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뒷모습
몇 년 전 우연히 라디오 불교방송을 듣게 되었다.
지금은 아침 9시에 성전스님이 방송하시는 ‘행복한 미소’라는 프로로 바뀐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그전엔 진명스님이 ‘차 한 잔의 선율’이라는 프로를 방송하셨다.
사람들의 생김새가 다 각각이듯 좋아하는 취향도 다르겠지만 난 외향이 세련된 사람
보다는 수수한사람에게 더 끌리고 얼굴보다는 목소리 좋은 사람에게 더 호감이 갔다.
그렇게 얼굴을 모르고 방송을 듣다가 인터넷으로 들어가 스님의 얼굴을 보니 씩씩한
외모가 꼭 여장부 같아 목소리 따로 얼굴 따로 라는 말을 실감했다.
하지만 나를 자석처럼 이끄는 스님의 목소리를 따라 신심도 키우고 들려주시는 클래식
음악에 안목도 넓혀갈 즈음 그 자리를 성전스님이 자신의 쓴 책의 제목에 맞춰 ‘행복한
미소‘ 로 새 단장이 되었다.
늘 제행무상이라 모든 것은 변하고 회자정리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막상 내 마음에서 아무 일 없듯 그냥 새로운 스님을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그 거부감은 진명스님에 대한 나의 절개인 듯 한참을 라디오와 멀어져 지내다가 우연히
성전스님이 쓰신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며 첫 장을 여는 순간 내 가슴속 깊이 울림이 왔다.
다들 동그라미 할 때 누군가 네모! 라고 외치면 그 사람에게 눈길이 가는 청개구리 심정인지는 몰라도 다들 웃거나 사색하는 표정의 프로필 사진에 스님의 얼굴은 없고 뒷모습만 있었다. 어떤 것이 들어있을까? 궁금하지도 않은 걸망하나 메고 뒤돌아 서있는 스님의 뒷모습...
뿐만 아니라 이시대의 문인이자 존경받는 법정스님과도 흡사한 서정적인 글들...
다음날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라디오를 켰다.
참 마음이란...
이젠 스님의 음성이 나직하면서도 어떤 힘을 발휘하는 카라스마와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서정적인 마음이 다시 나의 불심을 다져주었다.
꾸밈없이 소탈한 성품이나 호탕한 웃음소리에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분일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방송에서 산사에서의 하룻밤을 체험할 수 있는 탬플스테이를 한다기에 신청했더니
다행히 스님께서 불러주셔서 성전스님께서 주지로 계시는 남해 용문사로 떠나게 되었다.
주말이라 남편한테 아이들을 맡기고 여행 삼아 홀연히 떠나보니 마치 소풍 나온 아이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생각지도 않은 성전스님과의 하룻밤...
전국 각지에서 나름대로의 사연을 간직한 채 모이신 여러 도반님들과의 하룻밤은 화려하지
않지만 잔잔한 감동과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미소로 맞이할 수 있어 감사했다.
첫 프로그램 행사로 자신의 마음 밭을 살펴볼 수 있는 참선과 선무 그리고 나눔과 차를
마시며 은은한 녹차의 향기처럼 내 삶도 향기로울 수 있기를 기도했다.
욕심을 한껏 내어 모두들 잠든 시각에 나와 함께한 도반과 둘이 밤샘을 하기로 했다.
절 수행을 주로해온 도반 언니는 아직 참선이 익숙하지 않은지 움직임이 느껴지고 난
엄마를 떠올렸다.
그나마 내가 이렇게 요동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엄마 덕분인 것을 안다.
결혼하기 전 한차례 사찰에서 한 달 동안 기거한 적이 있었고 결혼 후에도 다시 한 달을
절에서 보냈으니 난 가끔 선공부가 그리워 어설프지만 스님 흉내를 내고 있었다.
새벽은 어김없이 남해 용문사에도 찾아들어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도량을 도니 자꾸
스님의 털신에 눈길이 머물렀다. 고무신과 털신 그리고 회색가사...
모두가 욕심과는 거리가 먼 아주 소박하고도 수줍은 옷차림이다.
다음날 남해일주와 보리암을 구경하는 것으로 마지막 프로그램은 마쳤다.
내가 돌아오는 길이 멀지 않게 느낄 수 있도록 감동을 주신 스님의 법문이 생각난다.
큰 배가 되어 사소한 감정의 일렁임에 흔들리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이 목소리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은은함 가운데 느껴지는 카리스마와 더없는 겸손함, 그리고 풍부한 감성을 표현한 스님의
책들이 아마 나를 포함한 저 많은 이들의 얼굴에 햇살을 품게 했으리라 믿는다.
난 생각해본다.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감동과 작은 기쁨이라도 느끼게 해 주었는가를...
대전에서 오셨다는 약간의 뇌성마비 불자는 내 가슴을 손으로 치며 말했다.
“저처럼 가슴에 감동을 느껴가세요!” 라고...
누구나 고통을 비껴가려고 애는 쓰지만 고통을 통과한 사람의 영근 열매는 두려워한다.
나는 보았다.
입은 자신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삐뚤어져 가지만 쉬지 않고 웃는 얼굴은 그 자체가
감동이고 몸을 뒤틀리지만 영혼은 온전히 밝음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의 불심을...
나도 그녀처럼 변덕 없는 행복의 햇살을 기대해보며 용기 내어 스님께 손을 흔들었다.
떠나고 난후 나의 뒷모습을 어떠했을까?
“나는 자유인이다!”라고 외쳤던 사찰에서의 하룻밤을 기억하며 떠나는 내 뒷모습도 아름답길 바란다.
첫댓글 행복한 시간속의 여행 잘 봤습니다.. 저도 법수원님 문방을 찾아 갈께요 감사합니다^^
아~~아 어느분인지 얼굴이 살짝 기억납니다..함께 행복나눠요..글솜씨도 참 좋으셔요&^^
후기 잘 읽고 갑니다......
읽고 갑니다...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도 방송을 듣고 목소링에 뿅~~~책을 읽고 맑고 투명한 영혼에 뿅~~~요즘 스님 통해 부처님에 대한 제 믿음이 어느정도인지 체크하면서 흐트러진 마음 다잡아 다시 발심하며 나름대로 아주 행복한 시간 보내고 있습니다. 부처님전에 마음 모은 님의 모습.뒷모습도 아주 예뻤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름답길 바라시는 님의 뒷모습은 분명 아름다우셨습니다. 마음도 글도 투명하게 빛납니다.
보리수님이랑 법수원님은 같은과 같아 보이네요~~^^
같은과라... 어느 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x형의 사람들... 즉 같은 생각과 감성 그리고 같은 성향의 사람을 말한다더군요.^^ 모두들 따뜻한 리플 감사드립니다, 꾸벅...
템풀스테이의 인연은 축복입니다~~법수원님의 글 속에 아름다움이 듬뿍 들어있습니다..역시 행복한 미소방입니다~입춘따라 찾아 온 봄 향기에 님의 향기 느끼고 갑니다~~!!
이 세상엔 서로를 아무것도 모른체도 소통됨을 이 글을 읽고 알았습니다 저도 진명스님에서 성전스님으로 바뀔때 잘 하시는 스님 왜 그만두게 하시고 왜 하필이면 비구니 스님일까 속으로 약간의 불평을 하였거든요 방송이 내 유일한 법당이라 듣고 보니 스님에게 너무 미인한 마음이지만 혼자만의 참회로 이젠 정말 열심히 방송듣죠 마음이 같은 사람들 그래서 버처님은 모두가 한마음이라고 했나봐요 글 잘 보고 갑니다 표현력도 칭찬 또 칭찬드리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