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2004. 5. 10.)에는 서해안 시골에 갔다.
어머니날이라서 큰딸을 데리고 고향에 내려갔다.
일요일에는 가는 비가 내렸다. 물방울이 앵두에 매달렸다. 물방울이 둥글고 맑았다. 물방울과 풋풋하게 커 가는 앵두를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아직은 철이 이르다. 오월 스물닷세 쯤에야 앵두가 빨갛게 익으리라.
앵두 열매를 들여다보는 나한테 "애비야, 쑥개떡을 먹어 봐라. 맛있단다."
키 작은 어머니는 쑥으로 범벅한 개떡을 식기에 담아 내왔다. 쌀가루와 범벅이 된 쑥개떡의 크기는 작은 아이의 손바닥만 했다. 색깔이 시꺼먼 했다. 별로 맛있어 뵈지 않았다. 찐득거리는 한 개를 포크로 찍었다. 맛이 밋밋했다. 나한테는 맛이 없었다. 그래도 한 개를 다 먹었다.
잠시 뒤에 어머니는 색깔이 감색으로 변한 앵두잼을 종자기에 담아 내왔다. 앵두와 무화과를 삶아서 만든 잼이었다. 잼은 아마도 이태 전에 만들어 둔 탓으로 맛이 약간 시큼털털했다. 쑥개떡 위에 발라서 먹으니 맛이 한결 달착지근했다. 이번에는 먹을 만했다.
지금 고향 집에는 앵두나무 열 그루에서 앵두가 익어 간다. 한 보름 뒤에는 앵두가 익겠지만 어머니는 벌써부터 앵두를 딸 일이 큰 일이라고 했다. 올 1월부터 어깨와 팔뚝이 저린다면서 오른팔을 잘 쓰지도 못한다. 팔을 쳐들기도 힘들어 하시는데, 아픈 팔뚝으로 앵두나무 가지를 잡아당겨서 앵두를 딸 일이 큰 일이라 하신다.
"지아야(손녀딸에게), 네가 내려와서 따렴, 이제는 할머니가 딸 수가 없구나."
"그럴 게요."
가는 비가 이슬비 되어 내리는 시골 밭에서 나는 낫을 마구 휘둘러 풀을 깎았다. 씨가 영글기 전에 베어 내야 했다. 힘이 들어서 조금 베어 내다가 말았다.
지난 2월 말쯤에 고추씨를 뿌렸다가 그 다음날 눈이 소북이 쌓이는 바람에 고추씨가 다 얼어 죽었으려니 했더니 이번에 가 보니 고추 떡잎이 두어 개씩 싹텄다. 반갑다. 그러나 언제 커서 고추가 열릴까.
인사국 홍 중령한테서 얻은 강원도 찰옥수수 씨앗은 이제야 겨우 싹이 텄고,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옥수수 씨앗은 싹이 아직 안 텄다. 서너 달 뒤에는 옥수수가 크게 자라서 갯바람에 서걱거리겠지.
고향에 내려가면 나는 가슴이 아프다.
"애비야. 나 이제 죽을라나 보다. 점점 힘이 들고 어렵기만 하구나. 미리 참깨씨를 두어 줌 뿌려 두었다. 아직 씨 뿌릴 때가 아니지만 내가 언제 죽을지 몰라서 미리 뿌려 두었구나."
맞는 말이다. 어머니는 연로했다. 내가 내려갈 때마다 노쇠현상이 눈에 띄는 어머니는 새털처럼 가벼워간다. 훌쩍 바람 따라 가 버릴 것 같은 예감으로 가슴을 저민다. 그런 어머니이기에 나는 이날 어머니가 만든 쑥개떡을 맛있는 체 다 먹었다. 이 쑥개떡마저 얼마나 더 먹으랴. 어머니 혼자서 가꾸던 밭은 이제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쑥이 지천으로 널렸어도 그 쑥조차 뜯기 어려워하는 어머니가 저 너머의 세계로 훌쩍 떠나가버릴 것 같은 예감이다. 잿불처럼 나날이 쇠잔해가는 어머니처럼 나 역시 가슴 아파하는 세월에 산다. 죽음과 이별을 맞아야 할 세월에 산다.
2004년 5월 초순은 싱그러웠다. 가랑비 속에 푸름이 너무 고왔다. 앵두에 매달린 물방울이 매우 예뻤다. 눈 어두워 가는 어머니를 뵈러 고향을 다녀온 게 너무도 좋았다.
지난 일요일(2004. 5. 30.)에도 앵두를 땄다.
어머니, 큰딸, 나 셋이서 여섯 시간이 넘도록 땄다. 세 양푼.
어머니는 며칠 동안 앵두 따기에 지쳤다고 말씀하셨다. 비가 올세라 지레 겁먹고 미리부터 나흘간 땄다던 앵두는 냉장고 안에서 냉동되고 있었다.
시골에서 가꾸는 앵두나무는 키가 이삼 메타에 불과할 만큼 작다. 올해는 유난히 많이 연 탓으로 앵두알이 잘았다. 그런데도 앵두나무 열 그루에서 땄으니 그 양이 제법 되었다. 어머니는 동네사람한테도 조금씩 나눠 주었고, 누이가 친정에 오면 누이한테도 조금씩 나눠 줄 요량이란다.
앵두는 오월 말경에 완전히 익는다. 며칠 사이로 한꺼번에 익기 때문에 따는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앵두는 너무 익으면 꼭지가 빠져서 땅바닥에 후두둑 떨어진다. 또 앵두를 비에 맞히면 안 된다. 비 맞은 앵두는 알맹이가 툭 터져서 모양새도 볼품이 없고 또 단맛이 많이 없어진다. 키 작은 가지를 잡아당기면 잔가지가 활처럼 휜다. 잔가지에 알알이 박힌 붉은 앵두열매를 쳐다보는 게 더 단맛이 날 것 같다. 쳐다보는 게 먹는 것보다 더 예쁘다.
앵두를 따가면서 그 자리에서 먹어야 맛이 더 난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맛이 사뭇 달라진다. 앵두를 먹은 뒤에 앵두 씨를 이로 지그시 물었다가 혀로 튕겨 내면 제법 멀리까지 날려 보낼 수 있다. 후두두! 내뱉는 소리가 더 맛있게 들린다.
삼십 여 년 전 어머니는 산 너머 감나무굴 이모네로 가서 앵두를 따는 일을 도왔다.
서울 과일 상점에 채소류를 차떼기로 수집 장사하던 이종형은 어머니에게 "잘 익은 앵두는 입에 담고요, 설은 앵두만 상자에 담으세요." 하고 말했단다. 즉 앵두가 너무 익으면 상품가치가 없기 때문에 설익은 앵두만을 따라는 지시였단다. 맞다. 잘 익은 앵두는 운반하는 도중에 다 물러버리기 일수다.
잘디잔 앵두는 너무 쉽게 껍질이 물러서(상해서) 오래 간수할 수 없다. 오래 보관하려면 냉동시켜야 한다. 냉동된 앵두는 일이년 뒤에 녹여서 먹을 수 있으나 단맛은 거의 다 없어지게 마련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술로 담거나 잼을 만들면 된다. 술은 설탕가루를 부어두면 자연스럽게 발효가 되고, 잼은 앵두를 손으로 주물럭거려서 앵두열매(씨)를 빼낸 뒤에 앵두껍질에 설탕가루를 붓고 삶아 고와서 만든다.
일요일 밤중에 서울로 가져 온 앵두에 아내가 설탕가루를 부어 재워 놨으니 얼마 뒤에는 앵두주가 되겠다. 술 한 방울도 안 넣었으니 앵두술은 오직 단맛만 남겠다. 오랜만에 과실주를 마실 수 있게 되었으나 그 양이 적은 게 조금 아쉽지만 어머니가 혼자 사는 고향 냄새는 달작지근하게 오래 풍기겠다.
서해안 갯바람이 산능선을 넘어오는 산골마을에 큰딸과 같이 내려가서 여든여섯 살의 쇠진한 늙은 어머니와 함께 앵두를 딴 기억들이 추억거리가 되어 오래 기억될 게다.
2004. 6. 2.
오래 전에 쓴 글이지요.
글 속의 어머니는 아흔일곱 살을 넘긴 지 며칠 뒤인 2015년 2월 말에 먼 여행 떠났고요.
제 시골집은 이제는 텅 빈 집이 되어 바람과 함께 낡아가고, 삵아가고, 사라지고 있네요.
늙은 아들인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 어머니처럼 몸이 자꾸만 가벼워집니다.
열 그루도 더 넘는 앵두나무는 이제는 더욱 고목이 되었지요.
2018. 6. 20. 곰내(熊川) 올림
첫댓글 자정이 넘어
저도 앵두생각을 합니다.
곰내님 글덕분에요.
앵두나무가 열그루나 있으셨군요.
그 옆엔 우물이 있나요?
노래가사처럼.
앵두나 보리수는
빠알간 그 모습이 맛있게는 보이는데
막상 먹어보면 꿀처럼 달지는 않지요.
세상에서 젤 달콤한 꿀농사를 짓는 베리꽃이 살짝 마실댕겨갑니데이.
댓글 고맙습니다.
앵두 맛이 블루베리, 초코베리보다는 훨씬 낫지만 어디 꿀맛한테는 감히...
앵두를 따자마자 그 자리에서 입안에 털어넣어야 맛이 있지요.
앵두는 여러 종류라서 맛이 다르지요. 시장에 나오는 앵두(양앵두 6월 중순에 익지요)이기에 맛이 시지요.
제가 가꾸는 앵두는 물앵두. 맛이 아주 좋은데요...
보리수 종류도 여러 종류라서 보리수, 뜰보리수, 왕보리수(개량종) 등은 맛이 무척이나 시큼털털하지요.
왕보리수 열댓 그루에서 지금 무척이나 빨갛에 익었을 것 같군요.
시골 다녀온 지도 이주일째이니...
곰내님 애뜻한 사모곡이십니다 언젠가 이승을 떠나갈 나그네입장이 되고 보니 구구절절 닥아오네요 어머님 생각이 절로 나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호적나이 69살. 아내는 벌써부터 유언 준비해 두라고 몇 차례 말하대요. 맞는 말이지요. 욕심을 내려놓고는 오래 기억되는 사람, 고마운 사람으로 인식되었으면 합니다.
큰 나무는 늙을수록, 또 죽어도 멋으로 남대요. 일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를 걷는데 수변의 나무, 엄청나게 큰 나무를 자른 밑둥(뿌리)에는 씀바귀가 뿌리를 내리대요. 그 단단했던 나무 밑둥이 풍우에 부식되어 새로운 생명체한테 자리를 내주대요. 또다른 생명이 이어지대요.
저도 그랬으면 합니다. 남들은 죽어서 천당 가네, 극락세게 가네 하고 기원하겠지만 저는 '좋은 흙이 되겠습니다'. 그냥 흙이 되어 새로운 생명이 자라는 터가 되려고요.
@곰내 네 좋은글 감사합니다
예. 제 어머니의 삶은 무척이나 힘이 들었지요.
개마을에서 부잣집 막내딸이었는데 아비가 선박사업에 보증섰다가 재산 다 날리고는 이웃마을로 이사 왔고, 일제시대 구장이 국민학교 입학통지서를 가져왔는데도 아비(나한테는 외할아버지)가 돈이 없다고 학교에 보내지 않아서... 학교 교문에 들어가지도 못했지요. 평생을 흙 파며 농사 짓고요. 차 멀미로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평생을... 아들 셋 가운데 둘은 급사당했고, 못난이 나 혼자만 남아서.. 객지생활했기에 내 엄니는 평생을 시골 고향을 떠나지 못하다가...
그 엄니의 삶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미안하고, 고맙지요.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 그 시대에 태어난 분들은요.
@곰내 네 제 어머님도 고혈압으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답니다
저도 구순이신 어머니가 있습니다.
제 막내가 모시고 있지요.
글 읽는 중에 빠져들어 저 역시 가슴이 저며 왔습니다.
이전에 써두었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썼던 글을 찾아 보았더니
곰내님 글에 미치진 못하지만 가슴 저미는 생각은 같군요. 잘 읽었습니다 .
그래요?
한 번 님의 글 올리세요.
공도 텃밭에 심은 앵두나무1,보리수나무1
빨간 앵두 맛은 달콤하고
보리수는 달콤 새콤하지요.
이것 저것 심었던 나무가
살아가는 재미를 보태 줍니다.
동물은 배반해도 식물은 배반하지 않지요. 화분 크기만큼만 보답하지요.
저는 식물도 생각한다고 여기지요. 사람이 정성을 들이면 식물이 알아차리고는 아무말은 못해도 보답을 하대요.
댓글 고맙습니다.
어머님과 앵두나무
그리움이 향수로 남아있군요.
세월은 흘러가고
어머님은 먼 여행 떠나셨지만
앵두 나무는 아직 곰내님을 기다리고 있네요.
저도 주차장 앞에 앵두나무
한그루 심었는데
앵두열매는 카페 손님들이 몫이네요.
예.
바로 이웃마을인 이모네에는 앵두가 무척이나 많이 열리는 산골마을.
제 고향도 앵두가 많지요. 물앵두가 익어갈 무렵이면 단내가 멀리 풍기고요.
지금은 앵두나무가 하도 늙었네요. 어린 묘목은 도시의 친구들한테 나눠주었더니만 정작 저한테는...늙은 고목만 남았지요.
나무도 젊었을 때나 곁순이 나오지 늙으니까 곁순이 안 나오대요. 식물도 동물처럼 늙으면...
님의 주차장 앞의 앵두나무에 앵두가 알알이 매달려서 빨갛게 익으면 풍광이 아름답겠네요.
저의집 앵두 나무는 어려서
아직 앵두가 많이 달리지 않아요.
작년에시골 형님 집에서
앵두를 따와서 앵두주를 담았는데
빛깔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앵두 입술이란 말을 쓰나 봅니다.
예... 앵두는 해걸이를 하지요.
하지만 올해에는 날씨 탓일 것 같습니다. 봄철 냉해를 입었고, 또 가뭄이 오래 되었고...
앵두나무 우물가에...그림이네요...^^
앳글 고맙습니다.
1960년대에 무척이나 많이 불렀지요.
앵두나무... 열매에 비하여 과피(목질)이 너무 크고 두꺼워서 별로 먹을 것은 없지요.
그런데도 항 웅큼씩 따서 그 자리에서 입안에 털어넣고는 오물거리다가 목질을 내 뱉으면서 먹는 맛을 달콥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