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갈맷길 최 건 차
부산이 문득 떠올려지면 마음이 싱숭생숭 해지면서 타임머신을 타게 된다. 꺅⁓꺅 소리 지르며 낮게 나르는 갈매기들의 마중을 받으며 영도다리를 건넌다. 옛날 전차 종점을 거쳐 남항동 시장통에서 오뎅을 사 먹고 영선동 윗 로터리에서 송도가 건너다보이는 곳으로 간다. 1953년 봄부터 1958년까지, 나와 우리 가족의 희로애락이 켜켜이 드리워 있는 곳들을 찾아보고 싶어서다. 근래에 해안길을 잘 정비하고 단장하여 돋보이는 곳들은, 70년 전에 내가 늘 걸었고 지금도 가끔 달려가 걷곤 하는 곳이다.
낙동강 하류에서 불어오는 갯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입가에 짭짤하게 와 닿는 곳. 바닷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영도 해안가 산비탈의 길가 동네를 ‘흰여울마을’이라고 부르며 찾아들고 있다. 이 곳은 우리가 살았던 이웃 동네로 6·25전쟁 때 북에서 피난을 와서 어렵게 사는 이들의 토담과 판자집이 있었던 바람따지 외진 마을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나름대로 좀 꾸며 놓고 보니 겨울에는 좀 그렇지만, 봄 여름 가을에는 가릴 것 없이 앞이 탁 터여 있어 시원한 해풍에 바다의 뷰가 좋은 곳이 됐다.
우리는 산마루 쪽으로 해동고등학교 뒤쪽에서 살았다. 지금의 ‘흰여울마을’ 일대가 예전에는 영도의 끝자락처럼 삭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그 아래 해안은 여름 한철이면 보트를 빌려 탈 수 있었고, 수영도 할 수가 있어 제2송도라는 해수욕장이었는데, 근래 찾아드는 사람들이 많아져 영도의 ‘갈맷길’이라는 명소가 되었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개장된 암남동 해수욕장을 제1송도 해수욕장이라고 했다. 암남동에서 감천항까지의 해안에 또 하나의 ‘갈맷길’이 생겼다. 나는 그 해안 길을 두어 번 탐방하며 걸어보았는데 꼭 한번 가 볼 만한 곳이라 추천하고 싶다.
내가 즐겨 찾는 ‘갈맷길’은 송도가 바라다보이는 서쪽 해안 길이다. 영도 대평동 남항등대로부터 해안가에는 암릉 요철지대가 많아 유격훈련 하듯이 걸어야 한다. 힘이 좀 들지만 내가 좋아서 찾는 곳이니 아슬아슬하게 설치된 철계단을 오르내리며 작은 철다리도 건너고 절경의 물가 바위 갓길을 한 시간여 동안 걷는다. 태종대 입구의 중리(한국국립해양대학교가 시작된 곳)에 이르러서는 그 옆 해녀마을로 간다. 해녀들이 앞바다에서 금방 잡아 올린 문어를 사 삶아 먹고 태종대를 도보로 일주했다.
부산시는 그린웨이(Green Way’)의 취지를 도입한 모양이다. 절경의 해안과 숲, 강과 온천지 일대를 유명관광지로 조성하려고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 같다. 이에 부산시의 상징인 ‘갈매기’에 ‘길’을 더한 합성어로 ‘갈맷길’이라는 둘레길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산과 바다, 강과 온천을 아우르는 사포지향四抱之鄕의 ‘갈맷길’를 개발하고 대대적으로 정비하였다고 한다. 총 길이 278.8km를 21개 구간으로 만들어 제주도 올레길에 버금가지 않을 만큼의 명소를 조성해 널리 알리려는 것이다. 부산을 사랑하기에 흐뭇하다. 모든구간을 걸어보며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고 싶다. 부산시 전역의 산과 숲, 해안과 강변 그리고 온천지대에 생긴 둘레길이 ‘갈맷길’이다.
내가 부산 영도에서 살았던 소년 시절은 형편이 어려운 피난민 시절이었다. 영도 신선동 3가 산마루에 토담판자집을 짓고 살면서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부는 다음 날이면 누나를 따라 해안가로 갔다. 파도에 밀려온 다시마 비슷한 ‘곤피’가 너울너울 밀려오고 있었다. 그게 국거리에 좋다며 줍고 바위에 찰싹 붙어있는 ‘담치(홍합)’를 따려 해안 절벽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담치로는 국을 끓이고 곤피는 뜨거운 물에 데쳐서 쌈을 싸 먹었다. 그렇게도 살았지만, 여름방학 때는 반친구 길봉이, 창일이랑 신주머니와 ‘우끼(자동차 타이어 튜브)’를 매고 해안가로 가 수영도 하고 물질을 했다.
우끼에는 각자의 신주머니를 묶어놓고 담치를 따다 담았다. 잠수가 서툰 창일이를 우끼에 앉혀 놓고 길봉이와 나는 물속에 들어가 바위틈 사이에 붙어있는 우렁생이(멍게)를 따고 모래가 있는 수초밭에서는 해삼을 잡았다. 우리는 그것을 즉석에서 손칼로 자르고 이빨로 물어뜯어 그대로 먹으며 물개처럼 놀았다. 어느 날도 셋이서 제2송도로 물질하러 가다가 혼자 걷고 있는 음악선생님을 만났다. 그 음악선생님은 평양에서 피난 오신 분으로 독일 민요 ‘로렐라이’를 슬픈 이야기로 가르쳐 주었다.
오늘은 2024년 바람 한 점 없이 푹푹 찌는 중복이다. 그냥 집에 있자니 영도와 해운대에서 여름을 신나게 즐겼던 그림들이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소년 시절의 대부분은 영도에서였지만, 20대는 해운대 전역과 동백섬에서 거의 보냈다. 해수욕장이 개발되기 전의 드넓은 백사장을 맘껏 누비고 수영을 하며 지냈다. 연전의 가을, 해운대 죽마고우들의 모임으로 해변열차를 타고 송정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의 바닷가로 더 가까이 미포에서 전설의 포구 청사포를 거처 송정에 이르도록 해변길이 열려 있다. 여기도‘갈맷길’이다. 사람들이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걷고 있다. 나도 걷고 싶다. 사랑하는 해운대! 나의 ‘갈맷길’이잖는가! 어서 걸어봐야겠다. 202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