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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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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토론 ●자유게시판 참고 어느카페에서
유재덕 추천 0 조회 171 08.09.21 21:02 댓글 3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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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9.21 21:42

    첫댓글 힌츠피터가 여러번 검문을 받으면서도 5월 21일 서울에 도착한 시간이 8시라고 했으니 광주에서 떠난 시간이 오후 4시 이전이었을 것입니다. 지바고님 주장이 성립하려면 시민군이 2시에 나주로 출발하여 무기를 탈취해 오는데 두 시간도 안 걸렸어야 했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광주에서 나주까지 도보로 얼마니 시간이 걸리는가요? 그리고, 삼십 만명의 시민군이 모두 나주로 갔습니까? 점심 식사를 위해 나주에서 징발한 김밥 수가 300개였다고 하니 300명 정도가 갔습니다. 그러면, 300명의 수로 되돌아와 전남도청을 점령했다는 말입니까?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입니다.

  • 08.09.21 21:48

    저는 동작 빠른 현역 출신입니다. 전두환 장군이 사단장이셨던 1사단 지역에서 저희의 경우 언제든 총기무장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비상 집합 명령이 내릴 것일지 예상하고 있어도 부대 연병장으로 연대 병력이 집합하는데 30분이 걸립니다. 자, 만약 도청 집단 발포라는 것이 있어서 나주로 무기탈취하러 갔다면 정신 공황상태였을텐데 어째서 한가하게 김밥 파티를 하였습니까? 그리고, 공수부대와 총격전을 벌이는 것이 시초를 급하는 문제였다면 어째서 하필 저 멀리 타 도시 나주로 갔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기를 탈취해 오는 것이 마라톤 코스 달려갔다 오는 것처럼 누워 떡먹기입니까?

  • 08.09.21 21:53

    지바고님이 혼동하시는 점이 이것입니다. 물론, 5월 21일에도 나주에서 무기 탈취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1일에 나주로 갔던 시민군들도 힌츠피터처럼 도청광장 충돌 사건을 전혀 보지 못하였습니다. 도청광장 충돌이 일어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나주에 있었으며 그들이 무기를 탈취하여 광주로 되돌아왔을 때는 이미 시민군 본대가 전남도청을 점령한 후였습니다. 드라마 5공화국이나 영화 화려한 휴가처럼 시민군 대장 박남선씨가 도청 점령을 주도하였던 것이 아니라, 시민군 대장 박남선씨는 도청광장 충돌 사건을 전혀 알지도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http://blog.naver.com/bookclub/40013306416 에서 시민군 대장 증언으로

  • 08.09.22 00:10

    소설을 쓰는구나..

  • 작성자 08.09.21 21:54

    학도님께미안합니다. 전 위에뎃글행태가 맘에 않들어 이런카페도 있더라 하는뜻으로 올린것임니다, 여기에학도님말이많은데 죄송합니다.

  • 08.09.21 22:00

    네, 그런데 이 기회에 지바고님 이해도 도와 드릴겸 달아드린 댓글이니까요.

  • 작성자 08.09.21 21:58

    저도위학도님 처럼생각을 했는데 차량으로 이동하여도 약2-3시간이걸릴거다생각을 하고있읍니다. 그래서그전무장에대해말한거구요.

  • 08.09.21 21:58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5월 19일에 이어 21일에도 나주에서 무기탈취 사건이 있었으나, 5월 21일 나주에서 무기를 탈취한 무장단체는 전남도청 충돌 사건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5월 21일 도청광장 충돌 사건과 나주경찰서 무기 피탈 사건은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지바고님 주장대로 도청광장 충돌 사건이 일어난 후 30만명의 시민군이 축지법으로 나주로 날아가 점심 식사도 하고 무기 탈취해 온 것이 아니라, 전혀 별개의 무리, 전혀 딴 사람들이었습니다.

  • 08.09.22 00:14

    도청<--> 나주간 30분이면 도착한단다..뭘 알고나 답을 쓰셔야지..

  • 08.09.22 08:17

    님의 병원에서는 누가 님의 병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물을 때 도보로 30분 걸리는지 차 타고 30분 걸리는지 밝히지 않고 그냥 30분이라고 말합니까? 차로 30분 이상 거리이지요? 그러면 도청 앞 시민군이 무슨 차 타고 나주로 갔는가요? 무장단체는 군용 트럭 타고 나주로 갔는데, 그 군용트럭을 어디에서 구해서 탔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시민군 30만명을 수송할 군용 트럭들이 뚝뚝 떨어지던가요?

  • 08.09.22 00:16

    유재덕님은 무장싯점을 도청발포전이란 선입겨을 미리 갖고 보는것아고,두보님은 객관적으로 힌츠페터 말고도 여러 언론,국방부,공무원 ,경찰서 기록을 참조하랍니다..

  • 08.09.22 08:24

    http://blog.daum.net/sionvoice/11045264 에 서울지검, 국방부, 검찰의 조사보고서가 있습니다. 도청광장 충돌 이전에 이미 무장시민군이 있었으며, 시민군 장갑차가 돌격하며 군인들을 깔아죽인 사건이 있었음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 08.09.22 00:21

    유재덕님이 크게 간과하고있는것은 58분 동영상을 보고났음에도 21일 도청발포후 시민들이 총과 실탄을 무장한것은 무시해버리고 화요일 경찰서가ㅣ습격했다는 독일 뉴스 한토막만을가지고 20일에 나주 무기고 습격과 시민군 무장을 연관짓는다는겁니다.

  • 08.09.22 00:24

    화요일 경찰서 습격은 정확히 어떤 상황였는지 확인해보셔야 할겁니다..유재덕님은 학도나 두보님에게 힌츠페터 영상을 가지고 묻는것보다는 직접 나주경찰서에 확인해보는것도 도움이 될겁니다..28년전 오래전 사건이지만 아주 역사적 으미가 잇는 사건였으니 해답을 찾을수가 있을겁니다..직접 객관적인 자료를 찾으시기..

  • 08.09.22 08:26

    나주경찰서 기록에 첫번째 무기 피탈 날자가 5월 19일입니다. 그 사건의 현장 증인이신 김동명 기자께서 나주경찰서 기록을 확인해 보셨습니다.

  • 08.09.22 08:44

    나주 경찰서 무기가 최초로 피탈된 날자는 5월 19일이었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로도 입증이 됩니다. 경찰 병력 3천명이 나주에 있을 때는 호락호락 무기고가 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광주시의 요청으로 전 병력 3천명이 오후 2시에 광주를 향하여 출발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장단체가 급습하였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수천 정의 무기들이 피탈되었던 것입니다. 그 사건의 한 단서가 바로 http://blog.daum.net/sionvoice/10357845 에 있는 동영상입니다. 이 글은 한동석 중위님과의 대화 후에 제가 수정할 부분이 있으나 좀 더 확인이 될 때까지 미흡한 원본을 그대로 남겨둔 글입니다. 이 동영상에서 중요한 것이 날자입니다.

  • 08.09.22 08:48

    저는 당연히 5월 18일 사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현장 증인들은 기동경찰이 최류탄을 발사한 날은 5월 19일로 보고 있습니다. 5월 19일의 기동경찰이라면 바로 나주 병력을 말합니다. 광주경찰은 5월 18일 궤멸되었고, 5월 19일에 나주 경찰 병력 수천명(나주 경찰 전병력)이 동원되었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주경찰서 무기고 피탈 사건은 바로 나주경찰 전 병력이 광주에 도착하였을 무렵 일어났던 사건이었습니다.

  • 작성자 08.09.22 14:10

    지바고님 뉴스한토막이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총과실탄 이지급 돼는데 지바고님은 그게 무장시점이라 주장하시는거지요. 그시점이 발포후라말씀하시는거구요.그런데 두보님은 화요일 저녁 자동소총무장했다고저에게 말하시내요.지바고님 두보님이 저에게 하신 말입니다

  • 작성자 08.09.22 14:14

    유재덕님이 주장하는 5.22.20시 독일뉴스를 확인해보니 ---▶ 58-3. 군의 보고에 따르면 양측의 충돌로 인해 수요일까지 9명의 사망자와 6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 (중간 생략) ~ 시위대가 화요일 저녁 경찰서를 점령하였고 자동소총으로 무장하면서 양측의 총격전은 더 격해졌기 때문이다) 11:54 답글

  • 작성자 08.09.22 14:15

    지바고님 그럼지바고님이 주장하시는 21무장은 철회하시는거죠...

  • 작성자 08.09.22 14:19

    그런데 학도님이 주장하시는 19일 무장에대해서는 자료가그다지없내요. 21일 에대해서는 여러가지 자료가있어서로비교해보았는데19일에대해서는 20일 총리보고서도 학도님의주장도 일리가 있거든요.19일 털린것을 20일날보고했다가능한말이니까요.

  • 08.09.22 14:33

    유재덕님;21일 오후세시이후에 분명히 총과 실탄이 시민들에게 나눠진것이고 그것은 도청발포후라 했습니다.

  • 08.09.22 15:23

    도청광장 충돌 사건은 힌츠페터가 전혀 모르는 사건입니다. 그는 그 시간에 시장 구경을 하다가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하였습니다. 만약 지바고님 주장대로 힌츠페터가 도청광장 충돌 장면을 보았더라면 시민군 장갑차가 군인들을 깔아죽이는 장면에 대해 무슨 알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힌츠페터는 심지어 도청이 어디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힌츠페터가 도청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한 후였습니다.

  • 08.09.22 14:38

    유재덕님은 뉴스에대한 사실성을 전혀 모르고있습니다..뉴스도 뉴스다워야합니다..22일 독일방송 뉴스에 실린 힌츠페터영상은 수요일에 광주에 들어왔으며 그가 촬영한 기록은 21일 오후 시민군 무장시작까지입니다..두보님이 유재덕님에게 한말은 독일뉴스에 방영된 뉴스한토막을 그대로 보여준겁니다..군의 보고에의하면...(아직도 이해안되십니까?)

  • 08.09.22 14:51

    "군의 보고에의하면...(아직도 이해안되십니까?)" ...힌츠페터가 목격한 경찰서습격 얘기가 전혀 아닙니다.당시는 계엄사 유인물이 많이 시내에 붙여졌고,나돌았습니다..불순 간첩 적발,시민사망자 축소등..계엄사보고를 뉴스에서 얘기한겁니다..

  • 08.09.22 15:25

    아마 계엄사 유인물이란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문화공보부 유인물이 배포된 때는 도청이 시민군에게 점령당하기 이전이 아니라, 이후였습니다. 즉 22일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 작성자 08.09.22 16:40

    지바고님 위에 주장을 철회하란말은 제가주제넘었구요 그점미안하구요 지바고님이그렇게생각을 하시고저는저데로 생각하면돼는데말입니다. 하무튼사과할게요.

  • 08.09.22 19:28

    미안해할것은 아닌데요..님처럼 하나하나 의혹을 찾을려는 노력이 좋습니다..제가 목격한것이 제일 정확한 자료일텐데,그리 못함을 안타깝습니다..

  • 08.09.22 18:51

    학도글을 유심히찾아보면 일자,상황이 얼토당토않는 글이 많이있습니다.멀리 찾지않더라도 학도자기글에 자기가 들통납니다

  • 08.09.22 19:08

    보름만 기다리세요. 문맹자들을 위한 희소식 개봉 박두!

  • 08.09.22 19:31

    댓글이 길어 새글로 글을 올리겠습니다..유재덕님, 독일방송뉴스에서 화요일 경찰서습격이 맘에 크게 남나생각됩니다..그에대한 잘못된 계엄사 왜곡뉴스인지 아닌지 생각할겸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08.09.22 19:42

    동영상을 다시 보세요. 힌츠페터가 5월 20일 초저녁 광주에 도착하였을 때 제일 먼저 본 것이 바로 무장시민군이었습니다.

  • 08.09.22 19:25

    후속작 기다려지는데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08.09.23 06:25

    지바고님이 잘못 알고 계신 것을 지적해 드리려고 한 말입니다. 518측 주장으로 5월 21일 도청광장에 30만명의 시민군이 운집해 있었다고 하고, 실제로 20만명 이상의 인파가 도청광장과 금남로 일대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지바고님 주장이 성립하려면 도청광장 충돌 후 30만명의 시민군이 모두 나주로 무기탈취하러 갔어야 했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며, 실제로 도청광장의 시민군 중 아무도 나주로 가지 않았습니다. 5월 21일 나주에서 제2차 무기탈취를 한 시민군은 별도의 시민군이며, 나주에서의 제2차 무기탈취와 도청광장 충돌은 동시에 일어났던 사건이었습니다. 자동소총과 카빈 등 도청광장 충돌 당시 무장시민군이 가지고 있던

  • 08.09.23 06:27

    무기들은 5월 19일에 미리 탈취하여 놓은 것들이었습니다. 5월 21일에도 추가 탈취가 있었으나 5월 21일 도청을 점령하기 위해 사용된 무기들은 (윤상원을 필두로 하는) 김대중의 국민연합 세력이 5월 19일에 미리 탈취하여 놓은 무기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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