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伏달임 최 건 차
한여름이면 삼복더위라는 불청객과 한판 겨루기 위해 ‘복달임’한다. 7월 중순에는 초복, 하순에는 중복이 초청받지 않은 무법자로 찾아든다. 8월에는 입추가 일단 고개를 내밀다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나면, 삼복의 셋째 말복이 막바지 무더위로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이런 것들로부터 한여름을 무사히 넘기려면 그들과 승부를 내어야 하기에 우선 체력을 보강하려고 삼계탕을 먹자니 옛날이 회상된다. 나는 해방 후 어린 시절 얼마간은 탐진강 상류의 물가 마을 ‘강동’에서 살았다. 그 시절에 동네 장정들은 봄부터 농사일로 지친 몸을 추스르려고 초복에는 냇물에서 멱을 감으면서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중복과 말복 때는 식육용 멍멍이를 물가나 계곡에서 잡아 가마솥에 푹 끓여 걸판지게 동네잔치를 벌리곤 했다.
비가 자주 내리고 후덥지근한 장마 더위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 옛날이 소환된다. 예전 이맘때는 누구나 보신탕을 해 먹었고, 그럴 처지가 아니면 집에 있는 닭으로 백숙을 해 먹었다. 그리고 바닷가 일부 지역에서는 민어를 잡아 탕을 끓여 몸을 보신했었다고 한다. 88서울올림픽을 개최되고 난 이후부터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들고 있고 이제는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는 명분 때문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에 집에서 기르는 짐승으로 보신탕을 해 먹거나 그것을 파는 행위가 일절 금지되었다. 귀한 어종인 민어탕에는 규제가 없지만, 그게 많이 잡히지 않고 값도 비싸 일부 계층에서나 먹는다는 정도로 그치고 있다. 오직 시장에서 손질해서 파는 생닭에 수삼, 황기, 대추, 생밤 등을 넣어 푹 끓인 삼계탕으로 ‘복달임’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이전에 보신탕을 먹었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는 삼계탕으로 바꾸어 먹는다. 영국사람들이 우리더러 개고기를 먹는다고 폄하할 때 나는 그들을 향해 일갈했다. 우리가 먹는 보신탕은 식용으로 길러서 먹는 거다. 그렇지만 너희 영국이나 미국 유럽 백인들은 사람과 가장 가깝다고 하는 말을 잡아먹지 않는가. 말이란 동물은 자기들끼리 사촌을 알아보고 구분한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내력이 육고기를 좋아해 유아 시절 일본에서도 말고기를 먹었고, 1960년대는 미8군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정식 메뉴로 나온 말고기를 먹어 본 적이 있다. 지금도 말고기가 생기면 맛있게 먹을 것이다.
말고기는 먹으면서 개고기를 멀리하는 데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느냐에 따라 인성의 DNA가 형성되는 것 같다는 견해이다. 우리 말에 추하게 못된 짓을 골라 하는 사람을 일컬어 X같은 놈, X자식이라고 하는 게 개의 속성에서 기인 되는 말이지 않나 싶다. 개는 본성적으로 물어뜯고 찢어발기는 짓거리를 즐겨하고 더 심한 것은 성적 문제였다. 어렸을 때 목격한 바로는 개들은 하필이면 동네 공동 우물가나 마을 어귀에서 그런 짓을 장시간 해댄다. 식수를 길으려 우물가를 오가고 지나가는 여인들은 그런 꼴이 흉측스러워 얼굴을 돌려 가곤 했다.
아내의 생일이 초복과 겹치는 때여서 삼계탕을 잘 받아먹었는데, 년 전에 천국에 가버렸기에 옛날이 되었다. 이제는 삼계탕집에 가야 하는데, 시중에는 K푸드의 열풍으로 우리 한식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모양새다. 初伏 때든지 中伏과 末伏을 맞을 때면 삼계탕을 먹으려는 열풍에 전국의 삼계탕 음식점들은 활황을 맞는다. 한류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들도 끼어들고 있다. 여름철 몸보신용으로 널리 알려진 삼계탕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게 전 세계에 알려지고 있어 격세지감이다.
우리 서수원신협 산악회에서도 연례적 행사로 7월 산행은 ‘복달임’으로 하고 있다. 2023년에는 설악산국립공원 내설악의 십이선녀탕을 찾아 계곡 트레킹을 신나게 하고 삼계탕과 수박을 맛있고 풍성하게 먹고서 체력을 보강했다. 올해도 그곳이 좋다고 하여 거기로 갈 작정이다. 전국적으로 비 소식이 있지만, 우리가 가는 곳에는 저녁때쯤에나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여서 다행이다. 집에서 가끔 닭과 부속 재료들을 사다가 해 먹으려 하면 힘이 드는 만큼의 제맛이 아니다. 하지만 산간 계곡을 트레킹 하고서 물가 전문식당에서 산악회원들과 어울려 먹는 삼계탕은 맛과 분위기에 감동된다.
2024년에 다시 찾은 설악산국립공원 십이선녀탕계곡은 역시 환상적이다. 그 옛날 어느 시대였던가 별들이 쏟아질 듯한 깊은 밤이면 하늘에서 열두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숲이 우거진 암반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여덟 곳에 탕을 이루고 있다. 상수도 보호구역이 아니라서 물에 들어가는 이들도 있어 나도 들어가 보려고 준비해 왔다. 드디어 찬기가 나는 탕에서 멱을 감고 나니 정신이 맑아지고 전신이 개운하다. 부지런히 내려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진한 삼계탕을 양껏 먹고 수박으로 입가심을 하고 나니 올 초복‘복달임’을 제대로 한 것 같다. 202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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