 있는 서방 각국에 있어서, 한국제 무기는 보급·정비면에서의 장애는 없다.
■ 해외시장에서 강점 발휘한 육상장비
한국은 전통적으로 육군국이기도 해 해외시장에서 강점을 발휘해 온 것은 군용차량, 화기 등 육상장비였다. 최근 수출 성공 사례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만드는 K9 자주포가 있다. 한국 이외에 호주, 노르웨이, 핀란드를 포함한 세계 8개국이 채용하고 있다.
철저하게 수출처의 요망에 따라 세심한 개수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성공의 배경에 있다고 한다. 최근 몇 년간 K9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되는 자주포가 됐다.
기술력 향상과 함께 한국산 무기의 성능이 시장에서 인지돼 왔고 전투기와 함정 등도 수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에 2022년 2월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박차를 가했다. 러시아의 침공을 계기로 유럽에서는 국방력 강화에의 기운이 생겼지만, 우크라이나에의 무기 공여도 있어, 무기에 대한 수요가 단번에 높아졌다.
이는 전투차량이나 화포 등 내구적인 장비품뿐만 아니라 탄약 등 소모품에도 이르렀는데, 이에 한국 방위산업이 화답했다.
또한 한국에서는 신조품뿐만 아니라 중고 무기의 무상 공여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앞서 꼽은 동해급 콜벳은 퇴역 후 1척이 콜롬비아로 양도되고, 차급인 포항급도 퇴역 후에는 대부분 페루, 이집트, 필리핀, 베트남 등에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다.
여기서 한국의 주를 이루었던 두 개의 방위 관련 기업을 살펴보자.
세계 방위 관련 기업 순위(2023년)에서는 56위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87위의 현대로템이다.
■ 한국의 방위 관련 기업
한국항공우주산업(KAI) | |
매출액 | 29.1억달러 (이중 방위관련 22.9억달러 : 79%) |
종업원 수 | 5000명 |
사업분야 | 항공기 |
원래 한국의 항공우주산업은, 조선을 주력으로 하는 재벌계 중공업 메이커의 한 부문으로서 존속하고 있었다. 이 사정은 일본과 많이 비슷하다. 다만 1997년 외환위기로 재벌계 기업들이 모두 사업 부진에 빠졌다. 이 때문에 현대, 삼성, 대우의 항공기 부문은 정부 주도로 합병되어 1999년 10월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설립되었다.
KAI의 전신사 중 하나인 삼성항공공업은 한국 공군을 위해 KF-16 전투기(한국 공군 사양의 F-16)를 라이선스 생산하고 있었다. 참고로 F-5의 라이선스 생산은 대한항공 제조부문이 했다. KAI는 설립 직후부터 국내 최초의 국산 항공기가 될 KT-1 연습기(터보프롭의 초등연습기) 개발에 착수했다. 게릴라 대책용의 경공격기형도 개발되어 연습기형과 함께 수출에도 성공하고 있다.
그 후는 군용기, 군용 헬리콥터의 개발·생산을 실시하는 것과 동시에, 보잉이나 에어버스 등 구미 대기업 메이커로부터 민간 항공기의 분담 생산을 하청 받고 있다.
최근에는 신형 전투기 KF-21을 개발해 양산 준비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유로파이터나 라팔, JAS39 그리펜, 일본의 F-2 전투기 등과 같은 세대에 해당한다. KAI는 단기간에 이만한 기체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췄다.
KAI는 외환위기 때 재벌기업 구제책으로 정부 주도로 설립된 바 있으며 현재도 최대주주는 한국수출입은행(보유비율 26% 이상), 두 번째는 국가연금기구(9% 이상)로 자본금의 3분의 1 이상을 정부 기관이 보유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된 KAI지만, 경쟁력을 갖추면 서구로부터는 '주식 보유 형태로 정부의 지원이 있어 공정한 경쟁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을 버릴 수 없다. 구미가 때때로 주장하는 「공정한 경쟁」의 정의는, 상당히 독선적이다.
[주요 방위장비]
・ T-50연습기 : 최고 속도 마하 1.5, 전투 행동 반경 400km
한 최초의 국산 제트기로 연습기로 개발됐다. 항공자위대의 T-4 연습기에 해당하는 기종이지만, T-50은 초음속 비행이 가능하다(T-4는 아음속 비행만 가능하다). 제너럴 다이내믹스(나중에 록히드 마틴에 매각)의 기술 지원에 의해 개발되기도 했으며, 평면도에는 F-16 전투기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이 점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전투기인 F-16의 조종사 양성을 위한 연습기로서 T-50의 우위에 연결된다. 덧붙여서 T-50의 국산화율은 59%로 보여지고 있다.
영국의 호크 연습기처럼 이런 종류의 군용 연습기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소규모 개조를 한 경공격기형도 개발되고 있다. 고성능을 추구함으로써 고가의 기체가 되었지만,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나 중동(이라크)에 수출되었고, 2022년에는 폴란드도 본기의 도입을 결정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기술지원을 받아 영국제 부품도 채용하고 있으므로, 수출에 있어서는 양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실제로 우즈베키스탄이나 아르헨티나로의 수출에는, 각각 미국이나 영국(포클랜드 제도의 영유를 둘러싸고 아르헨티나와 계쟁중)이 반대해 실현되지 않았다고 보도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공군 아크로바틱팀 블랙이글스의 사용기이기도 하다.
■ 철도차량에서 전차 명문으로
현대로템 | |
매출액 | 27.5억달러 (이중 방위관련 12.1억달러 : 44%) |
종업원 수 | 4000명 |
사업분야 | 전투차량 |
KAI와 마찬가지로 현대로템도 외환위기의 결과로 생겨난 기업이다. 재벌계(현대, 한진, 대우) 철도차량 부문이 합병되어 1999년 7월 설립되었다.
합병 전 기업 중 하나인 현대차 계열 현대정공은 1980년대 미국에서 수입한 M48 전차의 현대화 개보수를 수주했다. 이와 병행해 한국 육군은 미국 크라이슬러의 기술 지원을 받아 국산 전차의 개발·생산을 계획했고, 현대정공이 담당으로 지정됐다. 현대로템의 전투차량 제조 부문은 이 같은 실적을 갖고 있었다.
다만 현대로템의 주력 사업은 철도차량 제조로 아시아·아메리카·유럽뿐 아니라 오세아니아와 중남미에도 수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방위 부문의 매출 비율은 44%로 비교적 작다. 가장 최근에는, 이 값은 상승 경향에 있다.
■ 현대로템에서는 서방 표준인 120mm 활강포 탑재
현대로템이 전투차량에서 큰 실적을 거두게 된 K1 전차는 크라이슬러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보아 이 회사의 미국 전차 M1과 비슷하다. K-1 전차는 당초 당시 서방국가의 표준전차포였던 105mm 시조포를 탑재했다.
그런데 1990년대 북한이 125mm 활강포를 탑재하는 T-72를 러시아로부터 수입 또는 라이센스 생산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현대로템에서는 새롭게 서방 표준이 된 120mm 활강포를 탑재한 개량형을 개발·생산했다.
개량형에서는 사격 관제 시스템도 신형으로 고쳐지고 있다. 그러나 원래 120mm 포의 탑재를 상정하지 않은 차체였기 때문에 기동력이나 거주성을 해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방위장비]
・ K2전차 : 주포 120mm 활강포, 최고속도 시속 70km
K1 전차의 후계자로 개발·생산되고 있는 신형 주력 전차. 육상자위대의 10식 전차와 같은 세대의 전차다. 시작 단계에서는 K2의 국산화율은 77% 정도였지만, 양산 시점에서는 98%가 되었다.
포탄에는 적의 장갑 관통을 목적으로 하는 철갑탄, 폭발로 타격을 주는 유탄 등이 포함되며 밀리미터파 센서나 적외선 센서를 탑재해 장갑이 얇은 적 전차의 상부를 공격하는 고성능 포탄 운용도 가능하다. 방어에 대해서도 신형 장갑은 교체 수리가 용이한 모듈형이 채용됐고 데이터 링크 단말기를 탑재하는 등 전술 정보 처리도 뛰어나다.
현시점에서 한국 이외에서는, 폴란드가 자국 전용으로 개수한 K2 전차 1000량의 채용을 결정했다(육상 자위대의 전차 보유수는 300량 ){*2024년 3월말 현재(방위성편 「2024년판 방위 백서」자료편)}. 폴란드는 이 밖에도 K9 자주포와 FA-50 공격기(T-50 공격기형) 등 한국산 무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오노 케이지: 방위성 방위 연구소 주임 연구관
https://news.yahoo.co.jp/articles/876672b33d64e2a1383c33521ead3201c1f25ae4?page=1
【韓国が「武器輸出大国」に変容した納得理由】実はK‐POPや韓ドラと似た事業展開?ロシアによるウクライナ侵攻も影響している
3/30(日) 14:02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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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経済オンライン
ロシアによるウクライナ侵攻によって、韓国の武器輸出競争力に拍車がかかっている(写真:portland_master/PIXTA)
近年、韓国の防衛産業は台頭が著しい。2000年代に武器輸出の市場開拓に成功し、ロシアによるウクライナ侵攻によってその輸出競争力はさらに強まっている。『防衛産業の地政学 これからの世界情勢を読み解くための必須教養』から一部抜粋・再構成のうえ、韓国の防衛産業の現状を紹介する。
※本稿は『防衛産業の地政学 これからの世界情勢を読み解くための必須教養』から一部抜粋・再構成したも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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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主国防」政策と防衛産業の育成
韓国では当初、防衛産業の立ち上げには不利な状況にあった。朝鮮半島では北部で鉱物資源を産出したことから、日本統治時代には中国との国境に当たる鴨緑江(おうりょくこう)で東洋一を誇った水豊ダム・水力発電所が建設され、重工業への投資は半島北部に集中していた。
このため半島南部では、防衛産業の基盤となる重工業の発展は遅れていた。そして何よりも、朝鮮戦争(1950〜53年)で国土は徹底的に破壊された。
その後の韓国は、武器の供給は同盟国のアメリカに大きく依存する。ところが1960年代後半の北朝鮮による挑発行為に対して、ベトナム戦争で疲弊したアメリカは強硬策を採らなかった。これに「失望」した韓国は、朴正熙(パクチョンヒ)政権(1963〜79年)の下で「自主国防」を推進し、重工業振興政策と抱き合わせで防衛産業基盤の強化にも乗り出す。
1980年代に高度経済成長過程に入った韓国では、鉄鋼・自動車・造船などの産業が発展し、軍用車両・艦艇の開発・生産の基盤を形成することになる。これを支えたのがアメリカからの技術移転だった{※伊藤弘太郎『韓国の国防政策│「強軍化」を支える防衛産業と国防外交』(勁草書房、2023年)}。
当時のアメリカは、韓国の軍事力を北朝鮮に対抗するには不十分であると見ており、アメリカにとっても対韓軍事技術援助は有意義なものと考えられていた。こうして韓国は1970〜80年代にかけて、小銃・野戦砲・戦闘車両などの陸上装備を中心に国産化を推進した。
海軍艦艇では長期にわたってアメリカからの中古艦艇供与に頼っていたが、1980年代に主要艦艇としては初めて東海級コルベット(満載排水量1100トン)を建造する。これは韓国の造船業が、それまで世界の造船市場の約半分を押さえていた日本を急速に追い上げた時期に当たる。
東海級の拡大型として24隻と大量に整備されたのが浦項級コルベット(同1200トン)で、2010年3月26日に北朝鮮の魚雷攻撃で撃沈された「天安」も同級に属する。現在では駆逐艦や強襲揚陸艦、潜水艦も含めて海軍艦艇はほぼすべてが国産だ。
陸上・海上装備の国産化進展に比べると、韓国では航空装備の国産化は遅かった。韓国がF‐5戦闘機のライセンス国産を始めたのは1980年代初めだった。1990年代に入るとF‐16戦闘機のライセンス生産も始まり、産業としての力を着実に付けていった。
F‐16のライセンス生産時にアメリカのジェネラル・ダイナミックス(現・ロッキード・マーチン)から技術支援を受けており、それを基に超音速練習機・攻撃機T‒50の開発を行った。
なお韓国初の国産戦車K1の開発ではクライスラーの技術支援を受けたが、後にクライスラーは防衛関連事業をジェネラル・ダイナミックスに売却している。韓国の防衛産業の立ち上がりは、ジェネラル・ダイナミックスが深く関わる形となった。
■武器輸出の市場開拓に成功
韓国では1975年から武器を輸出していたが、冷戦後には国内市場だけでは供給を満たすのは不十分であるとして、武器の輸出を積極的に行うようになった。初めから国内市場は狭隘(きょうあい)であることを前提に、海外市場も視野に入れた産業育成戦略を採っており、K‐POPや韓流ドラマと似た事業展開ともいえる。
2000年代に入ると、武器の調逹や防衛産業育成を一元的に行う防衛事業庁が国防部内に設立され(2006年)、2008年に政権の座についた李明博(イミョンバク)大統領は自ら「トップ・セールス外交」として韓国製武器の売り込みを行った。
さすが財閥系企業(現代建設)の社長だっただけのことはある。そしてこれらの活動を、各国大使館にいる駐在武官や大韓貿易投資振興公社(KOTRA)が支える仕組みができ上がっていった。
ただトップ・セールスは韓国だけの話ではない。1960年代にアメリカのケネディ大統領は鶏肉の対仏輸出増を要求したことから「鶏肉のセールスマン」とフランスで揶揄され、日本の池田勇人首相も訪仏時にはフランスのマスコミから「トランジスタのセールスマン」と呼ばれた。
韓国製武器の主な顧客は、伝統的に中東と東南アジア諸国だ。これら地域の国防支出は大きな伸びを示している。韓国の武器輸出は、中東や東南アジアでの国防支出増大の波にうまく乗った。
近年では、中東・東南アジア以外への販路拡大にも注力している。もちろん韓国はNATO規格で武器を開発・整備しているので、NATO諸国やNATO規格を採用している西側諸国にとって、韓国製武器は補給・整備面での障害はない。
■海外市場で強みを発揮した陸上装備
韓国は伝統的に陸軍国であったこともあり、海外市場で強みを発揮してきたのは軍用車両や火器などの陸上装備だった。最近の輸出成功例に、ハンファ・エアロスペースが製造するK9自走砲がある。韓国以外にオーストラリア、ノルウェー、フィンランドを含む世界8カ国が採用している。
徹底して輸出先の要望に応じて、きめの細かい改修をしていることが、この成功の背景にあると言われている。この数年間、K9は世界でもっとも輸出されている自走砲となっている。
技術力の向上に加え、韓国製武器の性能が市場で認知されてきたこともあり、戦闘機や艦艇なども輸出競争力を発揮している。これに2022年2月に始まった、ロシアによるウクライナ侵攻が拍車をかけた。ロシアの侵攻をきっかけに欧州では国防力強化への機運が生じたが、ウクライナへの武器供与もあり、武器に対する需要が一気に高まった。
それは、戦闘車両や火砲などの耐久的な装備品だけではなく弾薬などの消耗品にも及んだが、これに韓国の防衛産業が応えた。
また韓国では新造品だけでなく、中古武器の無償供与も積極的に行っている。先に挙げた東海級コルベットは退役後に1隻がコロンビアに譲渡され、次級の浦項級も退役後には多くがペルー、エジプト、フィリピン、ベトナムなどに無償で提供されている。
ここで、韓国の主だった2つの防衛関連企業を見てみよう。
世界の防衛関連企業ランキング(2023年)では56位の韓国航空宇宙産業(KAI)と、87位の現代ロテムだ。
■韓国の防衛関連企業
韓国航空宇宙産業(KAI)
売上高 :29.1億ドル(うち防衛関連22.9億ドル:79%)
従業員数:5000人
事業分野:航空機
もともと韓国の航空宇宙産業は、造船を主力とする財閥系重工業メーカーの一部門として存続していた。この事情は日本とよく似ている。ただし1997年のアジア通貨危機で財閥系企業が軒並み事業不振に陥った。このため現代、サムスン、大宇の航空機部門は政府主導で合併され、1999年10月に韓国航空宇宙産業(KAI)が設立された。
KAIの前身社の1つであるサムスン航空工業は、韓国空軍向けにKF‐16戦闘機(韓国空軍仕様のF‐16)をライセンス生産していた。ちなみにF‐5のライセンス生産は大韓航空の製造部門が行った。KAIは設立直後から韓国初の国産航空機となるKT‐1練習機(ターボプロップの初等練習機)の開発を手掛けた。ゲリラ対策用の軽攻撃機型も開発され、練習機型と併せて輸出にも成功している。
その後は軍用機、軍用ヘリコプターの開発・生産を行うと同時に、ボーイングやエアバスなどの欧米大手メーカーから民間航空機の分担生産を請け負っている。
最近では新型戦闘機KF‐21を開発し量産準備を進めているが、これはユーロファイターやラファール、JAS39グリペン、日本のF‐2戦闘機などと同世代に当たる。KAIは短期間のうちに、これだけの機体を開発できる技術力を身に付けた。
KAIは、通貨危機の際に財閥系企業救済策として政府主導で設立された経緯もあり、現在でも筆頭株主は韓国輸出入銀行(保有比率26%強)、2番目は国家年金機構(同9%強)と、資本金の3分の1以上を政府系機関が保有している。
正に「災い(通貨危機)転じて福」となったKAIであるが、競争力を身に付けると欧米からは「株式保有の形で政府の支援があり公正な競争を歪めている」と非難される可能性は捨て切れない。欧米が時折主張する「公正な競争」の定義は、かなり独善的である。
〔主な防衛装備品〕
・T‐50練習機:最高速度マッハ1.5、戦闘行動半径400km
韓国初の国産ジェット機で練習機として開発された。航空自衛隊のT‐4練習機に相当する機種だが、T‐50は超音速飛行が可能である(T‐4は亜音速飛行のみ)。ジェネラル・ダイナミックス(後にロッキード・マーチンに売却)の技術支援により開発されたこともあり、平面図にはF‐16戦闘機の影響が見られる。
この点は、世界的なベストセラー戦闘機であるF‐16のパイロット養成に向けた練習機としてT‐50の優位性に繫がる。ちなみにT‐50の国産化率は59%と見られている。
英国のホーク練習機のように、この種の軍用練習機ではよくあることだが、小規模な改造を施した軽攻撃機型も開発されている。高性能を追求したことから高価な機体となったが、東南アジア(インドネシア、フィリピン、タイ、マレーシア)や中東(イラク)に輸出され、2022年にはポーランドも本機の導入を決定した。
もっともアメリカの技術支援を受け、英国製部品も採用していることから、輸出に際しては両国の許可が必要となっている。実際にウズベキスタンやアルゼンチンへの輸出には、それぞれアメリカや英国(フォークランド諸島の領有を巡ってアルゼンチンと係争中)が反対して実現しなかったと報じられている。
韓国では、空軍アクロバット・チーム「ブラック・イーグルス」の使用機ともなっている。
■鉄道車両から戦車の名門へ
現代ロテム
売上高 :27.5億ドル(うち防衛関連12.1億ドル:44%)
従業員数:4000人
事業分野:戦闘車両
KAIと同様、現代ロテムもアジア通貨危機の結果生まれた企業だ。財閥系(現代、韓進、大宇)の鉄道車両部門が合併して、1999年7月に設立された。
合併前企業の1つである現代自動車系列の現代精工は、1980年代にアメリカから輸入したM48戦車の近代化改修を受注した。これと並行して韓国陸軍はアメリカクライスラーの技術支援を受けて国産戦車の開発・生産を計画し、現代精工が担当に指定された。現代ロテムの戦闘車両製造部門は、このような実績を有していた。
ただし現代ロテムの主力事業は鉄道車両製造で、アジア・アメリカ・欧州だけでなく、オセアニアや中南米にも輸出している。このため防衛部門の売り上げ比率は44%と比較的小さい。もっとも近年は、この値は上昇傾向にある。
■現代ロテムでは西側標準となった120mm滑腔砲を搭載
現代ロテムが戦闘車両で大きな実績を築くことになったK1戦車は、クライスラーの支援を受けたことから外見は同社製のアメリカ戦車M1に似ている。K1戦車は当初、当時の西側諸国の標準戦車砲だった105mm施条砲を搭載していた。
ところが1990年代に、北朝鮮が125mm滑腔砲を搭載するT‐72をロシアから輸入またはライセンス生産しているという情報が入った。これに対抗するために、現代ロテムでは新しく西側標準となった120mm滑腔砲を搭載した改良型を開発・生産した。
改良型では射撃管制システムも新型に改められている。しかしもともと120mm砲の搭載を想定していない車体だったため、機動力や居住性を損なったといわれている。
〔主な防衛装備品〕
・K2戦車:主砲120mm滑腔砲、最高速度時速70km
K1戦車の後継として開発・生産されている新型主力戦車。陸上自衛隊の10式戦車と同世代の戦車だ。試作段階ではK2の国産化率は77%程度だったが、量産時点では98%となっている。
砲弾には敵の装甲貫通を目的とする徹甲弾、爆発で打撃を与える榴弾などの他、ミリ波センサや赤外線センサを搭載して装甲の薄い敵戦車の上部を攻撃する高性能砲弾の運用も可能だ。防御についても新型装甲は交換修理が容易なモジュール型が採用され、データリンク端末を搭載するなど戦術情報処理にも優れている。
現時点で韓国以外では、ポーランドが自国向けに改修したK2戦車1000両の採用を決めた(陸上自衛隊の戦車保有数は300両){※2024年3月末現在(防衛省編『令和6年版 防衛白書』資料編)}。ポーランドはこの他にも、K9自走砲やFA‐50攻撃機(T‐50の攻撃機型)などの韓国製武器の導入を決めている。
小野 圭司 :防衛省 防衛研究所 主任研究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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