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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8기총동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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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코너 스크랩 수필 그 해 겨울 자옥이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58 11.02.18 14: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현리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수도기계화보병사단(맹호부대) 사령부 가는 길목에 군인극장이 있다.
가을 밤비에 마즌편 맹호다방 불빛이 아련했다.
등화관제 차단막으로 가려진 찻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가을비와 함께 온 듯 새로운 찻집아가씨가 책을 보고 있다. 나는 그 책을 알고 있다.
" 아가씨가 경아야?"
내 말에 그네의 눈이 커졌다.
그 뒤 젊은 군인들이 슬금슬금 그네를 경아라고 부르면 배시시 웃었다.

다음해, 봄이 떠나려는 밤에 찻집에 들어서자 찻집 아줌마가 책 한권을 내게 준다.
" 아이가 떠나면서 이 책을 드리라고 하대요."
받아든 별들의 고향에 메모 한 장이 있다.

황대위님,
경아라 불러주셔서 고마웠어요.
제가 바로 경아였으니까요.
1974. 5. 21

 

 

 

 

 

 

청춘은 그리움이다.
다만, 내가 가진 추억의 절반과 그가 가진 절반이 마주치는 순간 추억은 방금 만들어진 생채기 모양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이니.

부대 배치를 받고, 동기들을 만나고 그 중 마음에 통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
자옥, 내 친구 구중위.
군대 생활이 자리를 잡혀가던 현리의 그 해 겨울에 눈은 온 세상의 소리를 가슴에 품고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눈의 무게에 사람이 눌리고, 집이 눌리고 길도 눌리고 우리는 방에 갇혀 있었다.

손바닥 만큼 따뜻한 아랫묵의 온기를 아끼려고 펴놓은 이불 속으로 자옥이가 들어와 있었다.
우리 둘은 낄낄 하하 대는 소녀들과 무엇이 다른가. 
진부령에서 만난 소녀 이야기를 했고, 그냥 바람 처럼 산다는 소녀가 머물던 가을이 끝나고 눈 오는 날 떠난 소녀가 남긴 낙서는
" 나는 진부령에서 눈 오는 날 죽고 싶다 ."

새 봄 꽃 피는 진부령에 갔을 때 지난 겨울의 소식은 철쭉에 묻혀 있었고, 소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의 청년도 소녀따라 바람 속에 사라졌다.

그는 공병대 소대장이었고 나는 사단 사령부의 참모부 보좌관이었다.
그와 나는 ROTC 8 기 동기였고 함께 붙은 방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가을이 오면 내가 군용 더불 백을 메고 그 곳 사령부로 전입갈 때 길 가의 코스모스가 한들대고 공병대 중대본부에서 만난 검게 탄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온세상을 무겁게 누르던 눈과 진부령으로 떠난 아가씨가 세월의 벽을 넘어서 아직도 소녀의 나이를 한 체 애뜻해진다.

 

 

 

 농협 건너편에 맞춤 양복점 신광라사에 우리 젊은 이들이 있었다. 라사점 아줌마는 추워지면서 방마다 연탄을 가는 일도 큰 일이었다. 라사점 사장되시는 쥔장 어른은 50객으로 우리 한 집 식구들에게 자상했다. 그 집에서 기르던 개 이름은 루비였다. 셋방 살이 장교 중에서 나를 제일 따랐다. 퇴근 무렵에 내가 타고 오는 자전거 소리가 집밖에서 들리면 대문을 박차고 열고는 내게 달려 들었다. 두 해를 보내면서 루비는 내게 준 순정을 내가 떠날 때까지 지켜 주었다.

 

4년차 군생활이 끝난다. 군에서 전역자에게 주는 기념패를 받다들고 나는 자옥과 이별의 사진을 찍는다. 

젊은 날에 그와 함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다. 그는 내게 바람처럼 왔다가 바라처럼 떠나간 꽃바람을 지켜본 이였다.

 

 

그 뒤 3년 뒤 나는 결혼했다, 같은 해 가을 자옥은 각시를 만나 백년 가약을 공주에 있는 예식장에서 맺었다. 나는 아기를 가진 아내와 함께 그를 만나러 갔다.

다시 3년이 지났다. 나는 아들을 얻고 자옥은 딸을 얻었다. 둔촌동에 살 때 자옥네가 우리집에  왔다.

 

 

이름도 예쁜 구자옥의 이야기입니다.
실제는 단단한 군인이었으며 공병장교이면서 특전사 근무시절에 공수 훈련으로 단단한 무인입니다. 지난 번,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말끝에 아주 쑥스롭다는 듯이 국방 신문에서 창군 50주년 기념으로 시를 뽑길래 응모를 했더니 당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쑥스로워했으나 몇 년 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때의 친구의 모습은 어린 시절에 글짓기에서 장원을 받은 부뜻한 느낌이 다가왔습니다.
중위. 대위 시절 청년 장교의 뜨겁던 그때 밤이면 오고 가던 정담이 생각났고 그때는 서로 몰랐던 글을 쓰며 자기 확인하는 모습에 나는 친구가 자랑스롭습니다.
이제 그는 시인이 되고 싶다했습니다.
나는 그가 이미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옥은 경원대학교의 ROTC 단장을 끝으로 그의 군대 생활을 대령으로 끝냈습니다.
우리 동기들은 자옥을 장군감이라고 늘 말해왔습니다.
대령으로 끝난 그이지만 그에게 나는 시인으로서 별을 달아 줍니다.
본인은 아주 쑥스로워 할터이나 친구가 아니면 누가 그를 알려 주겠습니까.

나는 그의 시를 보는 순간, 아, 이것은 죽음만큼 강렬한 어느 날 선명한 단상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글을 여기에 올리는 이유는 친구 사랑이며, 우정의 색갈이 아직 선명하구나하는 자기 확인입니다.

글의 순서는 대령의 시와 당선 소감과 심사원의 심사평으로 이어집니다.

 

창 공 에 나 를 던 지 고


대령 구 자 옥 ( 육군3군 사령부 )

 

잠을 깨어 얼른 올려다 본 사월의 하늘가엔
아침 햇살에 표백된 조각 구름만 한가롭고
금일 기상은 비행가능 !

머리맡 경대 위에
결혼 예물 시계를 유언처럼 풀어 놓고

속옷도 깨끗하게 갈아 입는다.
아직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볼이 능금처럼 예쁘고
조반 준비하는 아내의 편안한 뒷모습이
내 마음에 무겁다.

군화끈 졸라매고 문을 나서면
아내의 잔잔한 미소가 그림자처럼 따라 나서고
나는 믿음직한 뒷 모습을 보이고 싶다.
탑승장으로 향하는 대원들은
굳은 얼굴로 말을 잊었고
UH-1H의 프로펠라는
오늘 따라 유난스레 요란하다.
페러슈트를 앞 뒤에 숙명처럼 매달고
철모 턱끈이 아프도록 조인 후
헬리콥타 문턱에 걸터 앉아
생명줄을 두 번 세 번 당겨 본다.

흙먼지 날리며 높이 떠오르면
뛰어 내려야 할 D-Z가 손바닥 처럼 좁고
한 바퀴 선회하며 관사촌을 지날 때
발 아래 발코니에 널려 있는
아들 녀석 기저귀가 나를 향해 창백하다.

내가 살아온 날들이
내가 사랑하는 얼굴들이
고속 필름처럼 돌아 가는 동안
어느 새 옆의 전우는 발 아래로 멀어져 가고
강하 조장이 철모는 치는 순간
두 손으로 힘차게 기체를 밀쳐
창공으로 나를 던진다.

일만, 이만, 삼만…….
낙하산이 펴지길 안달하다가
곤두박질 치던 몸이 위로 잡아 채지고
고개가 위로 젖혀 지면서
펼쳐진 낙하산 구멍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면
비로서 막힌 숨을 토하며
오마안…….


일분도 채 안되는 체공 시간 동안
하늘로 자꾸만 떠오르는 착각을 하고
온몸은 소다수에 잠긴 듯 상쾌하지만
어느 순간에 희열은 사라지고
이젠 접지할 장소가 걱정이다.
빠르게 솟아오르는 단단한 대지위에
겁없이 구르고
팽팽하게 버티는 낙하산을 접으며
진정한 안도감에 진저리 친다.

귀영 버스는 뿌듯함으로
풍선처럼 들떠 있고
이렇게 내 인생의 나이테가
오늘
하나 더 늘었다.

 

< 당 선 소 감>

 

구자옥

 

낮에나 밤에나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웃어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낙하산 타고 그 깊은 곳을 헤어쳐 본 후부터 더 그랬던 것 같다.
철조망, 연병장, 늘어선 차량, 회칠한 막사 등을 떠올리게 되는 병영에 젊음을 묻은지 어느새 지명을 넘긴 노병이 되었다.
젊었을 때는 전쟁 영화 속의 영웅처럼 멋진 지휘관이 되고 싶었고 얼음 같이 차고 적에겐 늑대 같은 교활한 참모가 되고 싶었다.
집요한 현실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고 군인으로 남고 싶어서 치열하게 몸부림 쳤었다.
신의 섭리가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가치가 되고 사랑과 정의가 강물 같이 흐르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당선 소식을 듣던 날, 이따금 내 가슴을 저리게 하는 옛 부하들이 생각났다.
월남으로 떠나던 진복도, 당번 최동일 등….
초야를 치룬 새 신랑처럼 쑥스롭지만 건군 50주년에 작고 보잘 것 없는
내 손을 들어주신 심사제위께 감사드린다.
이제부터 하늘을 볼 때는 웃어 볼 참이다.


심 사 평 / 장 백 일 ( 문학 평론가 )


당선작 " 창공에 나를 던지고 "는 공수부대 지휘관으로서의 낙하산에담은 인생을 시로서 꿰 뚫는다. 그 표현이 진솔하게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다.
그 시속에 군인으로서의 진실한 삶이 형상되있어서이다. 그래서 시를 일
러 진실의 인간학이라함도 그 때문이다.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시어 선택에 좀 더 세심했으면 한다.

 

 

 

 

 

 

세월이 얼마쯤 흘렀는가.군생활을 끝낸 자옥 부부. 우리가 낳은 아이들이 우리가 만난 나이가 되었을 때, 자옥의 청춘은 추억으로 남았다.

 

 

우리 부부도 나이를 먹어간다.

다시 세월은 8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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