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간다.
- 소녀에서 여인으로의 꿈을 꾸는 소녀 그러나 소녀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준 영화 -
혼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데 있어서 영화만 한 것도 없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인터넷 기술이 발달한 사
회에서는 컴퓨터로 다운 받아 손쉽게 볼 수 있는 영화야말로 경제적인 문화생활임과 동시에 개인의 지
루함을 달래주는 청량제다.
따라서 필자도 컴퓨터로 볼 수 있는 영화를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씩 1시간이상을 투자해서
본 영화가 정말 사람을 화나게 할 때가 있다. 아마도 극장에서 이런 영화를 본다면 화 김에 앉아 있던 의
자 밑에 음료수라도 쏟아 놓고 도망치리라.……
바로 어제 나에게 이런 영화가 오랜만에 한편 걸리고 말았다. 제목부터 유치한 '언니가 간다' 다. 다행이
도 영화는 흥행에 참패한 것으로 보여 뒤에 오빠가 간다나, 아빠가 간다, 엄마가 간다 등의 아류작들은
나오지 않게 되어 천만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주된 이유는 역시 이런 영화를 보게된 억울함으로 인해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과 그
영화를 씹어 보면서 우리의 울분을 달래는 데 있다 하겠다.
영화의 큰 구조는 내가 영화를 한번 보고 이렇게 쭉 써 내려 갈수 있을 정도라 간단하다.
30세의 첫사랑의 실패한 여자 나정주가 있고, 과거의 첫사랑 남자 조하늬와 나정주 그리고 나정주를 좋
아하는 18세의 오태훈 있다. 이들의 관계는 나정주를 놓고 오태훈과 조하늬의 삼각관계가 형성되어 있
고 이 들의 관계 밖에는 오태훈과 18세 나정주를 맺어주려는 30세 나정주가 있다. 이게 이 영화를 구성
하는 구조의 전부다. 그럼 내용은 어떨까?
구조가 이러하니 내용 역시 아주 엉성하다. 마치 한편의 하이틴 순정만화를 보는 듯 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18세때 받은 첫사랑의 상처로 인해 가슴아프게 살아가던 30세 나정주에게 본인이 첫사
랑이라는 성공한 사업가 오태훈이 등장하고 그와 잘해 보려던 나정주에게 첫사랑과의 춘천여행사건은
이 마져 망쳐 놓고 만다. 실의에 찬 나정주에게 기적처럼 자신의 컴퓨터에 과거로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작동이 되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30세의 나정주는 94년으로 간다. 30세의 정주는 시종일관 조하늬와
18세의 나정주를 떼어 놓고, 18세 오태훈과 정주를 맺어 주려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과거 키네스 펠트
로가 열연했던 '슬라이딩 도어즈'에서 보여준 운명론을 믿듯 30세의 정주가 날밤까지 세가며 정주의 춘
천여행도 못가게 해 보지만 시간만 지연한 것일 뿐 끝내는 정주와 하늬는 춘천여행을 가게 되는 것으로
30세 정주의 과거여행을 끝을 맺고 만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내 첫마디는 이거였다. 뭐야 xx럴.……
그렇다면 영화가 이렇게 재미없는 이유가 뭘까?
결론부터 보자면 이 영화는 철저하게 동화 같은 소녀 영화다.
30세가 되도록 첫사랑의 상처를 잊지 못하고, 나아가서 그 것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다 이렇게 꼬여버렸
다는 책임회피 식의 30세 나정주가 아직 여인이 되지 못한 소녀고, 첫사랑은 가슴찡한 있어야 한다는 18
세 나정주가 소녀다. 결말 역시 소녀적이다. 무릇 사람의 선택이란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잃는 게
당연한 게 세상의 이치다. 경제학에서의 기회비용에 입각에서 생각해 보면 말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
지나 경제학적인 논리고 연애에 있어서 그런 게 통용될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의 결말
에서 과거의 태훈이 아닌 하늬를 잘못 선택해 사랑했던 정주가 그 선택에 결과에 따라 태훈과는 맺여지
지 못해야 하는 게 당연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주에게는 태훈이라는 기회가 주워진다. 이 얼마나 작
위적인가? 무슨 동화도 아니고 말이다. 관객을 우롱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말이다. 영화에 있어서 정주의
과거여행에 앞서서 30세 태훈이 솔로가 아닌 커플이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태훈의 애
인으로는 정주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고교동창 정도로 해서 말이다. 아마도 이렇게 된다면 극중 정주
의 심리는 하늬를 선택했던 것에 대해서 보다 많은 후회가 가중될 것이고, 이렇게 하면 정주의 과거여행
의 명제가 보다 더 선명해 지리라.
하지만 영화는 동화처럼 정주가 무슨 일을 해도 항상 정주에 곁에 있는 태훈이 그려진다.
(한마디로 꼴 사납다 하겠다.)
이러한 구도는 흡사 동화책의 한 장면 같다. 아니 보다 더 소녀 팬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소년소녀를
떠나서 사람은 다 이기적인 구석이 있어서 연애에 할 때 자신이 어떤 짓을 해도 자기 곁에 있어줄 사람을
꿈꾼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동화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고 실제로는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
으며 있다고 해도 복잡 미묘한 과정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장치를 내포하지 못
했다. 신데렐라에 왕자처럼 정주에게 태훈은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진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영화는 결말을 비관적으로 그려 줬으면 어떠했을까? 싶다. 과거 키네스 펠트로 열연했던 '슬라이
딩 도어즈' 처럼 운명의 고리를 어떻게든 끊어보려고 과거로 회귀한 정주가 별 발악을 다 해보지만 끝내
운명의 고리를 끊을 수 없고 철저하게 상처받는다는 식의 결말 말이다.
하지만 영화의 선택은 역시나 동화요. 어린 소녀들의 이기적인 사랑을 간접적으로 실현해준 결말에 지
나지 않는다. 아직 여인이 되지 못한 소녀들의 사랑은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사랑에는 그에 따른
결과까지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주가 소녀가 아닌 여인이라면 자신의 하늬와 사랑에 있
어서 그러한 결과까지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주는 영화 끝까지 그런 면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는 성숙된 여인의 사랑을 잘 보여준 단면이라 하겠다. 참
고로 이 영화는 자신의 사랑의 선택과 함께 자신의 죽음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다 수용하고 받아들
이는 성숙된 여인의 사랑이 잘 그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교훈은 이거다. 정주는 사랑에 있어서 자기마음 흐르는 대로 그냥 살아도 잘 풀린다
는 얘기다. 즉 18세 때는 그때 끌리는 하늬와 사랑을 하고, 30세 때는 그때 끌리는 태훈을 사랑하면 된다
는 것이다. 어떤가 요즘 많이 지탄받고 있는 결혼 따로 사랑따로와 비슷하지 아니한가?
소녀들이여 이런저런 윤리와 가치관을 따지지 말고 그냥 마음가는 데로 남자를 사랑할지다. 왜냐 당신
이 그렇게 살아도 나중에 태훈과 같은 참한 남자가 나타날테니.……
끝으로 나는 태훈을 보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내 자신의 옛추억이 하나 떠 올랐다. 그래서 내가 이 영
화를 보고 더욱더 욕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당부의 말을 하자만 이 땅의 태훈이들아 하나만 바라
보지 말고 여기저기 눈 좀 돌리고 살아라. 너희들은 중국집에 탕수육먹으러 가서 안 될 때 대신 먹는 잡
채밥이 아니라네.
첫댓글 고소영..계속 망하는구만..아파트에 이어..~
고정하시옵소서~ 저도 한반도 보고 개거품좀 물었더랬습니다. 보다가 꺼버렸지요. 안성기랑 문성근이 감독한테 빚이 있나 했습니다... 거 참..
위에 게시물에 대중들의 선택에 관한 논쟁이 있었는데 문학은 몰라도 영화에서만큼은 한국관객들의 선택은 정말 날카롭다 라는생각이 드네요. 한국영화 망하는데 다 이유가 있는거네요 ㅎㅎ. 고소영도 알고 보면 안타까운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뜬 영화가 뭐 있나요? 각광을 받은게 비트때부터로 알고 있는데 그 영화에서도 거의 정우성보조고. 그 후로 연풍연가, 이중간첩 등 안습 상황이죠. 연기력은 있는데 얼굴로 밀기엔 나이가 좀 차버렸고 딱히 답이 없는 상태에 처한 건 아닌지.
영화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는 생각지도 못한 이해관계들이 얽히더라구요. 한국 영화 망해라! 라고 해도 될 만큼 별 말도 안되는. 고소영, 운도 없고 안타까운 배우입니다. 쿡.
에~~~ 벗을 때가 온겁니다. 혜수씨 봐요... 그 오버연기를 하고도 몸매 하나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먹었지 않습니까. 근데 혜수씨 죽이긴 죽입디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