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넘치고 솔 감성 충만한 목소리로 '슈퍼 폐'(Superlungs)란 별명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에 합류하라는 제안을 뿌리친 영국 가수 겸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 테리 리드가 암 투병 끝에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일간 가디언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리드의 재능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브리티시 록 충성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지미 페이지가 1968년 레드 제플린을 결성했을 때 싱어로 먼저 선택됐다. 그러나 그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심지어 나중에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는 로버트 플랜트를 추천했다. 그 뒤 딥 퍼플의 합류 제안도 받았는데 그는 솔로 활동을 하겠다며 거절했다. 그의 솔로 경력은 비평가와 동료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차트에서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거쳐 그의 노래들은 많은 이들이 다시 연주했다. 마리안느 페이스풀, 칩 트릭, 크리스 코넬, 잭 화이트의 프로젝트 밴드 '라콘터스'(Raconteurs), 아레사 프랭클린 등 정말 다채롭다. 프랭클린이 1968년 영국 방문 뒤 "영국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세 가지만 꼽자면 롤링 스톤스, 비틀스, 테리 리드"라고 말한 것이 유명하다.
플랜트는 리드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지 몇 시간 안 돼 소셜미디어에 추모의 글을 올려 "당시 테리 리드의 열정과 격려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직 10대였던 우리는 서로의 공연을 부수고 (도노반의 노래인) 'Season of the Witch'를 몇 번이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의 전부였다... 그런 카리스마. 그의 목소리, 그의 음역대... 그 평온한 시대를 포착한 그의 노래... 참으로 슈퍼 폐다. 그는 나를 강렬한 신세계로 끌어올렸고, 그가 거절하기로 선택했다... 나는 지금 그의 앨범 'The River'를 듣고 전우를 위해 눈물 흘린다"고 했다.
그가 합류했다면 그나 그 밴드들이 비슷한 수준의 성공을 거뒀을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그는 확실히 슈퍼스타가 될 기회가 부족하지 않았다. 1949년 케임브리지셔에서 태어난 리드는 10대 초반에 레드비트, 피터 제이, 제이워커스 같은 밴드와 함께 공연했으며, 열여섯 살 때는 아이크 & 티나 터너, 야드버즈(페이지와 제프 벡이 피처링한 단명한 라인업)와 함께 전설적인 1966년 롤링 스톤스의 영국 투어를 지원했다. 그는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1969년 스톤스와 함께 미국 투어를 했는데, 이것이 레드 제플린에 합류하라는 페이지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였다. 리드는 결국 초기 그룹 'Band of Joy'에서 알고 지내던 플랜트와 드러머 존 보넘을 추천했다. 그는 지난해 "내 일을 하겠다는 의도가 강했다"고 가디언에 털어놓은 뒤 "밴드의 절반을 기여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충분했다!"고 덧붙였다.
이듬해 그는 또 딥 퍼플의 리드 싱어를 맡아달라는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의 제안을 마다했는데 그 자리는 결국 그 밴드를 슈퍼스타로 이끄는 데 큰 힘이 된 이언 길런이 맡았다.
리드는 1960년대 도노번, 루루, 허먼스 허미츠, 벡의 히트곡들을 감독했지만 결국은 전형적으로 철권을 휘두르는 영국 아티스트 매니저였던 미키 모스트와 매니지먼트 및 레이블 계약을 체결했다. 그의 데뷔 앨범 'Bang Bang, You're Terry Reid'에는 자주 커버되는 노래 'Without Expression'이 포함돼 있으며, 1969년 그의 이름을 딴 후속작(틀림없이 그의 최고 작품)
'Speak Now or Forever Hold Your Peace'는 브리티시 록 감별사(connoisseurs) 칩 트릭의 1977년 데뷔 앨범에 커버해 수록했다. 그러나 크림, 플리트우드 맥, 제스로 툴 같은 당대 최고의 그룹들과 함께 한 투어에도 성공은 그를 피해만 갔고, 결국 그는 모스트와 헤어졌다. 연이은 계약 분쟁으로 그 뒤 몇 년은 음악계를 떠나야 했다.
그는 1973년 앨범 'River'로 돌아와 캘리포니아주에 정착했다. 하지만 그의 솔로 커리어는 정체를 면치 못해 그는 보니 레이트, 돈 헨리, 잭슨 브라운 등의 연주 세션 일을 했다. 그는 1990년 'the Replacements'와 잼(즉흥) 공연을 하다 그들의 마지막 앨범 'All Shook Down' 세션 연주를 했고, 이듬해 트레버 혼이 앨범 'The Driver'를 프로듀스하면서 그의 커리어에 다시 불을 붙이려 했지만 하릴 없었다. 그는 커리어 말년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프로듀서로 닥터 드레를 모셔 녹음했는데 나중에 가디언에 "(내 앨범인) ‘Seed of Memory’에 매료돼 날 자신의 스튜디오에 촏해 래퍼들과 함께 다시 일하게 해줘다. 매혹적인 경험이었다”고 돌아봤다.
리드는 최근 몇 년 사이에도 계속 연주했는데 이따금 LA 프로젝트 밴드 와일드 허니 일원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목격됐다. 다음달 10여년 만의 영국 투어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주 그의 건강은 악화 일로였다. 유족으로 아내 아네트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