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20.
왕상19:1-10
갈멜산에서 돌아온 아합은 그의 아내 이세벨에게 엘리야와 그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자세히 전했다. 그리고 이세벨의 상에서 먹던 선지자가 몰살당했음도 알리자 이세벨은 내일 이맘때에 반드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갈멜산에서의 영적 전투를 승리로 이끈 위풍당당한 엘리야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다.
이세벨의 협박에 그는 두려움과 자괴감에 휩싸여 도망했고 광야로 나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간구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그를 어루만지시며 떡과 물을 먹게 했다. 그리고 그 음식을 의지하여 40일 걸려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그러나 하나님의 호렙에 이르렀어도 엘리야의 영적 탈진은 회복되지 않았다. 굴에 머물러 있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매우 열심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부수며 주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여서 이제 저만 혼자 남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이제는 제 목숨까지 빼앗으려 합니다.’ (10절 우리말 성경)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오히려 이세벨은 자기
목숨을 위협하니 엘리야는 엄청난 영적 고독감에 빠진 듯하다.
주의 은혜를 크게 경험한 사람일수록, 혹은 주의 은혜를 더 열심히 구한 사람일수록 더 큰 영적 고독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사람의 유한성 아니겠는가.
결코 사람으로서는 아무리 열심히 특심이어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때에도 ‘네가 왜 그렇게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느냐’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쳐진 어깨를 어루만지시며
로뎀나무 아래의 쉼을 주신다.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내 감히 엘리야와 비교할 수 없으나 성도들과 교회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며 가르치다 보면 나 역시 간혹 영적 고독감과
두려움에 빠지곤 한다.
어찌 그리도 영적으로 자라지 않는건지, 왜 그렇게 하나님을 자기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려고만 하는지, 그렇게 가르치는 대도
세상의 편리와 평안을 영생으로 왜 오해하고 착각하는지...
차라리 내게 그들의 영혼을 위한 안타까움의 마음을 거둬가시고 기도하지 않게 하시며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사실
있다.
나 역시 세상의 안위를 따라 살아보려 못본척 애써 외면도 해보았다.
그리고 실상은 그들의 모습이 내 모습일 수 있음을 알게 되면 더 자괴감에 빠진다.
그때마다 주님은 나의 로뎀나무에서 물과 떡으로 먹이시며 새 힘을 북돋우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너는 그저 가만히 있어 내가 행하는 구원을 보라. 그러나 네가 서 있는 자리를 떠나지 말고 서 있으라.’
그렇다.
나는 할 수 없으나 주님이 마침내 이루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