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기 좋은 계절인 장장춘일(長長春日)이 다 지나가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성하(盛夏)의 계절이 바야흐로 시작된다. 남해안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다녀온 후 3주만에 실시하는 라이딩으로, 천안, 아산, 평택일대를 여행코스로 선정하고, 가급적 차도를 피해 천안천,성환천, 안성천으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을 택하였다. 아산역까지는 거리가 꽤 멀어 새벽부터 준비하고 일찍 서둘러 출발하였다.
나는 신참이라 그런지 가는 곳마다 새롭고 마음이 항상 설레인다. 이번 라이딩에는 한 때 핵심 멤버로 활동했던 김학천 동문이 5년 6개월만에 복귀하여 동료 대원들로 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김학천 회원은 말레이시아에서 전기 기술자 파견 근무로 불가피하게 5년 6개월간 라이딩과 인연을 끊었다가 금년 처음으로 라이딩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오벨로가 모처럼 라이딩에 동참하여 분위기를 띄었다.
바이크 손은 라이딩 전 날 강아지(진주)와 함께 아파트 단지내에서 산책하다가 넘어저, 눈썹 주위에 촬과상을 입어 라이딩에 참가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금년들어 두번째 이다. 오전 10시에 아산역에 모여 가볍게 몸을푼 다음 세도우수(김명수)를 선두로 아산역을 출발하였다. 나선형 오르막 육교를 지나 장재천 호수공원을 가로질러 좌회전하고 장재천의 자전거길을 따라 천안천으로 진입하였다.
그러나 자전거길이 끊겨 더 이상 갈 수 없었으나, 깊게 우거진 갈대숲을 헤치며 힘들게 끌바하고 비포장 천안천변 둑길로 올라서서 폐달을 밟으니,노면이 울통불통하여 엉덩이가 춤을 추는듯 하였다. 세교길로 접어들고 천안천변과 자전거길을 따라 계속 직진하였다.천안천은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천호지에서 발원하여 천안시 중심부를 관통하면서,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서 곡교천에 합류하는 하천으로 유로연장은 16km 이다.
천안천은 자연 친화적인 하천으로 쾌적한 녹지공간과 운동시설이 두루 갖춰져 있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 하천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짙푸른 억새군락과 녹초가 많이 우거저있어 경관이 한층 운치있게 보였다. 천안천변 자전거길은 노면이 고르지않은 점이 옥에 티였다. 천안천변 자전거길에서 단대호수 천호지에 이르는 길은 마지막 가파른 경사(15m,20도)로 만만치 않았다.
김간진은 만만히 보고 힘차게 폐달을 밟았으나 중간쯤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쇄도우수 김명수는 거뜬히 올라갔다. 단대호수 천호지와 단국대 천안캠퍼스와 함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단국대학교의 녹음과 천호지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느낌이다. 천호지는 천안천의 발원지이며, 물주머니이기도 하다. 천호지를 연결하는 교량위에서 호수와 단대 캠퍼스를 배경으로 멋진 인증샷을하고, 천호지 생활체육공원을 지나 호수 주위에 설치된 수변 나무데크 산책로를 따라 폐달을 밟으니 몸과 마음이 경쾌하고 청량감을 느낄 수 있었다.
햇살이 반짝이는 잔잔한 호수에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있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호수를 바라보며 한 숨을 돌린 후 점심식사 장소로 출발하였다. 태백 감자탕 식당에서 태백 감자탕으로 오래간만에 맛있게 먹었다. 육질이 연하고 국물이 구수하여 입맛을 돋구웠다. 시원한 소주와 막걸리로 오손도손 정겹게 이야기하며 회음(會飮)하니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천안시 도심을 가로질러 두정역을 거쳐 한국 기술 교육대학교 제 2캠퍼스를 경유하여 업성저수지에 당도하였다.
업성저수지는 성환천의 물주머니로 지난 수십년간 각종 생활 오폐수로 몸살을 앓았지만, 2020년까지 인공습지와 침강지, 인공섬 등을 설치해 환경친화적인 수변생태공원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로 제공될 전망이다. 성환천을 따라 직산역 앞을 통과하여 성환역 방향으로 향하였다. 성환천 상류는 파헤쳐지고 한참 공사중이라 자연하천으로서 기능이 상실된 느낌마저 들었다. 자전거 전용도로도 없고 비포장길이 대부분 이었다.
성환역에 다가올 즈음 월봉산이 건물 사이로 시야가 들어온다. 청일전쟁 때 청나라군 섭지초 제독이 이끄는 3천여명의 병력으로 월봉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일본군과 대치하였다. 일본군은 오오시마 여단병력 18,000여명의 정예부대로 편성하고 인천에 상륙한 다음 남하하여 청군과 일전을 결행하기로 하고 소새평(성환역에서 4km)에 도착하였다. 청군은 미리 안성천에 보를 만들어 물을 모으고 대비하고 있었다.
청.일군은 안성천 다리 양쪽에서 대치하였으며, 초기전투에서 청군의 야간 역습과 마침 우기로 보가 넘쳐 흘러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일본군 마쓰사끼 대위와 나팔수등 수많은 병사가 전사하였다. 그러나 청군 공격군의 후속부대가 없자 수와 역량 모두 우세한 일본군에게 역습당하여 청군은 패배하고 말았다. 고종 31년 (1884년) 6월 27일 새벽 일본군의 공격개시 시작으로 청일전쟁 당시 최초로 싸운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성환읍 안궁리에 마쓰사끼 대위 전몰지란 표석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현 성신 초등학교 운동장에 전공비를 세워 전적 기념지를 조성하였다.
성환천 매주교를 지나 성환역을 경유, 성신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전공비가 설치되어 있는지 확인하였으나 역사의 흔적은 없었다. 전적 기념비는 8.15 해방후 성환 청년들이 파괴하여 성신 초등학교 운동장에 묻혀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당시 지방사람들은 물왜보라고 부른다. 물왜보의 뜻은 몰왜보(歿倭洑)가 변한 것이다. 몰왜보란 왜병이 몰살당한 보란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섭지초 제독은 지금의 청망평(淸亡坪)에 진을 치고 새벽에 밥을지어 군사를 먹이다가 왜군의 기습을 받고 그대로 무너졌다. 그래서 월봉산 앞들을 청군이 망한 들이라 하여 '청망잇들' 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그리고 청의 해군은 청일전쟁 당시 아산만 풍도 근해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일본 해군의 포격을 받고 힘없이 무너져 버렸다.
청일전쟁의 배경은 동학운동이 발단이다.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였다. 갑신정변으로 청.일 양국은 천진조약(고종 32,1885년)을 맺어 조선에서 일본이 청과 대등한 권리를 얻었다. 그리고 조선에 파병할 때에는 사전에 상대국에 통보하기로 약정하였다. 그러나 청나라는 천진조약의 약정을 무시하고 일본에 통고없이 파병하였다. 청이 전쟁에 패하게 되자 그 후유증이 조선의 외교권 박탈과 일제 36년 억압정치 서막이 시작된다.
다시 성환천으로 진입하고 평택역을 향해 내닫았다. 장천교를 지나자 성환천의 모습이 180도 바뀌었다. 자연 친화적인 하천의 본래 모습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농염이 가득한 짙푸른 억새와 버드나무,녹초들이 우거저 있었고 왜가리들의 보금자리로 평화롭게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처음에는 크게 실망하기도 하였지만, 하천 본래의 모습을 보니 어렸을 적 하천 생각이나 기분이 너무 좋았다. 자전거길도 반듯하게 시멘트 포장길로 닦아놓아 편안한 기분이었다.
성환천은 평택시 팽성읍 평궁리에서 안성천과 합류하고, 안성천은 국가하천으로 아산만으로 유입되어 서해 바다로 흐른다. 안성천의 자전거길을 타고 군문교에서 우회전하여 평택역에 도착하였다. 이번 라이딩은 코스가 길지 않으면서 비교적 평탄한 길이어서 마음이 편안하였다. 그리고 유유자적하면서 허심탄회한 정담도 나누고, 주전부리로 지친 피로와 갈증을 풀 수 있어 여행은 즐거웠다. 단지 아쉬운 점은 바이크 손대장이 함께 참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동고 16회 바이콜릭스(Bikeholics)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