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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탁스 (DOTAX) 원문보기 글쓴이: ㅣ로세 스즈
“나이키 지디 신발을 만들고 싶어요!”
어쩌면 나를 나이키 임원까지 만들어준 건 지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친구는 처음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연습생 시절 막대 사탕 하나 입에 물고 있던 첫 모습도 그가 하면 무언가 쿨해보이고 남달라 보이는 힘이 있었다.
2006년 데뷔 초 멤버들에게 똑같이 옷을 시딩해줘도 지디는 그 자리에서 바로 비닐을 뜯고 티셔츠가 거의 찢어질 정도로 구겨대고 비벼대더니 그대로 툭툭 털고 입었다. 작은 것 하나도 본인만의 스타일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원하는 스타일을 비주얼이나 그림으로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거나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특히 만화 캐릭터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지디가 한번 신으면 전국적으로 품절 사태가 일어났고, 국내 스니커즈 시장에서 나이키 브랜드가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에어포스1, 조던 시리즈, 코르테즈, 에어맥스 시리즈까지 고스란히 매출로 연결되어 나이키는 물론 나에게도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가 신은 신발은 다른 셀럽들에게 도 큰 영향력을 미쳐 갖고 싶은 워너비 브랜드로 만들어버렸다. 그와 주고받은 나의 핸드폰 메시지에는 수백 개의 운동화 이미지가 가득하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아 뭐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지용아, 혹시 나이키가 무언가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거 있어?”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이키 지디 신발을 만들고 싶어요! 카니예 웨스트처럼, 그게 소원이에요.”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그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어쩌면 소원이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나의 무모한 도전은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드래곤 X 나이키’ 운동화도 절대 탄상하지 못했을 거라고 단연코 말할 수 있다.
# 내 발등을 내가 찍다
나는 그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처절하게, 치열하게. 머리와 심장이 빠개지는 복잡함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2014년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부사장인 팸 매코넬이 한국에 방문하는 일정이 잡혔다. 나는 그날 그녀에게 지디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고 제품 컬레버레이션을 꼭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내 호소가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국 엔터테인먼트 성장의 가파른 상승 추세를 들먹였다.
한국 셀럽이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최대한 많은 정보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지디가 왜 나이키와 함게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과 가치에 대해 몇번이고 강조해서 설명했다. 팸 매코넬이 돌아간 후에 일이 좀 진전되는 듯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그냥 노력하겠다는 말만 반복될 뿐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지 않았다. 너무 답답하고 무엇보다 지디에게 그동안 고마웠던 것에 대해 보답하지 못할까 봐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었다. 나는 3년 동안 나의 직접적인 보스인 나이키코리아 사장님한테도 도움을 청하는 등 모든 라인을 거쳐 높은 본사의 문을 계속 두드렸다. 지디의 영향력을 증명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데이터를 수집했다. 아티스트로서, 패션 아이콘으로서 끼치는 그의 영향력, 그와 연결되어 있는 친구들, 그가 영향받는 사람들, 소셜 데이터 분석 등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인사이트와 생각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달하는 등 그에 대한 자료만으로도 책 한 권은 너끈히 쓸 수 있는 분량이었다.
# 3년 끝의 대실패
결국 3년의 긴 노력 끝에 내가 받은 결과는 실패였다. 그 시점이 카니예 웨스트가 나이케에서 아디다스로 갈아타면서 나이키 내부적으로 안 좋은 케이스로 남게 되었다. 앞으로 셀럽과의 컬레버레이션은 당분간 하지 않겠다는 마크 파커 글로벌 나이키 사장의 방침이기도 했다. 그래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마케팅팀에서 내가 끈질기게 매달려도 이런 민감한 타이밍에 누구 한 명 책임지고 굳이 나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타이밍이 안 좋았던 것도 사실이었지지만 또 하나 지디가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영향력은 충분히 있으나 스포츠와의 연관성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결국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3년이 넘게 그에게 믿고 기다려달라는 말만 하고 다른 경쟁사로부터 수없이 콜을 받았음에도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했떤 터라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는 경쟁사 A사로부터 글로벌 광고 모델과 한정판 제품 컬레버레이션까지 하는 조건으로 매우 높은 개런티를 몇 차례 제안 받았으나 거절했다. 그만큼 나이키를 기다려주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안 좋았다. 그때는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구나’ 싶었고 나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는 것 같은 좌절감으로 퇴사를 고민하기도 했던 순간이었다.
#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회를 엿보다
그렇게 죄인 아닌 죄인이 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 2017년 나이키 베이퍼맥스 글로벌 광고에서 주요 나라의 선수, 셀럽들과 촬영 계획이 잡혔다. 나는 이때다 싶어 또다시 지디를 글로벌 광고 모델로 넣어달라고 제안했다. 결국 지디는 그 유명한 ‘kiss my air' 베이퍼맥스 광고 모델로 선정되었고 아시아 전역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까지 지디의 베이퍼맥스로 불리면서 솔드아웃으로 영향력을 그대로 입증했다.
베이퍼맥스 광고 촬영은 해외 유명팀이 진행했는데, 현장에서 갑자기 시안에 없던 트램펄린 위에서 점프하는 장면을 요청했다. 원래 계획되어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 민감한 그였지만 결국 추가 컷을 촬영하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트램펄린에서 점프하다가 넘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너무 놀라 당황하고 또 미안해서 황급히 달려갔더니 그는 “내가 누나 때문에 신인 때 이후로 트램펄린 점프 처음 해본다!”며 귀엽게 눈을 흘겼다. 그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 너무 고마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감독의 지시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는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모습을 표현해야 사람을 홀릴 수 있는지 다 아는 것처럼 움직임 하나하나에 모든 끼와 매력을 발산했다.
# 나의 자존심을 지키다
베이퍼맥스를 통해 지디의 영향력이 입증되면서 그 기회를 틈타 엎어졌던 ’지드래곤 x 나이키‘ 제품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를 또다시 이슈화시켰다. 지디가 1~2년 사이에 입대를 할 수도 있었기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운동화의 경우 디자인 및 제작 기간이 이 빠르면 1년 안에도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지디가 군대 가기 전에 약속을 지키겠다고는 생각으로 속도를 냈다.
다행히 지디가 그 무렵 패션 아이콘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급부상하는 시점과 맞물려 나이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마케팅팀에서도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추진해 드디어 최종 승인이 났다. 승인이 나기 전 회사에서는 나한테 몇 번의 확인을 메일을 보냈다.
그 내용은 “영미, 너는 지디가 다른 경쟁사로 절대 안 간다는, 나이키와의 신뢰를 끝까지 지킨다는 확신이 있느냐? 너만이 대답할 수 있고 네가 확신해야 한다!”였다.
그 질문은 마치 ’만약에 우리가 컬레버레이션을 한 이후 지디가 경쟁 브랜드로 가게 되면 너는 당장 여기서 떠나야 할 것이다!‘라는 협박과도 같았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디는 우리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며 기다려주었고 나이키 대한 브랜드 로열티를 10년 동안 보여주었다. 나는 그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이후로도 나에게 확신하라는 몇 번의 검증을 받은 후 최종 승인이 떨어졌다.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내가 진심으로 두려운 건 회사에서 짤리는 것보다 지디만의 나이키 신발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건 내가 직장인으로서가 아닌 인간 이영미로서 자존시믈 건 약속이자 도박이었다.
# 7년의 노력 끝에 탄생한 운동화
그렇게 1년을 목표로 일명 지디 신발 만들기 프로젝트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이키 컬레버레이션 프로세스는 아티스트가 본인이 원하는 디자인 콘셉트를 설명하면 나이키에서 시안을 작업해 아티스트와 계속 논의하면서 발전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역시 지디는 일하는 방식에서도 확연하게 달랐다. 그는 본인의 생각을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신발을 해체하여 전개도를 만들고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완성된 샘플을 만들어 와서 이렇게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그 디자인은 매장에 바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니 그 이상의 퀄리티로 우리를 당황시켰다. ’우리가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열정과 아티스트로서의 상상력은 대단했다.
수많은 에어포스를 해체하고 색을 입히고 또 입히고 신발끈, 밑창, 아웃솔, 신발 고리 등 작은 부속품 하나까지 직접 샘플로 완벽하게 제작해왔다. 완벽한 본인만의 신발을 만들기 위해 며칠을 제주도에서 꼼짝 안 하고 신발 커스텀에 꽂혀 미친 듯이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진짜 미쳤나 싶을 정도로 소름끼치기도 했다. 그렇게 7년 만에 그의 뛰어난 아이디어와 나의 오랜 노력으로 ’PEACEMINUSONE X AIR FORECE1 PARA NOISE'가 탄생했다. 운동화 끈을 멋스럽게 묶기 위해 두껍고 길게, 신발을 벗었을 때 빈티지 함을 살리기 위해 이중으로 갑피를 씌운 것도 모두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그 어떠한 컬레버레이션 제품보다 가장 완벽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든 지디스러운 ‘#그냥해’라는 슬로건 역시 완벽하게 소비자의 마음을 홀릴 수밖에 없었다. 지디는 2018년 1월 릴리즈용 광고 촬영을 마친 후 2월 초에 입대했고 나는 그해 8월 나이키를 떠났다. 그리고 묵혀 있던 지디의 운동화는 2019년 그가 제대한 후 2주 만에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이번 결과 역시 ‘지디는 지디’였다.
물론 글로 담지 못할 많은 우여곡절과 그 과정 속에서 잊고 싶은 상처들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정말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고, 포기할 수 있는 기회도 잆었다. 하지만 그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 끝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세계 제일의 브랜드와 최고의 아티스트가 함께하는 건 당연하며, 그를 오랜 시간 지켜본 나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리란 확신이 있었다.
- 전 나이키 임원 이영미님의 책 '링크업' 내용 중에서..
첫댓글 남지디무새들 지디 또 겁나 따라하고 댕기겠구먼
와....
연예인이여벼슬이여뭐여 눈치보고난리낫네
대박이다 신기해 진짜
7년 존버라니 미친 나같음 퇴사했을텐데 이미 ㅋㅋㅋㅋㅋ
10년 넘게 팬이었고 지금은 당연히 탈덕했지만 영향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싶네; 데뷔 초부터 남달랐구나 난 팬일 때도 솔직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패션이 많았어서..^^
근데 이 글은 임원 분이 정말 대단한 프로젝트 완성시킨 거에 더 초점 맞춰서 읽어줬음 좋겠어 글쓴여시 안 무안하게..!
개인적인 약속을 자기 커리어(에도 이 플젝 성공하면 큰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에 대한 걱정 없이 끝까지 지켜낸 거 넘 멋있으시네
와 진짜 대단하다 글로도 이정돈데 실제로는 얼마나 더 속탔을거여ㅠ
야.. 배신하지말어라 그리고 나 한켤레만 ㅎ
진짜 두 사람 모두 대단하고 일적으로 열정 넘치고 멋있게 느껴진다…
진짜 임원분 존경스럽다 와..
감각있노
둘 다 멋지다
대단하다 ㅋㅋ 지디도 의리잇게 기다려줬네
아니 신발을 다 해체해서 단계별로 샘플 만들어서 가져왔다는 저게 대박이다
오 신기햌ㅋㅋㅋㅋㅋ저신발 .... 난 당첨안됐는데....ㅠㅠ
와 진짜 열심히 하셨다.. 진짜 쉽지 않았을건데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지디 새롭게 보이네
신발 진짜 예쁘기도 했어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
와 멋지다 진짜..
몇백만원을 호가하던 피마이너스원이 이런 비화가 있었구나...7년이나 역사가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신기하다
엥 반스 콜라보했자나 머임
삭제된 댓글 입니다.
222맞어 기억난다
333 크으 마자.. 그랬었지~~
성공한 사람들은 이유가 있다고 다시 느끼네
진짜 둘다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살아야지..
개쩐다..
와 저분 너무 대단하시다 몇년을 기다리고 추진하더니 결국에 해냈네,,,! 진짜 뚝심하나로 일궜노!
솔직히 약간 혁신이었지
신발 만드느라 앨범 안낸걸수도 있겠군??
진짜 둘다 개멋있다 이글 보니까 지디는 꼭 연예인 안 했어도 예술쪽으로 트여있는 사람인거같음 뭘해도 이름 날렸을거같아
오….
근데 중간에 왜 나가신걸까! 내가 다 아쉽
와우..
와 … 영미 님 진짜 멋있다
대박 멋있다.....
와 멋있다.. 대단하다 저 끈기가
흥미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