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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5: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5: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지난 주일, 아브라함의 종에 대해 말씀드렸고 계속해서 종의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과연 우리의 기도는 어떤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레오 톨스토이는 모두들 세상을 바꾸려 들지만 스스로를 바꾸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다들 내가 일어나서 세상을 개혁하고, 우리 집안을 번성케 하고, 내 밖에 모든 것은 바꾸려고 노력을 하는데, 내 자신을 바꾸려고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 주인과 종의 관계를 알아야만 합니다.
종된 자의 바른 삶의 태도가 어떤 것인까? 창15장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내게 무엇을 주시려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내가 풍족히 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딱 받고 싶고 가지고 싶은 아들 하나 없습니다. 고로 무엇을 주려는지 몰라도 다 줘 봤자 이거 뭐할거냐. 상속자가 없어서 내가 집에서 나고 기른 종에게 다메섹 종에게 특히 이름 엘리에셀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에게 난 다 주고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고 고백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아니다 또 자식을 줄 것을 말씀하셨지만, 종이 얼마나 신실했으면 이름을 지명하고 불러 이 사람에게 내가 모든 것을 다 주고 갈 수밖에 없다고 할 수 밖에 없었느냐는 것입니다.
결국은 내가 살다가 인생 허무하게 다 놓고 갈 것 같으니 그냥 나는 상속자도 없이 죽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고 할 수도 있는데 그 많은 종들 중에 특히 불리운 이름이 있다면 이 사람은, 이 종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주인의 눈에 들어서 이름까지 불리우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느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재산이 얼마나 많습니까? 창14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 조카 롯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훈련된 318명의 개인 군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서 이겼다 했는데 이것은 연합 전쟁이었습니다. 네 나라와 다섯 나라의 왕들이 합해서 싸움을 하고 다섯 왕이 지고 네 나라 왕이 모든 전리품을 취해 갔는데, 전쟁에 이긴 연합왕들보다도 더 용맹스러워서 전쟁을 이기고 전리품을 취해간 그 왕들의 군사를 치러갈 정도라면 이 아브라함의 군사가 얼마나 강하게 훈련되었는지 알 수 있으며, 주인의 말에 복종하여 나갔지만, 상식적인 생각으로 싸우러 나갔다는 이 자체를 우리는 한번 생각해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가자 하니까 그 네 나라 연합군을 개인군대가 싸우러 가는데, 다른 이유도 아닌 자기 조카 하나 찾으러 가겠다는 이 싸움은 그 자체가 무모한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가서 싸웠다는 그 종들의 모습을 보면 어떤 종들이었을까. 어떤 종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주인이 가자 하는데 도저히 이길 수도 없는 것 같은 그 전쟁을 하러 갈 수 있었던 종들이었을까. 그런 신실한 종들의 무리가 집에 가득한 가운데서도 이름이 불릴만한 상속을 받을만한 특별한 종이 엘리에셀이었다면 이 사람은 그럼 과연 어떤 삶을 살았기에 주인이 점을 찍었을까, 이런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보셨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에 오늘 내 집안에서 내 형제 자매들 중에서 아니면 우리 모인 교인들 중에서 주님이 그 유업을 상속으로 줄 수 있도록 내 이름을 불리웠다면 이건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름이 불릴 수 있을만 한, 주인이 인정해 줄 수 있을만 한 삶을 내가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행2:38-47절을 보면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하며 그 이름으로 성령의 선물을 받으라 하고 모든 일들이 일어납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는, 칭송을 받는 바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이런 일들이 많이 있으니까 날마다 구원받는 무리가 많아지는데 그 다음에 행5:1-14절까지 계속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믿는 자들 속에서 성령을 받아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을 속였다는 사건을 통해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었습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 뭔가 하면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의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나머지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 하는 무리에 속해서 교제하고 오늘 우리가 말하면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무리에 속한 사람들끼리는 솔로몬 행각에 모여서 교제를 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아예 상종, 거래를 안했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왕따 시켰다는 것입니다. 우리 세상에서는 저들은 왕따를 당해도 될만한 사람이다 하고 내쳤다는 것입니다. 상종을 안했다는 것입니다. 거래는 안했지만 칭찬은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11:26절에 보면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이런 모든 문제들이 세상 사람들은 도대체 저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하고는 상종을 못할 처지로 우리 세상하고는 어울리지 않으니 왕따를 시켜놓고 따돌림을 받는 그들의 삶이었지만 칭찬은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신앙인은 어떠냐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기 위하여 나가 살라고 하면, 그들이 우리를 영접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영접하지 않습니다. 왜? 저들이 우리에게 오면 내가 다 뺐겨서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야 되기 때문에 상종할 수 없다고 선을 그어야 되는데 오늘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된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내려가서 같이 마시며 즐깁니다. 그들이 같이 먹고 마시며 즐기며 교제를 해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받아들이느냐? 돌아서서 욕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쟁이라는 것이 칭찬받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욕을 얻어먹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한 삶을 살기 때문에. 내가 주인이 된 삶을 살기 때문에 예수로 말미암아 내가 복 받기를 원하고 예수로 말미암아 내가 출세하기를 원하고 예수로 말미암아 내 유익을 위하여 구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세상에 나가서 정복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과 먹고 마시면서 내가 욕을 얻어먹고 나로 말미암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되시는 우리 주님 우리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종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종이 주인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창14장에 나오는 그 나이많은 종이, 창15장에 나온 엘리에셀인지는 모릅니다. 나이가 많은 종이라고 했지만 물론 아브라함보다는 젊었으니까 하면 같은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정확한 내용이 없으니 알 수 없지만 엘리에셀과 같은 종이 또한 창24장에 나왔던 종과 같은 모습이었다면, 그럼 그런 종들이 무엇을 보고 그와같이 생명을 내어놓고 전쟁터에도 기쁨으로 나갈 수 있었느냐? 무엇때문에 주인의 눈에 들어서 주인이 이름을 불러가며 하나님앞에서 상속자라고 불러줄 수 있는 그 삶을 살 수 있었는지? 무엇 때문에 나이많은 종이 아브라함의 환도뼈 밑에 손을 넣고 맹세하며 그 먼 여행길에서 정말로 기도할 때 나를 보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하는 기도를 하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셨을 때도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따리 싸가지고 금방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나 같으면 다 이루었습니다. 그럼 리브가의 아버지와 라반이 이야기한 것처럼 적어도 열흘정도 묵고 있다가 쉬었다 가라고 할 때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지 않았습니다. 왜? 주인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어 베풀어 주신 은혜를 주인에게 빨리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종의 모습이 오늘 신약의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의 삶과 연결됩니다. 누구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삶, 이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이 초점을 가지고 산 삶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상종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도 칭송할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아니라, 주인의 이름을 빙자하여 내 만족을 위하여 살기를 원하여 기도하고 내 만족에 초점이 되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나도 욕을 얻어먹고 주인되시는 주님을 욕 얻어먹게 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누굴 핑계합니까? 주님을 핑계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주를 위해 살려고 하는데 나로 말미암아 내가 잘못되어 초점을 놓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핑계해서, 내가 이만큼 했으니 주여 이제 나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우리가 기도할 때가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정말로 오늘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그 삶이 어떤 목적으로 살아갑니까?
아직도 내가 주인 된 목적을 위하여 살아간다고 내가 주인이라고 한다고 주인이 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나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주인이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내가 내 삶을 다 돌아보고 또 내가 내 몸에 일어나는 현상을 보더라도 내가 주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디엔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몸의 주인되시는 분이 기쁘시게 사용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끄는대로 내가 순종하지 않고 내 원대로 살았기 때문에 관리 잘못으로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내게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관리 잘해서, 내가 너에게 주는 사명을 위해서 잘 관리하라고 한대로 내가 먹고 마시며 쓰며 내가 몸을 잘 관리했으면 병들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내 하고 싶은대로 먹고 마시며 쓰며 편안을 위하여 쾌락을 위하여 달렸기 때문에 병들 수 밖에 없었던 관리 부실이라는 것입니다. 인정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결국은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고 인정을 해야 되는데 그래도 돌아서면 자제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우선 눈 앞에 있는 것을 보고 즐기기 원하면 먹고 마셔야 되고 쾌락을 위해서 우리가 편한데 가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나태함이 게으름이 우리 속에 죄성으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여 도와주옵소서 내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하고 드러눕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어나야 되고 내가 결단해야 되는데 이것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 구원의 은총이 감사하여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된 것을 고백할 수 있는 이 고백이 내 속에서 나온다면 우리를 죄에서 구속했다는 것이 전제되고 그럼 전제된 것이 뭡니까?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먼저 고백하고 내 신분을 인정하고 주여 나를 죄에서 구속하여 죽었던 영혼을 새롭게 하셔서 새 생명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나를 소생케 했사오니 구원받은 그 은혜에 감사하여 피로 사신바된 내 삶이라고 고백하며 나를 사신 주님이 이젠 주인된 것으로 고백했다는 것이 전제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신분이 종이냐 아들이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들보다 종이란 신분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양자의 이름을 받았으니 고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여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여기에 더 초점을 두고 복에 대한 개념만을 생각한다는것입니다.
그러나 종으로 사는 것이 쉽습니까? 아들로 사는 것이 쉽습니까? 아들로 사는 것이 우리는 쉽다고 생각합니다. 왜? 아들이니까 마음놓고 해도 뭐 쫓겨나가지도 않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엄격히 우리가 세상 살면서 보세요. 부자집에 좋은 가문에 자녀들 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예를 잘못 드는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최고의 부자 삼성가를 보세요. 아버지가 누구를 후계자로 삼느냐는 것입니다. 아들이 하나밖에 없으면 할 수 없이 그 하나에게 가지만 이병철 원회장이 첫째도 아니고 둘째도 아니고 세째를 줬지 않습니까? 왜? 경영 수업이 된 자, 능력이 있는 자, 아버지의 눈에 든 자를 상속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게 이야기하면 아버지의 눈에 들 수 있도록 내가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요구하시는 기준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에서부터 신약 사이에 중간 중간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습니다. 거룩한 삶이 내 속에서 나와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 받을 수 있다 했는데 우리는 거룩하고는 멀다는 것입니다. 나는 거룩하고는 관계없지 않습니까? 그냥 예수의 피로 씻음 받았으니 거룩이 그냥 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제 죄에서 일어나서 씻겨서 주님 앞에 나왔으면 옛 모든 더러운 죄성들을 성경은 버리라고 하시는데 버렸느냐는 것입니다. 안 버리고 나는 계속 행하고 있기 때문에 주일 날 나와서 주여 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고, 세상 나가서 살 때는 그들과 동일하게 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나를 욕하고 내가 믿는 예수를 욕하고 하나님을 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말하는 세상들이 안티 크리스챤들이 나와서 뭡니까? 기독교가 개독교가 될 수 밖에 없도록 누가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네가 거룩하라 하신 아버지의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그리스도인이어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사도들을 통하여 일어났던 모든 이적과 기사들이 오늘 이 시대에도 나타난다고 할 때 누가 제일 먼저 반대하느냐? 그 삶을 이루지 못하는 지도자의 무리들이 제일 먼저 반대를 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반대를 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질타한다는 것입니다.
종은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말기 때문에 실제로는 제일 쉽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종이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주인님 내가 오늘 뭐할까요? 어, 이것만 해라. 그것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근데 그 일을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누구 책임입니까? 주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했습니다. 칭찬했습니다. 칭찬해도 내가 잘했다고 해도 주인이 하라고 해서 했으니까 하고 주인에게 내가 실패를 했으나 성공을 했으나 모든 것이 주인의 것이니까 주인을 향하여 다 돌리면 자기는 내가 하고 산 삶에 대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주께서 주신 일용할 양식으로 먹고 산 것에 대한 만족하기 때문에 불평이 없다는 것입니다.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훨씬 살기에 편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아버지 앞에 팔린 바된 내 종의 신분인 것을 확인하고 주님 앞에 엎드렸으면, 내가 이제 주인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사는 종의 모습으로 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향하여 왕따를 시키더라도 나는 왕따 당하는 그 삶이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삶인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하고 순종하며 살면 주께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사용하신 그 삶이 능력으로 나타나면 그 능력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을 통하여 주님께 감사하면 그 뿐입니다. 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의 말씀에 따라 내가 순종하며 살아서 내가 시궁창에 빠진 것 같은 삶을 살고 내가 순교의 제물로 죽었다 합시다.
이 삶으로 주님 앞에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종이니까 감사함으로 가면 우리는 주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바 성령에 의한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영적 전쟁의 승리자로 주님 앞에 충성하는 모습으로 살기 때문에 끝난다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는 주여 내가 주의 자녀고 내가 주의 이름을 불렀으니, 이 땅에서 목적을 두고 나의 잘될 것을 먼저 전제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삶을 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종의 모습으로 살아도 이 땅의 것이 전제가 되지 않는 하늘의 것을 전제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전제된 기도가 내 속에서 끊임없이 나온다면 우리의 삶에서는 불평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사가 기쁨이요 감사요 모든 책임이 주인되신 주님께 있기 때문에 잘 돼도 그만 못 돼도 그만 편안한 삶이 내 속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삶이 진정한 종의 모습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피곤한 모습이라도 그 모든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과를 빨리 보고하려고 그 이튿날 일어나서 돌아갔던 아브라함의 종과 같이 내가 주께서 주신 사명을 오늘 내게 다 맡긴대로 내가 충성한 삶을 살았다면 내가 오늘까지 다 살았으니 주님 이 밤이라도 나를 데려가십시오 하고 내가 주님 앞에 달려갈 결단함이 일어날 수 있는데 우리는 나를 위하여 만족을 채우려 하기 때문에 그래도 하루쯤은 더 있다 가고 그래도 내가 땅의 것을 위하여 사는 삶을 살면 진정한 종의 모습으로 사는 삶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아브라함의 종의 모습, 그 많은 종들의 모습 중에서도 이름 불린 그가 그 많은 종들 중에서도 더 특히 오늘 우리가 말하면 왕따된 삶을 살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내놓고 전쟁도 하고 주를 위하여 충성하는 삶을 살지만 그 중에서도 뛰어났던 종의 모습이 있었던 것과 같이 나도 그와같은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되고 그 많은 종들이 있는 중에서도 한 종을 불러 자기 후대를 위한 후손을 잇기 위한 며느리를 택하러 먼 길을 보내는 것처럼 택함 받을 수 있는 종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의 눈에 들 수 있는 신실한 종의 모습으로 내가 주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이 삶을 살면 많은 주위의 사람들이 칭송은 하되, 나를 따라 본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를 왕따시킬 수도 있으나, 왕따 당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정상이다. 그래야 성령의 충만함을 통하여 저들에게 나가서 빛을 발하기 위하여 정복자가 되기 위하여 주께서는 모든 능력을 더하시며,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주시는 능력과 권능을 가지고 세상을 밟고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자가 될 수 있고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믿음을 소유한 여러분들이 되셔야 사실은 땅에서도 잘되고 하늘에서도 잘되는 영육의 강건함을 받고 풍성한 충성된 종이라고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가 주님 앞에 부름받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점검하시고, 내 주위에서 나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모든 마귀들의 시험들을 주의 이름으로 이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승리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들을 향하여 내가 타협하고자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복하고자 일어나 밟고 다스릴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선포된 말씀대로 누구보다 주인에게 인정되어지는 참된 그리스도의 종들이 다 되어지실 것을 바라며 말씀을 전합니다.
이 글은 LA참빛교회의 박 경진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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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