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2016년이었을 테다. 계절이 막 봄에서 여름으로 모습을 바꾸던 어느 날 밤, 맥주 한 캔을 손에 쥐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채널을 바꿔대고 있었는데 평소에 들어본 적 없는 그림 장르의 이름이 소개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돼 리모컨의 채널 버튼을 연신 눌러대던 엄지손가락의 동작을 멈췄다.
회색 톤의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 차림에 금속테의 안경을 쓰고 스타일에 과한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는지 어중간한 길이의 머리를 대충 빗어 넘긴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조선 중기나 후기 즈음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동양화가 띄워져 있었는데 대뇌에서 내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라고 명령하게 만든 것은 그림이 아니라 텔레비전에 띄워진 자막이었다.
회색 수트를 입은 남자가 tvN의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양원 전 동덕여대 교수의 그림을 가지고 자신 있게 장승업의 그림이라며 ‘조선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출처ⓒtvN
조선화라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학계에서 동북아시아의 미술사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 작업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러다 조선 시대에 그려진 그림이 당시의 중국 대륙이나 일본 열도에서 그려진 그림과는 달리 반도의 지리적 물리적 특성 탓에 독자적인 형태로 발달해 반드시 구분할 만한 가치가 있어서 이를 동양화라 묶는 것보다 따로 분리해 연구하는 것이 미학적으로 또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지적 합의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저 회색 수트 차림의 남성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요즘은 워낙 다양한 설정의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는 통에 <베스트 논문 코리아>나 <내가 가설왕>이라는 프로그램이 어느새 시청률 고공 행진을 기록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대학과 대학원을 합쳐 열두 학기에 걸쳐 미술을 공부하면서 한 번도 ‘조선화’라는 표현을 읽어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후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프로그램은 <어쩌다 어른>이라는 다소 엉뚱한 이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들이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격식 차린 옷을 갖춰 입고 아무말을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설정인가보다 싶었다.
이런 추측이 확신으로 굳어졌던 것은 그가 자꾸 장승업의 그림이 아닌, 현재 버젓이 생존해 있는 화가의 그림을 가지고 장승업의 그림이라면서 미간에 힘을 잔뜩 주고는 사방에 침을 튀며 “이 천재적인 필체를 보라”며 진지하게 떠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이 나간 직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서 곧장 난리가 났다. 비난 여론은 회색 수트의 남자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부터 시작해 원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고백에 이르렀고 느닷없이 조선화라는 새로운 미술사적 개념을 만들어 나왔던 남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여섯 줄의 사과문을 올리더니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그는 미술사뿐만 아니라 매해 2월에 전국에서 약 2만5천 명의 미술 전공자가 졸업장을 받고 구직 활동을 하거나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업하거나 본격적으로 백수 생활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사기를 치다 걸리는 경우는 일련의 사건이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남아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소재를, 본인에겐 흑역사를 만들면서 적어도 반성이라는 꽤 의미 있는 일을 해볼 기회라도 만들지만 더러는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사기를 치는 통에 보는 이로 하여금 아슬아슬한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중 하나가 학력을 가지고 말장난을 쳐가면서 은근히 학력을 추가하는 경우다.
(중략)
21세기에 진입한 한국 사회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홍역을 치르며 2010년대 구간을 지나고 있다. 이 일련의 과정을 유심히 눈여겨본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가 하나 있었다. 자신의 공부 방법에 특별한 기술이 있다는 책을 써서 유명세를 얻고 최근엔 여러 방송에 나와 열심히 자신을 팔고 있는 한 남자다.
그는 인터넷으로 예일대 학위를 받았다는 식으로든 남의 졸업장을 스캔해 포토샵으로 편집하는 식으로든 절대로, 일체의 허위 사실을 유포하지 않는다. 졸업하지 않은 학교에 대해 졸업했다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수업을 들었다’는 아주 경계가 모호한 어휘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학력을 포장한다. 예를 들면 그가 졸업한 학교는 뉴욕대학교 경영학과 하나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여서 옆 학교인 줄리어드 음대의 수업을 들었다”고 말함으로써 마치 줄리어드 음대를 다닌 것처럼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 기술이 대단한 것은 누구에게도 학교를 다녔다거나 졸업했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학력위조라는 구시대의 범죄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만을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이 알아서 오해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누가 집요하게 물어보면 “나는 거기 다녔다거나 졸업했다고 말한 적 없다”고 말하면 그만인 셈이다.
그는 줄리어드 음대라는 대학의 이름을 언급했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뉴욕대학교와 줄리어드 음대라는 두 개의 대학 이름을 기억하다가 결과적으로 두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이라고 기억해버리면서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만드는 실수를 범한다. 본인은 학력위조를 하지 않지만 사람들에 의해 학력이 추가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 프랑스에서 인문학을 배우려면 적응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르본대학 적응과정을 수료했다. 쉽게 말해 어학당과 다름없는 과정을 ‘소르본대학 적응과정을 수료했다’고 표현하면 사람들은 소르본대학이라는 대학 이름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국가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어학 능력을 검증받아야 하지만 그는 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별 상관없는 사실을 덧붙여 좀 더 구체적이고 모양새가 세련된 것처럼 보이는 문장으로 다듬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권 국가의 학생이 프랑스 대학에서 공부하려면’이라는 조건이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 프랑스에서 인문학을 배우려면’이라는 조건으로 화려하게 둔갑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 소르본대학을 추가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줄리어드 음대와 소르본대학을 간단하게 추가한 그는 마지막에 “에꼴드루브르에 입학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에꼴드루브르라는 학교를 더불어 기억하게 만드는 것까지 성공한다. 그의 이런 일련의 작업에는 전통적 기법의 학력위조가 들어가지 않으며 스스로도 “졸업한 대학은 뉴욕대 하나뿐이다”라거나 “짧은 가방끈이 여러 개 있다”는 식으로 전제를 깔면서 모종의 혐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제도권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경력으로 이용하려면 제도권 교육기관이 요구하는 전체 과정을 따라 밟은 후에 ‘졸업’이라는 형태로 공식화 돼 있는 자격까지 확보한 후에 해당 경력을 활용하는 것이 옳다. 어느 학교에 입학했는데 어떤 이유로 졸업하지 않았다면 해당 학교를 본인의 학력에 은근슬쩍 끼워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이건 해당 학교에서 요구하는 모든 교육 과정을 성실히 따라 밟아 졸업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제도권 교육 전체를 희롱하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는 비상한 기술을 동원해 7개국어에 능통한 언어 천재라는 부수적인 타이틀도 거머쥐었는데 역시 학위를 추가하는 방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획득한 것이다. 어떤 자격증이나 시험 점수, 저술한 책이나 논문을 언급하는 대신에 어디서 몇 년 살았고 어떤 언어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식의 설명만을 한다. 그러면서 간단하게 해당 언어로 자기소개를 하면 사람들이 ‘몇 개 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맞장구를 쳐준다. 포인트는 이 맞장구에 “부끄럽다”거나 “에이, 그런 건 아니고요”라는 식의 반응을 일절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일상적이고 단순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외국어 실력을 가지고 ‘언어 천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마치며 얼마 전 교육방송의 방송국 로비에 잠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새로 지어진 방송국 로비는 상당히 쾌적했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줄줄이 들어와 프로그램 방청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국 정문을 정면에서 압도하는 초대형 스크린 하나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의 예고편을 쉴새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 둘이 연이어 등장했다. 하나는 ‘소통하는 인문학’이라는 자막과 함께 여전히 회색 수트를 입고 있었고 하나는 ‘언어 천재’라는 자막과 함께 여전히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이들은 마치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하려고 든다. 텔레비전에서 이런 사람들이 나와서 열심히 인문학에 대해 혹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지식을 가졌는지에 대해 떠들면 냉장고 앞으로 가라. 야채 칸에 있는 토마토를 꺼내 씻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유리그릇에 옮긴 다음 싱크대에서 설탕 봉지를 꺼내 듬뿍 뿌리자. * 외부 필진 최황 님의 기고 글입니다.
저말 공감해 ㅋㅋㅋㅋ 누가 모든것에 대해 모든것을 다 알수가 있단 말임.... 자기 분야가 있는거고 그 외엔 다른사람보다 더 알지 못하는게 당연한 것을.... 석사 박사 교수가 왜 파리 다리에서 시작해서 점차 파리다리끝의 발톱털만 공부하겠냐고ㅜ... 와 내가 속에서부터 느꼈던 은근한 그 불쾌감정이 이것때문이구나....ㅋㅋㅋㅋㅋㅋㅋ
첫댓글 조승연은 과대포장한 과자같은 사람이네
겉으로는 양 많은것 처럼 사람들이 오해하게해놓고
막쌍 까보면 몇개 안됨. 사람들이 항의하면 답변은 포장에 몇개라고 기재해놨는데 왜? 이러지ㅋㅋㅋㅋㅋ오해하고 산 너네가 잘못아닌가? 이럼서
비유찰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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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독일어도 뭐 거의 코메디 수준.
몇개국어 한다에 넣는게 우스울 정도
333 독일사람들이 하나도 못알아듣는데 이러면 n개국어에 넣지 말아야되는거 아녀? ㅋㅋ
https://youtu.be/9GauidfGUes
PLAY
못한다고 그랬어? 무조건 칭찬하지 않나 거기는
비담 다 봤는데 못한다고 한 기억이 없어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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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언어천재는 타일러정도 돼야 천재아닌가ㅋㅋㅋㅋ
이사람 유튜브에서 아주 잘나가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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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이혼했었어????? 이번에 결혼 했던데
@오죠숙녀 대박이군,,,진짜 몰랐어
@하마터면 이 출처에 나온게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그냥 썰이니깐말얌. 그래도 구글 검색하면 이게 뜨길래 링크해봄: https://www.82cook.com/entiz/read.php?bn=15&num=2377033
한사람에 대해서 의견갈리는게 찐 흥미돋이다!
나는 학문이나 언어적으로 잘 몰라서 오 뭐지? 대단한데? 라는 생각드는데 진짜 전문가 입장에선 얘 뭐지..? 할것같긴하다ㅋㅋㅋ
이것저것 얕게 할 줄 알고 거기에 포장을 곁들인
저 회색 수트는 누구야? 저사람도 조긍연인가?? 늘 궁금
최진기 아녀??
와 너무 공감하명서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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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진짜음침하다
저말 공감해 ㅋㅋㅋㅋ 누가 모든것에 대해 모든것을 다 알수가 있단 말임.... 자기 분야가 있는거고 그 외엔 다른사람보다 더 알지 못하는게 당연한 것을.... 석사 박사 교수가 왜 파리 다리에서 시작해서 점차 파리다리끝의 발톱털만 공부하겠냐고ㅜ...
와 내가 속에서부터 느꼈던 은근한 그 불쾌감정이 이것때문이구나....ㅋㅋㅋㅋㅋㅋㅋ
혹시 최진기..? ㅎ
조승연 유툽보면 책 많이 읽고 지식은 많아보이긴 함 근데 언어천재인진 잘 몰겠어
무슨 교수출신도 아니고 걍 작가면서 지식자랑 하는거 불편했었음 학력얘기하면서 아는거 많은거 전시하는데 듣다보니 맞말같고 빨려들어가는건 있지만 그게 팩트인지는 모름ㅋㅋㅋㅋㅋ
저것도 목적이 있을텐데 정치에 관심있나?
나 저사람이 쓴 시크하다 이거 쩌리에 소개글이
올라왔는데 어떤 여시가 바로 반박 댓 올린거
보고 쫌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더라
첫번째 저 사람은
대체 ㅋㅋㅋㅋ 뭐 왜나온거지 저 프로 ㅋㅋㅋㅋㅋ창피하겟다
헐 조승연 좀 충격인데
왜 저러는거야? 양심 때문인가?
본문이랑 별 다릉 내용이지만 이래서 TV에 자주 출연하는 전문가들 안믿음.. 결국 그 사람들 책팔이 or 홈쇼핑에서 뭐 팔더라 ㅋㅋㅋ 진짜 고수는 TV에 나오지 않고 본업에 충실하겠지
조승연 중국어하는거 들어봤는데 엉망진창이던데 발음부터가.. 그냥 기초도 잘 못 쌓은 사람 같았어
조승연 최진기라는 사람들이구나
조승연 중국어도 걍그래 독일어는 독일인이 못알아듣는다햇고..
프랑스어영어는 거기서 살앗자너...
나도 조승연 유튜브받아보지만 저기나온말 다받음
그냥 말잘하는사람 그이상도이하도아님
지식한입 교양만두 이정도수준
진짜 예전부터 느낌 ㅋㅋㅋㅋ
와우..
타일러나 마크는 조승연보고 먼 생각할까 ㅋㅋㅋㅋㅋㅋ
유튜브 구독자 백만찍고.. 뭐지 싶더라;
헐 조승연?… 그러면서 뭐 역사 알아보자 이런 거 콘텐츠 한겨?…
글 재밌다~~!!
아 글너무재밌다
조승연보면 그 유튜버 생각나 얼마전에 난리난 카걸 부부
얘네도 지들 입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은 안하고 남들이 오해하게 놔두고 해명 안하다가 다 밝혀졌잖아
설민석이 이 분야 갑 아닌가ㅋㅋㅋ
나 아는 지인 생각난다 .. 명문대 평생교육원에서 수업 들었으면서 거기 졸업한 것 처럼 인스타에 전시해가지고 사람들은 명문대 졸업한줄 앎 ;;
근데... 본문언급 건 말고도 티비/유튜브에나오는 사람 중에 비슷한느낌의 사람.... 사람들이 막 우와대단하다 하는데 막상 같은 회사/업계에서 보면 "뭐저런..;;;" 싶음.....
근데 학력이 있어야만 그 분야의 능통자는 아니니까 분별하면서 보면 되지
자기 pr의 시대라지만 저런사람들 너무 많음 저런 컨텐츠 질이 너무 낮아진거같애
세바시에 나오는 몇몇사람들도 사실상 실제로 저사람이 뭘했는지 찾아보면 명확하게 나오지않는 경우가 많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