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달러’는 정교한 작전인가>
기사입력 2008-06-16 16:54 |최종수정2008-06-25 09:39 / Economist
골드먼삭스가 예측한 유가 200달러 시대는 현실이 될 것인가. 리먼브러더스가 올해 말까지 유가가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 것이 위안이 되고 있는 가운데 고유가를 점친 투자은행 보고서의 신빙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골드먼삭스, 모건스탠리 등 다국적 투자은행은 원유 거래와 관련된 기관투자가로서 유가 상승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고유가 원인이 정말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투기세력 또는 달러 약세 때문인가?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가?”
엘 바드리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의 말이다. OPEC이 이달 말 석유생산국과 소비국, 투자자 모두가 참가하는 회의를 연다. 고유가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다.
고유가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공급은 그대로인데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달러 약세에 편승한 투기 자본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급은 그대로인데 수요가 늘고 있어 유가가 오르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주장하는 쪽은 골드먼삭스다.
골드먼삭스는 2년 뒤 유가를 최고 배럴당 200달러(미 서부텍사스유 기준)로 예상했다. 모건스탠리도 같은 논리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7월 4일까지 유가가 15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릴린치는 이번 달 “유가가 80~150달러 범위에서 형성될 듯”이라고 발표하며 “비싸진 원유생산 비용으로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이 감소하기 때문(공급 감소)”이라고 그 원인을 밝혔다.
이머징마켓에서 석유 소비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이들의 주장은 부정하기 힘들다. 상품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중국의 1인당 석유 소비량은 한국이나 일본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중국에서 석유 소비량이 2배 증가한다고 가정해 보자. 중국과 인도의 인구는 합해 25억 명이다. 공급은 줄고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황소시장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뒷받침하듯 중국의 2007년 자동차 판매대수가 879만 대로 일본을 넘어섰고 자동차 보급에 따라 가솔린 수요도 2007년에는 전년 대비 7.5% 증가했다.
공포의 7월 4일이 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원유시장 전문가들이 독립기념일 연휴가 시작되는 7월 4일이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성수기 석유 수요의 변화에 따라 유가의 큰 추세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7월 4일이면 모건스탠리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말한 시점이다.
골드먼삭스나 모건스탠리의 말처럼 공급이 늘어나는 석유 소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하루 100만 배럴 이상 생산하는 대형 유전은 한 곳도 발견되지 않았다.
OPEC의 추가 생산여력은 제한적이다. 멕시코나 북해 유전 생산이 줄고 있고, 미국도 48개 주 유전이 이미 성숙기를 지난 상태다.
그러나 모건스탠리와 메릴린치 등 유가 강세를 점치는 투자은행들의 예측을 시장은 곱게 보지 않는다. 미 하원의 바트 스튜팩 의원은 아예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를 고유가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그는 “골드먼삭스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전망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며 “아무도 200달러를 보고 있지 않았는데 골드먼삭스는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사가 진행될수록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법의 투기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며 “법의 허점을 이용해 규모가 큰 기관투자가들이 거래 시스템을 두고 도박을 하고 있으며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엘 바드리 OPEC 사무총장은 “고유가는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사우디가 이들 투기세력도 회담에 참석시켜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기를 희망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실제로 올여름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해 고유가 공포를 확산시킨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에도 회담 참석을 요청하기도 했다.
차킵 켈릴 OPEC 의장도 고유가의 뒤에 투기 자본이 도사리고 있다는 데 동조했다. 그는 우선 유가 급등의 원인으로 달러 약세를 지목했다. 그로 인해 투기 자본이 달러 자산을 팔고 원유를 사들이면서 유가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실제 환율과 유가는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달러가 약세면 유가는 올라가고 반대로 강해지면 유가는 내려간다. 이는 오랫동안 유지돼 왔던 하나의 법칙이다.
문제는 달러가 약해지자 투기성 자금이 우르르 기름으로 몰려가 값을 올리고, 그 결과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다시 값을 올리는 악순환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 측은 달러 약세를 틈타 원유 값을 끌어올리는 투기 자본이란 말을 반박하고 나섰다.
골드먼삭스 대변인은 “골드먼삭스는 가격 조작을 금지하는 모든 규정과 룰에 따라 거래해 왔다”고 반박했다. 또 모건스탠리 측도 “스튜팩 의원의 말에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내 한 유가 전문가는 “골드먼삭스가 2010년까지 배럴당 200달러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 후 국제 유가가 줄곧 상승세를 이어 온 것이 ‘조작’이 아니라면 골드먼삭스는 정말 ‘족집게’인 셈”이라며 “어쨌든 골드먼삭스는 원자재지수를 기초로 원유 펀드 투자를 하기 때문에 현물시장에 자금비중을 높인다면 원자재 값이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원자재 펀드 투자자의 60%가 골드먼삭스를 통해 거래하고 있는데, 이 회사는 상품과 상품선물을 거래하는 전자거래소 인터콘티넨털 익스체인지(ICE)의 설립파트너다.
다국적 투자은행의 투기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벤 버냉키 FRB 의장은 달러 약세에 따른 투기의 뿌리부터 잘라내기로 결정했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 9일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에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며 고유가가 인플레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발언이 FRB가 금리를 올리기 위한 포석이라고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는 전망하고 있다.
금리가 올라가고 수요도 감소하면 리먼브러더스의 말처럼 유가가 떨어질지 모른다. 리먼브러더스는 연말이면 유가가 급락한다고 예상했다. 이와 함께 JP모건체이스의 브루스 카스만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당장 가격이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지만 결국 200달러가 되기 전에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국적 투자은행들의 유가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누가 ‘족집게’인지는 시간이 좀 더 흘러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고유가 위험 과장됐다”>
기사입력 2008-06-16 16:39 |최종수정2008-06-25 09:57 / Economist
기름값 전망이 춤을 추고 있다. 골드먼삭스가 ‘유가 200달러’ 시나리오를 내놓은 이후 세계는 공포에 떨고 있다. 어떤 곳은 연내 250달러까지 오른다고 전망해 그야말로 불에 기름을 부었다.
세계적 다국적 투자은행들의 초 고유가 전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믿게 하고, 예언이 적중한 것처럼 다시 유가는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과연 맞는 것인가.
우리나라 대표적 민간 경제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가 반격에 나섰다. 유가 200달러 공포가 과장됐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 미 달러화 약세로 원유로 몰린 투기 자금이 빠지고 올 하반기 중국 올림픽 특수가 끝나면 내년엔 유가가 반 토막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유가 급락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유가 전망 문제를 총력 분석했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는 지난달 말 “앞으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4개월 이내에 유가가 150∼200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공급은 그대로인데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 골드먼삭스가 내세운 유가 200달러 주장의 근거였다.
세계의 이목은 매일 아침 전해지는 기름값 변동에 쏠렸다. 기름값 게이지에 웃음과 한숨이 반복되는 게 2008년 초부터 지금까지 지구촌의 현실인 것이다.
실제 2007년 6월 배럴당 65달러 선이었던 국제 유가는 최근 130달러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1년 만에 두 배가 올랐다.
기름값 폭등에 따라 제품 가격이 상승하고 세계적 불황과 인플레이션이 도래할 것이라는 게 유가 200달러 시대가 그리는 불안한 미래다.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충격파는 다른 어느 곳보다 크다.
원유 수입 부담이 늘게 되면 경상수지 적자가 큰 폭으로 확대되고 외환보유액 감소와 원화 값 폭락으로 이어져 제2의 외환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나온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결의했고 항공사들은 운항 횟수를 줄이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정부는 최근 10조원 규모의 유가 지원 정책을 내놨지만 난국을 헤쳐가기엔 미흡한 대책이란 평을 들어야 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국내 대표적 민간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가 눈에 확 띄는 기름값 전망을 내놨다. 기름값이 지금의 반 토막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무슨 근거로 이런 예측을 했을까. 200달러, 250달러 소리에 놀란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버슈팅(overshooting)은 또 다른 오버 슈팅을 부른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유가 급락 시나리오의 핵심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현재 유가가 과장되게 폭등해 있기 때문에 폭락의 시점이 곧 도래한다는 설명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폭락의 시점을 내년으로 점쳤다.
이 연구소는 지난 4월 ‘세리 CEO 강연’(삼성경제연구소가 CEO 회원들을 대상으로 여는 강연)에서 처음 유가 급락에 대한 전망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글로벌 자원 전쟁과 한국 기업의 대응’이란 리포트를 통해서였다. 이 리포트는 2001년 이후 고공 행진을 하고 있는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 요인을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는 투기 자본에 의한 거품이다. 미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고 투기 자본이 원유나 곡물 등 원자재로 이동하면서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는 것.
미국의 금리 인하는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고 내년에 달러 가치가 상승되면 원유로 몰린 투기 자금들이 철수하면서 유가가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통계 자료에 의해 분석한 원유의 가격 상승 요인 중 투기 자금은 무려 40.3%에 달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꼽은 유가 급락의 또 다른 요인은 중국 리스크다. 올해 중국이 올림픽을 마치면 건설 쪽으로 몰린 원유 수급 요인들이 급락하며 오버슈팅된 원유 가격이 진정기미를 보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리포트를 작성한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장 김경원 전무는 “거품 요인들이 사라지는 내년엔 배럴당 120~130달러 선인 현재 유가가 그 절반인 60~70달러 선으로 급락 조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유가가 급락 조정될 것이란 확신을 갖기 시작한 건 올해 초부터였다. 2006년과 2007년까지는 유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전망해오다 올해 초부터 방향을 선회했다. 각종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투기 자본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 수요로 인한 버블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유가 급락 시나리오를 올해 초부터 그룹 내부적으로 공유해 왔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외부 발표는 삼가다 세리 CEO 강연에서 처음 외부에 공개한 것이다.
김 전무는 “우리가 내놓은 전망은 원자재 가격이 완전 폭락해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재 가격이 과장돼 있는 만큼 내년에는 거품이 꺼지는 조정 시기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라며 “지금의 유가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기업이든 정부든 거품이 꺼지는 시기에 대비해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