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7HjPVuyIvnk?si=MiBwujOxbLsceD8k
우리나라는 1960년대 초까지 농경사회였다.
농경사회에서는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먹고사는 것을 가르치며 살았고 부모님의 소중한 경험이 중요한 길잡이였다.
그리고 가부장적 권위가 유지되고 있었기에, 아버지는 가정에서 절대자인 황제나 다를 바가 없었고 어머니는 철저하게 애를 낳는 기계로서, 시어머니를 섬겨야하는 며느리로서, 남편을 섬기는 아내로서 1인 다역을 감내해야만 했던 존재였다.
60년~70년대의 며느리는 유교질서 속에서 철저하게 을도 아닌 병에 불과했다. 특히 며느리로서의 시집살이는 잔인함 그 자체였지만, 1960~70년대의 착한 며느리들은 2,000년 대에 들어와 시어머니가 되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더욱 활발해지고 지위가 크게 신장되면서 이제까지의 탄압받았던 며느리라는 존재는 자기자리를 찾게 되었고,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급감하는 출산율로 귀한 손자를 선물함으로서 시부모에게 엄청난 파워를 가지게 된 신식 며느리는 드디어 시어머니로 부터 갑ㆍ을관계가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우를 받게 되었다.
나아가서 여성의 사회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며느리의 사회적위치가 계속 상승하면서 시어머니를 구박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시가보다는 친정이 절대우위로 바뀌었다.
60~70년대에는 며느리로서는 철저하게 구박받았고, 시간이 흘러 2,000년대가 되면서 시어머니들은 신식 여성들인 며느리에게 구박을 받게 되는 일까지 생기면서 70대 어머니들은 고스란히 상처난 자존심을 감내해내야 하는 낀 세대의 슬픈 여성이 되야했다.
손자나 봐주고 며느리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적은 용돈에 감사해야 하는 시어머니들이여!
모쪼록 건강을 잘 지키는데 애를 쓰며, 더 이상은 작아지지 않아야 한다.
선진 대한민국발전의 한 축이며, 가정의 파수꾼으로, 철저하게 자린고비 정신으로 몇 명의 자식을 키워내며 그토록 애를 썼던 슬픈 어머니들이여!
공은 온데간데 없고, 늙은 몸과 깜빡깜빡하는 정신만 남았으니 이 시대를 원망만해야 하나?
슬프고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이미 공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으며, 늠름한 손자와 이쁜 손녀를 보며 위안을 삼았으면 한다.
(좋아서 퍼온글 입니다)
힘내세요 어머님들 화이팅!🤗👍🌰😍
첫댓글 제가 아는 친한 70대 후반 어머니는
남매를 두셨는데 아드님께서 멀리
사시지만 명절때고 일상적인때도
아드님과 전혀 연락안하셔서 나중
말씀하시는데 이혼후 전남편이 재혼후 새어머니 생기고 며느님이
두 시어머니 모시기 힘들다고
아버지쪽 시어머니 챙기는 쪽으로
되었는지 뭔가 틀어져서 의절이 됬나봅니다.
전 남편도 진작 돌아가시고 세월도
됬다는데 좀 섭섭함이 묻어나셔서...
안타까웠습니다.
가까운 따님이 엄마를 챙기는데 돌아가시기전 아드님 가족분과 회복이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