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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삼과(一日三過)
하루에 세 번의 잘못한 일을 지적했다는 뜻으로, 잘못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직언을 한다는 말이다.
一 : 한 일(一/0)
日 : 날 일(日/0)
三 : 석 삼(一/2)
過 : 지날 과(辶/10)
출전 : 안자춘추(晏子春秋) 卷一
이 성어는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유명한 재상 안영(晏嬰)이 제나라 경공(齊景公)을 모시고 있다가 경공의 잘못된 행동을 하루에 세 번이나 직언한 일에서 유래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영은 관중(管仲)에 이어 제나라의 두 번째로 명성이 높은 명재상이다. 어려웠던 제나라를 수습하고 약해진 국력을 회복하였으며, 근면한 모습으로 백성들의 귀감이 되었다.
관중과 안영은 제나라의 재상이었다는 것으로 항상 두 사람의 업적이 비교되곤 한다. 사실 관중의 업적이 더 대단하지만 인터넷이나 여러책으로, 널리 알려진 일화는 안영의 일화가 더 많다. 안영의 언변과 성품을 일화로 알아보자.
제나라 경공(濟景公)이 공부(公阜)에 나가 북쪽으로 제나라를 바라보며 감격해서 말했다. "보아라! 만약 옛 사람들이 모두 장생불로(長生不老)했다면 지금 어떠한 상황일까?"
景公出遊於公阜, 北面望睹齊國曰 : 嗚呼! 使古而無死, 何如?
그 말을 듣고 안영이 대답하길, "제가 듣건대 예로부터 하늘은 사람이 죽는 것을 좋은 일로 여겼다고 하옵니다. 인의의 사람에게 죽음이란 영원한 안식이고, 불인한 사람에게 죽음은 영원한 제재(制裁)입니다. 만약 옛사람들이 모두 살아있다면, 제나라의 정공(丁公), 태공(太公)이 아직도 제나라를 통치하고 있을 것이고, 환공(桓公), 양공(襄公), 문공(文公)은 그들을 보좌하고 있었을 것이며, 왕께서는 아마 삿갓을 쓴 소박한 차림으로 농기구를 들고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실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언제 이렇게 한가로이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晏子曰 : 昔者上帝以人之死為善. 仁者息焉, 不仁者伏焉. 若使古而無死, 大公, 丁公將有齊國, 桓襄文武將皆相之, 君將戴笠衣褐, 執銚耨. 以蹲行畎畝之中, 孰暇患死?
경공은 안영의 말을 듣자 화가 나서 안색까지 약간 변했다.
公忿然作色, 不說。
잠시 후 양구거(梁丘据)가 말 여섯 필이 끄는 수레를 몰고 달려오는데 경공이 물었다. "누가 왔는가?" 하니
無幾何, 而梁丘據禦六馬而來, 公曰 : 是誰也?
안영이 대답했다 "양구거입니다."
晏子曰 : 據也.
경공이, "그대는 사람을 보지도 않고 어찌 알았는가?"
公曰 : 何以知之?
안영이, "이처럼 무더운 날에 수레를 급히 몰면 심할 경우 말이 죽을 수 있고, 가볍더라도 말이 상하게 됩니다. 양구거가 아니면 누가 저리 하겠나이까?"
曰 : 大暑而疾馳, 甚者馬死, 薄者馬傷. 非據孰敢為之?
당시 양구거는 경공의 총애를 받고 있어서 그가 무슨 일을 해도 경공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경공이 "양구거는 나와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오." 하니
公曰 : 據與我和者夫.
안영이 간하길, "그건 단지 마음이 같을 뿐이지 조화를 이루는 경지는 아닙니다. 소위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임금이 단맛을 볼 때, 신하는 신맛을 느껴야하고, 임금이 싱거운 맛을 볼 때, 신하는 짠맛을 느낌으로써 상호 보완을 이루어 완벽한 경지를 추구해야 합니다. 양구거는 임금이 단맛을 볼 때 자기도 단맛을 보며 아부를 일삼고 순종하기만 하니, 그러한 것을 어찌 조화라 하겠나이까?"
晏子曰 : 此所謂同也. 所謂和者, 君甘則臣酸, 君淡則臣鹹. 今據也, 君甘亦甘, 所謂同也, 安得為和?
경공은 안영이 자신을 일부러 흠잡는 것이 아닌가하여 얼굴색이 크게 변하였다.
公忿然作色, 不說。
잠시 후 땅거미가 지고, 경공은 서쪽 하늘에서 혜성 하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대신 백상(伯常)을 불러 기도하게 함으로써 혜성이 가져다 준다는 재난을 방지하게 하였다.
無幾何, 日暮, 公西面望睹彗星. 召伯常騫, 使禳去之.
그러자 안영이 간하길, "안됩니다. 이는 하늘의 뜻입니다. 해와 달 주변에 있는 구름의 변화, 풍우의 조짐, 혜성의 출현 등은 모두 하늘이 인간 세상의 변화를 미리 살펴서 그러한 것들로 흉조(凶兆)를 보여주는 것이니 이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를 경고하고 인간의 일에 깨어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 만약 문예를 진흥시키고 간언을 정취하며 덕정을 시행한다면 사람을 보내서 기도를 드리지 않아도 혜성은 스스로 사라질 것이나, 대왕께서는 지금 음주나 즐기고 정사를 돌보지 않으며 간신들과 가까이 지내고 여색만 총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예악과 법을 싫어하고 현자들을 배척하고 있는데 어찌 혜성까지 돌볼 겨를이 있겠나이까? 설사 대왕께서 기도하여 혜성을 제거하더라도 또 다른 혜성이 나타날 것입니다."
晏子曰 : 不可, 此天教也. 日月之氣, 風雨不時, 彗星之出, 天為民之亂見之, 故詔之妖祥, 以戒不敬. 今君若設文而受諫, 謁聖賢人, 雖不去彗, 星將自亡. 今君嗜酒而並于樂, 政不飾而寬於小人, 近讒好優, 惡文而疏聖賢人, 何暇去彗? 茀又將見矣.
경공은 그의 말에 화가 나서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公忿然作色, 不說.
안영은 하루에 경공의 과오를 세 번이나 지적하였으니, 이것이 역사상 유명한 일일삼과(一日三過)의 이야기다. 안영은 직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설사 임금이 과오를 하더라도 그릇된 것은 넘기지 않았다.
훗날 안영이 죽은 뒤에 경공은 눈물을 흘리며 한탄했다. "예전에 내가 선생과 함께 공부에 갔을 때 선생은 하루에 세 번이나 나의 과오를 지적하였는데, 이제는 누가 나에게 그러한 권고를 할 수 있을까."
及晏子卒, 公出屏而立曰 : 嗚呼! 昔者從夫子而游公阜, 夫子一日而三責我, 今誰責寡人哉?
🔘 제나라의 명재상 안영
안영이 죽은 지 어언 16년이 지난 어느 날, 경공은 신하들을 초청하여 주안상을 차려놓고 즐기고 있었는데, 주흥이 도도해진 경공은 즉석에서 화살로 과녁을 쏘았다. 화살이 빗나갔는데도 당상에서는 일제히 박수소리가 울렸다. 경공은 마음이 불쾌해서 한숨을 쉬며 활을 팽개쳤다.
이 때 현장(弦章)이 찾아와 뵙기를 청하니 경공이 그에게 말했다. "현장아, 안평중이 죽은 뒤로 다시는 나의 과오를 지적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현장이 대답하길, "지금 대신들은 누구나 대왕을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 자들은 임금이 즐겨 입는 것을 따라입고, 대왕께서 즐겨 드시는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마치 먹는 음식의 색깔에 따라 몸의 색깔도 변하는 투명한 척확(자벌레)과도 같습니다." 라고 하니
경공은 매우 감격하여 말했다. "자네 말이 지당하네, 내가 아첨하는 자들의 감언이설을 듣지 말아야겠군." 그러고는 현장에게 생선 50수레를 포상했다.
현장은 궁중에서 나오자, 자신이 받은 생선 수레가 길을 꽉 메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수레를 몰고 있는 마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예전에 안대부는 몇 번이나 임금의 포상을 사절하며 그를 보좌하였는데 임금의 과오를 절대 감싸지 않았네. 그러나 요즘 대신들은 사익을 얻기 위해 기를 쓰고 임금에게 아부하고 있지. 내가 이 50수레나 되는 생선을 받으면, 안대부의 원칙을 어기고 아첨하는 자들의 욕심에 빠지게 되네."
이렇게 말하며 경공의 선물을 사절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말하길, "현장의 청렴한 행위는 바로 안영의 좋은 품성을 이어받은 것이다." 라고 하였다.
안영은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나라에 충성하는 법을 후세에 가르쳐준 것이니, 안영은 육체는 죽어서도 정신은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뿐만 아니라, 어느 날 경공이 노나라의 장인(匠人)을 데려와 자신의 신발을 맞췄는데, 신발을 매우 화려하게 치장하여 바쳤으나, 신발이 무거워 안영을 대할 때 일어서서 답례하지 못하였다.
이에 안영이 얘기를 듣고 간언하니 그 내용이 이와 같다. "옛날 성인들은 옷을 지을 때 겨울옷은 간편하고 따뜻한 옷을, 여름엔 간편하고 시원한 옷으로 했는데, 지금 대왕께서 신고 있는 신발은 추운 날에 신으면 더욱 추울 뿐만 아니라 무겁기 때문에 범인들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고 일상생활에 맞지 않으니 이 신발은 좀 지나친 것입니다. 노나라의 장인이 신발을 만들 때 계절과 무게를 살피지 않고 사람의 정상적인 습관까지 무시하였으니 이것이 그의 첫번째 죄이고, 그로 인해 임금으로 하여금 신하들의 웃음을 사게 하였으니 두번째 죄이며 재물을 낭비하였으되 실효성이 없어 임금이 백성들의 원한을 사게 하였으니 세번째 죄입니다. 대왕께서는 명령을 내리시어 그 장인을 붙잡아 형벌을 내리도록 하십시오."
경공은 그 장인을 불쌍히 여겨 용서하기를 원했지만 안영의 단호함을 알고 있어 장인을 국외로 쫓아내고 다시는 제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경공은 그 신발을 결코 신지도 못하였다.
또 어느 날, 경공은 거대한 모자에, 매우 긴 두루마기를 입은 이상한 차림새로 조정에 나가 앉아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얼굴에는 사람을 제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조회를 끝내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안영이 앞으로 나서며 간하길, "성인들은 모두 몸에 맞춰 옷을 입을 뿐 지나친 사치를 피합니다. 그래야만 그 형상이 백성들에게 모범이 되어서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되죠. 또 성인들의 행위는 결코 도덕과 예의를 어기지 않고 양생을 잘하므로 백성들은 앞다투어 그들을 따라하게 됩니다. 허나 지금 대왕의 의복은 지나치게 화려해서 백성들을 멀리하게 되며 부드럽지 않은 표정은 사람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오만한 태도는 양생을 하는게 불리합니다. 또 저녁 늦게까지 정사를 끝내지 않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죠. 이제는 조회를 끝내 쉬도록 하십시오." 하니 경공은 권고를 받아들이고 그 옷을 다시는 꺼내 입지 않았다.
경공은 안영에게 황금으로 사례를 하려 갖은 수단을 다 써보았지만 매번 거절당했다.
안영은 항상 소박한 차림새였고, 거주하는 곳 역시 매우 평범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경공이 안영에게 이사하기를 권하였다. 하지만 안영은 시장과 가까워 물건 사기가 편하며 지금 사는 곳은 자신에게도 과분하다며 거절을 하였다.
경공은 안영이 집을 바꾸려 하지 않자 농담삼아 물었다. "거처가 시장과 가깝다고 하니 하나 물어볼 것이 있는데, 무슨 물건이 싸고 비싼지 알고 있소?"
안영은 본래 경공이 형벌을 남용하여 죄인의 발목을 자르는 형벌을 즐겨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시장에서 목발을 파는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을 들어 그것을 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는 "목발이 비싸고 신발이 쌉니다." 라고 간하니 경공은 안영의 말 뜻을 알아채어 안색이 변하였다. 이로 인해 경공은 형벌을 다시 제정하고 안영 역시 더욱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이는 안영의 간언 중 가장 교묘한 것이었다.
안영은 평소 사람을 사귐에도 결코 오만하지 않았는데 한 번은 길을 지나다가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옷은 남루하였지만 자세히 보니 군자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굶주림과 추위를 벗어나기 위해 남의 하인이 된 것인데 이름은 월석부(越石父)로, 안영이 수레를 끌던 좋은 말을 풀어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안영은 그를 수레에 태워 함께 제(濟)로 돌아왔는데 집에 도착하자, 월석부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월석부는 화가나서 안영과 절교하겠다고 하였는데, 그러자 안영은 사람을 보내, "그대를 자유인으로 풀어준 나와 어찌 그렇게 빨리 절교를 하겠다는 것이오?" 하니
월석부가 대답하길,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자 앞에서는 스스로 굽히면서 알아주는 자 앞에서는 꿋꿋이 지낸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군자라면 설사 은혜를 베풀어주었더라도 은혜 입은 자를 경시하지 말아야 하고 또 자신이 은혜입었다 하여 비굴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가 하인으로 있었던 것은 저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온데, 선생이야말로 저를 진정으로 이해해 주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생과 수레를 함께 탔을때는 선생은 저에게 겸양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지만 선생께서는 단지 그것을 잠시 잊은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선생께서 저에게 작별 인사조차 하지 않으며 집으로 들어갔으니 이는 저를 하인으로 대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기왕 저를 하인으로 대하겠다면 다시 저를 팔아 버리십시오."라고 하니
안영은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귀빈으로 접대해 주었는데 과연 월석부는 후에 아주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또, 제나라에 북곽소(北郭騷)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짐승을 잡는 그물을 엮거나 짚신을 삼는 일로 모친을 봉양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져 안영에게 찾아가 구걸하였는데, 안영은 곳간에서 돈과 양식을 꺼내 북곽소에게 주었다. 그는 돈과 재물은 사절하고 양식만 가져갔다.
얼마 후 안영이 경공의 의심을 받게 되어 더 이상 조정에 있을 수 없게 되었는데 조정을 떠나는 날 북곽소의 문 앞을 지나다가 그와 작별 인사를 하게 되었다.
북곽소는 안영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잘가라는 인사만을 건넸는데 안영을 수레에 앉으며 탄식했다. "내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 마땅치 않다는 것인가? 정말로 선비들은 모르겠구나. 이제와 누구를 원망하리?"
북곽소는 안영을 보내고 즉시 친구들을 만나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안대부의 인의를 흠모해 예전에 구걸하러 갔던 적이 있는데 나는 부모를 부양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면 그를 대신하여 위기를 짊어질 줄 알아야 한다고 들었네. 지금 안대부께서 임금의 의심을 받고 있으니 내가 목숨을 걸어 그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하네."
말을 마친 북곽소는 정결한 차림새로 친구에게 보검과 대나무 광주리를 들게 한 뒤에 함께 궁궐로 향했다.
궁궐 앞에서 그가 문지기에게 말했다. "안대부는 천하에 이름난 현자입니다. 지금 대왕의 의심을 사게 되어 나라를 떠났으니 제는 분명 이로 인해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국가의 손실을 눈뜨고 지켜보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지금 저의 머리로 안대부의 결백을 증명하려 하옵니다." 하고
옆에 있던 친구에게, "자네는 내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대왕께 갖다드리며 내 뜻을 전해주기 바라네." 라고 말하고 즉시 검으로 자결했다.
북곽소의 친구는 그의 머리를 문지기에게 넘겨주며, "이것이 바로 북곽소의 머리요. 그가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나는 이제 그를 위해 죽겠소." 하고는 그도 즉시 자결하였다.
이 사실을 들은 경공은 대경실색하며 직접 수레에 앉아 안영을 쫓아가 안영에게 돌아와 달라고 간청하였는데 안영은 어쩔수 없이 경공을 따라 돌아왔다.
그 후 북곽소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안영은 이렇게 탄식했다. "이 안영이 도망가는 것이 정말로 마땅치 않다는 것인가? 갈수록 선비를 알기가 어렵구나!"
안영의 첫번째 탄식은 범인을 선비로 잘못보았으니 이 수준으로 어찌 임금을 섬기겠는가하는 것이었고, 두번째 탄식은 현자를 범인으로 잘못보았으니 역시 임금을 보좌할 자격이 없어 한탄한 것이다.
안영은 이렇듯 스스로 반성하였는데 이 정신은 현대인들이 꼭 갖춰야 할 정신 중 하나인 듯하다.
안영은 또 한 외교적으로도 비굴하지 않았는데 다음의 일화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당시 강대국이던 초(楚)나라 영공(靈公)은 매우 자만하여 사신으로 온 안영을 골려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안영이 도착하거든 정문은 닫아두고 옆에다가 조그마한 문을 만들어 들어오게 하였는데, 이는 안영의 왜소했던 체격을 우롱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에 안영은 의중을 간파하고 신랄하게 독설하였으니, "이 문은 개나 드나드는 개구멍이 아니오? 외국 사신을 개구멍으로 드나들게 하는 것은 개나라의 풍습이니, 설마 초국이 개나라일 리는 없지 않소이까? 귀국의 체면을 생각해서 나는 정문으로 들어가야겠소."
호되게 망신을 당한 영공은 일단 자리를 옮긴다. 어전으로 들어 다과를 나누며 얘기하는데 영공이 안영에게 귤을 하나 건네주며 권한다. 귤은 남방국인 초에서만 나는 과실인데 제에서는 차마 볼 수 없는 과실이었다.
안영은 처음보는 과실이라 먹을 줄 몰라 껍질도 벗기지 않고 한입 물었는데 영공은 통쾌히 웃으며 안영의 무식을 비웃어 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영은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반박한다. "자고로 군왕(君王)께서 내려 주시는 과실은 껍질도 벗기지 않고 먹는 것이 예(禮)인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대왕께서 그냥 주시었기에 저는 그대로 먹은 것입니다."
안영의 뛰어난 임기응변과 상대방에게 책임을 둘러씌우는 역습적인 언변을 알 수 있다.
이에 영공은 사과를 하였는데, 이 때 무사가 한 죄수를 끌고 어전에 나타나 고한다. "이 자는 도둑놈이온데, 어찌 처리할까요?"
영공이 "어디에서 온 놈이냐?" 하니 "제나라 사람이옵니다." 하였다.
이 또한 안영을 욕보이게 함이니 역시 태연하게 반박하는데, "제가 듣건데 남쪽에서만 자라는 귤을 북쪽으로 옮겨와 심으면 귤이 아닌 탱자가 되어 버린다고 하옵니다. 이는 기후와 풍토가 다르기 때문이온데, 제에는 도둑이 한명이 없는데 제의 사람이 초에 와서 도둑질을 했다면 이는 초와 제의 풍토가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옵니다."
또 호되게 당한 영공은 할 말을 잃어 안영에게 이렇게 물었다. "귀국에는 안대부 같은 현사가 얼마나 계시오?" 하니
안영이 대답하길, "제에는 저보다 뛰어난 현사들이 훨씬 많사옵니다. 저는 그들에 비하면 말석에도 끼지 못하옵니다. 허나 부득이 제가 오게 된 것은 제(濟)의 규정때문이온데, 이는 현국(賢國)에 보낼 때에는 현신(賢臣)을 택하고 우국(愚國)에 보낼 때에는 우신(愚臣)을 택하는 것으로, 때문에 제가 초에 오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영공은 안영에게 굴복하여 그 누구보다 귀빈으로 융숭히 접대하게 되었다.
중원의 강국이었던 진(晋)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에 진나라 평공(平公)은 먼저 제나라를 탐지하기 위해 범소(范昭)라는 사람을 사신으로 파견하여 정세를 알아보게 하였다.
제나라의 경공은 그를 위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연회가 무르익었을 때 범소는 경공에게, "친히 술 한잔 내려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하니 경공이 "과인의 잔으로 한잔 권해 드려라." 하였다.
범소는 잔을 받고 단숨에 들이켰는데, 이를 본 안영은 준엄히 잔을 건네준 신하에게 말했다. "대왕을 위하여 잔을 다른 잔으로 바꾸어라."
당시 법도로 군신은 각자 다른 술잔에 마셔야 하는데 범소가 경공의 술잔으로 술을 마신 것은 예에 어긋난 행동이었으니 이는 경공에 대한 불경의 표시였다.
범소는 일부러 제나라 측에서 어찌 나오는지 살펴보려 했던 것인데 안영은 그것을 예리하게 간파하여 범소의 무례를 넘기지 않았다.
이에 범소가 진나라에 도착하여 평공에게 보고하기를, "지금은 제나라를 침공할 때가 아니옵니다. 신은 경공을 시험해 보았사온데, 안영에게 간파 당하였습니다." 즉 제나라에는 안영같은 현인이 있으니 침공해도 승리할 가망이 없다는 말이었다.
안영은 정치, 외교에 걸쳐 계략도 심오하였는데 이는 훗날 유명한 모사인 제갈량또한 탄복하여 시로 지을 정도였다.
그 내용을 보자면 당시 전쟁이 끝난 제나라에는 자신들의 무훈(武勳)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세 장수가 있었는데 바로 공손접(公孫接), 전개강(田開疆), 고야자(古冶子)였다.
영공은 이들을 두고 볼 수 없어 안영에게 세 장수의 제거를 일임하였는데 안영은 매우 심오한 계책으로 호통한 번 치지 않고 제거하였다.
안영은 하인에게 시켜 복숭아 두 알을 구해 오라고 일렀다. 그리하여 복숭아 두 알을 커다란 접시에 담아 놓고 세 장수를 한자리에 불러 놓고는, "내가 오늘 세 용장분들의 무공을 찬양해 드리고 싶어 이자리에 모셨는데, 마침 희귀한 복숭아가 있어 세분께 대접할 생각이오. 헌데 복숭아가 두알 뿐이니 자기가 누구보다도 무공이 혁혁하다 생각되시는 분이 하나씩 들어 자시도록 하오."
세 사람은 복숭아에 손을 뻗었는데 고야자만이 복숭아를 획득하지 못하였다. 고야자는 분노하여 공손접과 전개강에게 호통을 치는데 이 바람에 세 장수가 싸우게 되었다.
이에 안영이 진정시키고 전공록(戰功錄)을 가져와 우열을 가리는데 복숭아를 획득한 공손접과 전개강이 무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고야자가 배후에서 적의 응원군을 섬멸시켜 주었던 덕택이었다.
이에 공손접과 전개강은 고야자의 무공이 자신들보다 크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껴 집에 돌아와 수치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결하였다.
이에 고야자가 그 소식을 듣고 그 역시 자결하였는데 자신의 무공은 모두 안영의 전략대로 행하였기에 그 명예는 모두 안영에게 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 인재를 선발하는 방법을 경공에게 고했는데 그 내용은 이와 같다.
어느날, 경공이 안영에게 물었다.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어찌해야 하오?"
안영이,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들을 추천해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여 백성들을 관리하게 하는 것이 열쇠이되, 이것이 가장 잘 다스리는 방법이니, 만약 현명하고 능력있는 자들이 이러한 일들을 맡게 된다면 백성들은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경공이, "현명하고 능력있는 자가 있다해도 어떻게 알아 볼 수 있겠소?"
안영이, "현명하고 능력이 있으면서 그 재능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찌 현명한 자라고 하겠습니까? 문제는 그것이 아닌, 대왕께서 평소 인재선발을 중시하지 않았기에, 그러한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한것입니다."
경공이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를 구하는 방법을 묻자 안영은 이렇게 대답했다. "대왕께서 인재를 가려내자면, 그들이 사귀는 방법을 관찰해야 하고, 그들의 언행, 습관, 취미를 분석해야 합니다. 감언이설이나 웅변술로 그 품행을 판단해선 안되며, 타인의 평가나 평판에 기대어 재능의 높고 낮음을 가려서도 안 됩니다. 이렇게 해서 선발한 인재는 결코 허장성세를 부리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진실한 속내를 감춘 채 대왕의 총애를 받으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세력을 얻었을 때 무엇을 주장하고, 세력을 잃었을 때 무엇을 거절하며, 부귀할 때 무엇을 반대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출중한 인재는 태도를 조심하고 신중히 판단해서 경솔하게 벼슬길에 오르지 않으며, 설사 벼슬길에 올랐으되, 쉽게 은퇴합니다. 중간 정도의 인재는 쉽게 벼슬길에 오르되 쉽게 은퇴하며, 자질이 낮은 자는 벼슬을 중시해 관직을 탐하며 은퇴를 싫어합니다. 이러한 점들에 유의해서 인재를 선출한다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경공이 또 이렇게 물었다. "영합(迎合)을 잘하는 신하는 임금을 어떻게 모시는가?"
안영이, "대왕께서 그러한 자들을 물리친다면 그들은 접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자신들의 말솜씨로 자신을 미화하며 사심이 없다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아첨하기 위해 스스로의 욕심을 억제하면서 자기가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음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들은 임금의 기호에 맞추려고 애쓰며, 임금의 측근 신하들과 결탁하여 꿍꿍이를 꾸미기도 합니다. 그들의 마음속엔 오로지 관직과 봉록의 높고 낮음이되, 겉으로는 그러한 것들을 무시하는 듯한 언행을 하며 자신의 자세를 낮추어 임금의 측근에게 아부하고 공정한 척합니다. 그들은 임금이 자신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를 바라지만, 사실상 그 의견은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권력을 얻을 목적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 일부러 부귀공명에 전혀 관심이 없는체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큰 실속을 차리고자 하는 것이죠. 심지어 사직하는 방법까지 쓰는데, 그것 역시 더 중요관직에 오르기 위한 술수입니다. 그들은 이익을 추구하되 베풀기는 싫어하고, 무리짓기는 좋아하지만 옛친구는 멀리하고,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꺼리며, 옛친구가 가난하면 상종하지 않되,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앞을 다툽니다. 그들은 교제를 통해서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며, 자신의 부유함을 자랑하면서 마치 그것으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러 온 체 행동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서 현실의 모든 일과 사람들을 평가하여 시비를 분분하게 일으킵니다. 그리고 재능이 있는 사람은 모함하고 재능이 없는 자는 혹평하며, 때로는 강경한 모습으로, 때로는 성실한 모습으로 자신의 말을 아주 교묘히 꾸밉니다. 물론 그 목적은 임금에 대한 아첨이니, 이것이 바로 영합에 능한 자들의 상투적인 수법입니다. 현군은 이러한 자들을 꾸짖어 멀리하되, 사리에 어둡고 용렬한 임금은 이들에게 기대게 됩니다."
그러자 진나라의 재상 숙향(叔向)이 안영에게 물었다. "정의로운 사람과 정의롭지 못한 사람의 처세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안영이, "정의로운 사람은 권력을 잡되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할 뿐 사사로운 정으로 감싸주지 않고, 항상 나라를 위해 일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릴지라도 지나간 과거를 잊지 않습니다. 관직의 길이 순조로울 때는 임금을 도와서 백성의 바라는 바를 따르게 하고, 그와 반대의 상황일 때는 아랫 사람들을 임금의 의사에 따르도록 교육합니다. 임금을 보좌하고 인의를 지킬 뿐이지 개인의 지위나 봉록에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설사 등용되지 않더라도 아무런 불평없이 스스로 떠날 뿐, 정치에 대해서는 이러쿵 저러쿵 하지 않습니다. 현명한 자는 사람을 사귈 때에도 상대의 품행을 살피면서 쉽게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지요. 만약 취향이 같지 않으면 멀리하는 것을 주저치 않으며, 임금의 앞에서 다른 사람을 헐뜯지 않으며, 백성을 학대해서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람이 임금의 신임을 얻으면 백성들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고, 임금도 존경받게 됩니다. 또 이러한 이유로 정의로운 사람이 민심을 얻어도 임금은 그의 마음을 의심하거나 억측하지 않으며, 그 또한 임금의 중용을 얻어도 인의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뜻을 얻어도 죽음의 화가 없고 은퇴할 때도 위태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자들은 임금의 신임을 얻으면 백성들을 학대하고, 지위가 낮아지면 불만을 품을 뿐 아니라, 반역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그들이 임금을 모시는 것은 승진과 재물을 탐하기 때문이지 절대로 충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친구를 사귈 때도 품행보다 아첨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자신의 지위로 남을 누르려 하고 스스로 과시하길 좋아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임금에게 등용되지 못하면 불만을 품고서 요언을 날조하여 퍼뜨리고, 벗을 사귈 때도 진정한 마음을 주지 않고 경솔하게 다른 사람을 헐뜯지요. 이 때문에 그들이 나랏일에 등용되면 백성들의 걱정거리가 되고, 지위가 낮아지면 임금의 통치에 위협이 됩니다. 그들이 임금 곁에 있으면 범죄를 모의하고, 그들과 친구를 하면 재난이 멀지 않으며, 그들이 관직에 나서면 치욕을 부르고 법령을 파괴하는 일만 저지르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로 정의롭지 못한 자들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였으니 이미 몇 천년전에 인재를 가려내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또, 당시의 제나라가 희대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공자를 재상으로 중용하려 하였는데, 안영은 공자의 사상을 논하며 그를 중용하면 안된다고 고하였다.
그 내용은 "그는 지금같은 난세에 옛 성현들의 사상을 그대로 주장하고 있고, 때문에 조국인 노나라에서 쫓겨 열국들을 유세하며 거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의 사상은 인의의 사상이나 지금같은 세상에는 이상과 같은 사상이옵고, 재물을 탕진하여 가산을 기울케 하더라도 제사를 중히 여기니 이는 가난한 백성들이 본받을 만한 것이 못되옵니다. 하여 공자를 중용하여 재상에 임명하신다면 필히 제나라는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오니, 부디 재고하여 주십시오." 하니 당시 공자는 30대였고 안영은 60대의 베테랑 정치가였다.
그럼에도 공자는 춘추(春秋)에서 안영을 공경하는 글귀를 볼 수 있는데 그 내용 중 하나를 살펴보면, 안영이 노나라에 사신으로 왔을때에 공자는 제자들로 하여금 안영의 언행을 견학코자 보냈다.
그 중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돌아와, "안영이 예에 정통하다는 것은 거짓이었습니다. 예에 이르기를 계단에 오르되 넘지는 않고, 당상에서는 달리지 않으며 옥을 받을 때에는 무릎을 꿇으면 안된다고 하였는데, 안영은 모두 이에 반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듣고 공자로서는 자신이 존경하는 안영이 그 같은 실수를 하자 바로 안영을 찾아가 진의를 들었다. "당상에서는 군신이 각각 서는 위치가 정해져 있고 군주가 한걸음 걸으면 신하는 두걸음 걷는다고 알고 있네. 그런데 노 임금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기에 정한 자리에 제시간에 닿기 위해 나는 계단을 달리듯 올라야 했고, 당상에서도 빠른 걸음으로 걷지 않으면 안되었네. 또 옥을 받을 때에도 노나라 임금의 자세가 낮았으므로 꿇어 앉아 받지 않으면 안되었다네. 이에 관하여 나는 이렇게 알고 있네. 인륜의 기본을 이루는 첫 번째 덕에 관해서는 약간의 어긋남도 있어서는 안되지만 두 번째 덕에 있어서는 실행에 방편이 있어도 좋다라고 말이네, 나는 임기응변으로써 약간의 방편을 취한 것이라네."
공손히 경청하고 있던 공자가 제자들에게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불법(不法)의 예는 안영이 능히 이를 행한다." 이 말은 예를 넘어선 예라는 뜻으로 최상의 찬사라고 볼 수 있다.
안영은 이 뿐만 아니라 제나라에 모자람 없이 충성하였음에도 항상 겸손하였고, 손무(孫武, 손자)와 오자서(伍子胥)와 같은 명장들로 패국(覇國)이 된 오나라의 협박장이나 다름없는 강압적인 청혼사에 모두 비굴하게 응낙하자 고하였는데 안영만이 오국의 무례함과 대신들의 안일한 정신자세를 꾸짖어 거절하여야 된다고 고하였다.
항상 사리판단을 정확하고 신속히 해내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가를 살펴 인재를 대하였으니 관중보다 업적은 부족하더라도 충분히 명현사(明賢士)의 기질을 갖추고 있는 천재였다.
▶️ 一(한 일)은 ❶지사문자로 한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젓가락 하나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하나를 뜻한다. 一(일), 二(이), 三(삼)을 弌(일), 弍(이), 弎(삼)으로도 썼으나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는 안표인 막대기이며 한 자루, 두 자루라 세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一자는 '하나'나 '첫째', '오로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一자는 막대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막대기 하나를 눕혀 숫자 '하나'라 했고 두 개는 '둘'이라는 식으로 표기를 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그래서 一자는 숫자 '하나'를 뜻하지만 하나만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로지'나 '모든'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一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들은 숫자와는 관계없이 모양자만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一(일)은 (1)하나 (2)한-의 뜻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나, 일 ②첫째, 첫번째 ③오로지 ④온, 전, 모든 ⑤하나의, 한결같은 ⑥다른, 또 하나의 ⑦잠시(暫時), 한번 ⑧좀, 약간(若干) ⑨만일(萬一) ⑩혹시(或時) ⑪어느 ⑫같다, 동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한가지 공(共), 한가지 동(同),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등(等)이다. 용례로는 전체의 한 부분을 일부(一部), 한 모양이나 같은 모양을 일반(一般), 한번이나 우선 또는 잠깐을 일단(一旦), 하나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고정(一定),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게 서로 맞음을 일치(一致), 어느 지역의 전부를 일대(一帶), 한데 묶음이나 한데 아우르는 일을 일괄(一括), 모든 것 또는 온갖 것을 일체(一切), 한 종류나 어떤 종류를 일종(一種), 한집안이나 한가족을 일가(一家), 하나로 연계된 것을 일련(一連), 모조리 쓸어버림이나 죄다 없애 버림을 일소(一掃),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란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뜻으로 조그만 자극에도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을 일촉즉발(一觸卽發),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해서 두 가지 이익을 얻음을 이르는 말을 일석이조(一石二鳥), 한 번 들어 둘을 얻음 또는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거양득(一擧兩得),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죄와 또는 한 사람을 벌줌으로써 여러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킴을 일컫는 말을 일벌백계(一罰百戒),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란 뜻으로 한결같은 참된 정성과 변치 않는 참된 마음을 일컫는 말을 일편단심(一片丹心), 한 글자도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일자무식(一字無識), 한꺼번에 많은 돈을 얻는다는 뜻으로 노력함이 없이 벼락부자가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확천금(一攫千金), 한 번 돌아보고도 성을 기울게 한다는 뜻으로 요염한 여자 곧 절세의 미인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고경성(一顧傾城), 옷의 띠와 같은 물이라는 뜻으로 좁은 강이나 해협 또는 그와 같은 강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접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일의대수(一衣帶水), 밥 지을 동안의 꿈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취지몽(一炊之夢), 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취함을 이르는 말을 일전쌍조(一箭雙鵰),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질서나 체계 따위가 잘 잡혀 있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사불란(一絲不亂), 하루가 천 년 같다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이르는 말을 일일천추(一日千秋), 그물을 한번 쳐서 물고기를 모조리 잡는다는 뜻으로 한꺼번에 죄다 잡는다는 말을 일망타진(一網打盡), 생각과 성질과 처지 등이 어느 면에서 한 가지로 서로 통함이나 서로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일맥상통(一脈相通), 한 번 던져서 하늘이냐 땅이냐를 결정한다는 뜻으로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를 겨룸을 일컫는 말을 일척건곤(一擲乾坤), 강물이 쏟아져 단번에 천리를 간다는 뜻으로 조금도 거침없이 빨리 진행됨 또는 문장이나 글이 명쾌함을 일컫는 말을 일사천리(一瀉千里), 하나로써 그것을 꿰뚫었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음 또는 막힘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감을 일컫는 말을 일이관지(一以貫之), 기쁜 일과 슬픈 일이 번갈아 일어남이나 한편 기쁘고 한편 슬픔을 일컫는 말을 일희일비(一喜一悲),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는 뜻으로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함을 이르는 말을 일구이언(一口二言) 등에 쓰인다.
▶️ 日(날 일)은 ❶상형문자로 해를 본뜬 글자이다. 단단한 재료에 칼로 새겼기 때문에 네모꼴로 보이지만 본디는 둥글게 쓰려던 것인 듯하다. ❷상형문자로 日자는 태양을 그린 것으로 ‘날’이나 ‘해’, ‘낮’이라는 뜻이 있다. 갑골문은 딱딱한 거북의 껍데기에 글자를 새기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둥근 모양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日자가 비록 네모난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본래는 둥근 태양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갑골문에 나온 日자를 보면 사각형에 점이 찍혀있는 모습이었다. 이것을 두고 태양의 흑점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먼 옛날 맨눈으로 태양의 흑점을 식별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日자는 태양과 주위로 퍼져나가는 빛을 함께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태양은 시간에 따라 일출과 일몰을 반복했기 때문에 日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시간’이나 ‘날짜’ 또는 ‘밝기’나 ‘날씨’와 같은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日(일)은 (1)일요일(日曜日) (2)하루를 뜻하는 말. 일부 명사(名詞) 앞에서만 쓰임 (3)일부 명사(名詞)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날의 뜻을 나타내는 말 (4)날짜나 날수를 셀 때 쓰는 말 (5)일본(日本)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날 ②해, 태양(太陽) ③낮 ④날수 ⑤기한(期限) ⑥낮의 길이 ⑦달력 ⑧햇볕, 햇살, 햇빛, 일광(日光: 햇빛) ⑨십이장(十二章)의 하나 ⑩나날이, 매일(每日) ⑪접때(오래지 아니한 과거의 어느 때), 앞서, 이왕에 ⑫뒷날에, 다른 날에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달 월(月)이다. 용례로는 그 날에 할 일을 일정(日程), 날마다를 일상(日常), 날과 때를 일시(日時), 하루 동안을 일간(日間), 해가 짐을 일몰(日沒), 해가 돋음을 일출(日出), 그 날 그 날의 당직을 일직(日直), 직무 상의 기록을 적은 책을 일지(日誌), 하루하루의 모든 날을 매일(每日), 날마다 또는 여러 날을 계속하여를 연일(連日),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일을 쉬고 노는 날을 휴일(休日), 오늘의 바로 다음날을 내일(來日), 축하할 만한 기쁜 일이 있는 날을 가일(佳日), 일본과 친근함을 친일(親日), 일본에 반대하여 싸우는 일을 항일(抗日), 일이 생겼던 바로 그 날을 당일(當日), 일정하게 정해진 때까지 앞으로 남은 날을 여일(餘日), 날마다 내는 신문을 일간지(日間紙), 일상으로 하는 일을 일상사(日常事), 날마다 늘 있는 일이 되게 함을 일상화(日常化), 날마다의 생활을 일상생활(日常生活), 해와 달과 별을 일월성신(日月星辰), 아침 해가 높이 떴음을 일고삼장(日高三丈), 항상 있는 일을 일상다반(日常茶飯), 날마다 달마다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일취월장(日就月將), 날은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다는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일구월심(日久月深) 등에 쓰인다.
▶️ 三(석 삼)은 ❶지사문자로 弎(삼)은 고자(古字)이다. 세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 젓가락 셋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셋을 뜻한다. 옛 모양은 같은 길이의 선을 셋 썼지만 나중에 모양을 갖추어서 각각의 길이나 뻗은 모양으로 바꾸었다. ❷상형문자로 三자는 '셋'이나 '세 번', '거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三자는 나무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대나무나 나무막대기를 늘어놓은 방식으로 숫자를 표기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三자는 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숫자 3을 뜻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덥석 받는 것은 중국식 예법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최소한 3번은 거절한 후에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三자가 '자주'나 '거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三(삼)은 셋의 뜻으로 ①석, 셋 ②자주 ③거듭 ④세 번 ⑤재삼, 여러 번, 몇 번이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석 삼(叁)이다. 용례로는 세 해의 가을 즉 삼년의 세월을 일컫는 삼추(三秋), 세 개의 바퀴를 삼륜(三輪), 세 번 옮김을 삼천(三遷),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의 세 대를 삼대(三代), 한 해 가운데 셋째 되는 달을 삼월(三月), 스물한 살을 달리 일컫는 말을 삼칠(三七), 세 째 아들을 삼남(三男), 삼사인이나 오륙인이 떼를 지은 모양 또는 여기저기 몇몇씩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삼삼오오(三三五五), 삼순 곧 한 달에 아홉 번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는 말을 삼순구식(三旬九食),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삼매경(三昧境), 유교 도덕의 바탕이 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의 인륜을 일컫는 말을 삼강오륜(三綱五倫), 날마다 세 번씩 내 몸을 살핀다는 뜻으로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을 일컫는 말을 삼성오신(三省吾身),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사흘 간의 천하라는 뜻으로 권세의 허무를 일컫는 말을 삼일천하(三日天下),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남이 참말로 믿기 쉽다는 말을 삼인성호(三人成虎), 형편이 불리할 때 달아나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삼십육계(三十六計), 하루가 삼 년 같은 생각이라는 뜻으로 몹시 사모하여 기다리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삼추지사(三秋之思), 이러하든 저러하든 모두 옳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삼가재상(三可宰相),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세 칸짜리 초가라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 없는 초가를 이르는 말을 삼간초가(三間草家), 봉건시대에 여자가 따라야 했던 세 가지 도리로 어려서는 어버이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삼종의탁(三從依托), 키가 석 자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라는 뜻으로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을 삼척동자(三尺童子), 세 사람이 마치 솥의 발처럼 마주 늘어선 형상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을 삼자정립(三者鼎立), 세 칸에 한 말들이 밖에 안 되는 집이라는 뜻으로 몇 칸 안 되는 오막살이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간두옥(三間斗屋),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삼생을 두고 끊어지지 않을 아름다운 언약 곧 약혼을 이르는 말을 삼생가약(三生佳約),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세 치의 혀라는 뜻으로 뛰어난 말재주를 이르는 말을 삼촌지설(三寸之舌), 얼굴이 셋 팔이 여섯이라는 뜻으로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면육비(三面六臂), 사귀어 이로운 세 부류의 벗으로서 정직한 사람과 성실한 사람과 견문이 넓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익지우(三益之友), 세 가지 아래의 예라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지지례(三枝之禮), 머리가 셋이요 팔이 여섯이라 함이니 괴상할 정도로 힘이 엄청나게 센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두육비(三頭六臂),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을 삼사일언(三思一言) 등에 쓰인다.
▶️ 過(지날 과, 재앙 화)는 ❶형성문자로 过(과)는 간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咼(와, 과; 입이 삐뚤어짐)의 뜻이 합(合)하여 바른 길을 지나쳤다는 데서 지나다를 뜻한다. ❷형성문자로 過자는 '지나다'나 '경과하다', '지나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過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咼(가를 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咼자는 '뼈'를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過자는 어떠한 상황이나 상태가 지나갔음을 뜻하기 때문에 길을 걷는 모습을 그린 辶자가 '지나가다'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過자는 '초과하다'나 '넘치다'와 같이 한계를 넘어선다는 뜻이 확대되어 있다. 그래서 過(과)는 지나치는 일, 통과하다, 도를 넘치다, 과오(過誤) 따위의 뜻으로 ①지나다 ②지나는 길에 들르다 ③경과하다 ④왕래하다, 교제하다 ⑤초과하다 ⑥지나치다 ⑦분수에 넘치다 ⑧넘다 ⑨나무라다 ⑩보다, 돌이켜 보다 ⑪옮기다 ⑫허물 ⑬잘못 ⑭괘(卦)의 이름 ⑮예전 그리고 ⓐ재앙(災殃)(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날 력/역(歷), 지날 경(經), 그릇될 와(訛), 그르칠 오(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공 공(功)이다. 용례로는 일이 되어 가는 경로를 과정(過程), 지나간 때를 과거(過去), 예정한 수량이나 필요한 수량보다 많음을 과잉(過剩), 지나치게 격렬함을 과격(過激),정도에 넘침을 과도(過度),지나치게 뜨거워지는 것을 과열(過熱), 잘못이나 그릇된 짓을 과오(過誤), 지나간 일을 과거사(過去事), 조심을 하지 않거나 부주의로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를 과실(過失),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빎을 사과(謝過), 통하여 지나가거나 옴을 통과(通過),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사물의 한도를 넘어섬을 초과(超過), 공로와 과오를 공과(功過), 대강 보아 넘기다 빠뜨림을 간과(看過), 때의 지나감이나 시간이 지나감을 경과(經過), 모르는 체 넘겨 버림을 묵과(默過), 능력 같은 것이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나 딱 알맞지 않음 또는 중용을 얻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과불급(過不及),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이 중요함을 가리키는 말을 과유불급(過猶不及), 밀밭을 지나면 밀 냄새만 맡고도 취하게 된다는 뜻으로 술을 도무지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과맥전대취(過麥田大醉), 뜰에서 가르친다는 뜻으로 아버지가 자식에게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과정지훈(過庭之訓), 눈에 스쳐 지나가면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한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과목불망(過目不忘), 아는 이의 문전을 지나가면서도 들르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과문불입(過門不入), 성인이 지나가는 곳에는 백성이 그 덕에 화하고 성인이 있는 곳에는 그 덕화가 신묘하여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을 과화존신(過化存神), 지나친 공손은 오히려 예의에 벗어남을 이르는 말을 과공비례(過恭非禮), 잘못을 하면 즉시 고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함을 이르는 말을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그 사람이 내 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나를 찾아주지 않았다 하여 별로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그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여김을 이르는 말을 과문불감(過門不憾), 사실보다 지나치게 평가함을 일컫는 말을 과대평가(過大評價), 잘못을 서로 고쳐 줌을 일컫는 말을 과실상규(過失相規),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음을 일컫는 말을 과여불급(過如不及), 잘못하고서 고치지 않는 것이라는 뜻으로 그것을 잘못이라고 하는 의미의 말을 과이불개(過而不改),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을 과거지사(過去之事), 지나가는 불에 밥을 짓는다는 뜻으로 어느 특정한 사람을 위해 한 일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음을 이르는 말을 과화숙식(過火熟食), 다리를 건너고 나서 그 다리를 부수어 목재를 훔쳐간다는 뜻으로 극도의 이기심이나 배은망덕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과하탁교(過河坼橋), 분수에 지나치는 욕망을 일컫는 말을 과분지망(過分之望), 사물을 지나치게 떠벌림을 일컫는 말을 과대황장(過大皇張), 분에 넘치는 일을 일컫는 말을 과분지사(過分之事), 과오를 저지른 후에 능히 고침 즉 한 번 잘못을 저지른 연후에 잘못을 참회함으로써 선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과연후능개(過然後能改), 보통 사람보다 훨씬 센 힘을 일컫는 말을 과인지력(過人之力), 한 번 보기만 하면 그대로 욈을 일컫는 말을 과목성송(過目成誦)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