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찾아온 가을 무더위라고 했다. 전력이 부족하여 정전사태로 전국이 시끄러웠다. 정치는 정치대로, 사업장은 사업장대로, 서민은 서민대로 모두가 힘들어 하는 요즘이다. 추석이 유달리 빨랐던 올해는 계절의 시스템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것 같다.
수원에 사는 사돈(제수씨 오빠)께서 방문을 하셨다. 차에 두유 다섯 박스를 싣고 오셨다. 팩으로 된 두유가 아니라 베지밀처럼 유리병에 담긴 두유였다. 한 박스에 40병씩 들었단다. 자오쉼터 장애인 삼촌들이 생각나 싣고 오셨단다. 참으로 감사했다. 사돈이 돌아간 후, 인선씨에게 내 차에 두 박스만 실어 달라고 했다. 20분 거리에 있는 양로원 할머님들이 생각나서 차에 실어 달라고 했다.
차창을 열고 가을 길을 달린다. 벼도 서서히 고개를 숙여가고 있었다. 어느 집의 담장 너머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감나무에도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어떤 감은 주황색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산에는 밤나무들이 밤송이들을 알차게 달고 있다. 문득 ‘가을산은 없는 친정보다 났다.’던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나 잠시 유년시절로 돌아가기도 했다.
양로원에 도착했다. 화단엔 예쁜 가을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가을꽃들은 청초했다. 코스모스가, 길가에 피어있는 여러 가지 꽃들이 다 그랬다. 그러고 보니 여름 꽃은 화려하고 봄꽃들은 싱그럽다. 할머님들이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더니 어서 오라며 손을 흔들어 주신다. 양로원에는 부부목사님이 어르신들을 섬기고 계신다. 아내 되신 목사님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신다. 남편 목사님께 차에 있는 것을 내려 달라고 한 후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린다. 왜 휠체어를 타고 계시느냐 물으니 허리 디스크로 서 있지를 못한단다. 할머님들이 오히려 걱정하고 계셨다.
머리에 빨간 띠를 질끈 동여맨 할머님은 혼자서 뭐라고 중얼대시며 손짓을 하신다. 독립운동 하시는 포스다. 소파에 누워서 여전히 밥 달라고 소리 지르는 할머님은 나를 보더니 “저년이 이제는 밥도 안줘요 아들 퇴근하면 일러줄 거야.”라고 하시더니 또 다시 밥 달라고 소리 지르신다. 대상포진으로 10년째 고생하시는 여든 살 잡수신 할머님은 아프다고 울상이시다. 대상포진은 옷으로 스쳐도 못 견디게 아프다고 하신다. 어떻게 해 드리지 못하니 마음만 아팠다. 나머지 두 분의 할머님과 할아버지 한분은 조용히 계신다. 저분들도 과거에는 나름 의미 있는 삶을 살았을 텐데….
누군가 그런 말을 했었다. 사회복지 시설을 하려면 아동시설을 하라고…. 그래야 희망이라도 생긴다고 했었다. 노인시설은 점점 늪으로 빠지게 된다고 했다. 장애인 시설을 하려면 눈높이를 낮추고 정신 연령도 낮추라고 했었다. 할머님들 수발을 들다가 허리를 다치셔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여 목사님을 보며, 사회복지 시설을 하더라도 젊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순을 바라보는 연세에 시설을 운영하려니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 코가 석자인데도 남 걱정을 하고 있다.
뚜껑을 연 두유를 한 병씩 드리며 마셔보라고 했다. 나도 같이 할머님들과 병을 부딪치며 마셨다. 땅콩까지 들어 있어서 고소했다. 당분간 어르신들 행복해 하시겠다며 좋아하신다. 할머님들께 빨리 기운 차려서 산에 밤 주우러 가자고 했더니, 요즘은 산돼지가 많아서 위험하단다. 며칠 전에도 산돼지가 내려와 밭을 다 망쳤다고 하신다. 할머님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심때가 다 되어 간다. 점심 먹고 가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나도 이젠 가서 우리 장애인들과 점심 먹어야 한다며 일어선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날은 가을여행을 잠시 떠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월에는 우리 장애인삼촌들 모시고 단풍구경 갈 구상을 하며 집으로 돌아 왔다. 할머님들이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같이 가면 좋겠는데….
2011.9.16.
양미동(나눔)
첫댓글 받은거 나누시는 아름다운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사람들의 마음도 가을처럼 풍성함으로 가득 채웠졌으면 하는 생각을 잠시해 봅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17년째 매월 2500권씩 발행하는 소식지를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쪽지로 주소와 이름을 남겨 주시면 기쁘게 보내 드리겠습니다.
나눔 그거 해본자만이 누리는 기뿜이지요.
콩나물 500원어치 사면 가족들이 점심을 잘 나눠 먹을탠대 하고 어느 봉사자분이 하시는 말씀이 제 뇌리에 스칩니다.