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지식(惡知識)이라 함은
달콤하게 말하고
거짓 아양을 부리며
말을 교묘(巧妙)히 해서
우치(愚癡)한 사람의 마음을 잡아
선심(善心)을 파(破)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대체로 열반경(涅槃經)의 심(心)은
십악(十惡)·오역(五逆)의 자(者)보다도
방법(謗法) 천제(闡提)의 자(者)를 두려워 할지어다
라고 훈계(訓誡)했느니라
창법화제목초(唱法華題目抄)
어서 7쪽
젊은날의 일기
1952년 12월 21일 (일) 안개 –24세-
으스스하게 추운 일요일이었다.
정오까지 잤다.
T씨가 왔다. 참으로 불쌍하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도 없다.신심을 권유하는 일 이외는 없다. 내게는. ―
조사 부원, 6시에 본부 집합. 전진이다, 전진이다. 정보망 수립을 서두른다.
8시 30분, 선배 · 동지들과 스키야키 모임을 열었다. 자택에서, 모두 맛있게 잘 먹었다. 고기도, 밥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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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2월 21일 (수) 비온 뒤 흐림 –27세-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미아모토 무사시》를 다시 읽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를 그립게 떠올리면서.
검인(劍人). 기인(技人). 이 일념, 이 심리, 이 인생수행, 이 생명의 약동도 현대사회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6시 30분부터 선생님과 함께 은행의 초대를 받아 R에서 회식.
10시 지나 귀가. 이 1년 동안 있었던 일을 여러 가지로 생각하였다.
반성, 용기,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조슈 번 무사), 동지, 선배 그리고 미래, 10년 · 20년 앞의 내 인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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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2월 21일 (금) 맑음 –28세-
하루 종일 머리가 무겁다. 청춘의 마음은 변화무쌍한 법이다.
날이 갈수록 추워진다. 하지만 몸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기쁘고 기쁘도다.
어서 배독을 잊지 마라.
소설 읽는 것을 잊지 마라.
경제와 정치 공부도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하루 종일 선생님 생각. 사제(師弟)의 엄함.
6시, 본부간부회. 도시마공회장.
58,694세대 절복 완수. 올해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로써 50만 세대의 사람들이 본존님을 수지하게 되었다. 다만, 두려운 것은 마구잡이식 본존 유포이다.
조자이사(常在寺)에서 축하연.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와 F씨가 우리 집에 들렀다. 느긋하게 환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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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2월 21일 (토) 쾌청 –29세-
오후에 아내와 함께 M댁으로 연말 인사. 미안하게도 식사를 대접받았다.
저녁에 이케부쿠로의 조자이사에서 열린 제37부대회의에 참석.
① 부대장을 중심으로 깨끗한 단결
② 어서 한 구절 한 구절을 색독(色讀)하도록
③ 길게, 인내 강한 신심으로 행복한 인생을 이라고.
내년은 전혼을 기울여 청년부 발전을 위해 진력하자고 결의한다. 그것 외에는, 학회의 미래를 발전시키는 길은 없다.
즐겁고 화목한 집으로 귀가.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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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2월 21일 (월) 맑음 –31세-
어젯밤 내내 종문과 학회의 장래를 생각하느라 잠을 얼마 못 잤다.
8시 30분에 에개비인데 5분 늦어졌다. 열쇠를 찾지 못해 지연되었다고 한다. 예하가 부재중이라 왠지 느슨해진 느낌이다.
어개비가 끝나고 선생님 묘소에 가서 인사드렸다.
독경 · 창제.
맑은 날씨. 비온 뒤는 어김없이 맑은 하늘인가.
인생의 비가 그친 후도 반드시 그러하길 바란다.
오후 3시 넘어 ― 본부 도착.
차 안에서 M씨 댁의 일을 계속 걱정했다. 쓸쓸했다.
저녁 무렵, 신주쿠에서 청년부 간부회. 차기 학회 지도자들을 훈육하기 시작했다. 모두 사랑스럽다. 검은 눈동자, 우람한 근육, 청류와 같은 신심.
광포를 총마무리 할 젊은이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8시 30분 귀가.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아내를 조금 도왔다. 대수롭지는 않다고 한다.
늦게까지 독서.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