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 조련사' 유승안(58) 경찰야구단 감독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아직 국내 프로야구에선 성공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모험'이다. 유 감독은 프로야구 '포수 기근 현상'을 해결해줄 대안이라고까지 말했다. 바로 내야에서 뛰던 선수를 포수로 전향시켜 1군에서 뛸만한 자원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명 '포수 만들기 프로젝트'다. 유승안 감독은 지난해까지 NC에서 뛰다 올해 경찰야구단에 입대한 3루수 강진성(21)을 포수로 육성하고 있다.
유승안 경찰야구단 감독
◇ 포수 만들기 이유는?
포수가 없다. 경기를 믿고 맡길 만한 쓸만한 선수가 없다. 두산, 롯데 등 일부 구단을 제외한 각 팀의 감독들은 포수 부재에 고심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포수 기근 현상의 원인을 아마야구에서 찾고 있다. 아마야구에 포수를 지도할 전문 배터리코치가 부족해 프로에서 쓸만한 좋은 자원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유승안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전문 지도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는 좋은 포수들이 많이 배출됐던 과거에도 아마야구에 전문 지도자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근본 원인을 '지명타자 제도'에 있다고 했다. 유 감독은 "아마야구에서 많은 팀들이 지명타자를 활용하면서 투수들이 타자 겸업을 하지 않게 됐다"고 주장했다.
투수들이 타자 겸업을 하지 않은 것과 포수의 부재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쉽게 이해하기 힘든 지적이다. 하지만 유 감독은 "야구에 재능이 있는 선수들, 특히 어깨가 강하고 빠른 선수들이 과거에는 투수와 타자를 겸해왔다. 특히 어깨가 강한 선수들은 투수와 포수를 동시에 했다"며 "지명타자 제도를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투수는 다른 포지션을 겸하지 않고 오로지 투수에만 몰두한다. 재능있는 자원이 투수로만 몰리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투수만 해오던 선수들은 쉽게 타자로 전향하기 어렵다. 현재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해 큰 성공을 거둔 이승엽, 나성범 등은 아마에서 투타를 겸해온 선수들이다. 유 감독은 "아마야구에서 지명타자 활용을 줄이고 선수들이 지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전까지는 투타와 여러 포지션을 두루 경험하면서 자신에 맞는 포지션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재능이 있는 원석을 발굴하고, 지도해 1군 선수로 키워내는 것은 프로의 몫"이라고 했다. 결국 포수 경험이 없는 선수도 재능만 충분하다면 프로에서 충분히 육성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조범현 kt 감독의 생각도 비슷하다. 조 감독은 "미국에서도 포수난이라더라. 그래서 아마에서는 포수 경험이 없지만, 어깨가 강한 선수들을 프로에서 포수로 키워내기도 한다"며 "우리도 워낙 자원이 없다보니 포수로서 괜찮은 조건의 선수의 포지션을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박경완 SK 2군 감독 역시 조 감독의 생각에 동의했다. 외국인 포수로 관심을 모은 넥센 로티노는 프로팀에 입단하기 전까지 포수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여기에 성적에 얽매이지 않고, 선수 관리와 육성이 주가 되는 경찰야구단의 특수성이 맞물리면서 유승안 감독의 모험이 가능할 수 있었다.
능숙한 솜씨로 포수 수비를 보는 강진성
◇ 왜 강진성이 선택됐나.
강진성(21)은 2011년 드래프트에서 NC에 2차 4라운드로 지명된 유망주다. 고 2때 이미 청소년 대표에 선발될 만큼 자질을 인정받는 선수다. 특히 타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선 65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6푼4리 28타점 6도루를 기록했다. 그는 경기고 재학시절 3루를 주로 봤고, 프로에 와서도 줄곧 3루수로만 뛰었다.
유승안 감독은 "전에도 몇 차례 내야수 중에서 발이 빠르고 어깨 강한 선수에게 포수 전향을 제의했었다"며 "구단이나 선수 모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더라"고 했다. 강진성은 유승안 감독이 생각하는 포수로서의 기준에는 100% 충족하지 않는다. 그는 포수로서 체격(178cm·81kg)이 다소 왜소하다. 하지만 유 감독은 그의 강한 어깨에서 나오는 송구 능력에 주목했다. 유승안 감독은 "선수와 소속팀인 NC 모두 내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고 했다.
강진성은 포수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포지션이 포수였다. 하지만 중학교 때 내야수로 자리를 옮겼다. 경기고 재학시절에는 주전 포수의 부상으로 지역 대회에서 포수 마스크를 쓴 것을 제외하고는 3루수만 봤다. 강진성은 "원래 공 받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포수라는 포지션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진성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에는 박종훈 NC 육성이사의 조언이 컸다. 박종훈 이사는 강진성에게 '실패해도 내야로 돌아가면 되니 부담없이 도전해보라'고 용기를 줬다고 했다. 여기에 야구인 출신인 아버지(강광회 심판위원)도 유 감독의 의도를 잘 이해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강진성은 포수 전향을 제의받고, 하루 연습 후 바로 경기에 투입됐다. 유승안 감독은 "교본에 나온 내용을 눈으로 익히는 것보다 실전 경험을 통해 선수가 부족한 부분을 깨닫길 바랐다"고 했다. 물론 점수차가 벌어진 부담없는 상황에서 투입됐다. 첫날 3이닝을 소화한 강진성은 자신감을 얻었다.
강진성이 포수 마스크를 쓴지 이제 4개월정도 흘렀다. 20일 kt와의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6회 한승택에 이어 나온 강진성은 제법 능숙하게 포수 수비를 소화했다. 자신감있는 포수 리드는 물론 포수 뒤쪽으로 날아오는 파울 타구도 무리없이 처리했다. 유승안 감독은 "아직 포수 송구 메커니즘을 완벽히 숙지하지는 못했다"며 "블로킹, 볼배합 등을 배우면서 경험을 쌓는다면 좋은 포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강진성은 강민호, 김태군 등의 동영상을 돌려보며 볼배합을 익히는데 신경쓰고 있다.
◇ 성공 가능성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프로와서 포수로 전향해 안착한 사례는 없다. 과거 해태 이건열(현 동국대 감독)이 포수로 뛰기도 했지만, 전문 포수는 아니었다. 이건열이 해태에 입단했을 당시 주포지션인 1루에 김성한이 버티고 있었다. 그는 포수는 물론 내외야까지 두루봤다. 그를 포수로 특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또 이종범(현 한화 코치)이 해태 시절 포수를 보기도 했지만, 포수가 모두 교체된 경기 막판 투입된 것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LG 내야수 문선재가 포수로 기용된 적이 있다. 문선재는 지난달 19일 대전 한화전에서 1루주자 김경언의 도루를 잡아내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문선재도 이종범과 비슷한 케이스다. LG 채은성이 그나마 근접한 사례다. 채은성은 순천 효천고 시절 1루와 3루를 봤다. 하지만 프로에 와서 포수로 전향했다. 2009년 입단 당시 LG에 포수를 볼 선수가 부족했고, 채은성 본인도 기회가 될 것 같아 포수 전향에 동의했다. 하지만 군 제대후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 찾아왔다.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겪는 선수는 목표를 향해 공을 던지는 순간 공을 놓는 타이밍을 찾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정확한 송구가 어렵다. 보통 신체적인 문제보다는 지나친 부담 등 심리적인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져있다. 채은성은 포수지만, 이 증상때문에 고생을 했다. 투수에게 정확히 공을 전달하지 못했다. 채은성은 "2년간 공백도 있었고, 부담이 많이 됐던 것 같다"며 "투수를 향해 공을 던지는데 원바운드가 나고 투수 키를 훌쩍 넘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그는 수비 부담이 적은 원래 포지션으로 돌아갔다.
유승안 감독은 "강진성이 경찰야구단에 있는 2년 동안 최소 1군 백업 요원이 가능한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아직 국내에서 성공사례가 없는만큼 강진성의 포수 전향 성공여부는 중요하다. 강진성은 아직 팀에서 주전 한승택을 보조하는 백업 역할을 하고 있다. 주로 점수차가 많이 벌어진 경기에서 2~3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도루 저지율은 0(3번 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