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산사를 둘러
지난 주 금요일 방학에 들어 일주일이 지났다. 열흘 간 방학이니 주말을 지난 다음 주중 개학을 앞두었다. 대학 동기들 모임이 있어 통영에 다녀왔다. 어머님 기제로 고향을 찾아 형제 조카들을 만나고 왔다. 퇴직 후 북면에서 전업 농부가 된 지인을 찾아뵙기도 했다. 어제는 내가 남겨가는 글을 읽어본 독자가 산행을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의림사 계곡을 찾아 더위를 식히고 나왔다.
팔월 셋째 금요일 아침에 배낭만 둘러매고 길을 나섰다. 집 근처 마트에서 곡차를 두 병 마련했다. 반송소하천을 따라 걸어 원이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창원실내수영장 앞으로 갔다. 소계동에서 성주동으로 오가는 시내 순환버스 213번을 탔다. 시청광장 로터리와 상남시장을 거쳐 창원대로에서 대방동으로 들었다가 안민동으로 건너갔다. 성주산업단지를 앞둔 성주동 종점에서 내렸다.
방학을 하면 성주사를 한 번 찾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주민이 떠난 성황당에 세운 마을 휴허비를 지나니 제2안민터널 공사현장이었다. 한낮이면 폭염이 대단할 텐데 인부들이 이른 아침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성주 수원지를 돌아 성주사로 가는 길로 들렀다. 절의 공식 법회는 음력으로 초하루와 보름이라 내가 찾은 날은 칠월 초이틀이라 신도들의 발길이 끊겨 절간처럼 조용했다.
약수터와 범종각을 돌아 돌계단으로 올라 법당 뜰에 섰다. 문을 열어둔 대웅전에는 한 신도가 기도를 올렸다. 나는 법당과 떨어진 마당귀에서 두 손을 모으고 지장전을 돌아 관음전 뒤로 갔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길을 따라 절간에 딸린 채전을 지나 불모산 숲으로 들었다. 정상으로도 갈 수 있는 비공식 등산로였다. 올여름 장마가 길어서인지 계곡에는 맑은 물이 넉넉하게 흘렀다.
계곡으로 내려서 손을 담그고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씻었다. 포말을 일으키며 흐르는 물로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배낭을 열어 준비해 간 곡차를 꺼내 잔에 채워 비웠다. 안주는 배낭에 남겨져 있던 생마늘로도 족했다. 몇 지기들에게 여름 성주사와 계곡의 풍광을 담은 사진을 날려 보냈다. 낮이면 점차 더워질 텐데 시원한 계곡 물가에 퍼질러 앉아 한동안 무념무상 시간을 보냈다.
계곡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낸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숲길로 들었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높이 자란 낙엽활엽수가 울창한 숲이었다. 인적이 없는 숲을 천천히 걸어 산등선에서 새로운 등산로를 만났다. 성주사 주차장과 불모산 저수지에서 올라오는 공식 등산로였다. 정상까지는 까마득해 오를 마음이 없었다. 여름 산행은 숲길이라도 먼 곳까지 오래도록 걷는 무리를 하면 안 되었다.
산등선에서 내려선 길도 주변은 숲이 우거져 삼림욕이 절로 되었다. 창원터널이 혼잡해 새로 뚫은 불모산터널 가까운 데였다. 터널 입구로 드나드는 차량들의 바퀴 구르는 소리가 붕붕거렸다. 비탈을 내려가니 멧돼지가 진흙에서 뒹군 물웅덩이가 나왔다. 산허리에서 T자 갈림길을 만났다. 성주사 바깥 주차장에서 상점고개로 향하는 숲속 길을 걸으니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왔다.
아까 지나온 성주사는 상수원 보호구역이지만 산등선을 넘은 불모산동은 그렇지 않다. 불모산은 산세가 웅장에 겹겹이 골이고 계곡이다. 나는 불모산 일대 지형지세를 훤히 꿰차고 있다.어디가 알탕하기 좋은 물웅덩이가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국립공원이 아닌지라, 상수원 보호구역도 아닌지라, 인적이 전혀 없는지라. 알탕의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춘 계곡의 물웅덩이로 들었다.
몸을 담근 명경지수는 시원함이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잠시 너럭바위로 나와 남겨둔 곡차를 마저 비웠다. 다시 물웅덩이로 들었다가 나오길 반복했다. 몸에 묻은 물방을 털어내니 속세의 먼지까지 다 씻겨낸 기분이었다. 계곡을 더 내려가니 터널 입구 박스형 교량 굴다리를 지났다. 산기슭 무위사를 지나 개울을 건너니 불모산동 저수지와 기축골이었다.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2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