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밀고 여권 끌고' 이재용 가석방 급물살···“사법 정
광복절 가석방 대상 오른 듯
여권 ‘심사 요건 충족’ 강조
경실련 “국민 심판 직면할 것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준헌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8월15일 광복절 가석방 심사 대상자 명단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가 요구하고 여권이 힘을 실으면서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점차 현실화하는 흐름이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 중인 이 부회장은 다른 형사재판도 받고 있는 터라 섣부른 가석방이 사법질서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구치소는 광복절 가석방 대상자 명단을 법무부에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부회장도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가석방은 일선 구치소·교도소가 대상자 명단을 법무부에 올리면 가석방심사위원회가 표결로 가석방 여부를 결정한다. 이후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거쳐 가석방이 확정된다.
올 들어 이 부회장의 사면 내지 가석방 문제를 두고 청와대와 여당의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일 4대 그룹 대표들이 이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하자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고 했다. 지난 1월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데서 톤이 바뀐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기업의 역할이 강조되고, 미·중 갈등 국면에서 반도체 산업의 경쟁이 심화한 상황이 사면론 부상의 배경이 됐다.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해 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준 것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사면 반발 여론이 커지자 여권에서 ‘가석방론’이 대안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가석방은 법무부 심사를 통해 연간 10회 이상 이뤄지는 것이어서 대통령 권한인 사면보다 정치적 부담이 적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날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방문해 이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 “반도체 산업의 요구, 국민 정서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도 화성캠퍼스 현장 방문을 마친 뒤 “재벌이라고 해서 가석방 등의 제도에 불이익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두고 여권 내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은 이 부회장이 가석방 심사 요건을 충족한 점을 강조한다. 송 대표는 “법무부 지침상 8월이면 형기의 60%를 마쳐 (이 부회장이)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특정 인물의 가석방 여부는 절차와 시스템의 문제”라고 답했다. 가석방 요건만 갖췄다면 정무적 개입 없이 심사를 통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형법상 유기징역·금고형을 선고받은 수형자는 형기의 3분의 1이 경과되면 가석방 대상이 된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실무상으로는 형기의 80% 이상을 복역해야 가석방 될 수 있었다. 지난해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9년간 가석방자의 92.4%는 형기의 80% 이상을 복역했다. 형기의 70% 이상을 채우지 않고도 가석방된 수형자는 0.01%에 불과했다. 법무부는 이달부터 가석방 심사 기준을 ‘형기의 60% 이상 복역’으로 대폭 완화했다. 국정농단 뇌물 사건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은 이 부회장은 오는 26일이면 형기의 60%를 채운다. 법무부의 기준 완화를 두고 이 부회장의 광복절 가석방 맞춤용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시민사회는 이 부회장이 대통령 탄핵을 가져온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점, 중대 경제범죄로 또다른 재판을 받고 있는 점 등을 들어 가석방에 반대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불법 승계 의혹 사건과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건으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논평에서 “문 대통령은 중대경제범죄자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세우고 사면권도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했었다”며 “법치주의 원칙을 무시하고 중대한 범죄자의 가석방에 나선다면 반드시 국민들의 분노와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8일에는 지식인 781명이 선언문을 내고 “이 부회장에 대한 특별사면과 가석방은 이 나라 법치주의의 근간과 공정의 시대가치를 무너뜨리는 처사로서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특별히 면죄부를 발급해 주면 공정과 정의에 반할 뿐만 아니라 법치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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